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07화 (407/500)

407화. 무덤을 파네 (6)

서울시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신재현과 정상훈은 한 편이다.

과정이 어떻게 흘러가건 절대 정상훈을 공격할 리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때문에 신재현이 막상 생방송에 나왔을 때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봐주겠지.

그런데 지금 상황은 뭐란 말인가.

세법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알 수 있었다.

말로 하는 전쟁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칼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짜고 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지금 저걸 보고 연기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시장 역시 여러 개판을 봤지만 이런 판을 처음 봤다.

그냥 종류 자체가 달랐다.

말싸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말로 사람을 칠 수 있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살기를 담을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듣고만 있어도 살이 떨리고 피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남의 조사를 보고 있는데도 그랬다.

신재현의 6급 승진 면접 영상을 시장 역시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미 정상훈은 바닥에 몇 번이고 누웠을 것이다.

‘저게 전 청장을 대하는 태도인가?’

아니면 국세청에서는 아예 저렇게 강하게 가르치는 게 신조인가.

현실이 아니라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후보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이야기로만 듣던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괜히 국세청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부인 명의의 자동차 감가상각이…….”

“영업용 승용차 운행일지의 차량유지비 등 부대비용은 모두 영수증을 구비해 놨습니다.”

“운행 거리도 사업과 관련되었다고 증명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순간 방청석에서 우와, 하고 수런거렸다.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업용 자산으로 등록한 자동차는 개인용으로 탔는지 사업용으로 탔는지 구분이 힘들다.

그래도 세법상으로는 당연히 사업용으로 쓴 부분만 필요경비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사적으로 쓴 부분과 분리해서 관리해야 했다.

유류대 몇만 원 어치는 사업상 사용, 몇천 원 어치는 사적으로 사용, 이런 식으로 완벽하게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 주행 거리를 재는 방식을 쓴다.

예를 들어 총 주행 거리 100㎞ 중에 장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달린 거리가 30㎞고, 일하면서 거래처를 왔다 갔다 한 것이 70㎞라면 필요 경비 인정 비율은 70%다.

이후는 계산이 쉽다.

유류대나 자동차 정비료, 보험료, 관리비 등의 부대비용 중 70%만 필요경비로 인정하여 손익계산서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주행 거리를 완벽하게 구분하는 사람도 드물고 조사관이 검증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서류에 ‘사업용으로 탔어요’라고 적으면 누가 알겠는가.

GPS라도 달려 있어서 일일이 추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조사관은 사업용 승용차에 관해서는 납세자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그걸 증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건 즉 차를 탈 때마다 계기판을 보고 주행 거리를 기록하고, 매번 사진으로 남기고 일지를 썼다는 뜻이다.

그런 귀찮은 짓을 매번!

이건 성실하다거나 준법정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지키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이 순간만큼은 신재현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을 정도였다.

“자동차를 사업용으로 썼다는 걸 전부 증명 가능하시다고요?”

“물론입니다. 추후에 블랙박스 영상과 와이프의 업무일지, 계기판을 찍은 사진과 지도상 이동거리를 제출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세법을 잘 알다 보니 어떻게 해야 조사관이 편하게 검증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블랙박스 영상과 업무일지로 진짜 일하러 간 건지를 확인하고, 계기판에 찍힌 거리와 지도상 이동 거리를 비교하면 진짜 일지에 쓰여 있는 곳으로 이동한 건지 확인할 수 있다.

여러모로 교차 검증이 가능한 자료였다.

신재현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자료를 준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이건 좀 놀랐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세법을 아니까요.”

“아는 거랑 실천하는 건 다르죠. 일반적으로 세무서에서 요구하는 이상의 자료를 준비하셨잖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신재현이 인정했다!

그동안 조사단의 행적을 보더라도 신재현이 거침없고 까다롭게 조사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 본 것만 해도 그랬다.

보고 있기만 해도 심장이 떨릴 정도로 봐주는 일 없이 몰아쳤다.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저렇게 대답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핵심만 쏙쏙 짚은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신재현이 인정하다니.

