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89화 (389/500)

389화. 다음 단계로 (2)

요즘 들어 검찰청 앞은 매일 소란스러웠다.

나는 지현석의 차 조수석에 앉은 채 잠시 동안 그 모양새를 지켜보았다.

“……저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회는 너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국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 앞에 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과장스럽게 여기서도 정치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는 제 결백을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부르기 전에 먼저 온 겁니다. 제가 떳떳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믿고 맡겨주셔도 된다는 걸 말입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목적을 드러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탈세라고 할 만한 거액은 떠 있지 않았다.

그걸 보고 내 생각을 수정했다.

검찰청에 자진 출석하는 놈들은 자기 잘못을 덮으려는 놈들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하동문, 차주혁 같은 거물이라면 몰라도, 지금 우르르 검찰청으로 몰려온 의원 한 명 한 명을 기자나 국민이 신경 쓸 수는 없다.

그걸 노린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들은 의외로 깨끗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왔단 소리다.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정치적 술수겠지만, 마냥 안 좋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국회를 검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저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결백을 밝히려는 게 아니라 단지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에 서려는 속물적인 목적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머리에 꽃밭이 가득한 이상주의자가 정치를 한답시고 나타나면, 나는 나라가 망할 징조인가 했을 것이다.

“이제 됐습니다. 볼 만큼 봤어요. 들어가죠.”

나는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지현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정장 재킷 단추를 잠그고 잰걸음으로 다가가자, 우릴 본 기자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신재현이다!”

“부단장 둘이 한꺼번에 왔어!”

계단 위에 있던 국회의원, 그리고 그 밑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국회의원들의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

주목받을 시간을 빼앗긴 것에 대한 아쉬움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금세 표정을 바꾸고 박수를 치며 날 맞이했다.

“두 부단장님,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 피! 국회 정화의 핵이 되실 분들께서 오셨군요.”

계단 위의 국회의원은 다소 과장된 말투를 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카메라를 고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타닥 소리와 함께 기자들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국회의원들도 지금이 기회라는 듯 다가오고 있었다.

사진이라도 찍으면 이득이라는 생각일까.

그러나 나는 더욱 빠르게 발을 놀리며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갔다.

한 손을 들어 그들에게 내보인 채로.

“급한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하하, 공사가 다망하신 분들입니다. 기자 여러분들도 아쉽겠지만 부단장님 대신 제가 피사체가 되어드리도록 하죠.”

아까부터 과장이 느껴지는 말투의 의원이다.

전직 배우라도 했던 걸까.

그래도 탈세액은 없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치인이 좀 과장해서 말할 수도 있지, 그럼.

나는 빠른 속도로 그를 스쳐 지나가며 외쳤다.

“솔선수범해서 조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기회가 되면 나중에 뵙겠습니다!”

탈세액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가진 호의가 말투에 조금 배어나온 모양이다.

그를 지나 계단을 오르는 날 보는 의원의 표정이 천천히 변화했다.

아쉬움에서 당황, 그리고 환희로.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마 반사적으로 평소 자주 하던 말이 습관처럼 나온 거겠지.

뭘 열심히 하겠다는 건지, 나는 피식 웃었다.

검찰청 내부로 들어오자 지현석은 곧장 날 어딘가로 안내했다.

서류를 들고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우릴 보더니 놀란 듯 잠시 흠칫했다가 고개를 숙였다.

당연하게도 제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신재현 씨는 유진환 그놈이 왜 만나자고 하는지 짐작합니까?”

“글쎄요.”

나라면 왜 만나자고 할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아예 짐작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정보를 넘겨줄 테니 구형을 낮춰달라고 거래를 한다거나, 제가 제대로 핵심에 접근하고 있는지 떠보기…… 하지만 이건 곁가지일 겁니다. 그놈은 제가 죽을지 살아남을지가 가장 궁금할 거예요.”

