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미답의 영역 (1)
지금껏 국회의원의 자택이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자택이 아니라 사무실이나 별장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본질은 국회의원에게 있었으니까.
단순히 물리적으로 취재나 접근이 힘들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다선 의원이란 이 나라 권력의 최상층인 것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체포조차 할 수 없는 면책특권은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었고, 그들의 권력은 수사관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물론 처음 불체포특권의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의 대표를 부당하게 압박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커지고 커져 성역처럼 변해 버렸지만.
“와…… 진짜 들어가네.”
때문에 조사단원들이 줄줄이 하동문의 자택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사람들은 저절로 감탄사를 흘렸다.
기자들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TV 앞에 앉아 있는 사람, 핸드폰으로 보는 사람, 인터넷으로 실황을 보는 사람 등.
이들은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송 매체가 다양해진 지금에 와서 시청률은 그다지 의미가 없긴 하지만, 대낮인데도 실시간 접속 인원은 계속 최고치를 갱신했다.
거의 대한민국 전체가 지금 이 순간을 주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모두 조사단 편인 것은 아니었다.
하동문은 명실상부 30%가 넘는 지지율을 가진 대권주자였다.
그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조사단이 뭔가 착각한 거야.
-실수지! 하동문이 어떤 사람인데!
-우리 하동문이 그럴 리가 없어!
하동문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조사단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어? 막는데?”
놀랍게도 현관을 열고 맞이하러 나온 것은 하동문이나 그의 가족이 아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나와 사람으로 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다.
공무원들이야 몇 번 겪어본 일이긴 했다.
재벌이든 국회든, 본인을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비서나 경호원들이 앞을 막아서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영장을 갖고 있는데도 막는 건 의외였지만.
따라서 당황한 것은 오히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일반인이었다.
“막아도 되나? 영장까지 있는데?”
“나 이거 영화에서 봤어.”
“이걸 막는다고? 그냥 경찰서든 어디든 출두하고 조사받는 게 낫지 않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한 번 잡혀가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뒤집어씌우는 독재 국가도 아니고.
모두가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검찰, 경찰 공무원들이 움직였다.
싸움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현관문 앞을 막아선 남자들을 힘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자자, 비켜주세요.”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물러나세요.”
“영장 있습니다, 나오셔야 해요!”
영장을 들먹이자 남자들은 막는 시늉만 하고 옆으로 밀려났다.
본인들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었나 보다.
수사관들이 힘으로 밀어내 길을 트자 그 사이로 두 명의 부단장이 걸었다.
신재현이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천천히 걷자, 지현석은 일부러 그의 보조를 맞춰 걸었다.
수사관 하나가 현관문에 손을 댔다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잠긴 것이다.
“따죠.”
지현석의 명령은 간단했다.
공무원들은 더 이상 열어달라고 부탁하거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손에는 공구가 들려 있었다.
-콰직!
현관문은 힘없이 열렸다.
가장 먼저 신재현과 지현석이 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경찰들도 진입했다.
기자들이 함께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서 영상은 여기까지였다.
화면은 자택의 바깥만을 찍었다.
이제는 조사단이 하동문을 데리고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사실 조사단에게 있어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하동문 씨! 계십니까!”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경찰과 수사관들이 흩어졌다.
그들은 현관 입구에서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하동문의 집은 넓었다.
내가 천천히 주변 풍경을 감상하듯 집 안을 둘러보는 동안 그들은 구석구석을 훑었다.
화장실, 주방, 빈 방들에 이르기까지.
옷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세탁기를 열어보기도 했다.
설마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작자가 그런 곳에 숨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범죄자 수색하듯 집 안을 뒤집고 있었다.
그들이 집 안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나와 지현석은 거실로 향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림 같은 거실에 두 명의 여성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한 명은 가정부인지 우리를 보며 겁에 질린 얼굴을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오히려 새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하동문과 비슷한 나이대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비싸 보이는 목걸이와 귀걸이까지 한 중년 여성이었다.
