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80화 (380/500)

380화. 조사단의 중심이라는 것 (1)

“더 빨리 좀 밟아주세요.”

지현석은 운전석에 앉은 수사관을 재촉했다.

이미 일반 도로 제한 속도인 50㎞에 아슬아슬한 속도였다.

그러나 수사관은 군말 없이 액셀을 밟았다.

부우웅, 하는 엔진음과 함께 승합차에 탄 이들의 몸이 뒤로 쏠렸다.

“서초역 앞에서 너무 시간을 지체했어요.”

강남의 도로는 평일 대낮에도 막혔다.

중앙지검에서 출발해 고속터미널까지 시속 10㎞도 안 되는 속도로 기어왔다.

이제 겨우 반포대교를 접어들어 조금씩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에는 남은 시간이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래서는 늦다.

지현석의 마음은 다급했다.

“와,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승합차에는 검찰청에서 함께 대기 중이던 수사관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들은 바로 하동문을 잡으러 갈 예정이었다.

물론 출발하기 전에 하동문의 위치 파악은 해야 한다.

그래서 경찰 몇을 이미 보내두었다.

저택에 2명, 여의도에 2명, 사무실에 2명.

이것이 문제였을까.

지현석은 낮게 혀를 찼다.

서울 본부 사무실에 있으면 별 큰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미리 경찰관을 상주시킬 걸 그랬나?”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지현석 검사실의 수사관이 한탄하듯 대답했다.

사실 지현석의 실수나 방심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에게 테러할 놈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신재현인데.

주차장에는 기자들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고.

그런데 적은 항상 의표를 찔러온다.

이 경우에는 의표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현석에게는 당황스러웠다.

“분신자살 시도라니 이거 완전 미친놈이에요.”

지현석은 핸드폰이 부서질 듯 움켜쥐었다.

다른 수사관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죽는 방법은 많지만 그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게 바로 불타 죽는 거다.

때문에 분신자살은 시위 현장에서 가끔 보이곤 했다.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그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억울하길래 불타 죽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신문기사에서 분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유진환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지가 억울하긴 뭘 얼마나 억울해! 세상천지 억울한 사람 다 죽었겠네! 이거 허세입니다. 실제로 가능할 리가 없어요!”

수사관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은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신재현 부단장님이 잘 대처해 주셔야 할 텐데…….”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신재현의 안위를 위협하지 않았을 뿐 이것은 테러나 다름없었다.

왜 하필 오늘 유진환이 쳐들어와서 저 난리를 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뻔했다.

오늘은 그동안 조사단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신재현이 몇 번이고 말했듯 첫 성과가 중요하다.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될 것이고 이 기세를 몰아서 차주혁을 비롯한 다른 의원들도 쳐내야 한다.

어찌 보면 오늘이 첫 단추라고 할 수도 있다.

바로 앞에서 대치하는 신재현은 이 상황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조금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이거 지금 이슈 덮으려는 것 맞죠?”

“오늘 하동문 구속 뉴스는 물 건너갔네요. 잘못하면 과잉 수사 얘기도 나오겠는데요.”

검찰과 경찰에게 과잉 수사 의혹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엔 수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들은 유진환과 만난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면 여론은 상대 쪽으로 뒤집힐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장의 대응이 중요했다.

분신을 막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경찰도 아니고 국세청 공무원이 저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당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지현석은 머릿속에서 최선을 지웠다.

그다음은 차선이다.

“구조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상황을 수습하면서 생방송을 끊으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생방송이었다.

보통 방송에서는 ‘자살’이라는 말도 함부로 쓰지 않고 ‘극단적 선택’이라고 순화해서 쓰는데, 생방송으로 현장이 방영된다면 국민적 충격과 후폭풍이 얼마나 거셀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현명한 기자라면 이쯤에서 방송을 끊었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당황했는지 생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면 시청률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고.

“구급차 불러두세요. 필요할 것 같으니까.”

지현석은 난감한 뒷수습을 예감하며 수사관에게 지시했다.

“안 불러도 되겠는데요?”

“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현석은 얼른 방송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요한 부분은 놓쳤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왜냐하면 신재현과 유진환, 둘이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수사관 하나가 박수를 쳤다.

만약 저 자리에 경찰이나 이들이 있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막는 게 제일 좋으니까.

그래도 신재현이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다.

다른 기자들이 당황하며 보고만 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놀라운 장면을 보면 순간 몸이 굳는다.

지금 영상 안에서도 두 명만 움직이고 있었다.

약 2초의 시간을 두고 기자들이 우르르 튀어나갔다.

뒤이어서 조사단 소속의 팀장들이 내려와 불을 끄는 걸 보고, 지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행이네요. 최선의 방향으로 일단락됐어요.”

사실, 이 짧은 시간 동안 지현석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상황이 수십 가지 스치고 지나갔다.

유진환의 죽음으로 묻힐 수많은 사건들, 그리고 그가 하동문의 심복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동정표를 얻는 것 말이다.

여론이 조사단에서 등을 돌리고 조사단의 권한이 위축되어, 결국 국회의원은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 말이다.

지현석은 그동안 어중간하게 조사가 마무리된 특검을 많이 보아 왔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오늘 일도 어찌 보면 조사단의 위기일 수도 있었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신재현을 걱정하는 것이 보였다.

지현석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신재현이 서울지방국세청에 있을 적, 그 앞에 진을 친 기자들에게 인사도 하며 나름 웃는 낯으로 지냈던 것은 지현석도 알고 있었다.

보통은 귀찮아서 기자들을 따돌리거나 무시하게 마련인데, 그때 인사했던 것이 지금 이렇게 돌아온 것이다.