지현석이 단숨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신재현 씨를 죽일 방법이 있겠습니까?”

“몇 가지 함정이 있었죠.”

“……함정이요?”

“별것 아닙니다. 해결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지현석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더니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유진환이 우리도 모르게 함정을 팠고, 신재현 씨가 거기에 걸렸는지 알고 싶어서 불렀다 이겁니까?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게 아니라?”

“그놈이 한 짓이 있고 우리 입장이 있는데 어떻게 안위를 보장해 주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그놈은 믿지 않을걸요.”

하동문과 차주혁, 그리고 유진환은 어떻게 보면 조사단의 가장 큰 성과이다.

유진환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사단이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려면 웬만한 정보로는 어림도 없을 거라는 걸.

게다가 이미 조사단 앞에서 내 태도는 보여줬다.

거래는 없다고.

“신재현 씨,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는데요.”

유진환의 함정 얘기인가 했더니 지현석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다른 종류의 걱정이었다.

“유진환이 만약 쓸모 있다면 협력할 겁니까? 설득해서라도?”

나는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췄다.

지현석이 나보다 한 발짝 지나쳐 간 상태에서 멈춰 서 뒤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서린 걱정을 보고는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핫. 제가 그놈과요? 물론 급박한 상황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겠지만 지금은 다르죠. 우리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데다 그놈은 믿을 만한 놈이 아니에요. 제어도 불가능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멈췄던 걸음을 떼고 그를 지나치며 웃음기를 거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닙니다.”

***

“…….”

“…….”

침묵과 침묵.

취조실에 마주 보고 앉은 나와 유진환은 5분째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현석이 동석하긴 했지만 그는 조각상처럼 그냥 앉아 있기만 할 뿐.

형식상, 그리고 내가 걱정되어서 동행한 것뿐이지 이 자리는 나에게 맡긴다고 했기 때문이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유진환과 나는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몇 분 더 지났을 때, 나는 피식 웃었다.

“놀 만큼 놀았죠? 그만합시다.”

“오랜만에 눈싸움하니까 재밌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풀고 등을 기댔다.

보통은 아쉬운 사람이 먼저 입을 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지현석이 끼어들지 않고 우리의 시간 낭비를 지켜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눈싸움은 전초전도 뭣도 아니다.

그냥 반쯤 장난 같은 것이었다.

“이제 와서 이런 걸로 서로를 떠볼 시기는 이미 지났지 않습니까.”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유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어느 쪽이 우위인지는 명확하니까. 나는 만나달라고 사정사정하며 매달려야 하는 입장 아닌가?”

여기서 나는 그에게 왜 불렀냐고 묻지 않았다.

너의 용건 따위 듣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내 볼일만 보러 온 것이다.

불러서 온 게 아니라 내 필요에 의해 온 거라고 보여야 했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진환 씨가 준 선물 잘 받았습니다. 달갑지 않은 게 들어 있더군요.”

“역시 눈치챌 줄 알았어. 잘 쓰고 있나 보네.”

시종일관 유진환은 반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평정을 흩트리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남에게 반말 좀 듣는다고 화낼 시기는 지났다.

이 자리에서는 말투 또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었다.

“단순한 함정이었으니까요. 악의가 느껴지긴 했지만 걸리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으로 넣은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시험, 장난 같은 거죠.”

“그것까지 포함해서 내 선물인 거지. 걸려주면 좋고.”

“제가 걸릴 것 같았습니까?”

“아니, 너는 안 걸려도 100명이나 되는 사람 중 누구 하나는 걸리겠지. 그리고 중간에서 쳐내지 못하면 내부의 폭탄이 되는 거고. 걸러낸 걸 보니 조직은 완벽히 장악했나 보네.”

그의 함정은 별것 아니지만, 만약 내가 놓쳤다면 큰 사건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폭탄이 제대로 심어진 걸 확인하면 당신이 기자들에게 제보할 테고, 검증이 끝나면 이런 기사가 나왔겠죠. 죄 없는 의원에게 누명 씌운 조사단, 실수인가 의도인가.”

