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0화 (410/500)

410화. 개봉박두, 단두대 매치 (1)

온 나라가 나쁜 의미로 시끄러웠다.

신재현의 인성 논란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그의 행적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시장이 노린 그대로였다.

“흐흐흑, 흐하핫!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냐!”

사무실에서 시장의 건너편에 앉아 보고를 올리던 보좌관은 기겁해서 놀란 눈으로 시장을 봤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별정직 공무원인 그로서는 무조건 시장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시장이 국회에 있을 때부터 보좌관이었고, 시장이 된 후엔 따라 들어왔다.

이런 종류의 공무원은 기간직이었다.

시험을 쳐서 들어온 정식 공무원이 아니라 시장이 나가면 따라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사를 미친놈 보듯 했다간 바로 오늘 잘릴지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미쳤는데.’

겉으로 말은 못 했지만 요즘 시장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결재를 올리러 오기가 싫을 정도였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속으로야 얼마나 음흉할지 몰라도 겉으로는 차분하고 근엄을 연기하던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무실에 둘밖에 없다고 해도 이렇게 밑바닥을 보여주다니.

보좌관인 자신을 믿는 건가?

아니면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가.

그놈의 생방송이 벌써 2주나 지났다.

바로 다음 날 등기우편으로 세무조사 통지서가 오긴 했는데, 그 후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폭로가 거짓말이라느니 해명하겠다느니, 국세청도 신재현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시장을 더 날뛰게 만들고 있었다.

“이거 봐. 역시 내가 맞았어. 똥물 던지니까 함부로 나서질 못하잖아!”

시장의 계획이 먹혀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신재현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정치판의 미덕은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이다.

그렇게 쌓아두면 언젠가 터뜨릴 타이밍이 온다.

그렇다고 보좌관이 지금 시장을 배신하겠다는 말은 아니고.

생각할수록 사람이 이상하다는 소리였다.

“절대 혼자 안 죽어. 목표가 코앞인데!”

시장은 보고서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뭘 보는지는 뻔했다.

신재현 인성 논란 개판을 보는 것이다.

참고로 이 개판은 시장이 만들었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유능한 사람이었다.

사람 하나를 순식간에 쓰레기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당장 국회의원 나오면 어느 지역구로 오든 무조건 당선이라 칭해지는 국민 공무원 신재현을 말이다.

그동안 이런 시도를 했던 국회의원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물 투척하는 실력만큼은 시장이 최고였다.

‘아오, 추잡해.’

시장의 이름으로 폭로된 것은 학폭 뿐이었다.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이미지를 깎아먹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혼자서 오물을 던지면 사람들이 의심할 수 있으니 발언자를 바꿔서 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익명의 고위 공무원에, 세무 공무원이라.

누군지 발신자를 찾아내지도 못할 뿐더러, 찾는다 해도 해명하기 쉽지 않다.

정치인을 모시면서 별 더러운 상황은 다 봤지만 역시 매번 볼 때마다 새로웠다.

지금 인터넷 상황만 해도 그랬다.

시장이 던진 파장이 얼마나 강했는가 하면 그 청렴과 깨끗함의 상징 신재현에 대한 이야기로 모든 커뮤에서 불타오를 정도였다.

모 위키의 신재현/논란 문서는 이미 3만 자를 넘었고, 수정 버전도 100번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위 아 더 월드다.

평소에는 신재현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잠자코 지켜보던 팬들도 이번만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수정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정말 이 방법으로 살아남는다면 정치사에 길이 남을 일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정치계는 더 더러워질 것이다.

공격받으면?

아, 네거티브를 왕창 던지면 되는구나!

상대가 아무리 깨끗해도 소용이 없구나!

아주 좋은 예시가 생길 테니까.

보좌관도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꼬박꼬박 댓글을 체크하고 있었다.

신재현을 믿는 사람, 실망했다는 사람이 뭉쳐서 대판 싸우는 모습은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개쓰레기였네.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거임.

-증거 없이 함부로 이런 말 해도 되냐? 일단 중립 기어 박아야 된다고 보는데.

-왤케 신재현 구설수가 끊이질 않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뭔가 있다는 거라니까.

└그래서 저번에 승진 얘기로 불탔을 때 면접 영상 보고 바로 버로우 탔죠?

└ㅋㅋㅋ이번에도 숲속 친구들 연전연승할 듯

└그래서 둘 중 거짓말한 놈이 끝장나는 거지? 두근두근 단두대 매치!

└없는 얘기 지어내서 일 잘하는 공무원 망치려고 한 거면 당연히 모가지를 날려야지.

아직은 대부분 신재현을 믿는다거나 상황을 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건 신재현의 그간 행적이 그만큼 투명하고 깔끔했다는 뜻이라 보좌관은 속으로 감탄했다.