설마 집에서도 항상 저렇게 완벽한 모습으로 있나?
아니면 우리가 올 걸 알고 준비하고 기다린 건가.
후자일 확률도 높아 보였다.
여자에게 있어서 치장은 갑옷이기도 하니까.
“이게 무슨 예의 없는 짓인가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나왔다, 단골 레퍼토리.
나는 항상 궁금했다.
저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단 질러보는 건지.
지현석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사모님, 저희는 영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 어디 계신지 알려주시면 이렇게 어수선할 일도 없을 겁니다. 하동문 의원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이는 국회의원이에요. 국민의 대표라고요. 지금 이렇게 흙발로 들어와서 체포해 간다는 게 가당키나 하나요? 그이를 데려가고 싶었으면 예의를 갖췄어야죠!”
“어떤 예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먼저 소환장을 보내고 그이가 출두하는 걸 기다렸어야죠! 그 정도 예우는 갖춰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그 출석을 하염없이 기다리라는 거구나.
우리가 얼마나 바쁜지, 할 일이 많은지는 상관없겠지.
한 명의 출석을 기다리느라 모든 업무가 정지된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그녀는 우리가 먼저 쳐들어온 게 못마땅한 듯했다.
“저희는 마땅한 절차를 따라 공무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의원님은 어디 계십니까? 혹시 도망치신 거라면 수배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감히! 국회의원을 범죄자처럼 대하다니!”
그녀가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일을 시끄럽게 만들기 싫어서 일부러 지현석이 조곤조곤 설명하는 건 알겠지만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머리 위에도 10억쯤 되는 숫자가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013,691,257]
숫자를 다루다 보면 큰 단위의 금액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된다.
일십백천만…… 이렇게 셀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억 단위까지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눈에 십억 단위도 파악할 수 있다.
전부 탈세범분들 덕분이다.
“사모님, 범죄자처럼 대하는 게 아니고 범죄자 맞습니다.”
“뭐예요?”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오랫동안 사람을 부려본 눈이었다.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사람은 주눅 들게 마련이다.
“법원에서 영장을 괜히 내줬겠습니까. 저희가 아는 것만 해도 뇌물공여, 뇌물수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탈세 등등 다양합니다. 다른 범죄는 저도 잘 모르니 설명이 어렵지만 탈세 한 가지만 놓고 봐도 조세범 처벌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탈루한 세금도 아주 다양해요. 소득세, 증여세, 상속세, 법인세…… 그것도 전부 부당한 방법으로 탈세하셨죠. 아주 범죄 종합 선물세트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잘났어? 국민의 지지 좀 얻고 요즘 잘나간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그 지지! 그이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얻어왔어! 국민이라는 게 얼마나 갈대 같은지 알아? 금방 타오르고 금방 식고. 당신 같은 건 금세 잊힐 거야. 본분을 항상 기억하라고. 어디 딴따라들처럼 관심 좀 받고 우쭐하나 본데, 그래 봤자 당신은 공무원이야! 시키면 네, 하고 넙죽 엎드리는 공무원! 하다못해 청장도 그이 앞에서는 고개를 못 드는데 어딜 6급 공무원이 바락바락 대들어!”
나는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심정으로 지켜봤고, 지현석은 이런 일에 익숙해서 ‘너는 떠들어라’ 하고 듣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른 공무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뒤지던 손길을 멈추고 하나같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다 비슷했다.
어이없음, 분노,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나는 심드렁하게 다시 고개를 돌려 중년 여성을 보았다.
그녀는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건 진심이 맞나 보다.
어떻게 항상 이런 식이지?
“저희 청장님과 제가 고개를 숙였던 건 국민의 대표이신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죠. 범죄자에게 어떤 대우를 바라십니까?”
“아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쯤에서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사모님의 따귀가 날아오든 하동문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든, 둘 중 하나는 올 때가 됐다.
