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미답의 영역 (2)
간혹 그런 사람이 있다.
법 알기를 뭣같이 아는 사람.
자신은 특별하니 온갖 행패를 부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법 위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평소에도 이런 짓을 해서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공무원에게 화병을 던지면?
당연히 체포다.
“공무집행방해 및 특수폭행 혐의로 현행범 체포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뭐야? 뭐 하는 짓들이야!”
더군다나 그냥 위협한 것도 아니고 저 무거운 화병을 던지지 않았는가.
무거워서 멀리 날아가지 않은 것뿐이지 힘만 충분했으면 내게 정통으로 맞았을 것이다.
부인의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특수폭행이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서 사람에게 폭행이나 위협을 가한 경우에 해당되는데, 이 위험한 물건이란 칼이나 도끼 같은 흉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리모컨도 맞으면 아프고 화병은 더더욱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까.
경찰들이 기세등등하게 부인의 양팔을 붙잡고 수갑을 채웠다.
당연하게도 둘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거 놔! 이 못 배워 처먹은 놈들! 어딜 잡는 거야! 정권의 하수인 놈들! 이게 다 수작인 거 모를 줄 알아? 이 정권의 앞잡이들!”
“나뿐 아니라 부인까지 잡아가다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정의의 탈을 쓰고서 이런 허황된 짓거리를 하는 걸 국민도 언젠가 알게 될 거다! 보복 정치는 언젠가 똑같이 돌려받는다, 이놈들!”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이건 좀 의아하다.
보통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은 적어도 죄의식은 갖고 있다.
자기가 한 일이 법에 어긋났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런데 이 둘의 말을 들어보자면 내가 악당 같지 않은가.
자신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욕하는 건 당연하다지만 이건 정말 연기일까?
설마 연기겠지.
그래도 나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나는 못 가겠다며 버티는 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하동문 의원님, 사모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본인들은 잘못한 게 없고 현 정권이 두 분을 나락으로 떨구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저는 대통령의 수족이고 지금 이건 보복 정치라고?”
하동문과 부인은 나란히 입을 모아 소리쳤다.
“당연한 소리를!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이 또다시 정권을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독재자가 처음부터 독재자였을까? 이 나라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어! 다들 능력 있다고 칭송받은 대통령이 권력에 취해서 무슨 짓을 했는지! 국회의원을 잡아들이고 모든 권력기관을 발아래 뒀지. 오늘의 이 일은 대한민국의 수치로서 역사책에 기록될 거다!”
“우리 남편이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핍박하는 거야? 나랏일 하느라 온 평생을 바친 사람을?”
경찰과 수사관들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인지 진저리난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원래 일로 돌아갔다.
증거가 될 것을 찾아 집 구석구석을 수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돈 있고 권력 있다는 사람들을 꽤 상대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지금 이건 뭔가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그 유진환조차 본인이 뭘 하는지는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본인의 목적을 위해 법과 도덕을 후순위로 둔 것뿐이었지.
“사모님은 제게 화병을 던지셨잖습니까. 만약 누가 머리에 잘못 맞기라도 했다면 크게 다쳤을 겁니다.”
하동문이야 혐의를 부인하면 그만이니 현행범인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화병을 던진 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러나 부인은 내 예상보다 더 당당했다.
“사람 같지 않은 놈한테 던진 게 뭐 어때서? 원래 짐승은 때려야 자기 잘못을 아는 법이야. 사람의 말을 한다고 다 사람인가? 생각을 할 줄 모르면 맞아야지!”
“그러니까 그게 범죄잖아요.”
내가 꼬치꼬치 캐물어서인지 감히 수갑을 채웠다는 분노 때문인지, 부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그게 왜 범죄야! 주인한테 대드는 놈에게 훈계 좀 하겠다는데!”
“……누가 누구 주인인데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우리 그이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야!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세금으로 월급 주는 놈들이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논리 자체는 어긋나 있는데도 그 도출 과정은 아주 정연해서 어이가 없어졌다.
나는 반박하는 대신 이번엔 하동문에게 물었다.
“의원님. 다른 의원님들에게 뇌물 주고 거수기로 만든 것, 뇌물을 받은 것, 사조직을 만든 것, 소득을 고의로 누락해 비자금을 만들고 탈세한 것,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자금을 세탁한 것. 모두 중범죄 아닌가요?”
하동문은 씩씩거렸다.
“글쎄,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역시 인정하지는 않는군.
증거를 들이밀어도 아마 마지막까지 시치미를 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런 짓을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어? 나랏일 하는 데는 노력이 들어가는 법이니까.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너는 깨끗하다고 자신할 수 있나? 정의를 위해서라면 손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
저것은 내가 했던 고민과 닿아 있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밤중에 민치호의 집에 무작정 쳐들어가기도 했지.
그때 하동문의 말을 들었다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어쩌면 저놈과 같은 것 아닐까 하고.
그러나 고민은 그때 다 끝냈다.
