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무덤을 파네 (7)
신재현이 정리하고 카메라에 꾸벅 인사한 후 스튜디오를 나갔을 때, 이미 토론회에 배정된 시간은 10분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적어 보이는 시간이지만 토론회에서 10분이면 상대를 죽사발 내고도 남는다.
물론 지금은?
“그, 그렇습…… 잠시만요,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제대로 된 대화가 성립하지 않았다.
다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사회자가 어떻게든 주의를 끌어보려 했지만 이미 넋이 나갔다.
결국 남은 10분은 별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보통 토론회 마지막에는 각자 자유롭게 말하는 시간을 주곤 하는데 이때도 후보간의 반응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상훈은 대선 후보로서의 포부 대신 국회의 제1야당을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를 말했고, 황인영은 아까 말했던 공약을 정리해서 자신의 취지를 말했다.
다른 후보들도 혼은 나간 상태였지만 그럭저럭 의욕적이게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시장이었다.
“저는…… 검증, 검증된 후보로서…….”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말을 더듬었고,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아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던 시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저건 좀…….’
‘집에 우환 있나?’
‘갑자기 사람이 이상해졌는데.’
방청석이 수런거렸다.
가장 기대했던 시장의 포부가 너무 실망스러웠다.
처음 발표해 보는 조별과제 대학생도 저것보다는 잘한다.
다들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결국 토론회는 유야무야 끝났다.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꺼지고 사회자가 일어섰다.
방청객들도 질서정연하게 스튜디오를 나가는 분위기였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자 방청객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입구로 향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오늘의 토론회 감상을 나눴다.
“우와, 아까 그거 봤어요? 박력 장난 아니던데.”
“탈세범을 저렇게 족치나 봐요. 너무 재밌는데? 내가 당한다고 생각하면 무섭지만 난 안 당할 거니까. 흐흣.”
“간간이 조세범 생중계 좀 해줬으면 좋겠네요. 아, 개인정보라 안 되나? 왜 범죄자 인권을 챙겨? 인권을 갖고 싶으면 죄를 짓지 말아야지.”
대부분은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는 반응이었다.
그야 세무조사라는 것 자체가 외부에는 공개된 적이 없으니 일반인은 겪어본 적이 없는 희귀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공방이 오고 가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개중에는 시장에 주목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시장은 마지막에 왜 그런 거래요? 짐작 가시는 거 있어요?”
“글쎄요, 저도 궁금하던데. 시장님 원래 말도 툭툭 잘하고 사람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는데 오늘은 그 맛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초반에는 괜찮지 않았어요?”
“그야 초반에는 뭔가 작정하고 나온 것처럼 정상훈 저격하길래 재밌게 봤죠. 근데 실속은 없잖아요. 처음에는 정상훈이 뭐 있는 줄 알았더니만 시장이 찌르는 것보다 신재현이 찌르는 게 더 시원하고 아프더만.”
“크하핫. 진짜 겁나 후드려 패더만요. 혹시 직장 상사라고 봐주나 했더니 아주 시원하게 찌르더라고. 무슨 먼지 한 톨까지 잡으려는 것처럼 다 갈아엎어? 아, 혹시 국세청에 있을 때 원한이라도 샀나?”
“은퇴했으면 더 이상 상사가 아니죠. 나도 회사만 관두면 확 그냥 질러 버리는…… 크흠.”
방청객들이 신나게 떠들며 복도로 빠져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서로 웃는 낯으로 수고했다며 인맥을 다지는 후보들과 스태프들뿐이었다.
후보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인맥을 다지고 있었다.
지금은 경쟁 관계라 해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선거 직전에 단일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지금부터 괜히 척을 질 필요는 없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대기실에 잠시 기다리시면 저녁 식사라도 대접할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김영란 법이 생겼다지만 기자들 모아서 밥 먹는 정치인의 습관은 없어진 게 아니었다.
밥을 얻어먹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액이면 문제가 되지 않기도 했고.
밥도 얻어먹고 방송가에서 떠도는 루머도 들을 기회다.
후보들이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님께서는 이런 자리 불편하실까요?”
현직 시장이면 불편할 수도 있다.
