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미답의 영역 (3)
하동문에 대한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부터 모든 현장은 생중계되고 있었다.
요즘 세상은 시청률이라는 게 10% 나오기도 쉽지 않다.
휴대할 수 있는 매체가 많다 보니 굳이 TV로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TV로 보는 모든 가구가 시청률로 집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번 생중계가 실시간 시청률 5%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방송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평일 낮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한 채널에서만 방송하는 것도 아니다.
공중파와 케이블, 그리고 인터넷 중계까지 시청자를 모두 합치면 현재 영상을 볼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은 거의 이 중계를 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신재현 팬카페의 사람들도 끼어 있었다.
“끄아아악! 갈 거야! 갈 거라고!”
기념비적인 순간을 보존하기 위해 방송 녹화 중이던 팬카페의 회장, 한대희가 짐승과도 같은 절규를 내질렀다.
정면에는 무려 50인치 TV에서 현장 영상이 FHD로 흘러나오고 있었고, 왼쪽에는 부인인 신혜진이 앉아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바로 오른쪽에는 노트북이 한 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팬카페 회원들 수백 명이 접속 중인 단체 대화방이 큼지막하게 띄워져 있었다.
“여보야가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신재현의 사촌 누나이자 현직 배우인 신혜진은 길길이 날뛰는 남편을 보며 과자를 아작아작 씹었다.
못 참겠다며 소리 지르는 남편과 달리, 그녀는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편안히 소파에 기댄 상태로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 우리 재현이 화면발 잘 받는다. 쟤 사실 배우 했어도 되는 거 아닐까? 자기야, 저거 봐봐. 재현이가 무대를 장악할 줄 알아. 카메라에 대한 감이 있다니까?”
신혜진은 과자 양념이 묻은 손을 쪽쪽 빨고는 TV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신재현이 빌딩 앞에 있는 얕은 층계참 위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노린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딱 모두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올라가 있잖아. 지금 저 계단이 단상 역할을 하는 거라고. 내려다보는 느낌도 주는데 그다지 높지도 않아서 거리감도 적당해. 건물 배경으로 그림도 예쁘게 뽑히는 거 봐. 우와, 드라마 같다. 조명이 없어서 얼굴 그늘지는 게 좀 흠인데. 셔터 빛 받으니까 괜찮다.”
누가 배우 아니랄까 봐 신혜진은 영상미를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카메라 감독과 연출이 없는 뉴스 영상에서 영화와 같은 영상미는 없었다.
대신 기자들의 카메라 워킹은 끈덕졌다.
누구는 유진환을 클로즈업해서 표정 하나하나까지 잡고, 누구는 신재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었다.
그리고 방송사에서는 그 둘을 번갈아 가며 내보냈다.
“아, 근데 빛 받으니까 얼굴이 뜬다. 저기서는 살짝 얼굴 발라줘야 하는데.”
신혜진이 불만족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러나 저 상황에서 무슨 메이크업이 가능하겠는가.
신혜진도 알면서 괜히 말해본 것에 불과했다.
전국적으로 나오는 방송에서 사촌 동생의 얼굴이 최고가 아닌 것이 불만이었을 뿐.
비교적 침착하게 영상을 평가 중인 신혜진에 비해 한대희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여보, 혜진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방금 봤잖아! 갤주님, 아니, 처남님이 불을 뛰어넘어서 몸통 박치기를 하셨다니까! 이건 영화가 아니에요, 혜진아! 특수효과도 스턴트도 아니라 실제라고!”
한대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 자기야, 울어?”
“혜진아, 네 사촌 동생이 큰일 당할 뻔했다고! 너도 이런 대본 많이 읽어 봐서 알잖아. 얼마나 트라우마가 남겠니. 그리고 처남이 다쳤잖아!”
한대희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자, 신혜진이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닦아내고 한대희를 껴안았다.
“그러게. 재현이가 잘못했네.”
한대희의 등을 토닥거리던 신혜진의 눈에 노트북 화면이 들어왔다.
반으로 나뉘어 한쪽에는 팬카페, 한쪽에는 팬들의 단체 대화방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거기 반응도 대체로 비슷했다.
-아이고! 갤주님 아껴욧!!!
-세상은 왜 갤주님을 이렇게 괴롭힌단 말인가? 아니, 갤주님 표정 희희낙락하신 거 보니까 이건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은데?
-따흐흑! 차라리 절 던지세요!
-기우제 지낼까? 갤주님 무사기원 기우제.