“조사단의 흑심은 따로 있었다! 청렴결백한 공무원인 줄 알았더니 똑같은 놈이었구나, 여론도 뒤집을 수 있고 조사는 추진력을 잃겠지.”

지현석이 기겁한 채 나와 유진환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유진환은 재밌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이미 지난 일이라 지현석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말해뒀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장난치곤 날카롭긴 했죠.”

“그걸 장난이라고 받아들이네. 역시 통이 커.”

“진짜 절 떨어뜨릴 생각이었다면 제대로 된 재료를 준비했겠죠. 예를 들면 분신자살 같은 거.”

“그렇지. 이런 자질구레한 공격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아야 재밌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서 지현석이 질린 눈빛을 하더니 이내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여기서 감정을 보여주다 휘말리느니 차라리 숨기는 편을 택한 것이다.

“자, 그럼 숨긴 패나 까보시죠.”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하자 유진환이 일단 시치미를 뗐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부른 이유가 그거잖습니까. 첫째는 내가 잘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서고 둘째는 날 떠보기 위해서고 셋째는 숨긴 패를 활용하기 위해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거래는 없습니다. 아시죠?”

“참 재미없어.”

유진환은 말과는 다르게 짓궂은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상자에 든 자료를 몇 번이고 검토했습니다. 거기 들어 있는 건 초선에서 4선까지의 잔챙이들 약점뿐이었어요. 언젠가 보험으로 써먹으려고 모아둔 거겠죠. 그런데 있어야 할 게 없더군요.”

“글쎄? 그때 태워 버린 게 아닐까?”

유진환은 분신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상자 하나 분량의 서류 더미를 쏟고 불을 질렀다.

“그 중요한 걸 태워 먹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거야말로 제일 큰 보험이자 생명줄일 텐데.”

“뭔지 아는 모양이네.”

이제는 자신에게 패가 남아 있다는 걸 숨기지도 않았다.

“제가 받은 것 중 6선 이상의 의원들에 대한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분명 설계하셨잖아요.”

웃는 낯이던 유진환의 얼굴에 이채가 스쳤다.

“어떻게 알았지?”

평소라면 이런 말 자체가 내게 정보를 주는 실수겠지만 어차피 승패가 갈린 상황이다.

그에게서는 순수한 재미와 호기심만이 느껴졌다.

“곧 있으면 징역 갈 텐데 지금 그게 더 궁금합니까?”

“어차피 몇 년 안 때릴 테니까. 변화의 바람이네, 뭐네 해도 그건 행정부랑 입법부까지잖아. 사법부까지 손댈 수 있어?”

그 말이 사실이라 나는 대답 대신 감탄사를 돌려줬다.

“이런 개새끼가…….”

“됐고. 내가 그동안 집착하고 있던 명예나 지위를 다 내려놓고 보니까 처음 목표가 떠오르더라고. 남을 내 뜻대로 휘두르는 거. 그건 감옥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만.”

“정신을 차린 거지. 손에 쥐고 있던 걸 놓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몰라. 그래서 어떻게 안 건지나 말해봐. 궁금한 건 못 참아.”

나는 물끄러미 유진환을 보았다.

그의 주변에 떠다니는 숫자들 중에는 현직 6선 이상 의원들의 탈세액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진환이 그들의 탈세를 돕고 설계해 줬다는 증거다.

이걸 설명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저놈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기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업 비밀입니다. 저도 패는 갖고 있어야죠.”

“아, 치사한 새끼.”

“그래서 어디 있습니까? 그 자료.”

“공짜로 달라고?”

“싫으면 말구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유진환이 혀를 찼다.

“진짜 거래가 씨알도 안 먹히네. 그렇다고 넘겨줄 만한 다른 놈도 없고.”

