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일복이 터졌다고 합니다 (3)
금요일 아침의 회의는 조금 뜬금없고 어수선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금방 적응이 되었다.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조사는 꼭 해야 된다고 봅니다. 조사단의 명분을 위해서라도요. 22대 국회는 한 명도 빠짐없이 탈탈 털어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혐의까지 박아놨는데 23대 국회는 봐준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어요.”
2반에서 나온 날카로운 의견이었다.
“300명 굳이 다 할 필요는 없죠? 새로 당선된 사람만 하면 되잖아요. 어차피 할 거라면 1반, 2반 전부 들러붙어서 빨리 끝내죠.”
이미 300명의 대규모 조사를 겪어 본 사람들이다.
그에 비하면 새로 당선된 200여 명의 의원은 쉬웠지만, 그래도 현재 인원이 전부 들러붙어서 한 달 넘게 걸리는 양은 분명했다.
이전 국회의원 조사 때와 같은 방식이라면 가족과 친지까지 깡그리 훑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많고 복잡한 것부터 끝내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아까 내가 현직 국회의원의 명단을 보고 깨달았듯이 새로 당선된 사람들은 대부분 깨끗했다.
이걸 문제라고 표현하자니 기분이 묘해지는데, 조사단의 전력을 투입하기에는 아깝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 찔리는 사람은 이번 선거를 패스하기로 마음먹은 걸까?
아니면 우리의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불법의 증거를 감춘 후에 국회의원으로 나오려는 걸까.
전자라면 조사단이 일을 한 보람이 있는 결과지만, 후자라면 지하경제가 더욱 깊숙이 숨어들어 가게 된다는 뜻이다.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하니 언젠가 지하경제도 한번 들어 엎을 생각을 해야겠지.
물론 지금은 아니다.
지하경제라는 게 워낙에 깊고 넓어서 지금의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내다가 결국 병아리처럼 내 입만 바라보았다.
결론을 내주길 바라는 눈빛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새로 당선된 사람 중에서 각 정당의 대표 및 중진 의원 중심으로 조사할 겁니다. 약 3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1반에서 맡을 수 있습니까?”
“언제까지 착수해야 합니까? 급한 건인가요?”
어느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게 마감이다.
채유림 역시 휘하의 1반 직원들에게 업무를 나누어야 하는 입장상 소화 가능한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기부터는 중간직끼리의 대화였다.
“한 달 안으로는 시작해야 합니다.”
이왕 경력자 많은 팀을 내 휘하 직속으로 맡았으니 동시에 여러 조사를 굴려볼 생각이었다.
소규모 팀일 때는 한 가지 조사밖에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1반과 2반으로 마침 반도 나뉘어 있겠다, 인원도 충분하다.
못할 것은 없었다.
물론 지휘를 잡은 내가 양쪽 모두의 조사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시를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도 새로운 도전인 셈이었다.
“한 달 안이요? 혹시 국회의원 말고도 조사 계획 세워두신 게 있습니까? 아까 얘기 나온 공기업이나 재벌 때문이라면 차라리 하나를 완전히 끝내두고 새 조사를 시작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채유림은 눈치가 빨랐다.
내가 마음이 급해져서 일을 벌이기만 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담겨 있었다.
“확실히 지금 우리는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기존에는 현직 국회라는 거물을 상대하기 위해 힘이 필요했다.
그것을 청와대의 지원과 각 부처의 조력, 그리고 가장 큰 국민의 지지로 해결했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여론전을 많이 했다.
기삿거리를 조금씩 풀면서 우리 쪽으로 관심을 끌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저울은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조금 천천히 한다고, 결과가 당장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이제는 조사단의 입장이 곤란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과를 한 번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또 뭔가 큰일을 벌이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거랑은 좀 달라요. 그동안은 시운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회의원 조사 때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해주셨습니다. 조사단 전체의 역량이 100이라고 할 때 200%의 힘을 발휘해 주셨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항상 그렇게 오버클럭 해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충분히 역량이 된다는 뜻이죠.”
“오버클럭이요?”
채유림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던 모양이다.
나는 다시 풀어서 설명했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 근무 해가며 200%의 역량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100%만 갖고도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22대 국회 조사 마무리하시고 23대 중진 의원 30여 명 조사 들어가고도, 아마 우리 팀에는 여력이 남을 겁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면서도 팀장 자리에 있으면서 느낀 게 있었다.
팀의 가능성과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구나!
팀이 소화할 수 없는데 무작정 맡기면 다들 지치기만 하고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팀의 능력에 비해 작은 일을 주면 인력 낭비는 둘째 치고 사기가 떨어진다.
누구는 놀고 누구는 일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고, 하루 종일 놀다가 몇 시간 깔짝 일해도 결과가 나오니 굳이 일을 빨리 끝낼 필요성이 없다.
물론 직원들이 노는 게 싫다는 건 아니다.
맡은 일을 다 했으면 놀 수도 있는 거고, 때로는 휴식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확실히 내 고민거리가 정반대로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집에 가고 싶다’였다면, 지금은 ‘직원들이 안 빡쳐 하는 선에서 최고 능률을 뽑을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채유림은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더니 얼굴에서 걱정을 지웠다.
“팀장님이 그렇게 판단하셨다면 맞을 거예요. 그 자리에서 보이시는 게 있을 테니까요.”
채유림이 한 수 접고 물러났다.
그 후 채유림은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조사 마무리는 한 달 내로 가능하긴 합니다. 야근 좀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당분간은 정시 출근, 정시 퇴근 고정할 겁니다. 계속 달리면 중요할 때 쓰러져요. 지금은 업무 시간에 빡 집중해서 칼퇴하시고, 나중에 바빠지면 그땐 여러분이 좀 도와주세요.”
