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06화 (406/500)

406화. 무덤을 파네 (5)

지금 여기서 뭘 한다고?

시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지금 이 스튜디오 안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시장이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유는 그동안 정치판에 몸담으면서 별의별 해괴한 사태를 다 겪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입을 열어 무슨 생각이냐고 묻는 대신, 잠시 상황을 살폈다.

다들 정신이 쏙 나간 와중에 조금이라도 먼저 정보를 잡아내는 것이 이 상황을 파훼하는 열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후보들처럼 일부러 놀란 척을 유지하며 먼저 사회자를 살폈다.

아까 분명히 신재현이 등장하기 전에 사회자와 카메라 감독, 그리고 스태프들이 어수선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신재현이 등장한 직후에도 사회자의 동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스튜디오에 신재현이 나오는 것만은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은 사회자 역시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다.

‘자세한 내용은 못 들었던 건가?’

생방송인데 어떤 사고를 칠 줄 알고 미리 계획을 듣지 않았단 말인가.

방송사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시장은 곧 그 생각을 바꾸었다.

신재현이 생방송에서 폭탄 발언을 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이미지도 있거니와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생방송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녹화라면 편집이라도 가능하지, 생방송에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영구히 박제된다.

방송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신재현을 상식인이라고 믿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까지만 미리 언급이 된 건가? 그럼 정상훈은? 저놈이야말로 짜고 친 거 아닌가?’

단 몇 초 만에 사회자와 스태프를 훑은 시장은 시선을 정상훈에게로 돌렸다.

생방송으로 세무조사를 한다는데 바로 그 당사자가 모를 리가 있나.

그런데 정상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후우…….”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청년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한 군데에 고정되지 못하고 청년의 얼굴과 옷깃, 넥타이 근처를 이리저리 맴돌았다.

저 표정이 무엇인지는 잘 안다.

기저에 깔린 것은 경악과 당황이다.

그리고 언뜻 공포도 스치는 것이 보였다.

‘전직 국세청장이 현직 6급 공무원에게 공포라고?’

시장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도저히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혹시 연기인가 싶어 정상훈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의 관자놀이에 흐르는 식은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연기라기엔 너무 리얼하다.

식은땀까지 연기할 정도면 오스카상을 쥐여 줘야 한다.

그리고 저런 연기가 가능할 것 같았으면 아까 토론회에서 보여줬을 것이다.

자신의 공세에 진땀을 빼는 대신 여유를 가장하며 받아쳤겠지.

결국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저 둘은 같은 편이 아니었나?’

시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세무조사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여기서 정상훈 대표님을 조사하겠다고요?”

정상훈이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질 정도라서 오히려 시장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적으로 싸우던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다니, 얼마나 경황이 없으면 그러겠는가.

신재현은 스튜디오에 마련된 단상 위로 한 발짝 올라섰다.

조명 아래로 나오니 조금의 긴장도 없는 그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아니, 긴장은커녕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전 직장 상사를 엿 먹여가면서까지 즐거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아까 시장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이 자리는 대통령에 걸맞은지 서로 검증하는 자리라고요. 시장님께서는 이미 능력을 입증하셨으니 정상훈 대표님께서 검증을 받을 차례라고 하셨죠. 맞는 말씀입니다.”

신재현이 무려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건만,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닥을 알 수 없는 늪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동의하지 마, 네 동의 필요 없어.

시장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시장님. 제가 그 말씀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도저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세무조사라니,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여기서 취조라도 하겠다고요?”

정치인이 된 이래 세무조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시장은 막연히 ‘조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가 아는 조사는 검사나 경찰이 하는 취조나 국회의 청문회 정도가 다였다.

신재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범죄를 추궁하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할까…… 서로 퍼즐을 맞추는 단계라고 할까요?”

“예?”

스튜디오에 혼돈이 몰아치는 동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는 희비가 교차하고 있었다.

“이야, 곱게 미쳤네.”

피디는 쾌재를 불렀다.

나학진이 생방송에 자리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는 어필이나 하겠거니 싶었다.

저놈이 미친놈이라는 건 업계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걸고 생방송에서 헛짓거리를 하진 않겠지 싶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결과는?

“순간 시청률 올라갑니다! 지금 30% 돌파했어요!”

신재현이 세무조사를 운운했을 때는 방송사고 걱정에 심장이 덜컹했다.