하동문이 정말 도망쳤을 것 같지는 않고, 분명 이 집 안에 처박혀 있을 것 같았다.
그제부터 잠복해 있던 경찰이 말한 것이니 틀림없다.
아마 어디 서재 같은 곳에 틀어박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2층 어딘가에서 웅웅 울리는 고함이 들려왔다.
“찾았습니다! 문 뜯겠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나 보다.
하동문의 부인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공문을 가진 공무원은 강하다.
영장을 든 공무원은 무적이다.
나와 지현석은 천천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중간중간에 경찰과 수사관들이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뒤질 필요가 없어진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화끈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2층 복도에 섰다.
아래층에서 부인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다가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것이 보였다.
“손 떼! 감히 어딜 만져!”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사모님, 너무 안달 내실 것 없습니다. 사모님께도 곧 조사 안내문이 갈 겁니다. 그때는 꼭 사모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예의를 갖춰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야? 지금 약 올려?”
약 올리는 거 맞다.
나는 길게 뻗은 복도로 한 발 내디뎠다.
저 끄트머리에 양쪽으로 열리는 커다란 나무 문이 있었는데 이미 문고리가 부서진 후였다.
안에서 남자의 고함과 함께 양팔이 잡힌 하동문이 질질 끌려나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는 수갑을 찬 채였다.
“이거 놔! 이놈들! 국민 대표를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것 같나!”
앞뒤로 남녀의 괴성이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그것을 배경음악 삼아 복도를 걸었다.
절차가 있으니 일단 그의 눈앞에 영장을 들이밀었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누구야, 어떤 판사가 영장을 쳤어?”
법조계 선배인 그가 보기에 이 종이는 후배의 반항으로 보였나 보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붉으락푸르락했다.
“지금 날 망신 주기로 작정한 거야? 오호라, 네가 알량한 지지율만 믿고 국회를 장악할 생각이구나! 중견 의원들을 다 밀어내고 네가 정치를 하려고! 이런다고 네가 권력을 쥘 수 있을 것 같아?”
상상도 못 한 방향인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괜찮은 발상이네요. 지금이라면 정말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조사단 멤버들은 다들 농담으로 알아들었으나 하동문만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럴 줄 알았다! 여태껏 공무원이 국회의원을 건드린 적은 없었다! 네가 이러고도 헌법과 국민이 두렵지 않느냐! 부끄러움을 알아라!”
순간 사극 촬영 현장에 온 줄 알았다.
저런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는 것도 능력 아닐까?
사방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고 근엄한 표정을 만들었다.
곧 밖에 나가야 하는데 비웃는 얼굴이 생방송으로 잡힐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 자료화면으로 두고두고 쓰일 텐데.
“의원님, 제가 이 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를 보고서 인내심을 발휘해 최대한 정중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탈세액이 꽤 커서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한 대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의원님, 법대로 하시면 됩니다. 법 잘 아시잖아요.”
“뭐야?”
항의는 받지 않겠다.
그 표시로 나는 등을 홱 돌렸다.
내가 걸음이 느린데도 하동문은 더 느릿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며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양팔을 잡은 수사관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1층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수갑이라니! 나라를 위해 평생 헌신해 온 사람한테 수갑이라니! 조사할 게 있으면 출석 요구서를 보내란 말이야! 이러니까 너희들이 못 배워먹었다는 거라고!”
부인의 손에는 커다란 화병이 하나 들려 있었다.
도자기로 된 것이다.
가격은 모르겠지만 국회의원 집 거실을 장식하고 있던 것이니 싼 물건은 아닐 것이다.
설마, 싶었는데 하동문의 부인은 가차 없이 화병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화병은 멀리 가지도 못했다.
우리 발 근처에도 오지 못한 채 대리석 바닥에 흠집만 내고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다들 말없이 이 어처구니없는 현장을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부인을 가리켰다.
“한 명만 데려가면 되는데 두 분 나란히 가게 생겼네요. 체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