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미답의 영역 (6)
국회의사당에는 오랜만에 의원 모두가 출석했다.
구속된 하동문과 조사단에 자진 출두해 조사받고 있는 차주혁을 제외하면 298명 모두가 모인 자리였다.
‘하필 이럴 때 국회 임시 회기라니…….’
정기 국회는 매년 1번, 9월 1일에만 열린다.
그 외의 시기에 처리해야 할 현안이 있으면 임시 국회를 소집하게 된다.
어떻게 현안이 정기 국회 기간에만 생기겠는가.
이번에도 총선 직전에 여야 나름대로 보여주기식 민생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 국회를 열었는데, 하필 이런 일이 터져 버렸다.
원래라면 현안에 따라서 누구는 보이콧하고 누구는 다른 일을 핑계 대고 안 나오는 일도 있다.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법안이 상정된 임시 국회에 한 명도 빠짐없이 출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의원들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억지로 끌려온 것처럼 인상을 잔뜩 쓰고 있을 뿐더러, 지금 계류 중인 법안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른 것에 신경이 팔려 있는 것처럼 연신 핸드폰을 보거나 옆자리 의원과 대화를 나눴다.
결국 말석에 앉아 있던 의원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다들 정신이 어디에 팔려 있는 겁니까! 이럴 거면 뭐 하러 출석하셨습니까!”
의원들은 말석의 의원을 보고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노골적으로 그의 위아래를 훑는 사람도 있었다.
국회는 보유한 의원 숫자가 많은 당의 순서대로 앉는다.
지금 일어난 사람은 딱 봐도 몇 명 안 되는 신당 쪽의 사람이었으며 나이도 젊어 보였다.
아마 초선, 아니면 2선.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신당으로 넘어간 사람일 것이다.
‘옛날 같으면 저런 놈들은 여기서 말도 못 꺼냈는데.’
저런 애송이에게 훈계하는 시간도 아깝고 그럴 정신도 없다.
의원들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신당 대표라는 작자는 아직 국회의원 자격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본회의장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지지율만 높은 신당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다들 깔끔하게 무시하자 신당의 의원들이 분노했다.
예전 같으면 일어난 의원을 말리며 억지로 끌어 앉혔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론이, 국민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런 각오도 있었다.
‘저런 놈들이 싫어서 신당으로 왔는데 이런 쓴소리도 못할 거면 신당에 있을 자격이 없지!’
신당의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중에는 일전에 신재현이 지나가면서 본 조세범처벌법 개정 발안자도 끼어 있었다.
그들 때문에 회의가 잠시 멈췄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들 곧 끝나는 임시 국회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까.
“한 달도 안 남은 회기의 임시 국회가 어찌 되든 알 바 아닌 우리 의원님들께서, 왜 다 나와서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제가 설명드리죠.”
희끗한 머리카락의 여자 의원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예전에 조사단이 생기기 전, 의원 회관의 비밀 회동에서 정상훈을 초대한 오 의원이었다.
그때는 제1야당 소속으로서 은근슬쩍 신재현에게 공격이 쏠리지 않도록 두둔했으나 조사단이 생기기 직전 탈당해 정상훈이 만든 신당으로 들어왔다.
초선과 2선 위주로 이루어진 신당에서는 유일하게 3선인 의원이었고, 대표인 정상훈은 아직 국회에 들어오지 못했기에 자연히 그녀가 당의 중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불똥이 튈까 봐 무서우신 거죠? 여당과 제1야당의 대선주자인 두 의원이 조사실에 앉아 있는데 과연 이걸로 끝날까. 50명이나 되는 현직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는데 그런 여력이 될까. 어쩌면 그걸로 이 폭풍은 끝나지 않을까. 다음 총선은 어떻게 되는 거지? 등등…… 온갖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고 조사단에 찾아가서 선처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저 네 분처럼 기자회견을 할 수도 없으니 여기 나오신 거잖아요. 혹시라도 출석 안 했다가 일 안 하는 국회의원이라고 질타를 받을까 봐.”
그녀는 제1야당의 중간 즈음에 앉아 있는 4명의 남녀를 가리켰다.
하동문의 심복이었으나 이번에 살아보겠답시고 기자회견을 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불편한 기색을 가득 담아 헛기침을 했다.
오 의원은 가르치는 듯한 말투였기에 듣는 의원들은 단숨에 기분이 나빠졌다.
오 의원이 아무리 대학 교수 출신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같은 의원에게 훈계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거참, 오혜라 의원님. 그 말씀은 마치 여기 있는 국회의원 모두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걸로 오해할 수 있으니 말을 좀 순화해 주시지요.”