정치인들 추락하는 과정을 많이 봤는데, 보통 이 정도 폭로면 한창 잘나가던 연예인도 고꾸라진다.

방송도 잘리고 자숙이라는 이름의 자택 연금의 길을 걷는다.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학폭은 진짜 용서 못 함.

└다른 건 용서되냐? 청탁하고 양다리도 용서 못 하는데.

└증거 없잖아. 신재현이랑 같은 학교 다닌 같은 학년 애들이 300명은 될 텐데, 걔네한테 가서 인터뷰해보면 아는 거 아냐?

└청탁하고 양다리는?

└빡대가리가 너무 많아서 내가 논리적으로 설명해 준다. 예전에도 신재현이 국회의원 친다 어쩐다 하면서 조사단 부단장 앉았을 때도 이틀인가 사흘 만에 루머 돌았지? 원래 정치인들 방식이 다 이런 식임. 너네가 몰라서 그렇지 실제 정치는 더 더럽고 치졸해. 지금 증거 뭐 나온 거 있어? 없잖아.

└응, 다음 신재현 빠. 이러다 증거 나오면 글삭하고 튄다. 미리 스샷 찍어둠.

└어, 나도 너 스샷 찍어둠. 나중에 박제 간다. 딱 봐도 어딘가에서 부린 술수라는 게 보이지 않냐? 보통 학폭 논란 이런 거 터질 때 보면 같은 학교 졸업장 하나쯤은 인증으로 박고 시작한다고.

└지금 그래서 술수 부릴 사람이 누가 있음? 여의도 초토화된 지 오래인데.

└손가락을 보지 말고 하늘을 봐라. 신재현이 지금 잡아먹으려고 벼르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

└정상훈! 둘이 원한 관계인 게 틀림없어. 나 같으면 생방송에서 그 난리를 쳤잖아? 어떻게든 신재현 암살하고 만다.

└어? 설득력이 있어.

결국 보좌관이 살펴본 이 커뮤에서는 어떻게 결론이 났냐 하면, 민주주의 국가답게 다수결로 냈다.

[신재현 루머가 맞다고 생각하면 추천,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면 비추천]

└날로 먹으려는 건 이번만입니다. 추천드리겠습니다.

└비추 수집기인데? 추천 10에 비추 36임. 딱 봐도 모르겠냐 ㅉㅉ

반은 장난인 글이었지만 보좌관에게도 유익했다.

여론을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 10시간 지나서 다시 그 글을 찾아가 보았을 때.

추천은 1,139에 비추천은 228이었다.

이게 그대로 갈지 비추천이 더 많아질지는 아직 모른다.

시장이 하기 나름이었다.

“크흐흐흡. 내가 여기서 무너질 줄 알고?”

시장은 정신이 나갔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는 갔다.

20년 넘게 몸담아온 정치 생활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골인 지점인데 그 직전에 거꾸러지게 생겼으니 지금 앞뒤를 따지게 생겼나.

보좌관 자신만 해도 근 5년을 시장 밑에서 굴렀는데 이제 와서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된다고 생각하면, 신재현 뒤통수라도 때리고 싶었다.

시장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은 탄탄대로다.

독립을 해서 정치인으로 나서든 청와대에 따라가든 이제 곧 결실을 맺으려는 순간이었다.

“자네 생각엔 어떨 것 같나. 신재현이 이걸로 무너질 것 같아?”

시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정치적 동반자나 다름없는 보좌관이니 묻는 것이다.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 반응을 훑어본 보좌관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센 게 있어야 해요.”

“그렇지? 내 생각에도 그래. 하, 저놈이 나한테 손대기 전에 확 보내버려야 하는데. 더 심한 거 없나? 신재현 부모 쪽으로 뭐 뚫을 거 없어? 아, 사촌 누나가 배우라고 했지? 여배우 성상납 이런 걸로 엮어볼까?”

점점 시장은 미쳐가고 있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멀쩡한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이고도 남을 정신 상태다.

보좌관은 참으로 추잡하다 생각하면서도 가능성을 따져서 대답했다.

“근데 증거가 없질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없어도 돼. 일단 매일매일 끊임없이 불타오르게 하는 거야. 저번에 신재현도 비슷한 방법을 썼잖아. 국민에게 떡밥을 던지듯이 조금씩 퍼뜨리면 인식이 바뀌게 되어 있어. 삼인성호 몰라? 셋이서 호랑이라고 하면 호랑이인 거야.”

과연 통할까?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었다.

보좌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국세청이랑 청와대가 가만히 있을까요?”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지금 상황에서 공무원 비호 잘못하면 싸잡아서 욕먹는 거야. 나도 생각이 있어서 한 거라고. 당장 2주가 지났는데도 지켜보고만 있잖아. 이게 통한다니까.”