하지만 저런 거라면 환영이다.

시청률 상승은 물론이고 화제성도 1위를 찍을 것이 틀림없다.

저 자리에 있는 후보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피디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었다.

오히려 더 죽상을 해줬으면 싶었다.

그 생생한 반응을 담아낼 수 있도록!

“제정신이 아니야.”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생방송에서 제1야당 대표를 조사하네 마네 말을 꺼내기도 힘들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쁜 쪽으로 친 사고는 아니었다.

그래서 곱게 미친놈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런 사고라면 몇 번이고 환영이다!

피디는 양손을 위로 뻗어 만세를 부르며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신재현은 생방송이라는 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건지, 거리낌 없이 술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마침 잘됐네요. 실제로 납세자분께 어떻게 묻고 뭘 과세하는지 보여 드릴까 합니다. 이상하게 요즘 국세청 이미지가 무섭게 잡혀 있어서요. 막상 보시면 별거 아닐 거예요.”

그럴 리가.

상큼하게 웃는 신재현을 보며 시장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세상에 세무조사를 별거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방송 후보 토론회에 난입해 조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지금 신재현을 말려야 하는지 놔둬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상훈을 털어서 먼지라도 나오면 나한테 유리한 거 아닌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렇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으니.

그런데 지금 이렇게 불안한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내가 파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시장은 주먹을 꾸욱 쥐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긴 했지만 웬만한 사람은 일주일만 들여다봐도 위법적인 것들이 쑥쑥 나온다.

그런데 정상훈은 이상하게도 나오는 게 없었다.

예전에 국회에서 손경진 전 중부청장을 공격했을 때도 20년 전에 쓴 다운계약서가 튀어나온 적이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사람의 행적을 숨기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정상훈은 부인과 처가, 형제와 친척까지 조사하며 알아낸 것이 없었다.

굳이 트집을 잡는다면 딱 하나.

15년 전에 주정차 금지 구역에 차를 세웠다가 주차위반으로 벌금 낸 것뿐이었다.

이건 오히려 공격용으로 들고 나올 수 없는 재료다.

오죽 깨끗하면 주차위반으로 트집을 잡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다.

때문에 오늘 시장은 그의 경력만 줄기차게 붙잡고 늘어진 것이다.

‘저놈 진짜 정치판 나오려고 20년 전부터 준비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깨끗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추측이다.

사람이 20년 후의 미래를 어떻게 알고 미리 준비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세무조사는 그의 흠결을 찾아낼 마지막 희망이 아닌가?

‘근데 만약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시장은 불안감을 털어냈다.

말릴 명분도 없거니와, 다른 약점을 잡지 못한 이상 세무조사로 나오는 먼지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기는 했다.

‘정상훈 조사하고 나면 그다음은 내 차례인 거 아닐까?’

그렇다면 꽤 난감해진다.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 할까.

‘어쩔 수 없다. 저놈 먼지가 더 크길 바라는 수밖에. 아니, 내 문제가 더 크다 해도 저놈이 더 심각한 것처럼 몰아가면 돼.’

순식간에 머리를 굴려 해법을 찾아낸 시장은 조금 여유로운 태도로 신재현이 준비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사회자가 뒤늦게 말을 더듬으며 카메라를 향해 멘트를 읊었다.

“아, 지금 신재현 부단장님의 제안으로 급히 의자와 자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양해 말씀 드립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준비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용케 방송사에서 이런 걸 허락해 준다 싶었다.

아니, 이런 폭탄에 시청률이 오른다고 좋아하려나.

어찌 되었건 지금 시작될 공방은 잘 봐둬야 한다.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문답을 잘 들어두면 나중에 자신이 세무조사를 받을 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후보들이 혼란과 함께 지켜보는 동안,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자리를 하나 마련했다.

“이건 미친 짓이야…….”

군소 정당의 후보 중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 자리에서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막을 수도 없다.

당장 정상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 국세청장이 거부한다?

구린 데가 있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황민우가 한가득 들고 오는 상자를 보면서 정상훈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세무조사로 자신이 깨끗하다는 걸 검증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갖고 있었다.

2주 전에 공문도 왔다.

그러나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생방송으로 할 줄은 몰랐다.

신재현이 절대 봐줄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철저히 준비해서 직접 국세청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아, 오늘은 많이 힘든 하루가 되겠는데. 신재현 참 많이도 컸다.’