-기우제가 아니라 기원제겠지. 무사기원은 신도 어렵다고 고개 저으면서 소원 빠꾸시킬 것 같음. 갤주님 덜 구르기 기원제 하자.
-갤주님 화상 흉터 남지 않아야 할 텐데.
-나 의사다. 내일 당장 국세청 쳐들어간다.
-우오오오! 전문직이다! 전문직이 떴어!
혼란의 도가니인 대화방을 보며 신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회장에 그 회원들 아니랄까 봐 다들 분위기는 비슷했다.
정작 신재현은 신나서 박스를 들고 들어갔는데.
저번에도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신재현의 3시간 면접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그때도 한대희는 거의 울다시피 했었다.
“근데 자기야. 재현이 신나 보이던데?”
“그게 신난 거야?”
한대희가 고개를 들었다.
먹잇감을 문 남편을 보고는 신혜진이 웃어 보였다.
“그럼! 내가 재현이 본 지가 얼마인데. 박스 갖고 들어가기 전에 웃었잖아. 그거 대외용 미소 아니야. 진짜 신난 거라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풀어보고 싶은 얼굴이던데.”
신재현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팬카페 회장으로서도 친척만 아는 이야기에는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언제 울먹였냐는 듯 벌떡 일어나서 신혜진의 허리를 껴안으며 다그쳤다.
신혜진은 간지러움에 키득키득 웃고는 양손으로 남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자세히 얘기해 봐.”
한대희가 부인을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되자, 신혜진은 뭔가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자세를 잡아보다가 한대희의 무릎 위에 가로로 덜컥 앉았다.
그제야 신혜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며 오른손으로 남편의 뒷머리를 어루만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둘은 신혼이었다.
어떤 시시한 얘기를 나눠도 웃음이 깨처럼 쏟아진다는 그 신혼 말이다.
“재현이랑 나랑 싸우면 기본으로 머리끄덩이부터 잡고 뒹굴었거든. 화상 입을 만큼 위험한 짓은 한 적 없지만 둘이 투닥대다가 연못에 빠진 적도 있고. 쟤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책상물림 아니야. 이 정도로는 끄떡없을걸?”
“여보. 연못에 빠진 건 화상 이상으로 위험한 것 같은데?”
“학교 뒤에 있던 얕은 연못이야. 엄청 구정물이라 빠져 죽는 게 아니라 병 걸려서 죽는 거 아닐까 걱정은 했는데. 하여튼 걔는 맞으면 그 이상으로 돌려주는 애니까 괜찮아. 지금쯤 상대를 어떻게 쥐어 패야 잘 팼다고 소문날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아까 그게 진심으로 웃는 거였다고?”
“그렇다니까!”
신혜진은 TV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대사건의 주인공인 신재현이 병원으로 출발해서 그런지, 아까 있었던 일을 계속해서 리플레이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보통 화면이 빌 때 아나운서나 전문가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오디오를 채우거나 관련 특집을 내보내며 시청자를 붙잡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까 검은 정장의 남자가 나타난 시점부터 해서 신재현이 그를 구하고 들어가는 장면까지, 다시 틀기만 해도 흥미진진했으니까.
“상자에 뭔가 기대하던 게 들어 있던 것 같은데. 아까 둘이 대화 나누던 것도 심상치 않았고. 애가 다쳐놓고도 저렇게 웃는다는 건 그 이상으로 갚아줄 확신을 잡았다는 뜻이거든. 근데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알까?”
“우리 처남이 많이 똑똑하잖아. 나도 아까 대화는 신경 쓰였어. 우리는 눈치 못 챘지만 그 안에 뭔가 힌트가 있었나 보지. 키야, 우리 외가는 얼굴도 잘났고 머리도 잘났어! 우리 혜진이도 이렇게 잘났는데 처남도 잘났단 말이지!”
“으앗, 간지러워! 머리 비비지 마!”
신혜진은 남편의 등을 찰싹 때렸다.
“근데 자기야. 팬카페 신경 안 써도 돼? 아까 보니까 울고불고 난리 났던데.”
“괜찮아. 다들 그러고 노는 거니까. 팬카페 회장이라고 대단할 거 있나? 회원들이 남들한테 민폐 안 끼치고 마음껏 놀 수 있도록 우리만의 공간을 제공하는 게 일이지. 지금은 저게 더 중요해. 처남의 활약!!!”
“다민 씨는 열심히 카페 글 지우고 있던데. 봐, 부회장 이름으로 공지도 올라왔다. 오늘 카페가 불타는 관계로 부적절한 글은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응? 사태가 사태다 보니 이상한 놈들 들어와서 이상한 글 올렸나 보네.”