지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예. 저는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그리고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 저는 지금 하동문 의원님의 불법 행위를 말하는 겁니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지금 내가 아는 건 부당한 체포, 조사단의 권한 남용 이 둘뿐인데.”
나는 말을 섞기를 포기했다.
검경이 합동으로 증거를 찾으려고 집 안을 뒤집는 동안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기다렸다.
하동문과 부인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거실 한쪽에 서 있으면서도 연신 호통을 쳐댔다.
양옆에서 둘을 붙잡고 있는 경찰들이 힘들어 보일 지경이었다.
관세청의 팀장은 집안 곳곳을 다니며 값나가는 물건에 사진을 찍고 있고, 노동부 팀장은 이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를 구슬리고 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자 지현석이 현장 지휘를 하다가 다가왔다.
“대화를 해볼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저도 저런 사람은 많이 봤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연기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진짜 자기가 아무 잘못이 없는 줄 알고 있어요. 저 사람도 사법고시를 본 변호사 출신 아닙니까? 법조인이면 누구보다 법을 잘 알잖아요.”
“음, 사람은 변질됩니다.”
“권력을 가지면 다 이렇게 변하는 걸까요.”
“변하는 게 아니고 변질되는 겁니다. 제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지현석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신재현 씨도 겪어봤죠? 기자든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말 한번 나눠보겠다고 들러붙지 않습니까. 곁에 아예 사람을 안 둘 수는 없는 일이니 나름 고르고 골라서 사람을 쓰게 되겠죠. 그런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칭송을 합니다.”
“아부요?”
“아부나 아첨이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더라도 칭송이 돼요. 당장 신재현 씨만 해도 그렇잖아요. 신재현 씨가 한 일을 사실적으로 늘어놓기만 해도 칭찬이 되죠.”
나는 질색과 부끄러움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 지현석을 보았다.
“사람이 질책을 싫어하고 칭찬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문제는 국회의원쯤의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주위에서는 절대 쓴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굳이 듣기 싫은 얘길 해서 눈총 받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주위에서 떠받들어 주면 사람이 변질된다 이거군요.”
“네. 실수를 해도 맞다고 해주고 잘못을 해도 ‘상황이 나빴다, 그놈이 나빴다’고 옹호해 줍니다. 그렇게 몇 년만 지나도 사람이 어떻게 될지 짐작이 가시죠?”
“본인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겠네요.”
“네. 자기 합리화된 괴물의 완성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입맛이 썼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컴퓨터와 핸드폰, 그리고 수첩 등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이 하나둘 들려 나왔다.
사진을 찍고 압수품 목록을 작성하고 나서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뒤지는 곳도 다양했다.
우리가 보통 세무조사를 하러 현장에 나가면 전자기기와 종이 자료 등을 중점으로 뒤진다.
징세하러 나갈 때는 값나가는 물건이 목적이므로 변기나 천장, 베갯잇이나 붓통 같은 곳도 꼼꼼히 뒤진다.
지금 하는 수색은 후자에 가까웠다.
우리가 찾는 것은 증거였다.
유진환과의 관계, 유진환이 해온 일들을 하동문이 시켰다는 증거.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지시했다는 증거들 말이다.
그것은 핸드폰 통화기록이 될 수도 있고, 보고 메일이 될 수도 있다.
페이퍼 컴퍼니와 차명 계좌 목록이 어디 책 사이에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보험이자 약점으로 갖고 있는 뇌물 명단이 USB에 저장되어 어디 구석지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검경은 거의 청소를 하듯이 집 안을 샅샅이 뒤집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나도 지현석과 함께 집 한 바퀴를 돌았다.
당초의 목적 때문이다.
내가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굳이 따라온 이유는 하나였다.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
사람이나 재무제표, 신고서 같은 세무 자료를 보면 명확한 숫자가 떠오르고, 세무회계의 기초가 되는 원장이나 원천징수영수증 같은 기반 자료를 보면 지직거리며 일그러진 숫자가 떠오른다.
그걸 이용하면 이런 것도 찾을 수 있었다.
“여기도 있네요.”
나는 상패 받침대 아래에 테이프로 붙어 있던 USB 하나를 찾아냈다.
“오, 부단장님도 잘 찾으시네요. 역시 세무조사 짬이 있으시구나.”
“체납징세과 있을 때 배웠습니다.”
단편적인 정보뿐인지 USB에서는 자릿수만 보였다.
하동문의 탈세액과 다른 걸로 봐서는 그의 관련자 중 누군가의 자료가 분명했다.
“수색 끝났습니다.”
한차례 뒤엎고 나자 검찰 측 수사관이 보고했다.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밖의 기자들이 이 시간을 못 기다려서 돌아갔을 리는 없고, 더 늘어났겠군.
나는 돌아갈 길을 걱정하며 앞장섰다.
아까보다 많은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익숙하지 않은 수사관들을 방패처럼 세우는 것보단 내가 먼저 나가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그게 부단장이 할 일이다.
외부의 관심을 감당하는 것.
그래도 오늘은 별일 없을 것이다.