“순화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보세요, 국회 안이 둘로 나뉘었네요. 당당한 사람들, 그리고 초조한 사람들.”
오혜라의 말에 의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다가 흠칫했다.
그 말이 맞았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잘됐다는 듯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앉아 있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가시방석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의원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후자가 대다수였는데 신당 의원들은 보란 듯이 허리를 폈다.
자신들은 깨끗하다는 뜻이다.
처음 일어섰던 신당 의원이 꼴좋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요즘 젊은 층에서 이번 사태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국회 정화래요, 국회 정화. 썩어빠진 오물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 의원!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망발을 내뱉는 겁니까! 말하면 단 줄 알아!”
초선 의원에게 오물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모욕이었다.
참지 못하고 몇몇 의원이 일어서서 성토했지만 예상 못 한 사태가 일어났다.
당당한 얼굴로 앉아 있던 소수의 의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것이다.
“이 의원이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전 사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보지에 후보 재산이랑 전과기록 적으면 뭐 하나, 가족은 공개 안 하면 장땡인데. 전 지금 당장 조사단 앞에 가도 당당합니다. 원하는 자료는 뭐든 다 보여 드릴 수 있어요. 평소에 착실하게 살았으면 조사단이 뭘 들쑤시고 다니든 아무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행정부가 국회를 핍박하고 있는데!”
“범죄자 잡아들이는 것도 핍박입니까? 애초에 조사단이 아무나 잡아들였어요? 아니면 의원님들은 하동문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초선이라고 해도 정치인이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치더라도 이들은 명분을 내세우며 서로의 논리를 논파했다.
물론 조사를 피하고 싶은 다수의 의원들도 가만히 밀리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겠죠. 그러다 국회가 기능을 잃고 독재가 시작되는 겁니다.”
“나중 얘기를 왜 합니까? 그땐 의원님은 여기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젊은 의원 하나가 툭 끼어들어 던지듯 말했다.
논리고 뭐고 없는 네거티브 공세였지만 의외로 이 말은 의원들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뭐, 뭐라고! 지금 뚫린 입이라고……!”
가볍게 던졌던 젊은 의원도 자기가 말해놓고 놀랐다가 이내 한술 더 떴다.
“다음 국회가 걱정할 일이니 의원님은 상관없을 것 같다는 뜻이었습니다만 의원님은 깨끗하신가요? 그렇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음 국회에서요.”
조사단과 총선이라는 양대 산맥을 넘어서 올 수 있겠냐며 약 올리는 말이었다.
몇몇 의원들이 뒷목을 잡으며 의자에 늘어졌다.
국회가 혼란스러워지자 의장이 의사봉을 내려쳤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의원의 저 말에는 의장도 참을 수 없다는 듯 쌍심지를 켰다.
그것이 신성한 국회에서 말을 함부로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도 그 말에 해당돼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만들 하세요! 이 무슨 추태입니까!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50명의 명단이 공개되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 50명이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예요!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다들 자중하세요!”
얼굴을 붉혔던 의원들이 씩씩거리며 애써 화를 삭였다.
본회의장에는 방청석도 있고 기자도 드나든다.
평소 하던 대로 멱살이라도 잡았다간 바로 그날 저녁 뉴스에 ‘국회의 추태’라는 소제목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위아래도 없는 싸가지 없는 놈……! 저런 놈들은 다리를 비틀어서 국회에 발도 못 붙이게 해야 하는데!’
방금의 말싸움은 꿀릴 것 없는 의원들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팬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더욱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국민은 금방 잊어. 하동문과 차주혁이 이목을 다 끌고 있으니까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을 거야. 총선만 지나면 두고 보자. 국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마.’
중진 의원들이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을 때. 이 국회의 유일한 9선 의원이 손을 들었다.
80이 넘은 원로 중의 원로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했다고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존중해 주는 분위기였기에 단숨에 시선이 쏠렸다.
“아까 의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직 모르는 일 아닙니까. 허둥댈 필요가 없어요. 현직 의원 50명만 조사해도 몇 달은 걸릴 겁니다. 그때쯤이면 여론이 바뀌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조사 대상에 오른 50명은 어떻게 합니까?”
“그건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요. 평소 행실이 부적절하니 지금 같은 시기에 맨 처음 조사 명단에 오른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께 부끄럽지 않도록 다들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하세요.”
말이야 행실을 들먹였지만 결국 그도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맹수라 해도 50명이나 되는 먹잇감을 입에 물었으면 배가 부르지 않겠습니까. 괜히 욕심을 부리다 배가 터져 죽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것 같지도 않아요. 조사단 부단장은 똑똑한 사람 아닙니까. 국회의원을 구속할 정도로 말이죠.”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다.
