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70화 (370/500)

370화. 영악한 녀석 (1)

국회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아니 저한테 출석요구서가 웬 말입니까! 하동문 의원님 어디 계십니까!”

“분명히 하 의원님이 해결하시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셨잖습니까! 만나 뵙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초선은 거수기, 2선이 슬금슬금 법안도 내며 어깨를 펴는 시기라면 3선은 허리다.

사회의 인구 피라미드에서 30대와 40대가 가장 열렬한 노동 층으로 취급받듯이 3선이 그러했다.

혼자서는 표도 못 끌어오는 초선, 2선과는 다르다.

전통시장이든 지하철 입구든 토론회든 나가서 방긋 웃으며 손도 잡고 지지율도 얻어오며 홀로 정책을 견인하는 것이 바로 3선이었다.

거기서 별일이 없으면 4선도 하고, 그렇게 원로 의원이 되어 간다.

현재 국회에선 최대 9선의 의원이 있고, 8선과 7선도 몇 있지만 결국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3선과 4선이었다.

그들은 언제고 위로 올라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계층이기도 했다.

당의 중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5선 의원들이었지만 그들이 추락하길 가장 바라는 것도 중간 계층인 이들 3선과 4선이었다.

허구한 날 인터뷰에 대고 개혁이네 뭐네 외쳐대는 것도 그랬다.

고인물 취급받는 다선 의원이 총선 실패로 뒤로 물러나면 옳다구나 하고 빈자리를 탐내는 이들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다선 의원들이 저들끼리 회의해 만들어내는 소위 ‘당론’에 눌려 끽소리도 못하던 그들이 오늘은 당사로 몰려와 무언가를 따져대고 있었다.

“의원님들, 채신머리없게 이게 무슨 소동입니까! 진정들 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글쎄 조사단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고요!”

당사를 지키던 중진의원은 몰려드는 의원들을 감당하느라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같은 당이라도 서로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서 얼굴을 붉힌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것조차 당론 내에서 해결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의를 드러내며 쳐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회가 무슨 도떼기시장도 아니고, 이런 소란스러움은 제1야당의 중진의원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원님들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조사단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왔으면 본인들이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왜 여기 와서 따지십니까? 아니면 뭐, 당에서 여러분께 사리사욕을 채워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있습니까?”

“하동문 의원님이 분명히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 손 놓고 있었던 겁니다! 당에서 우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남 탓을 할 수 있으면 반드시 해라!

그것이 국회에서 오래 살아남는 비결이었다.

때로는 네거티브 공격까지 하고 약점까지 잡으면서 더럽게 싸우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하필 며칠 전 하동문이 큰소리를 친 후였다.

그러니 하동문에게 책임을 미루기에 딱 좋았다.

“당에서요? 그것참 웃긴 소리네요. 대충 보아하니 여기 계신 의원님들은 저마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만. 본인의 행동에는 책임을 지셔야죠! 우리 제1야당은 어디까지나 깨끗하며 개혁적인 정당입니다!”

중진의원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당 의원들에게 얼룩이 있다면 첫째는 덮어야 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면 쳐내야 한다.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깨끗하고 개혁적인 척을 해야 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적당히 알아듣고 물러날 줄 알았다.

자기 입으로 자기가 구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이들은 물러설 줄은 몰랐다.

조사단에 출석하면 어차피 치부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금은 당의 중진의원들보다 조사단이 더 무서운 것이다.

다선 의원들도 조사단의 철퇴를 맞게 생긴 상황에서 당이 대수겠는가.

“하동문 의원님이 뒤에서 어떤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어허, 무슨 말씀을!”

“지라시에서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세요? 글쎄, 하동문 의원님이 조사단에 압박을 넣었는데 신재현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물리쳤답디다. 이게 말이나 돼요?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 공무원한테 외압이나 넣고! 하동문 의원님의 시대는 갔습니다.”

“하 의원님은 아직 지지율이 30%에 달하는 우리 당의 기둥이십니다! 같은 당원이 믿어주지는 못할망정 의원님의 이미지나 깎아 먹을 헛소문을 믿다뇨!”

아직 하동문의 실체가 까발려지기 전이니 그의 지지율은 굳건했다.

하동문이 조사를 받더라도 아무 의혹도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의원회관에서 하동문 의원님이 잘난 척하시던 건 뭘로 설명할 겁니까? 막겠다고 해놓고 하나도 못 막았잖아요! 그때 쓰려던 방법이 바로 외압 아닙니까? 그게 버젓이 실패한 거고! 당장 의원님이 국회에 나타나지 않는 것만 해도 그 증거 아닙니까. 지금 그 하동문 의원님은 어딨습니까?”

“의원님이 뭐 한가한 줄 알아요? 썩 물러가세요! 그렇게 당에 불만이 많으면 당에서 나가시든가!”

총선이 코앞이다.

결국 공천은 최대의 협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하면 물러나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굳건했다.

출석요구서를 받은 3선의 의원들이 오히려 사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중진의원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공성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놈들이 지금 해보자는 거야? 당신들이 편안하게 국회에서 발언권 가질 수 있는 것도 다 우리가 이전 국회에서 다른 당하고 싸워내서 이룩한 거야!”

“국회에서 유혈사태 일으킨 게 그렇게 자랑입니까? 어차피 신재현 눈 밖에 나면 총선이고 뭐고 다 끝이야! 지금 정국은 신재현, 그놈이 다 꽉 잡고 있다고!”

당이 흔들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대통령을 배출해온 굳건한 철옹성 같았던 제1야당이 기껏 공무원 한 명에게 무너지게 생겼다.

“다들 진정하세요!”

사무실 밖에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강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윗사람으로 군림해온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자가 복도에 서 있었다.

