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뭐 하냐 (3)
-눈앞에서 불타는 시체를 본 적은 있냐?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그걸 봤을 리가 있겠냐, 미친놈아.
당연히 저놈도 내가 처참한 경험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트라우마를 새겨준답시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거고.
그것이 남이 아닌 본인 스스로 불타 죽겠다는 거여서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게 불타 죽는 거라던데, 저 똑똑한 놈이 그걸 모를까.
그만큼 내가 밉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저런 짓을 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서 웃음이 나왔다.
나라도 분신했을 거란 뜻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래, 인정한다.
내게 가장 큰 복수는 지금 상황에서 이게 맞다.
이미 저놈은 세무조사 받던 사장 하나를 자살하도록 종용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나는 이기고 저놈은 진다.
그냥 순순히 지기 싫다면.
내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남기고 싶다면.
단언한다.
이건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가 생판 모르던 남이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내가 아는 사람이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죽는 것.
당연히 후자는 내가 죽는 날까지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않으려고 의식해도 소용없다.
밥 먹다가도 잠자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인 건 아니니까.
나는 나를 잘 안다.
그렇게 고민하더라도 언젠가는 잊고 극복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 찾아오는 어느 순간이다.
훗날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기억 속에서 애써 묻어 뒀던 유진환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때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잘못한 건 유진환 저놈이라지만.
조사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 동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라고 굳은 의지로 매몰차게 조사할 수 있을까?
그때 유진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러니 이 방법은 유진환이 내게 할 수 있는 효과 좋은 방법의 복수인 건 인정한다.
그런데 왜 유진환은 이 방법을 골랐을까?
더 효과적인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예를 들어 내 가족이나 지인을 건드리는 것 말이다.
-또옥, 똑.
시간이 늘어졌다.
주위 모든 풍경이 사라지며 유진환의 옷자락 끝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그럴 리 없는데도.
나는 그 물방울, 아니, 기름방울을 보고 있었다.
-똑!
주차장 바닥에 남아 있던 물기와 물방울이 만나며 무지개 색으로 번졌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입안에 민트 향이 화악 퍼지는 것처럼, 내 시야가 맑아졌다.
물속에서 빠져나온 듯 어지러운 고함과 비명 소리도 내 귀에 닿았다.
“끼아아악! 분신이야!”
“소화기! 소화기!!!”
뜬금없이 주차장에서 소화기를 찾는다고 나오나.
나는 온몸으로 시위하고 있는 저 시커먼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진환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악질적으로 웃었다.
저런 미소를 어디서 봤더라.
아, 제주도 갔을 때 손경진의 심복이었던 팀장 둘이 날 보며 저렇게 웃었었다.
물론 그 둘은 지금 낙동강 오리 알이 되어 지방을 떠돌고 있지만.
유진환은 내 얼굴과 위치를 확인하고는 살며시 눈을 감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무슨 순교를 앞두는 성인과도 같은 온화한 미소다.
저 어이없는 놈.
-째깍.
유진환이 한 발짝 앞으로 내미는 순간 정지된 시간이 움직이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속도였다.
이전에는 ‘저놈의 분신 뉴스가 뉴스 1면을 차지하게 둘 수는 없다’라는 속물적인 계산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으나 이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놈이 누구인지도 머릿속에서 훅 날아갔다.
어떻게든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야트막한 4개의 계단을 한 걸음 만에 뛰어내렸다.
바로 눈앞에 눈을 감은 남자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와 나 사이에는 이제 불타오르는 서류철이 가로막고 있었다.
기름 먹은 종이는 놀랍게도 화력이 강했다.
불꽃 높이가 내 무릎 조금 위까지 올라왔다.
불꽃이 작았으면 불타는 서류를 발로 차든 밟든 했을 텐데.
망설일 시간이 없다.
나는 계단에서 내려온 기세 그대로 다시 한번 도약했다.
“흡!”
남의 눈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기합과 함께 불꽃 위를 뛰어넘었다.
그런데 착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다급해서 내려온 관성 그대로 뛰어올랐을 뿐이다.
또 한 발짝.
내가 발을 두려고 생각한 곳에는 그가 한 걸음 더 나와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아예 착지를 포기했다.
포기하면 편해.
“크흐억?”
이 비명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기 때문이다.