의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9선 의원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뇌물 사건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이들이 목숨을 부지한 것부터가 그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아직도 국민을 개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네요.”
신당의 오혜라 의원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띠었다.
9선 의원이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내려앉은 눈두덩을 치켜 올렸다.
“오 의원! 아무리 앞뒤가 없어도 이분이 누구인 줄 알고……!”
9번이나 국민의 선택을 받은 사람.
그러나 오혜라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지난번 술자리에서 개돼지라고 한 분이 누군데 그러세요. 바로 저기 계신 9선의 장차선 의원님 아닙니까. 아차, 말실수라고 하셨죠? 그래서 아무도 그 얘기 꺼내지 못하게 입을 막으셨잖아요.”
“간신히 조용해진 국회에 또 싸움을 붙이겠다는 겁니까? 오 의원, 자중하세요.”
이미 다 끝난 얘기를 왜 끄집어내냐는 듯 의원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오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토해냈다.
“맹수? 하하핫. 아직도 의원님들은 정신을 못 차렸어요. 가능하지도 않은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70%를 넘었어요. 겨우 50명 갖고 만족할 것 같아요? 하긴, 저번에 보니까 신재현을 자기 당으로 끌어들이겠다고 의논하는 사람도 있던 걸 보니 머리가 아직도 꽃밭이세요. 그렇게 편하게 살았으니까 만사가 잘 풀릴 거라고 착각을 하시는 거겠죠.”
“오, 오 의원! 그런 말은 국회 모독입니다. 의장님! 오혜라 의원의 퇴장을 요청드립니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 저 입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의장이 의사봉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오혜라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국회의원 전부 조사단에서 검증받게 될 겁니다. 이 중에서 얼마나 남을 것 같으세요? 다음 국회에서 얼굴을 볼 수나 있을까요? 대통령 마지막 임기에 레임덕이 발생하면 권력 공백이 생기죠? 국회의원은 연임이 가능해서 이제껏 그런 일이 없었지만, 만약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갈이된다면?”
의장이 의사봉을 들어 올린 손을 우뚝 멈춘 채 홀린 듯 오혜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들 외면하고 있던 최악의 사태를 정면에 들이댄 것이다.
“여러분의 손에 아직도 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한 달도 안 남은 임기의 국회의원에게?”
조금씩 공포가 번져갔다.
수런거리는 목소리 중에는 ‘나는 아닐 거야’, ‘그때 같이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거 딱 하나가 걸려’ 같은 걱정이 석여 있었다.
그때, 혼란을 깨고 젊은 의원 하나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속보 떴습니다!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훑었다.
기분 나쁜 정적이 내려앉았다.
[속보] 조사단 1차 조사 결과 발표
-1차 조사 대상 50명의 명단을 공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1차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일전에 하동문 의원의 정책 자문인 Y 모 씨가 가져온 증거를 검토한 결과이며, 여죄는 현재 조사 중이라고…….
“유진환, 이 개새끼가!”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유진환 이놈이!”
1차 명단에 오른 50명의 노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왔나 했더니 유진환의 비밀 장부 덕분인 것이다.
그러나 사색이 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시간을 끌어줘야 할 50명의 조사가 이렇게 빨리 진행된다면 다음 수순은 어떨지 뻔했다.
[속보] 조사단, 조사 범위는 국회의원 전원
-조사단은 오늘 중으로 2차 조사대상 명단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2차 대상은 현직 국회의원 전원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귀띔이 있었습니다.
“이 미친 새끼들! 적당히라는 걸 몰라!”
“지들이 뭔데 국회의원을 물갈이하겠다는 거야!”
더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듯, 찔리는 게 있는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본회의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임시 국회가 진행 중인데도 말이다.
그중에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는 9선의 의원도 끼어 있었다.
그들이 나가고 난 후 잠잠해진 본회의장에 남은 의원들이 씁쓸함 반, 시원함 반의 심정을 담아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
오혜라 의원은 반도 남지 않은 의원들을 한차례 훑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까 9선 의원에게 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정중한 모습이었다.
“임시 국회는 여기서 끝난 것 같군요. 저도 유세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차기 국회에서 뵙지요.”
떳떳한 의원이라 해도 자신의 깨끗함을 증명해야 하니 남은 유세 기간은 많이 바빠질 것이다.
남은 이들 역시 하나둘 일어서서 본회의장을 떠났다.
이제 여기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오는 것은 한 달 후가 될 것이다.
누가 들어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일 거라는 것.
그리고 적어도, 이전의 국회보다는 나을 거라는 것.
텅 빈 본회의장에 먼지와 정적만이 내려앉은 가운데, 제22대 국회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