저놈은 6선이고 7선이고 그냥 다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길 원한다.

그런데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불행히도 나밖에 없다.

나에게 맡기느냐, 숨겨두고 다음의 보험으로 쓰느냐의 선택이다.

“갖고 계셔도 상관은 없는데 지금이 아니면 쓸 기회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지금 다 쓸어버릴 테니까.”

괜히 아꼈다 똥 되지 말고 지금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유진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이거 완전 날강도 아니야?”

“그래서 안 줄 겁니까?”

“또라이 같은 놈…… 내가 고맙단 소리를 들어도 모자랄 판국에 대체 왜 이렇게 구박받아가면서 줘야 하지?”

“저 바쁩니다. 얼른 주시죠.”

유진환은 구시렁거리며 주소를 불렀다.

어차피 녹화도 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머릿속에 새기듯 단숨에 외웠다.

“그럼 저 갑니다.”

볼일도 끝났겠다, 일어서려는데 유진환이 가볍게 툭 말을 던졌다.

“네 형, 죽여줄까?”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서 나는 표정을 지웠다.

“너 형 싫어하잖아. 아니면 하동문은 어때? 안에서도 죽일 수 있는데.”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아닙니까?”

“못할 것 같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현석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언제고 일어나서 대화를 막으려는 것이다.

어쩌면 유진환의 부탁을 들어준 걸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날 부른 원래 목적이 이거였구만. 자살이 실패했는데도 포기할 줄을 모르시네. 또 흔들어 보겠다 이겁니까? 이보세요, 유진환 씨. 당신이 남들 갖고 노는 걸 좋아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근데 그걸 저한테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어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건가? 사람이 죽어나가도?”

여기선 말리면 안 된다.

내가 겁내는 순간 오히려 저놈은 더 일을 저지를 테니까.

“당신 선택에 제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대신 당신이 저지른 만큼 이쪽 분이 죗값은 톡톡히 받아다 주실 겁니다.”

나는 엄지 끝으로 지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한테 장난질은 안 통한다는 걸 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일어서자 유진환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날 배웅했다.

“참 재미없네. 너무 똑똑해진 거 아니야? 어떻게 한 번도 제대로 상대를 안 해주냐.”

“그야 상대할 가치가 없으니까.”

유진환이 욱한 게 보였다.

가벼운 웃음을 남기고 취조실 옆에 붙은 별실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들이 주춤하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다들 못 볼 걸 본 얼굴이었다.

“저놈 감시 좀 잘 해주세요. 사고 칠 놈이라서.”

“예? 예…….”

내가 당부하자 수사관들이 데인 듯 흠칫 놀라며 어리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복도로 나와 빠르게 걷자 지현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라왔다.

“진짜 죽이면 어쩝니까?”

“안 그럴 겁니다. 이득이 없어요.”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손을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런 득도 없는데 괜히 손을 더럽힐 놈은 아니다.

저놈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만약 손을 쓴다 해도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겠지.

예를 들어 내가 충격을 입을 만할 때 말이다.

“검사님, 앞으로 유진환과 저는 안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뽑을 정보는 다 뽑았으니 저놈이 절 만나자고 해도 다 거절해 주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그렇게 하죠.”

지현석이 두 손을 불끈 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검사님, 죄송한데 조금만 더 시간을 내주시죠. 오늘 안으로 증거 회수하러 갑시다.”

“아까 유진환이 말한 주소 말이군요. 좋습니다, 얼른 가죠. 저놈에 대한 건 얼른 털고 끝내고 싶습니다.”

지현석이 질린 듯 고개를 저으며 성큼성큼 앞서갔다.

유진환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이제 곧 마무리 단계다.

나 스스로도 무리라고 생각했던 총선 전 조사 계획이 이제 가시화되어가고 있었다.

슬슬 다음 단계로 가도 되겠는데.

그간 바빠서 생각하지 못했던 총선 후 상황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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