무방비로 내 습격을 받은 유진환의 놀란 목소리였다.
동시에 내 무릎 끝에 무언가 차이는 느낌이 났다.
“으어억!”
나 역시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역시 착지를 실패했다.
대충 유진환의 가슴께를 무릎으로 찍고 나서 든 생각이었다.
정신없이 구르고 나서 보니 내게 걷어차인 유진환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유진환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아,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냐.
근데 죽을 놈이 나 때문에 살아났으니 이건 정당방위 아닐까?
정당방위는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어쩔 수 없다.
나도 지금 머리가 혼란스러우니까.
다행히 내가 뛰어든 게 계기가 됐는지 굳어 있던 기자 중 맨 앞에 있던 남자 몇이 우당탕 뛰어왔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그들이 유진환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유진환을 바닥에서 데구루루 굴려 불꽃과 멀어지게 했다.
그 과정에서 주차장 바닥에 굴러다니던 온갖 잡티가 그의 옷에 들러붙었다.
꽤 굴욕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상체만 세워서 바닥에 앉은 채로 생방송 중인 카메라를 향해 손짓했다.
“팀장님들, 사무실 구석에 소화기 있어요. 갖고 내려와 주세요.”
지금쯤 기겁하며 핸드폰을 보고 있을 팀장들에게 보내는 전언이었다.
아까 유진환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메시지 전달이었다.
불이야 내버려 둬도 종이가 다 타면 꺼지겠지만 유진환의 옷자락 끝이라도 닿으면 바로 옮겨 붙을 것이다.
기름을 끼얹었으니까.
일단은 꺼두는 게 좋겠지.
“어…….”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던 나는 갑자기 화끈함을 느꼈다.
구를 땐 몰랐는데 손바닥에 쓸린 자국이 나 있었다.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발목의 바지를 걷어 올리자 빨갛게 부어오른 것이 보였다.
최대한 높이 뛴다고 했는데 발목이 불에 스쳤나 보다.
그래도 정장 바지는 멀쩡한 걸 보니 열기에 덴 것 같은데.
불이라는 게 직접 닿지 않아도 뜨거운 거구나.
상황에 맞지 않는 쓸데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비교적 침착하게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나와 다르게 당황한 것은 기자들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화상 같은데요. 그 혹시 의학 전문 기자 출신 여기 계세요?”
“의학은 아니고 노사쟁의 전문 기자는 여기 있어요!”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날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닌데.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유진환은 아직도 남자들의 무릎에 짓눌려 바닥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화상이네요. 제가 응급처치 키트 갖고 있습니다.”
기자가 어떻게 이런 걸 갖고 있지?
그런 의문은 잠깐이었다.
노사쟁의 현장을 다녔다는 여자는 후다닥 골목 너머로 달려 나가더니 순식간에 손에 흰색 플라스틱 상자를 들고 왔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발목에 차가운 액체를 붓더니 깨끗한 거즈를 대고 붕대로 감았다.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대충 2도로 보이거든요? 화상은 초기가 중요하니까 얼른 들어가셔서 찬물에 10분 정도 두시고 병원 가세요.”
난데없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들은 하동문 의원 세무조사 경과를 보려고 모인 사람들일 텐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자, 일어나 보세요. 뭐야, 손도 다치셨네? 아니, 진작 말씀을 하시지!”
“아, 그냥 조금 쓸린 겁니다. 괜찮아요.”
기자들이 오히려 호들갑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내버려 두고 와글와글하게 모여든 기자들 가운데서 무릎을 짚으며 일어났다.
“부단장님! 저희 왔습니다!”
마침 사무실에 남아 있던 팀장 셋이 헐레벌떡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아수라장을 보더니 입을 떡 벌리고 잠시 멈춰 섰다.
소화기는 하나밖에 없는데 셋이 들러붙어서 잠시 헤매더니 곧 소화기 끝에서 분말이 뿜어져 나왔다.
대충 큰불은 껐고.
나는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있는 유진환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성공했다면 모든 관심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겠지.
그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시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이 미친놈…….”
“너도 만만치 않아, 미친놈아. 거기서 불을 뛰어넘어?”
일을 실패한 분노보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강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한 번 시도해서 실패했으니까 이제 안 하실 거죠? 승복의 문제가 아니라 한 번 해서 안 통한 수단을 또 하는 건 시간 낭비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가 뭘 알아, 라는 뻔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유진환이 이를 갈았다.
