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조사단의 중심이라는 것 (2)
사무실 문이 열렸을 때 나는 반갑게 손을 들어 올렸다.
지현석에게 할 말이 많았다.
좋은 소식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쁜 소식도 마찬가지다.
허세 조금 보태서 죽을 뻔했다고 경험담을 늘어놓을 생각이었다.
평생 술안주로 삼아도 될 만한 경험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던 아까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때 썰을 풀어야 한다.
“검사님, 혹시 얘기 들으셨어요? 유진환 그 미친놈이 불을 지르고 죽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제가 밀쳐냈거든요. 사람 하나 구했다니까요?”
지현석은 미간을 모으고서 팔짱을 꼈다.
나는 신나서 손에 든 파일을 펄럭여 보였다.
“유진환이 준 겁니다. 진짜 별거 다 들어 있어요. 일단 하동문 구속되고 나면 이거 쭉 정리하고 명단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일이 몇 달은 줄었다구요! 여야 안 가리고 한 50명 정도 들어 있습니다!”
나는 반쯤 흥분한 상태였다.
총선 전에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마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유진환이 이렇게까지 우릴 도와주다니.
아까 말했듯 아주 유용하게 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현석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살벌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뛰어넘습니까? 불이 만만해 보여요?”
나는 지현석을 향해 파일철을 들어 올리다 말고 눈을 깜빡였다.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습니다! 발목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지 불이라도 옮겨붙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습니까?”
이건 나도 할 말이 없다.
“아…… 저도 뛰고 보니까 생각보다 뜨겁더라구요. 겉으로 보기에는 불이 굉장히 낮았는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제가 생방송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대체 무슨 생각이었습니까?”
“그래도 그때는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그놈이 뭐가 예쁘다고 살려줍니까.”
“예쁘든 안 예쁘든 일단 살려야죠. 사람인데. 그리고 진짜 방법이 없었어요.”
내가 변명하듯 말하자 지현석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잔소리만으로 끝내는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최선이니까요. 아무도 안 죽었고 여론도 좋은 바람이 불 것 같고. 아니, 그래도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조금 누그러졌다 싶었는데 지현석이 도로 감정이 격해졌다.
생각해 보니 또 열불 나는 모양이다.
“근데 이건 결과가 좋아서 다행인 거지! 본인이 위험할 거란 생각을 먼저 했어야 하는 겁니다! 저놈이 죽어나가는 건 당연히 우리에게 악재지만 신재현 씨가 몸 바쳐 막을 일은 아니었다고요. 조금 여론이 나빠지더라도 대응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야 수습 자체는 가능하겠지.
그러나 지현석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는 그를 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구한 것이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관뒀다.
직감으로 느꼈다.
지현석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나는 웃으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아까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벗고 호스로 물을 끼얹었는데 점점 색이 진해지고 있었다.
“오시면 자랑하려고 했는데요. 상대가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사람 하나 살린 훈장이에요.”
“이 미친 사람아! 자랑은 그만하고 병원 가라고! 흉터 남는다니까요! 이거 봐, 물집 올라오잖아!”
“어? 물집이요?”
나는 화들짝 놀라 내 다리를 보았다.
아까는 안 이랬는데.
노동부 팀장이 다가오더니 나를 일으켰다.
“아이고, 진짜 우리 아들이었으면 바로 등짝 한 대 때렸을 겁니다. 부단장님이라서 봐드린 거예요. 얼른 갑시다.”
지현석도 냅다 거들었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신재현 씨는 조사단의 중심이자 핵이에요. 지금 신재현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민 청장님하고 우리 지검장님한테 얼마나 깨질 것 같습니까? 이 조사단은 신재현 씨만 믿고 만들어진 조직이라고요!”
“어…… 검사님, 그렇게까지는 아닙니다.”
내가 기겁한 얼굴로 만류하자 지현석이 정색했다.
“당장 신재현 씨가 조사에서 빠져 봐요. 국회의원들이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그 사람들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아요? 검사한테 ‘야,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신재현 씨라고요. 본인 스스로 자각을 좀 가지시란 말입니다.”
나는 질색했다.
“검사님, 무서운데요. 다른 건 다 인정하는데 제가 조사단 중심이란 얘기는 좀 과장 아닙니까.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한데…….”