지금껏 대화에서 몇 번이고 언급된 하동문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시끄럽게 떠들던 젊은 의원들도 단숨에 입을 다물었다.

하동문이 한 발짝 걸음을 내딛자 복도를 꽉 메우고 있던 의원들이 저도 모르게 길을 텄다.

나라님도 안보일 땐 욕한다고 하지만, 막상 하동문이 눈앞에 나타나자 큰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하동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위엄 같은 것이 풍겨 나왔다.

그는 동요 없이 사무실로 걸어가더니 가장 앞장서서 따지던 젊은 의원 앞에 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쥐었다.

-꾸욱.

나이도 많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하동문에게 어깨를 잡힌 의원은 신음을 흘렸다.

맹금에게 잡힌 것처럼 어깨의 뼈가 아려왔다.

“이렇게 당을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으시니 제가 아주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이 하동문, 아직 정정합니다. 여러분이 걱정하는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거란 이야기죠.”

나는 건재하다, 하동문은 온몸으로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여기서 흔들리면 끝인 걸 그도 알고 있었다.

하동문은 낮은 목소리로 의원에게 읊조렸다.

“이 의원님. 요즘 자주 가시는 곳이 있으시던데…… 아주 좋은 곳인가 봅니다. 거기서 의원님이 뭘 하고 다니시는지 부인은 알고 계시답니까?”

어깨를 잡힌 의원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이 단지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 어떻게…….”

젊은 의원이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아까 하동문이 말한 ‘정정하다’라는 뜻이 바로 이것이었는가 싶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정보력에 치가 떨렸다.

끽소리도 못하고 젊은 의원이 물러나자, 자연히 다른 의원들도 주춤했다.

대표격으로 나선 의원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단에 가서 성실히 조사를 받으세요. 어차피 현행범이 아닌 이상 여러분은 구속되지 않습니다.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치부를 한 번 까발려 보시겠습니까?”

젊은 의원에게 뭘 말했는지는 몰라도 어떤 종류의 협박이 오갔는지는 짐작이 갔다.

의원들은 불에 덴 듯 서둘러 복도로 나갔다.

‘개새끼. 처음엔 지라시 안 믿었는데, 하는 짓을 보니 사실이 맞나 보네. 더러운 방법으로 공무원들 압박했다더니.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뻔하지.’

의원들이 구시렁거리면서 나가자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던 중진의원이 문을 탁 닫았다.

하동문이 상석에 가서 앉고 잠시 후, 복도에 인기척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유진환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문을 탁 닫고는 다짜고짜 물었다.

“출석요구서 나온 게 몇 명입니까?”

당연히 하동문에게 물은 게 아니었다.

중진의원은 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인 후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와서 시장통처럼 난리를 쳐대는 통에.”

“그걸 확인하셨어야죠! 누구에게 요구서가 날아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동문의 오른팔이라 해도 중진 의원에게 명령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기분이 상한 듯 의원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그러나 하동문도 유진환도 그를 배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동문은 의원을 무시하고 바로 유진환에게 말했다.

“필요한 정보가 그건가?”

“예. 이왕이면 다른 당에서 출석요구서 받은 사람들의 정보도 필요합니다.”

“이유는?”

“아시다시피 신재현은 지금 한 수를 더 놓았습니다. 그놈은 자신의 무기가 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국민 말이지. 건방진 놈. 원래 국민은 우리의 무기였는데.”

상황이 급해서인지 하동문의 말은 직설적으로 변해 있었다.

“맞습니다. 잊혀지는 순간 끝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조금씩 기삿거리를 던지고 있습니다. 지산에 쳐들어간 게 바로 저번 주입니다.”

“지산, 그놈들도 건방져. 감히 내 요청을 거절하다니.”

유진환은 이 부분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전략실을 따로 굴리는 지산에서 조사단의 손을 들었다는 것은 자신들이 현저히 불리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유진환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놈을 예전의 신재현이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이미 제가 만났을 때만 해도 공무원의 사고방식을 벗어난 상태였어요. 지금은 거기에 더해 언론을 이용할 줄 알며 정치도 어느 정도 할 줄 압니다.”

“의외로군. 그놈을 그렇게 싫어하는 자네가 극상의 칭찬을 하다니. 그 정도인가?”

“예. 그 정도입니다. 여론을 이용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새로운 떡밥을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던져주면 역치가 강해지죠.”

역치, 한마디로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조사단의 최종 목표는 물론 모든 국회의원이지만 조사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미리 설레발만 치면 나중에 정작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가 왔을 때 ‘에게, 겨우 이거야?’ 하는 실망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어느 의원을 소환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측 의원을 조준해서 부른 건지, 아니면 단순히 떡밥용으로 던지기 위해 고른 건지가 중요해요.”

“자네 생각은 어떤데.”

“아까 사무실에 몰려온 의원들은 대부분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삿거리용으로 던진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수를 둘지 모르는 놈입니다.”

유진환의 분석을 들은 하동문이 혀를 찼다.

“쯧, 영악한 녀석이야. 어째서 그런 인재가 공무원 따위를 하고 있는 건지.”

“하나 더,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당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중진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가만히 대화를 들으면서도 신재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 하던 참이었다.

지금 상황이 심각한 것은 맞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두드려 맞으면 국민적 분노도 분산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당이 깨진다니요, 대체 무슨 그런 말을……!”

의원이 기겁하자 유진환이 자세히 설명하려던 순간, 복도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부서질 기세로 덜컥 열렸다.

아까 복도에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더니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왔다고요, 왔어!”

설마, 여기서 그 수를?

유진환이 얼굴을 굳히는 것과 동시에 젊은 의원이 비명과 같은 소리를 냈다.

“신재현! 저승사자, 그놈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왔어요!”

다각, 하고 또 하나의 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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