중요한 건수가 생기면 야근 좀 해달라는 뜻이었다.
당분간 칼퇴라는 말에 직원들의 얼굴이 해맑아졌다.
역시 직장인에게 좋은 선물은 칼퇴다.
사실 제일 좋은 선물은 상여금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어려운 얘기라 꺼내지 않았다.
괜히 ‘타깃 조사로 상여금 잔치’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뉴스 타면 다들 속만 상하니까.
채유림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팀장님이 그냥 명령하시면 될 걸 일부러 이런 자리까지 만들어서 저희 의견을 들어주시니 할 수 있는 만큼 도와드려야죠. 안 그래요?”
이 말은 내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직원들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칼퇴라는 말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반에서 5명 정도만 1반으로 지원 부탁드립니다. 2반은 지금 거의 끝나가죠?”
몰아치는 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닦고 있던 2반의 반장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5명 지원 가셔도 저희 일에는 지장 없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1반에서는 22대 마무리 서둘러 주시고, 23대에서 조사할 명단은 제가 만들어서 드릴게요. 그 외에는 대부분 초선 의원이라 나중에 정말 한가해지면 손대도 될 것 같거든요.”
“네, 팀장님.”
“그리고 2반은 다른 조사 건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2반 반장이 설마 하는 얼굴이 되었다.
“대통령을 조사하자는 건 아니시죠?”
“에이, 아니에요. 우선순위로 따지자면 다른 급한 게 많죠.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나중에 진짜 대통령 조사할 때는 제가 앞장서서 할 테니까요.”
다행이라는 듯 2반 반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엔 이를 텐데.
나는 2반에 공기업이나 지자체를 맡길 생각이었다.
둘 중 뭘 먼저 하느냐는 직원들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지만 나로서는 공기업 쪽에 좀 더 마음이 쏠렸다.
그런데 2반의 한쪽 구석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한 명의 남자가 신경 쓰였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를 보며 입을 달싹거렸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다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얼굴에 갈등이 떠올랐다.
말하기 어려운 거라면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시선을 돌리는데, 남자가 두 눈을 꾹 감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며 직원들의 시선이 남자에게 쏠렸다.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일어나서도 주저하기에 내가 묻자,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5년 정도 됐을 겁니다. 제가 서울 잠실 세무서에 있었을 때 제 담당 납세자 중에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인이 있었습니다. 딸에게 부동산을 증여하고 증여세 신고가 들어왔는데 계좌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죠. 당시에 딸이 분명 18세 고등학생으로 미성년자였고 딸 앞으로 된 사업체나 임대사업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딸의 통장으로 1억의 돈이 입금된 적이 있더군요.”
벌써부터 흥미롭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졌지만 나는 조사관이 순서대로 썰을 풀기를 기다렸다.
“어떤 돈인지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면서 실수로 딸 통장으로 입금했다고 했습니다. 실수인 걸 알자마자 뽑았으니 문제없다고요.”
물론 진짜로 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조사관이 내내 찝찝한 기분과 함께 묻어왔을 리가 없지.
지금 회의 중인 여기서 그 이야기를 풀어놓을 리도 없고.
담당자만이 알 수 있는 의심 가는 정황이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싸한 느낌.
“그래서 세무대리인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딸의 5년치 통장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증여세와 관계없는 부분이라 제출을 거절당했고요. 이게 이상한지 아닌지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저한테 확신은 없어요.”
남자는 주저하면서도 이야기를 끝까지 마쳤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이름은 입 밖에 내기가 망설여지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쳐다보시니까 정말 이길 수가 없네요.”
남자는 심호흡을 하더니 아주 어렵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현 서울시장입니다.”
“어우…….”
“아…….”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상대할 사람이 또다시 대선 후보라는 거물이라 그런 건지, 시장마저 깨끗하지 않다는 사실에 슬픈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양쪽 다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과 다르게 나는 살짝 들떠 있었다.
내가 바라던 것이 바로 이런 증언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좋네요. 서울시장이라. 마침 조사해 볼까 싶었던 사람이기도 해요. 말씀 잘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반의 반장이 또다시 몰아칠 해일에 두려웠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채유림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반장님?”
“잠시만요, 팀장님. 조금 걸리는 게 있는데요. 제가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본 뉴스인데 서울시장이 정상훈 전 청장님께 공세를 시작한 것 같았거든요.”
“정말요?”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 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뉴스란을 열자마자 채유림이 말한 기사가 나왔다.
그 말이 맞았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경합할 강력한 경쟁자라고 생각한 걸까.
아침 8시 라디오에 출현한 서울시장이 현 제1야당의 대표인 정상훈을 철저히 검증할 것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기자회견은 아니고 일부러 라디오에서 슬쩍 흘린 것 같은데.
“우리 시장님이 먼저 한 수를 두셨네요.”
무슨 세무조사 한 번 하는데 이렇게 고려해야 할 게 많은지.
여기서 또 수를 잘못 두면 서울시장에게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채유림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지금 우리가 서울시장을 조사해 버리면 전직 청장인 정상훈을 보호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중립적인 국세청의 이미지는 빛이 바래는 것이다.
서울시장도 꽤 머리가 돌아가는 인물인 것 같다.
하긴 그러니 시장까지 올라가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고 있겠지.
“아직 서울시장 조사에 착수하지는 마세요. 타이밍이 좀 안 좋으니 제가 먼저 살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까다롭게 됐지만 그렇다고 가만 놔둘 생각은 없다.
“2반 조사관님들께서는 하던 업무 마무리해 주세요. 주말 동안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국세청의 손발을 막으려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공격이었지만, 그다지 막다른 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