“객관적으로 봅시다. 신재현 씨가 빠졌다 치고, 누가 가서 국회의원하고 맞장을 뜰 수 있을까요? 한 명 데려다 놓으시면 장기 휴가도 승낙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가장 먼저 채유림과 권현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두겠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시라니까요?”
“쪽팔리니까 그만 얘기하자는 뜻입니다. 그냥 조용히 병원 가겠습니다.”
나는 절뚝거리며 일어섰다.
아까 주차장에서 기자가 감아준 붕대를 대충 발목에 대고서 바지를 내렸다.
쓰라린 다리를 붙잡고 나가려던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제일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바로 하동문 말이다.
“저 빼고 먼저 하동문 의원한테 가시면 안 돼요! 금방 올 거니까 같이 가야 돼요!”
“네네. 갑시다. 부단장님은 일단 갔다 와서 얘기해요.”
어느새 다가온 두 팀장이 내 양팔을 붙잡고 사무실 밖으로 이끌었다.
숨겨진 걸 찾는 데는 내 눈이 최고다.
잔챙이들이라면 몰라도 하동문이나 차주혁 같은 거물급 의원들의 조사 때는 내가 직접 갈 생각이었다.
“네. 기다릴 테니까 얼른 가기나 하세요! 물집 터지면 답 없다고!”
지현석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팀장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
기자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동문의 자택, 국회의사당, 의원 사무실, 당사.
하동문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조사단 서울 본부 빌딩 앞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은 이미 기자들 사이에도 쫙 퍼졌다.
이들은 하동문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하동문이 구속되는 장면을 잡기 위해 그가 있을 법한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다.
개중에는 조사단으로 갔어야 한다며 통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좋은 장면을 놓쳤잖아! 거길 갔어야 해!”
“종이 불태우고 난리친 그 사람, 대체 정체가 뭐예요? 국회의원은 아닌 것 같던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인터뷰 땄을 텐데……!”
“거기 기자들 많이 있었잖아요. 생방송도 돌아가던데. 그럼 누구 하나는 인터뷰 따지 않았을까요?”
기자들은 안달이 나 있었다.
이미 특종 하나를 놓쳤다.
아니, 하나가 아니다.
누군지 모를 남자가 서류를 불태우고 스스로의 몸에도 불을 붙이려고 했던 것만 해도 이미 기삿거리 하나는 나온다.
기자들끼리 네트워크를 돌려보면 남자의 정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신재현이 남자를 구하고 다치기까지 했다.
이것만 해도 족히 일주일은 기사를 쓰고도 남는데 더 중요한 것이 남았다.
서류의 정체 말이다.
“이미 놓쳤어요, 어쩔 수 없죠. 그러니 이제 하동문 구속 장면을 찍어야 합니다. 이건 무조건 영상 따야 돼요.”
주차장에 가 있는 기자들은 사실 약은 놈들이었다.
신재현이 조사단 사무실에 가 있는 이상, 그의 뒤를 쫓으면 반드시 하동문을 잡게 되니까.
다만 그들은 신재현보다 늦게 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금 신재현은 병원에 가지 않았는가.
지금 하동문 사무실이나 자택 같은 곳에 모여 있는 기자들은 다른 걸 노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재현을 비롯한 조사단 멤버들이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가고, 거기서 하동문을 끌고 나오는 그 모든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가장 처음 잡혀가는 현직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유력한 대권주자가.
어쩌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는 현장을 찍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동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없어요?”
정보 공유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당사 앞에 모여 있던 기자들은 머리를 맞댔다.
“조사단 인원들이 출발해서 어느 도로를 타는지 알면 대충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겠어요?”
“그때는 늦잖아요.”
“하, 미리 정보를 알았으면 어젯밤부터 의원 뒤를 따라다녔을 텐데.”
“미쳤다고 우리한테 얘기를 흘렸겠어요?”
기자들은 고민하다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바로 국세청 전문 소식통으로 통하는 한 기자였다.
“맞아, 나학진!”
“나 기자! 혹시 나 기자 여기 있어요?”
“나 기자 찾아봐! 나 기자 본 사람 없어?”
“여긴 없어요!”
기자들은 서둘러 연락망을 가동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서 나학진의 목격 정보가 들어왔다.