방청객들은 시선을 돌려 아까와는 다른 눈으로 정상훈을 보았다.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신재현은 다시 정상훈을 몰아치기 시작했고 정상훈은 세법 지식을 동원하여 방어해 나갔다.

2차전 시작이었다.

그러나 방청객들이 보내는 눈빛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비록 시장의 공세에는 밀리는 듯했지만 지금 신재현의 살벌한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고 있지 않은가.

아까의 경력 얘기보다 지금의 공방이 훨씬 재밌고, 생산적으로 보였다.

평소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세무조사에서 해명할 수 있는지, 뭘 어떻게 해야 탈세가 아닌지 주워듣는 것도 상당히 많았다.

지금 하는 조사가 세법 쪽의 세무조사인 것도 하나의 장점이었다.

검찰이나 경찰의 조사라면 범죄자에게 악용당할 위험성이 있으니 함부로 공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무조사라면 일반인이 보고 배운다 해도 나쁠 것이 없었다.

자료 준비? 평소 해두면 납세자도 편하고 국세청도 편하다.

-국세청에서 통장하고 카드 갖고 저런 걸 물어보는구나.

이것 역시 알려진다 해도 괜찮았다.

모르고 사업용 통장을 잘못 관리하던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탈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녀에게 집을 한 채 해주려던 사람은 그것이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알면 오히려 좋다.

탈세를 피하게 되니까.

악용이 아니라 정보를 주는 게 되는 것이다.

탈세를 마음먹은 사람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그들이 방송을 본다고 해서 국세청의 눈을 피할 새로운 탈세 방법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신재현은 아주 기본적이고 자료만 보면 명확히 나오는 사실들만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탈세하려고 결심했을 때 하는 생각이 ‘안 걸리면 장땡 아닌가?’다.

그런데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뻔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당장 전직 국세청장이 저렇게 털리고 있는 와중이다.

‘차라리 세금 좀 내고 말지. 저걸 내가 당한다고?’

방송을 지켜보며 탈세 조금만 해볼까 했던 사람들은 즉시 그 생각을 접었다.

탈세하고 언제 신재현한테 털릴까 전전긍긍하느니 세금 좀 내고 발 뻗고 자는 게 낫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도 뜨끔하며 자신의 세금을 돌아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제 발 저린 사람은 어떻겠는가.

스튜디오에서 딱 한 명.

바로 서울시장이 그랬다.

‘이건 미친 짓이야……!’

시장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정상훈을 잡고 나면 다음은 누가 되겠는가.

100% 시장 자신이다.

남은 희망은 딱 하나, 정상훈이 자기보다 더 더러운 놈이길 바랐는데 상황은 시시각각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재현의 날 선 질문이 하나씩 더해질수록 정상훈의 결백만 입증되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막상 정상훈에게서는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를 캤는데도 주차위반 딱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차라리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이 자리를 막을걸.

시장은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와 있었다.

신재현은 정상훈을 보호할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장의 치명적인 착각이었다.

오히려 전 청장이니 더욱 빡세게 조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 효과는 당장 방청석의 반전된 분위기에서부터 느껴졌다.

‘경력이 조금 부족하면 어때. 저렇게 깨끗한데.’

‘꼭 정치를 몇 년씩 해야 대통령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정치판에서 놀다가 괜히 물드느니 차라리 지금 대선 나가도 되는 거 아냐?’

그런 속삭임도 들려왔다.

시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토론회에 의자가 없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은 몰랐다.

물컵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려오며 물이 넘쳐 테이블 위로 흘렀다.

시장은 몰랐지만 카메라 감독은 그런 시장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후보들도 그냥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유독 시장 혼자서만 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다리를 후들거리는 것이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더 여쭙고 싶은데 토론회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저 혼자 토론회에 할당된 시간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으니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약 15년 전,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상속 재산 중에 미술품이 있었습니다. 현재 이건 어떻게 됐습니까?”