“자기도 일해야 되는 거 아닐까?”
“괜찮아~ 카페 스태프도 새로 뽑았어. 일부러 회사도 연차 내고 조퇴했는데.”
“TV에 재현이 나오려면 먼 것 같으니까 지금 관리하라는 뜻이에요. 다민이 혼자만 일하게 두지 말고!”
같은 소속사가 된 후로 다민과 신혜진은 언니 동생 하는 사이였다.
원래 남편 소속사의 젊은 여가수와 아무런 사심 없이 친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부끼리 있는 자리에서도 다른 젊은 여자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 둘의 금슬이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 한편으로는 신재현을 계기로 엮인 사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팬카페 회장과 부회장을 맡을 정도로 열성적인 팬인 그들 사이에, 신재현에 대한 동경 말고 다른 감정은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신혜진은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갤주님의 사촌 누나다.
신재현의 친척 가정을 깬다?
다민에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카페가 어수선해서 그런가 정치 글 같은 게 많이 올라오긴 했네. 이놈들은 바로 강제 탈퇴!”
신혜진을 다리 위에 앉힌 채로 한대희는 용케 노트북을 만졌다.
그사이 TV에서는 신재현이 병원을 나와 이동하는 모습, 하동문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대희는 간간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TV를 보고 환성을 질렀다.
신혜진이 TV보다는 남편의 얼굴을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내내 들떠 있던 남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못 볼 걸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순간, TV의 볼륨이 확 올라간 것처럼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다이아다!”
“말도 안 돼!”
“으아악! 으아아악!”
무슨 호들갑인가 싶어 시선을 돌린 신혜진이 숨을 들이켰다.
환한 조명 때문에 창백하게까지 보이는 사촌 동생이 차가운 얼굴로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 위에 놓인 벨벳 주머니, 그리고 안에서 쏟아져 나온 수십 점의 반짝이는 보석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화면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진짜라면?
배우 일을 하면서 여러 브랜드의 협찬을 받아 진짜 보석들을 눈으로 봐온 신혜진은 금세 저것들의 가격을 추산해 냈다.
그리고 그것은 소속사의 사장이자 재벌의 막내아들인 한대희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보석은 숱하게 봐온 사람이었으니까.
“핑크 다이아몬드도 섞여 있는데. 조명 때문에 좀 희게 보이는 걸 감안하면…… 팬시 딥? 못해도 팬시 인텐스 정도는 되겠어.”
“저, 저거 다 합치면 수십억은 되겠는데?”
“와, 진짜 땅 파면 돈이 나오는구나.”
두 부부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
하동문의 열혈 지지자 조경석은 국회의원 하동문을 믿었다.
단순히 하동문이 5선 의원이며 평생 정치판에 몸담아온 노련한 사람이고, 제1야당의 대표격 원로이자 유력한 대선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 조경석은 자신이 그렇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 따지고 따져보아서 지지하는 것이다.
공약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가장 흡사했고, 간혹 청문회에서 정부 관계자에게 호통을 칠 때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국회의원의 모습이었다.
한번 나쁘게 보이면 뭘 해도 나쁘게 보이듯이 한번 좋게 보이기 시작하자 점점 하동문이 좋아졌다.
안에서의 하동문이야 알 바가 아니다.
일만 잘 하면 된다.
그것이 국민 조경석의 생각이었다.
큰 비리만 아니라면 봐줄 의향도 있었다.
살다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인 이상 털면 먼지가 나오는 법이고 살다 보면 치기 어린 시절, 철없던 시절이 있는 법이다.
사람을 죽인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
적어도 하동문은 지금까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라면 나라를 잘살게 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도저히 집에서 가만히 TV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잘못한 게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건 국민 조경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조경석은 사방을 둘러싼 카메라를 향해 보란 듯이 소리쳤다.
국회의원이 왜 불체포특권이라는 거창한 권한을 달고 있겠는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동등하며 서로 견제해야 한다.
신재현이라는 청년이 혜성처럼 나타나 행정부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건 과했다.
국민의 대표를 이렇게 함부로 여기다간 자칫 독재로 향할 수 있었다.
신재현이 타락하면 누가 막을 것인가?
지금부터 그가 정치에 손도 대지 못 하도록 꽉 눌러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으로 달려왔더니 하동문의 자택 앞에는 이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동지애가 느껴졌다.
“우리 하동문 의원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정치 공작이에요!”
“음모입니다! 차기 대선에 정권 교체를 못 하게 막으려는 음모라고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의 적은 동지다.