아마 다들 수갑 찬 하동문을 찍느라 바쁘지 않을까.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담 위로 튀어나온 카메라 수십 대가 보였다.
촬영용 사다리와 받침대 같은 장비까지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들어가기 전과 비교해서 바뀐 풍경이 하나 더 있었다.
[신재현 사퇴하라]
[과잉조사 정치개입 인권침해 부실수사]
[국회탄압 중지하라]
하동문의 열혈 지지자들 십여 명이 몰려와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왔다!”
“이 배은망덕한 새끼야! 열심히 일하라고 지지했더니 죄 없는 하동문 의원님 탄압에 앞장서다니, 이런 쌍놈의 새끼야!”
내가 마당에 나타나자마자 욕설이 날아들었다.
지현석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내 앞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다른 수사관들도 내 주위를 둘러싸며 호위망을 구성했다.
“괜찮습니다.”
내가 사양했지만 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열혈 지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의원이 잘못됐다는 걸 믿지 않으려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저들의 위험성을 얕보는 건 아니다.
다만 여기서 뒤로 숨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차라리 몇 대 얻어맞더라도 앞으로 나서야 했다.
내 감이 그랬다.
“몇 년간 믿어온 국회의원과 풋내기 공무원, 저분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전자겠죠. 그러니 보여줘야 합니다. 하동문은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놈이 아니라는 걸.”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하동문 자택의 비서와 운전기사, 그리고 경호원들이 마당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건너편, 대문 밖에서는 눈부신 셔터 빛과 지지자들이 보였다.
들어올 때도 호랑이 굴로 향하는 느낌이었는데 나갈 때는 더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강 예상이 가다 보니 발길이 무거웠다.
나는 오른발을 질질 끌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지현석과 수사관, 그리고 경찰들은 우려 섞인 눈빛을 보냈지만 나를 막지는 않았다.
그들은 순례자의 행렬처럼 엄숙하게 내 뒤를 따랐다.
사실 이렇게 침착한 분위기가 된 것은 나 때문이기도 했다.
맨 앞에 있는 내가 천천히 걷고 있으니까.
“이 모든 게 모함입니다! 제 억울함을 밝혀주십시오!”
카메라와 지지자들이 가까워지자 뒤에서 하동문의 고함이 들려왔다.
대문 바로 앞에서 지지자들이 든 피켓이 흉기처럼 보였다.
어느 정도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겠지.
그렇게 각오한 순간이었다.
“음?”
나는 대문 바로 앞에서 멈추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동문의 자택 마당에는 담을 따라 정원수와 꽃이 심어져 있었는데, 그중 어느 한 곳에서 불쾌한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야?”
“왜 멈춰?”
“나와라, 이놈아!”
대문에서 한 발짝을 남기고 멈춘 나를 향해 기자들의 웅성거림과 지지자의 욕설이 쏟아졌다.
나는 눈 나쁜 사람이 초점을 맞추듯 눈을 가늘게 뜨고 화단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지현석을 불렀다.
“검사님, 마당도 다 뒤졌죠?”
“예. 탐침과 금속탐지기로 확인했습니다.”
탐침이라면 기다란 쇠꼬챙이 같은 것을 말한다.
땅에 뭔가가 묻혀 있다면 탐침 끝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다.
뿌리 바로 밑에 묻어놨다면 걸리지 않았을 법하군.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화단 쪽을 발로 비볐다.
그리고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에서 손으로 그 밑을 더듬었다.
지현석이 뒤를 향해 손짓했고, 경찰 하나가 삽을 들고 달려왔다.
“부단장님, 어디를 팔까요?”
“이 수국 밑이요.”
경찰이 땅에 삽을 꽂았다.
바로 머리 위에서 태양처럼 밝은 조명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선명한 영상을 담기 위해 가져온 조명의 방향을 이쪽으로 튼 것이다.
똑바로 쳐다보기엔 눈부셔서 싫어했는데 지금은 고마웠다.
정수리가 뜨거운 것만 빼면.
경찰이 흙을 다섯 번 정도 파냈을 즈음, 그가 삽질을 멈추고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뽑힌 수국이 바닥에 흉하게 나뒹굴고, 뒤에서 하동문의 괴물 같은 고함이 들렸다.
물론 우리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 부단장님…….”
땅을 파던 경찰이 긴장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수십 쌍의 눈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집중도를 표시하는 기계가 있다면 지금쯤 여긴 블랙홀처럼 시커멓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라도 된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비닐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우오오!”
“미친, 뭐야!”
“찍어! 줌 당겨!!!”
담 너머가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라이언킹의 유명 포즈처럼 비닐로 감싸인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검은 비닐이 한 겹씩 벗겨지고, 가장 먼저 나온 벨벳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주머니 끝을 내 손바닥으로 향하자 투명하게 반짝이는 귀금속이 우수수 쏟아졌다.
“다이아다!”
“X발, 다이아몬드야!”
금광에서 광맥을 발견한 광부와도 같은 외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