“매매한 후 상속세를 내는 데 보탰습니다. 이것도 기록이 남아 있으니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마저 정상훈은 평온하게 피해갔다.

살벌했던 조사에 비해 정상훈이 입은 타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제 질문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그렇다고 세무조사가 끝인 건 아니에요. 아까 말씀하신 자료들은 최대한 빨리 국세청으로 갖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세한 질문은 나중에 다시 출석 요청을 드릴게요.”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시죠. 모두 소명하겠습니다.”

자신 있어 보이는 정상훈의 말에 신재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신재현이 갖고 왔던 상자에 종이를 주섬주섬 집어넣는 동안 사회자가 애써 정신을 붙잡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 역시 스튜디오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생방송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피디는 예상치 못한 세무조사 생방송에 기뻐하며 웃고 있겠지만 사회자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대본조차 없는 상황에서 말을 더듬지 않는 것만 해도 용했다.

“신재현 부단장님과 정상훈 전 국세청장님이 직접 세무조사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는데요. 저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더불어서…….”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내 멘트를 이어가던 사회자가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잽싸게 실행에 옮겼다.

“전석필 시장님께서 정 대표님의 검증을 원하셨는데요. 이 정도면 검증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부족하다면 추가로 어떤 검증이 더 필요할까요?”

난데없이 날아온 화살에 시장이 우뚝 굳었다.

신재현은 짐을 정리하다 말고 재밌다는 얼굴로 시장을 보았다.

시장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넣고서 입을 열었다.

“아…….”

실수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동요가 드러났다는 것에 당황한 시장이 허둥대며 물을 마시려다 그만 앞에 쏟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가만히 물바다를 내려다보다가 몇 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충분하다고 하면 이제 더 이상 정상훈을 건드릴 수 없고, 부족하다고 하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검증은 결국 자신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시장을 구해준 것은 정상훈이었다.

“아, 사실 저는 토론회가 끝나고 한 가지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단박에 시선이 쏠렸다.

“저는 이번 대선에 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국가의 수반이라는 중책을 맡기에는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1야당의 대표로서 당을 이끈다는 중임과 함께 국회를 경험해 보려 합니다. 시장님의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또한 바쁘신데 출장까지 와주신 부단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아니, 도와주는 게 아니었다.

“후보를 사퇴한다고요?”

닭 쫓던 개가 된 심정으로 시장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면 영락없이 정상훈 좋은 일만 시켜준 꼴이 아닌가.

저놈은 신재현한테 검증까지 받은 채로 국회에서 승승장구할 테고 시장은 이제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위기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아니, 왜?”

지지율도 높고 이대로 가면 깨끗하다고 증명될 테니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다.

그런데 그걸 포기한다고?

이 세상에 절대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을 만한 가치가 뭐가 있단 말인가.

시장이 멍하니 보고 있자 정리를 끝낸 신재현이 상자를 들고 카메라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황민우에게 넘겨주었다.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신재현에게 사회자가 급히 물었다.

“부단장님, 직접 여기까지 나오셔서 세무조사를 보여주셨는데 막상 정 대표님이 후보를 사퇴하신다니 아쉽지 않으십니까?”

신재현은 뭐가 문제냐는 듯 말했다.

“후보 사퇴는 정상훈 대표님의 선택이고 정 대표님을 믿을지 말지는 국민 여러분의 선택이죠. 저는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만, 시장님 말씀대로 검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후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시장님의 뜻을 본받아 다른 분들도 순차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갈까 합니다. 어차피 다들 탈세는 안 하셨을 테니 별로 큰 문제는 없으실 테고요. 시장님도, 괜찮으시죠?”

다른 후보들은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런 광경을 봤으니 찔리는 게 없더라도 지레 겁을 먹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시장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탈세만 아니면 세무조사 별거 아닙니다. 시간 많이 빼앗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재차 확답을 받으려는 듯 묻는 신재현에게 시장이 목을 뻣뻣하게 덜그럭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려는 생각이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기괴했다.

이젠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사형선고를 내리는 기분으로, 시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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