논리적이지 않은 무지성 지지자라도 쓸모는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옆에 서서 열심히 소리쳤다.
신재현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았을 때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였다.
‘젊은 혈기에 그럴 수 있지. 그러니까 옆에서 어른들이 말려야 되는 거라고. 정신을 차리게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단 말이지.’
그런데 신재현은 대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가 담 옆의 화단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지지자들도 억지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대문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경찰들이 막았지만 과하게 밀어내지는 않았다.
일반 국민과 실랑이하는 게 생방송으로 잡히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지지자 쪽에서 먼저 때리기 전에는 과한 충돌은 자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지자들도 훤히 볼 수 있었다.
땅 밑을 팔 때는 설마 했다.
청년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들려 나오고, 그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주르륵 떨어졌을 때는 절망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처음부터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온 건 아니었다.
신재현이 땅에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기 시작할 때부터 장내에는 기분 나쁜 침묵이 흘렀다.
족히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데도 그들에게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지자들마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손 위에서 또르르 굴러다니는 자그마한 보석들이 조명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멀리서 봐도 그 광택은 뚜렷하게 보였다.
“크으으아아아아!”
언어를 이루지 못한 짐승의 괴성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멍하니 있던 사람들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괴성을 지른 것은 단연 하동문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잠에서 깬 듯 소리쳤다.
국회의원 자택에서, 그것도 마당에서 다이아몬드라니.
특종을 잡았다는 희열만은 아니었다.
기자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흥분과 분노를 감추지 못 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여기에 떡하니 나오지 않았는가.
카메라는 하동문을 향했다.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충혈된 눈으로 잔뜩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당장 이쪽으로 오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였지만, 경찰이 양옆을 누르고 있었기에 제자리에서 발만 구를 뿐이었다.
대신에 뭔가를 말하려다가 억눌렀다.
최대한도로 이성을 동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고민 끝에 하동문은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모함이야! 뒤집어씌우려고 수색하는 척하면서 너희가 갖다 둔 거지!”
하동문으로서는 최선의 변명이었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국민의 몫이고.
기자들은 사진을 찍고, 즉석에서 노트북으로 속보를 써 올리거나 카메라를 향해 멘트를 하는 등,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하동문은 여전히 모함이라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고, 신재현은 검은 비닐 안을 살짝 들여다보더니 도로 덮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생방송으로 공개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는 동요하지 않으며 도로 벨벳 주머니 안에 다이아몬드를 집어넣었다.
“검사님, 감정이 필요하겠는데요.”
“전문가를 수배하겠습니다.”
수십억에 달하는 보석이 땅 밑에서 나왔음에도 신재현의 걸음걸이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나올 게 나왔다는 얼굴이었다.
경찰이나 수사관들은 잔뜩 흥분을 억누른 것이 겉으로도 보일 정도였는데 말이다.
신재현이 대문 밖의 땅을 밟았다.
그가 나오면 질타하기 위해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신재현을 필두로 한 일행이 하동문을 질질 끌고 승합차로 다가가는 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야, 이럴 리 없어. 의원님 말이 맞아! 너희가 몰래 심어놨지!”
“부당 수사다! 음모야!”
그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걸 받아들이기보단 음모론을 택했다.
경찰이 사람으로 된 장벽을 만들어 신재현에게 몰려드는 이들을 밀어낼 때, 하동문 쪽에는 약간의 틈이 생겼다.
이제는 멀거니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지지자들을 뒤에서 바라보던 조경석이 하동문에게로 다가갔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신재현뿐이었다.
“검사님! 하동문 의원 보호하세요!”
여기서 하동문이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신재현은 급히 발을 내딛다가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외침에 지현석이 번뜩 돌아보다가 아차 했다.
이미 조경석은 하동문의 코앞이었다.
“진정하고 물러나세요!”
지현석이 승합차에서 내려 달려오기 시작했을 때, 조경석은 손에 든 피켓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달그락!
혹시 유혈사태가 나는 것 아닌가 걱정했던 지현석과 신재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합판에 손으로 글씨를 쓴 조잡한 피켓에는 ‘과잉조사는 삼권분립 멸망의 시작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조경석은 피켓을 발로 밟아 부수었다.
와직, 하며 발밑에서 나뭇조각이 비산하는 소리가 났다.
지현석이 하동문을 가리며 섰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경석은 하동문에게 더 다가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딱 한마디를 남겼다.
“실망입니다.”
조경석은 하동문의 반응을 보지도 않고 곧바로 뒤를 돌았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골목 어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꽤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