“네…….”

어쩐지 불안감을 느낀 보좌관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이씨, 뭐야?”

“네?”

보좌관은 슬쩍 고개를 뻗어 시장이 보는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국세청, 명예훼손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

보좌관도 서둘러 핸드폰을 켰다.

바로 10분 전에 있었던 발표였다.

-오낙현 국세청장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려 국세청의 명예를 훼손한 진석필 서울시장에 대해 강력 항의차 직접 시청에 방문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국세청의 모든 직원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으며 이것 또한 조사를 방해하려는 외압의 일종이라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시장님, 그 밑에 관련 기사 보셨어요? 국세청 직원이 직접 나왔는데요?”

신재현과 함께 용산 세무서에서 일했다고 밝힌 세무 공무원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본명은 밝히지 않은 그 직원은 자신이 소문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서두에 명확히 했다.

-Q. 용산 세무서에서 신재현 부단장이 누군가와 사귀었는가?

-A. 아니, 말도 안 되는데요. 일밖에 모르는 바보라서 고백해도 안 받아줄 정도였어요. 오죽하면 저 미친놈 누가 데려가냐는 말도 나왔는데요.

-Q. 몰래 사귈 수도 있지 않을까?

-A. 24시간 중에 18시간을 세무서에서 사는데요. 조사과 간 후에는 거기서 먹고 자고 다 했어요. 사귀는 사람이 있더라도 헤어졌을걸요.

-Q. 고백한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사람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A. 예. 이해하고 고백했는데 지금 머리에 그런 생각을 할 여유 자체가 없다고 했어요.

-Q. 그 말씀은……?

-A. 제가 고백했어요. 그래서 잘 알아요. 대체 누가 정보원인지 모르겠는데 어디 얼굴 보고 얘기 좀 했으면 좋겠네요. 절대 국세 가족은 아닐 거예요. 국세청 직원이면 부단장님이 얼마나 일에 미쳐 사는지 잘 알거든요. 100% 외부인이 분명합니다.

국세청 차원의 대응이 빨랐다.

조직 생활이란 어디든 똑같다.

문제가 있는 직원이라면 상황을 두고 본다.

섣불리 감쌌다가 진짜로 밝혀지면 조직 전체가 욕을 먹을 뿐더러, 총수가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깨끗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니 감싸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라면 국세청에서 신재현의 취급은 명확했다.

“국세청은 죽어도 신재현과 함께할 생각인가 봅니다. 이러면 국세청하고 싸워야 하는데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신재현 동창과의 상세한 인터뷰]

-……반에서 왕따당하던 애가 있었어요. 질이 나쁜 애들이 그 친구를 때리고 돈도 빼앗고 그랬는데 무서우니까 아무도 못 말렸거든요. 그런데 유일하게 재현이가 나섰어요. 그 과정에서 다툼이 있긴 했는데, 설마 심심하면 주먹질하던 애들한테 말로 통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죠?

시장이 한꺼번에 터뜨렸듯이 해명도 한꺼번에 찾아왔다.

오물이 신재현을 적실 새도 없었다.

미리 한 번에 해명하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타이밍이었다.

“설마 기자 쪽에도 신재현이 손을 썼을까요?”

“나학진이라고 신재현 전문 소식통 있긴 한데 걔는 인터넷 신문사에 있어. 그렇게 영향력은 없을 텐데. 설마…….”

[청와대, 국세공무원에 대한 외압에 우려 표명]

-청와대는 오늘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있었던 신재현 부단장에 대한 비방을 언급했습니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 것은 행정을 병들게 하는 네거티브 공격이자 공무원에 대한 외압이라는 점을 들어, 세 가지 폭로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증거를 덧붙여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에 따라 입증 가능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기사가 하나 더 뜨자 시장은 확신을 가졌다.

청와대가 뒤에서 손을 쓴 게 분명했다.

“이제 레임덕인 사람이 공무원 하나한테 이렇게 공을 들인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정치적 동반자도 아니고 이제 대통령은 뒷방 신세가 될 텐데 마지막까지 신재현을 감싸고돈다니.

청와대도 국세청도 왜 한 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대놓고 발 벗고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청와대의 공격은 명료했다.

대놓고 ‘야. 증거 가져와’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여론도 무작정 신재현을 까지 못한다.

그가 던진 오물이 도로 튕겨져 나온 느낌이었다.

“아니,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

그러나 결정타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삐익.

책상 위의 전화기가 경고음처럼 벨소리를 토해냈다.

비서실에서 온 내선 연락이었다.

“시장님, 오낙현 국세청장님과 신재현 부단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저 그런데, 카메라가 같이 있어요…….”

예고도 없는 단두대의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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