수배 전단이라도 뿌린 것 같은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나 기자, 지금 자택 앞에 있대요!”
“거기다!”
나학진은 이들에게 있어서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기자들은 미리 알아둔 하동문의 자택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나학진을 찾으며 돌린 연락망 때문인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기자들도 하동문의 위치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하동문의 자택 앞으로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십 명이었던 것이 어느새 백 명을 훌쩍 넘어섰다.
권력의 최고층에 위치하던 사람의 몰락을 찍기 위한 행렬이었다.
예전에 문체부 장관 자택 앞에 모였던 것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기자들은 생방송을 체크했다.
신문사든 인터넷 뉴스든 이들은 한 곳에만 기자를 파견하지 않았다.
신재현을 졸졸 쫓아다니는 기자들은 동료 기자에게 실시간 현황을 보냈다.
-신재현, 병원 도착.
-신재현, 화상 치료 중.
-신재현, 병원에서 출발.
“온대? 다쳤는데도 온다고?”
과연 현장 사진을 검색해 보니 신재현이 부축을 받으며 승합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뭐야, 나 같으면 산재 신청하고 병원에 드러눕겠다.”
“중요한 날이니까 부단장이 꼭 참석해야죠. 그림이 확 달라지는데.”
“아무리 그래도 낮에 그 대사건을 겪고 정신이 있겠어요? 매번 드는 생각인데 신재현은 당최 정체를 모르겠어요.”
정의감처럼 낯간지럽고 비현실적인 말이 또 있던가.
그러나 신재현에게는 그 말이 잘 어울렸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신재현이 온다는 소식에 하동문의 자택 앞은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다들 기대감으로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폭풍의 눈이자 파란의 중심.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눈은 신재현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초봄의 햇볕이 구름에 잠시 가려졌을 때였다.
돈깨나 나가 보이는 단독 주택들이 주르륵 늘어선 골목 어귀에 기다리던 승합차가 나타났다.
기자들은 약속한 것처럼 양옆으로 비켜섰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중앙을 비워둔 상태.
장내가 이렇게 정돈된 것은 쉽사리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기념비적인 순간을 혼란 없이 찍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당장에라도 튀어나가서 인터뷰를 따고 싶은 마음을 자제할 정도로 말이다.
“조사단이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하동문 의원의 사택 앞입니다. 현직 국회의원의 구속 영장 발부라는, 헌정 역사상 최대의 사건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1야당의 하동문 의원에 대한 영장은…… 아, 지금 조사단이 차에서 내리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셔터 불빛이 튀었다.
그런데 신재현이 내리자마자 기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하동문 자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린 그는 오른발을 절뚝이고 있었다.
언뜻 정장 바지 밑으로 붕대도 보였다.
거기다 땅에 쓸린 오른손에도 하얀 붕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기자들은 조용히 환호했다.
‘그림 최고다!’
이들은 아직 유진환의 정체를 몰랐지만, 그가 조사 대상인 국회의원 중 누군가와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생판 남을 살려주고, 그 사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하동문을 조사하러 직접 아픈 다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어떻게 봐도 쓸 거리가 넘쳤다.
검사와 수사관, 경찰까지 섞인 일행은 기자들이 터놓은 길을 통해 하동문 자택 앞에 섰다.
문체부 장관 때와 비슷한 광경이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강제권이 있다는 점이었다.
“하동문 씨, 댁에 계신 것 압니다. 문 열어주세요.”
집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이들은 서로 시선을 나눴다.
그리고 경찰 중 한 명이 뒤로 몇 발짝을 물러나더니 골목을 가로질렀다.
그는 익숙한 자세로 담을 뛰어넘었다.
굉장히 깔끔하고 가벼운 월담이었다.
시작부터 현장감 넘치는 모습에 기자들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먼저 들어간 경찰이 걸쇠를 풀자 대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대문 앞에 선 두 명의 부단장이 뒤로 돌았다.
“경찰분들은 하동문 의원을 모시고 나오면 됩니다. 검찰 측과 저희 국세청, 관세청은 바로 자택 수색 들어가겠습니다.”
조사단 소속의 공무원들이 우르르 자택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자들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았다.
감히 누구도 들어서지 못했던 성역이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