사회자가 양해를 구하자 정상훈이 성큼성큼 시장에게 다가갔다.
정상훈은 손수건을 꺼내 목가에 흐른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스튜디오가 그렇게 더운 건 아닌데도 손수건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땀이 묻어나왔다.
안색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놀랍게도 정상훈보다 시장의 안색이 더 창백했다.
어디 아픈 사람 같았다.
“시장님, 오늘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저녁은 함께하실 수 있을까요? 시장님과 더 재밌는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상훈이 한결 후련한 얼굴로 악수를 청하자 시장이 입술을 깨물며 손을 탁 쳤다.
“당신 뭡니까.”
“네?”
시장이 존댓말을 유지한 것은 그나마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심정의 시장이 지금 여기서 정상훈과 신재현의 멱살을 잡지 않은 것만 해도 초인적인 인내심이었다.
“당신들 뭐냐고요. 미리 짰어요?”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본심을 드러냈다는 건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록 방송국 스태프와 후보들밖에 없다고 해도 말이다.
“시장님,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당연히 알지요. 나는 지금 당신을 의심하고 있는 겁니다! 미리 말 맞췄죠? 이거랑 이거 물어볼 테니까 준비하라고?”
정상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시장님, 안경을 새로 맞추셔야겠습니다. 정신 차리세요. 미리 말을 맞추면 자료가 뚝딱 하고 나옵니까? 제가 원하면 은행의 거래 내역과 과거의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나요? 무슨 과거로 가는 초능력이라도 있습니까?”
“그럴 리 없어. 짜고 친 거여야 해. 그래야 한다고.”
시장은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정상훈은 동정하듯 연민을 담아 그를 보았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시장님, 찔리는 게 많으신가 봅니다.”
“뭐라고요?”
화들짝 놀란 시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동자가 충혈되어 있었다.
의외의 분위기에 사회자가 멀뚱히 서서 눈동자만 굴렸다.
피디가 인이어로 끼어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은 서둘러 소품을 정리했고 방송관리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던 피디는 숨죽이고 다가오며 손짓발짓을 했다.
‘이런 비하인드가 재밌는 거라고! 찍어!’
철수하던 카메라 감독이 눈을 빛내며 카메라의 스위치를 눌렀다.
붉은빛이 들어왔지만 시장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시장이 뭐라 따지려 들 때 쪽문이 덜컥 열렸다.
온몸으로 지시를 내리던 피디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차렷 자세로 굳었다.
다행히 시장은 피디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쪽문을 열고 나온 것이 바로 신재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기실에서 소지품을 챙긴 뒤 귀가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다.
“어? 아직도 안 가셨어요?”
폭풍을 몰고 다니는 그는 정작 이 안에서 가장 평온했다.
후보들이 멋쩍은 얼굴로 쭈뼛거리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신재현은 마주 고개를 숙였다.
누가 윗줄인지 헷갈리는 광경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뵐게요.”
신재현이 미련 없이 황민우와 함께 돌아서려는데 시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재현 부단장! 당신 공무원 실격이야!”
웬만한 헛소리라면 그냥 넘어가는데 이건 웃으며 넘길 수가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신재현은 웃으며 돌아섰다.
“뭐가 문제입니까? 제가 뭘 잘못했나요?”
시장이 성큼성큼 단상에서 내려와 신재현에게 다가갔다.
쪽문 옆에 서 있던 피디가 재빨리 시야에서 비켜서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카메라 감독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방향을 확 틀었다.
시장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를 보며 정상훈이 혀를 찼다.
‘지금 시장은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서 나락 가시겠구만.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알려줄 필요는 없지.’
카메라의 존재를 눈치챈 후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단상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카메라도 눈치 못 챘다는 건 시장이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시야가 좁아졌다는 것인데, 이러면 뭔가 큰 사건이 터질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건 구경할 만하다.
“부단장, 당신 뭡니까? 왜 당신이 정 대표를 조사해요? 그것도 생방송에서?”