지현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신재현과 유진환의 대화를 숨죽여 들었다.

-조사단을 부순답시고 하는 짓거리가…….

-그동안 모아온 불법과 비리의 증거…….

순간 지현석은 손가락을 튕겼다.

“이거 되겠는데? 이야, 이걸 본인이 알고 말하는 거야? 아니면 모르고 그냥 나오는 대로 하는 거야?”

조사단 뒤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 사람들이야 신재현의 말을 탄식하며 들을 뿐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사단을 부수려고 했다, 이것만 들어도 흥미가 확 샘솟지 않을까?

사람들은 음모론을 재밌어한다.

국회의원과 조사단 사이에 뒤에서 무언가 사건이 있었다는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이건 이용하기에 따라서 하동문 쪽의 여론을 한 방에 없앨 수 있다.

동정론과 ‘그래도 믿는다’는 열정적인 지지층마저 부술 수 있지 않을까.

“원래도 그건 써먹으려고 하셨던 거 아닌가요? 조사단이 부당한 외압 받았던 건 말입니다.”

수사관 하나가 물었다.

“물론이죠. 재료가 있는데요. 문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외압을 받았다는 걸 언제 어떻게 밝혀야 가장 효과가 좋을까. 그건 신재현 씨가 판단하기로 했거든요.”

신재현이 말하길, 조사단이 외압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패라고 했다.

지현석은 신재현의 정치적 판단을 믿는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특히 국회에서 하동문 라인의 이탈을 이끌어낸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함께 지산을 찾아갔을 때, 바로 옆에서 신재현이 지산 부회장과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깨달았다.

이건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미친놈이라고.

아니, 이제 와서 재능을 개화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기업 부회장에게 뒤지지 않는 머리 회전과 감각, 눈치를 지녔다.

가끔은 신재현이 국세청이 아니라 정치권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본인은 엄청나게 싫어하겠지만.

그래서 정치적 판단은 신재현에게 모두 맡겼다.

‘나한테 맡긴다 치면 적당한 때를 봐서 정보를 공개하겠지만 그게 최적의 타이밍인지 확신은 없어. 하지만 신재현이라면 적절한 때에 이 패를 꺼내서 쓸 테지.’

그런 의미에서 지현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생방송에서 분신하려는 사람과의 대화가 저렇게나 의미심장하다.

이게 바로 최적의 타이밍 아닐까?

“와, 이게 그건가? 패를 낼 때가 마땅치 않으면 스스로 타이밍을 만들어 낸다고?”

의도했다면 정말 미친놈이고, 의도하지 않고도 저런 영상을 뽑아낸 거라면 그것도 미친놈이다.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하는 가운데 지현석은 생방송을 끄고 다른 영상을 틀었다.

이제 볼 것은 봤고.

대체 어떻게 유진환을 막았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아까 한눈팔다 놓친 장면이었지만 검색하니 금방 나왔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반응이 뜨거웠다.

영상을 누르자 신재현이 계단에서 냅다 달려 내려와 불붙은 서류 더미를 뛰어넘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지현석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이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건가?”

겉으로 보기에는 무릎 언저리의 낮은 불이라 해도 그 열기는 대단하다.

가스 불 근처에만 가도 훅훅 찌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던가.

지현석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귀신같이 신재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아, 검사님?

신재현의 목소리는 굉장히 태연했다.

평소 보고라도 읊는 것처럼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들먹였다.

뭔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지현석은 속이 답답해져 왔다.

결국 지현석은 하고 싶은 말을 일단 눌러 담은 채 소리쳤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금방 갑니다! 어디 가지 말고 거기 계세요!”

지현석은 전화를 끊고 나서 운전석의 수사관을 재촉했다.

승합차는 녹사평대로를 지나 어느덧 종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

본부 앞의 현장은 지현석의 예상보다 차분했다.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서인지, 아니면 일차적으로 정리를 해서인지, 다들 침착한 모습으로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진환 역시 엎드려 있던 아까와는 달리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었다.

불씨도 꺼졌고 유진환도 발버둥을 멈춘 상태였다.

대신 옆에 팀장 두 명이 딱 들러붙어 앉아 양팔을 잡고 있었고, 기자 몇 명도 살벌한 눈빛으로 옆에 지켜 서 있었다.

그들은 지현석이 다가가자 굉장히 반가워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지현석을 성큼성큼 다가가서 유진환 앞에 영장을 내밀었다.

하동문 한 사람만 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유진환은 큰 표정 변화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사관들이 경계하며 그를 승합차로 데려갔지만 그는 그저 바닥만 노려볼 뿐이었다.

혼이 나간 것 같았다.

뒷수습을 마친 지현석은 나는 듯이 빌딩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 주차장에 있던 팀장 셋이 뛰어서 따라왔지만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지현석은 한쪽 발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초조하다는 증거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지현석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달려갔다.

사무실 앞에서는 손이 미끄러져서 지문 인증을 실패했다.

뒤따라 달려온 팀장이 대신 문을 열어주었고, 지현석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신재현을 찾았다.

파란의 중심이었던 청년은 사무실에 떡하니 앉아 가져온 박스를 뒤지고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옆으로 뻗은 채 바지를 걷고 있었는데, 육안으로 보기에도 발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셨네요! 검사님, 좋은 소식입니다. 유진환이 가져온 게 글쎄, 여야 가리지 않고 온갖 비리가 다 들어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야, 우리 일이 몇 달은 줄어들겠는데요!”

얼굴을 보자마자 신나서 일거리를 늘어놓는 신재현을 보며 지현석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제정신이에요? 당장 병원부터 가세요!!!”

뒤에서 세 명의 팀장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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