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94화 (394/500)

394화. 다음 단계로 (7)

황인영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만약 서 있었다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대선 후보라고 말해줘도 전혀 기쁜 일이 아니었다.

“탐탁지 않으신가 보네요. 국회의원의 최종 목표가 대통령 아닌가요?”

진심으로 말했다기에는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였다.

황인영은 말문이 막혀서 잠시 가만히 있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무언가가 얹힌 것처럼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너무 가혹한 말씀입니다.”

신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왜 가장 먼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그건 지금 정국이 그야말로 대혼란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에 대통령 자리에 앉는 사람은 많은 것을 시험받게 된다.

이건 대통령이 헤쳐 나가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쳐도, 지금의 국회에서 대선까지 또 얼마나 폭풍이 몰아칠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당장 신재현은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이유를 다 차치하고서라도 황인영은 감히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에 준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시류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지금 국회에서 준비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기회를 쥐는 건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죠.”

다른 사람이라면 입바른 소리 하지 말라고 일갈했겠지만, 상대가 신재현이다 보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신재현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그는 항상 불리한 자리에서 싸워왔다.

물론 그도 가능한 한 준비는 했겠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을 봤을 때는 언제나 맞닥뜨린 상황을 뒤집고 헤쳐 나왔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저는 대통령을 할 깜냥이 못 됩니다.”

욕심이 없다기보다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완곡한 거절이었지만 신재현은 그를 유심히 살피더니 살며시 웃었다.

“역시 분석이 빠르신 것 같아요. 당선이 안 될 것 같다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신재현이 압박을 주듯 지긋이 노려보았다.

탈세범과 눈싸움을 해온 신재현의 시선을 이겨내기에는 황인영은 지금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는 시선을 피하다가 결국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하셨듯 신당은 곧 제1야당이 될 거고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을 겁니다. 부단장님께서 과반수를 넘지 말라는 제약만 걸지 않으셨다면 거의 200명에 육박할 수도 있죠. 지금 여론은 부단장님을 국회로 보내자며 들끓고 있어요. 그 지지율은 모두 신당에 대한 기대로 쏠리고 있고요. 부단장님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고 하셨죠?”

“네. 대한민국에 입법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놀랍게도 해 처먹은 놈들이 많더군요.”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부단장님의 성역 없는 조사에 국회 개혁까지 합쳐지면 신당 지지율은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겁니다. 불행히도 지금 국회에는 대선주자가 없어요.”

“제가 다 나락으로 보내 드렸죠.”

가볍게 웃으며 말하는 신재현을 보니 더더욱 두려움이 강해졌다.

국가수반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보내놓고 아직도 피가 모자란다는 것이, 일반 사람의 정신력으로 가당키나 한 말인가.

황인영은 자꾸만 잠기는 목을 헛기침으로 재차 가다듬었다.

“부단장님이 검증도 하실 테니 신당은 믿고 찍어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겁니다. 신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죠.”

정답인 모양이다.

신재현은 만족스러움을 가득 드러내며 인삼차를 마셨다.

“제 예상보다 정확하게 정국을 꿰뚫고 계시네요.”

신재현에게 칭찬을 받아 기쁜 것보다는 한참이나 어린 이 청년이 정세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황인영이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왜 접니까? 22대에서 낙선했다가 이번에 국회로 돌아온 사람들은요? 서울 시장 같은 지자체 수장은 어쩌고요.”

“저도 그분들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만, 아쉽게도 탈세액이나 비리가 하나씩 있으시더군요. 오래 정치한 분들은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되나? 그런 의미에서 황 의원님이 제일 적임자예요.”

신재현은 앞으로도 계속 조사해 나갈 생각이라고 했으니, 기껏 대선 후보로 나온 사람들도 바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안 갑니다. 후보로 제대로 올리지도 않은 저를 이렇게 불러낸다는 건, 미리 제게 손을 뻗어보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부단장님이 그럴 분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 만남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려움보다는 지금 이 말을 해야겠다는 정의감이 앞섰다.

‘신재현이 정치에 물든 모양이야. 젊은 나이에 국회를 쥐락펴락해 보았으니 욕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그렇다면 내가 일깨워 줘야 해. 신재현은 국세청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희망이니까.’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드는 거라면 눈 밖에 나는 한이 있어도 쓴소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대선 후보에서 탈락하면 더더욱 좋았다.

그러나 황인영에게는 아쉽게도 방 안에는 웃음이 번졌다.

정상훈과 오혜라마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이유도 찬찬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왜 황 의원님인지부터 말씀드리죠. 대통령은 정치를 오래 했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그 사람이 자질이 되는지 아닌지 국민 여러분은 몰라요. 그래서 1차적으로 제가 검증의 역할을 할 겁니다. 그다음은 뭐냐, 바로 스토리예요.”

“제 이력 말입니까?”

“네. 신당 초기 멤버 중에 의원님만큼 두드러지는 사람이 없어요.”

“앞으로 신당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300명 중 과반수가 초선이라 이번 대선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을 거예요. 아무리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을 원한다 해도 어떻게 초선이 대통령까지 가겠습니까.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로 보일 가능성이 있어요. 결국 신당이 소수 정당일 때부터 외압을 무릅쓰고 들어온 초기 멤버 중에서 스토리를 갖고 계신 적임자가 황 의원님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옆에 정상훈 대표님과 오혜라 의원님도 계시잖습니까.”

정상훈은 초선이라지만 전직 국세청장이고 오혜라는 4선이 되도록 청렴을 지켜온 인물이다.

둘 다 대선에 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아직 국회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이어서 오혜라가 덧붙였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비례대표 출신이에요. 스토리로 내세우기엔 부족하죠.”

신재현은 찻숟가락으로 반쯤 식은 인삼차를 휘휘 저었다.