“라이터를 여분으로 가져왔어야 했어. 바로 불을 붙였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불붙이기 전에 제가 라이터를 든 손에다 몸통 박치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기자들이 멍하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본인이 죽으려고 한 겁니까? 죽을 각오였다면 제 지인이나 가족에게 손대는 게 더 충격적이었을 텐데요.”
“가족이나 지인을 죽였으면 네가 꺾였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하나다.
“아뇨? 더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았을까요? 정신적으로는 반쯤 미치겠지만 그 반대로 아예 일에 몰두했을 겁니다.”
“그렇지. 너는 그런 놈이지. 주변인의 죽음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 요소가 된다고.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이번에는 기자들이 질린 얼굴로 나와 유진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죽으려던 놈과 말린 놈의 대화니까 이 정도면 평범한 것 아닌가?
어차피 궁금증도 풀렸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려하게 끝장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오늘 유진환 씨 행동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치졸하고 추했죠.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평가가 하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다 하다 할 게 없어서 자기 목숨을 갖고 협박합니까?”
어찌 보면 화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승자인 내가 하는 말이 이 상황에서는 무조건 옳으니까.
그래서 굳이 할 필요도 없는 말을 주저리 읊고 말았다.
유진환은 울컥했는지 기자들을 떨궈내려 애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소리쳤다.
“그래! 하다 하다 할 게 없어서 했다! 그럼 뭘 할 수 있는데! 뭘 하려고 해도 앞뒤 모든 길이 다 막혔는데!”
나는 그의 괴성을 뒤로하고 유진환이 가져온 손수레로 향했다.
저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이 많다.
나도 욱한 나머지 툭 쏘아붙였다.
“방법이 하나같이 더럽잖습니까. 조사단을 부순답시고 하는 짓거리가 외압이나 넣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괴롭히는 거고. 저희도 조사하면서 매일매일 감탄만 했습니다. 와, 정말 얼기설기 잘도 엮어두셨더군요. 아니,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한 겁니까? 대체 왜 그 머리를 그런 데다 쓰는 거냐구요!!”
타다 남은 재를 뒤적거리던 팀장들이 아연해져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수십 명이 있는데도 장내는 조용했다.
나와 유진환의 목소리만 이 넓은 공간을 채웠다.
“이게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혼자 죽을 수 없다고 했으니 그동안 모아온 불법과 비리의 증거, 대충 그런 거겠죠.”
박스를 바라보는 유진환의 시선이 복잡 미묘하게 변해갔다.
내게 넘기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혼자 죽기는 싫다는 독기.
나는 그 수레를 끌고 빌딩으로 가며 말했다.
“선물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지금 이걸 제일 사심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로 가져온 건 정답이었습니다.”
나는 경사로를 통해 수레를 끌고 올라갔다.
겨우 4개밖에 없는 계단인데도 주차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적어도 여기로 가져온 건 후회가 들지 않도록 알뜰하게 잘 쓰겠습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내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유진환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사이 팀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죄송한데 이것 갖다 놓고 화상 입은 발목만 보고 금방 나오겠습니다. 검찰 쪽에 연락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저놈 잡아 주세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저희가 있겠습니다.”
세 명의 팀장 덕분에 마음이 놓였다.
내가 막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유진환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래! 갖다 줄 놈이 너밖에 없더라! 잘 써먹어라, 이 새끼야!”
이어서 유진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유리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란이 한 겹 막을 씌운 것처럼 멀어졌다.
로비에는 구경 나온 이 빌딩 이용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드르륵.
화끈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손수레를 밀었다.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직 열어보진 않았지만 이 안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는 지금 유진환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주춤하며 물러섰다.
“허억, 웃는데?”
“심장이 강철인가?”
나는 머쓱하게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한 후 핸드폰을 꺼내 지현석 검사의 연락처를 찾았다.
“아, 검사님? 이쪽으로 급하게 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 하나랑 나쁜 소식…… 아니, 막았으니까 나쁜 소식은 아닌가? 하여튼 빨리 와 주세요.”
-지금 가고 있습니다! 금방 갑니다! 어디 가지 말고 거기 계세요!
지현석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