“그러니까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겁니까? 아, 개인정보나 인권 문제라면 일말의 잘못이 있겠군요. 정 대표님이 스스로 동의하셨다 해도 과한 건 사실이니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둘이 같은 편이면서 생방송에서 서로를 타깃으로 싸운 저의를 물어보는 겁니다! 무슨 계획을 세우고 나온 거예요? 당신이나 되는 사람이 괜히 이런 쇼를 벌일 리가 없잖습니까. 그래, 이건 쇼였어요. 지지율 올리기 위한 쇼!”
신재현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시장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저는 순수하게 시장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아서 조사한 겁니다. 그래요, 자료를 갖고 있던 시점에서 미리 생방송 세무조사를 계획했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절대 정 대표님께 유리한 판이 아니었어요. 생방송으로 탈탈 털리는 걸 보여주는데 누가 반깁니까? 시장님은 하고 싶겠습니까? 아, 시장님을 패스해서 서운하신 건가요? 다음 토론회에서는 시장님을 대상으로 해볼까요?”
“지금 나 갖고 장난칩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장이 소리를 질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했다.
솔직히 신재현으로서는 조금 놀린 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너무 장난스럽게 말씀드렸네요. 그렇게 화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시장님, 왜 화를 내시는 거죠? 본질은 같습니다. 정 대표님이 저한테 화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대답도 시장이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시장은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부터 깨문지라 아랫입술이 남아나질 않았다.
핏방울이 맺혔다.
신재현은 그걸 보며 정말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조금 건방진 얘길지 모르지만 궁금하니 여쭙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반응하실 일입니까? 시장님, 뭔가 있는 겁니까?”
신재현이 시장의 머리 위를 습관처럼 훑었다.
당연히 왜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거였다.
시장의 등 너머로 보이는 빨간 불빛 때문이었다.
정상훈이 가증스럽다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 보이자 신재현은 피식 웃었다.
신재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잠시 이성을 차릴 뻔했던 시장은 자신을 보고 웃는 줄 알고 도로 흥분했다.
“있긴 뭐가 있어요! 이거 봐요, 당신 이거 명예훼손입니다. 계획적으로 날 조사하기 위해 먼저 정 대표를 적당히 손본 거잖아!”
내막을 들여다보면 정답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게 뭔 소리지?’ 싶은 논리적 비약이었다.
눈치 빠른 피디조차 의아해했다.
자신이 조사당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얻어맞은 것은 정상훈인데 애꿎은 사람이 화풀이하는 기분이다.
조금 과장해서 ‘피해 망상인가?’싶을 정도였다.
자꾸만 결론이 나지 않자 스튜디오 앞에 있던 정상훈이 끼어들었다.
“어허, 시장님. 거참 말씀을 이상하게 하시네요. 제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남부끄럽지 않게, 언제 어느 때든 당당하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항상 법을 지키고 언제든 소명 가능하도록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솔직히 힘들게 살았죠. 그 결과가 지금 이겁니다. 이게 잘못된 겁니까?”
“이, 이 사람들이……!”
시장을 놀려먹는 게 재밌는지 정상훈은 히죽거렸다.
그 분위기를 모를 신재현이 아니었다.
“그럼 저는 마저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시장님, 마침 저기 대표님이 아주 좋은 표본을 보여주셨으니 그렇게만 자료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정 대표님도 하셨는데 능력이 검증되신 시장님이 못하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자, 잠깐……!”
붙잡아서 할 말도 없건만 시장은 일단 붙잡고 보았다.
시장이 머뭇거리는 동안 신재현이 한 발짝 다가섰다.
카메라에서 교묘하게 가리는 위치에 선 신재현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시장님, 사실 시장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시장님이 얼마나 탈세하셨는지 정확한 금액까지 알고 있거든요.”
시장이 덜컥 얼어붙은 채 신재현의 눈을 보았다.
신재현의 웃음기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잘 가십시오, 시장님.”
신재현은 짧은 한마디를 남기며 뒤를 돌았다.
빠른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는 신재현을 보며 시장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는 무르지도 못한다.
자신의 입으로 조사를 받아들이겠다고, 그것도 생방송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시장의 귓가에 신재현의 마지막 말이 웅웅거리듯 맴돌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던가.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을 찾았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 무덤이 내 거였구나.’
이 토론회가 끝나면 정상훈은 끝장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 무덤의 주인이 자신이었다.
하늘은 이미 무너졌고 벗어날 구멍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