가라앉은 인삼 가루 같은 부유물이 떠오르며 찻잔 속에 휘몰아쳤다.

“의원님은 검사로 재직하시던 시절에 동료 검사를 조사하려다가 실패하셨죠?”

“정확히는 평검사 하나와 차장님입니다.”

“스폰 받았다는 의혹이었고요.”

“의혹이 아니라 제가 봤습니다. 당시 건설사 사장과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온 뒤에 관련 사건을 무마해 줬어요.”

“결과는 좌천이었고요.”

“못 버티고 제 스스로 나왔죠.”

황인영이 착잡한 얼굴을 했다.

그에게는 달궈진 인두로 새겨진 것처럼 뇌리 깊숙한 곳에 자리한 기억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임관한 검사 자리를 내버린다는 아쉬움보다는 더러운 검사 하나 쳐내지 못한다는 비참함이 더 컸다.

그날의 감정은 지금도 가끔씩 울컥 솟아오르곤 했다.

그래서 그는 국회로 들어온 것이다.

“검찰을 뒤엎으려다가 부당하게 좌천되고 결국 사직. 저절로 눈이 가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면 신재현의 공무원 도전 스토리도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횡령을 상사에게 보고했다가 부당 해고 당한 후 경찰에게 횡령을 내부 고발.

황인영과 닮은 면도 있었다.

눈에 띌 거라고 단언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지금 한창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신재현과 비슷한 스토리다.

열광하고도 남는다.

황인영은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왜 지금 불렀는가. 이유야 간단합니다. 경고하기 위해서죠.”

“경고요?”

“나중에 지지율 올라가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선거 기간에만 지하철 앞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 선거철 지나면 갑질하는 국회의원, 시의원 얘기는 아주 흔하죠.”

자신을 의심하는 말이었지만 황인영은 불쾌함보다 오싹함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의 맛을 봤으면 만사가 자기 뜻대로 풀린다는 착각에 취할 법도 한데.

아예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객관적이고 냉철한 모습이었다.

“야욕 없는 사람은 없어요. 야욕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요. 욕망은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잖아요. 대통령 욕심에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전국 유세 도는 사람이 절대 나쁜 게 아니죠. 하지만 지금은 청렴했던 사람이 높이 올라갔다고 돈맛, 권력 맛에 취해서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건 경계해야죠. 그러니 경고를 지금 드리는 겁니다. 지금은 제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죠? 근데 나중엔 한 귀로 듣고 흘릴 수도 있잖아요. 인기 많아지시면.”

“제가 삐딱해진다 싶으면 부단장님이 나서서 치실 것 아닙니까.”

“전 비리와 불법, 탈세에만 나설 거예요. 지금 봐도 저는 정치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어요. 그래도 나름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겁니다.”

신재현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황인영은 웃을 수 없었다.

확실히 신재현은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사심이 보이거나 어느 한쪽을 편든다면 공정한 공무원의 타이틀은 깨지고 말 것이다.

“지금 부르신 건 이해했습니다. 경고도 알아들었고요. 그러면 절 밀어주는 건 선을 넘는 행동 아닌가요?”

긴장하면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황인영의 질문에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황 의원님을 밀어준다고 했나요?”

“예? 지금 흐름으로는…….”

“저는 어디까지나 1차적인 검증 역할만 할 겁니다. 총선에서 그랬듯 선택은 국민께 맡길 거예요. 황 의원님 대통령 만들어 드리는 거야 솔직히 가능한데, 제가 진짜 그걸 해버리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아닌가요?”

“네. 그렇죠.”

“그리고 지금은 빈집이나 다름없어서 이름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은 다 튀어나올 겁니다. 황 의원님이 헤쳐 나가서 능력을 입증하기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서울 시장이나 다른 의원님들은 걸릴 게 하나씩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사람들까지 다 빠지면 정말로 빈집이잖아요. 비리 없고 깨끗한 사람들이 설마 하나도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건 의원님이 직접 헤쳐 나가세요.”

“검증만 맡아주신다면야 그야말로 공평한 무대가 되겠군요.”

“그렇죠? 의원님의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먼저 제1단계로 신당 내 경선을 준비하셔야겠네요. 인재가 많이 들어올 테니 그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네. 그건 제 역할이죠.”

“개인적으로는 황 의원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약간의 동질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대통령이 되신 후에도 조사를 막지 않으실 것 같거든요. 성역 없는 조사, 허락해 주실 거죠?”

“당연합니다. 그거야말로 제가 원하던 건데요.”

아직은 김칫국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정말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에 뿌리 깊게 박힌 비리 검사를 싹 쳐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혼자서 사법부를 깨끗하게 물갈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재현을 돕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재현으로서는 과거 민치호나 송대희가 현 대통령을 만나 담판을 지었듯 미리 밑밥을 깔아두려는 것이었지만, 황인영으로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공정한 대선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 말이다.

황인영도 나름 큰 뜻을 품고 국회에 나선지라 이번 겨울의 대선에 기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어? 잠깐.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어느 샌가 황인영이 대선에 나가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든 황인영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신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할 말은 다 했으니 저도 슬슬 출근해 보겠습니다. 기자회견 전에는 보내 드려야죠.”

“살펴 가십시오, 부단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정상훈과 오혜라가 일어서서 배웅했다.

“엇, 부단장님. 잠깐만요.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는데요. 저 아직 하겠다는 말 안 했…… 부단장님? 부단장님!”

황인영이 마당까지 따라 나갔지만 신재현은 빨랐다.

어느새 대문을 넘어서는 신재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황인영의 어깨 위에 오혜라의 손이 얹혔다.

“앞으로 바빠지시겠네요. 힘냅시다!”

황인영이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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