이걸 청출어람이라고 하던가.

평소라면 전 부하직원의 수에 기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응원했겠지만, 막상 자신이 그 제물이 되어 보니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왜 신재현에게 출석 요구서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파랗게 질려서 출두했는지 그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정상훈 대표님께서는 전 국세청장이시기도 하고, 은퇴 후 세무사 자격증도 취득하셨으니 별도로 세무대리인의 조력은 필요 없으리라 봅니다. 스스로 변호할 수 있으시죠?”

이 조사로 자신이 깨끗하다는 것 외에 능력도 증명하려면 스스로 토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니 신재현의 질문은 타당했지만, 그가 얄미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상훈은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깊이 심호흡하며 대답했다.

“네.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뭐든 물어보시죠.”

둘은 진심으로 싸울 기세였다.

살벌한 분위기를 본 황인영이 다리를 휘청였다.

‘다들 미쳤어…….’

***

준비 과정은 짧았다.

일단 정상훈에게서 지금 세무조사를 해도 되냐고 동의를 받았는데, 나름 개인정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었으므로 동의 절차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지나갔다.

시작은 신재현이었다.

“여기 대표님의 10년 치 통장이 있습니다.”

생방송인 데다 토론회에 난입한 상황이다.

평소 조사하던 것처럼 재미없게 질질 끌 생각이 없었다.

원래 업계인들이 자기만의 단어로 대화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이왕 나온 건데 초장부터 화끈하게 가자!

그래서 들고 나온 게 통장이었다.

통장이 나오면 필연적으로 카드 사용 내역도 나오게 된다.

전 국민 앞에서 실시간으로 사생활을 털리게 생긴 정상훈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당연히 이게 나올 건 생각하셨어야죠.’

신재현은 히죽 웃으며 미리 체크해 둔 금액을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역순으로 훑으면서 올라가겠습니다. 지난 달 25일, 5천만 원의 금액이 빠져나갔습니다. 어떤 사정입니까?”

“딸이 독립해서 전세금을 지원했습니다.”

“전세금도 증여세 대상입니다.”

“물론입니다. 일전에 딸에게 대학 등록금과 자취 비용, 용돈 및 여유자금 명목으로 3천만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증여세는 10년 내 합산이기 때문에 사전 증여 3천만 원과 이번 5천만 원을 합하여 신고 기한 내에 증여세를 신고할 예정입니다.”

증여세 신고 기한은 증여한 달의 말일로부터 3개월이다.

아직 기한이 지나지 않은 셈이다.

확인을 마친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지난 달 11일의 현금 200만 원 출금 내역이…….”

“저희 부모님 묘소에 비석을 새로 갈았습니다. 현금으로 지출했지만 사진으로 과정을 찍어 놨으니 증명이 가능합니다.”

“대표님 명의로 된 집이 1채 있으신데 그전 주택 시가가…….”

“기준시가 공시와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가격이긴 합니다만, 국토부에서 공시한 실거래가 시스템을 보면 비슷한 여건, 비슷한 조망의 아파트가 비슷한 가격으로 팔린 적이 있습니다. 결코 시세보다 비싸게 매매한 것이 아니며…….”

질문과 답변이라기보다 칼날이 날아드는 듯했다.

질문의 수위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까 시장의 공격을 받을 땐 허둥대던 정상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얼굴로 하나하나 받아치는 매서운 전 국세청장이 거기에 있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오니 조금도 막히는 일 없이 술술 세법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신재현의 공격이 어설픈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몇 번이고 막혀서 대답하지 못했을 만한 질문도 몇 개 있었다.

그야 악질 탈세범이 아니라면 세무조사 전에 미리 공문을 보내 준비할 시간을 준다.

그래서 여기서는 정상훈만 타깃으로 언급했을 것이다.

공무원에게는 절차가 중요하다.

아무리 지금 잘나가는 신재현이라 해도 시장을 조사하려면 미리 세무조사 공문을 보내야 했다.

그 절차 하나로 약점을 잡힐 수 있으니 더더욱.

그런데 지금 이건,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되는 수준이 아니다.

탈세의 ‘탈’ 자도 나오지 않도록 일상생활 자체를 그렇게 했다는 뜻이었다.

‘뭐야, 왜 저렇게 살벌한데.’

서울시장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파랗게 변해갔다.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