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69화 (369/500)

369화. 내부의 싹은 미리 자른다 (2)

국무회의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같은 국무위원들이 참석하지만 수도의 중요성 때문에 간혹 서울시장이 참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서울시장은 여당의 사람이었다.

서울시장을 성공적으로 거치면 다음은 대선주자라는 말이 있듯이 그 역시 대통령 자리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비록 대통령도 과거에는 여당이었지만 원래 정치란 같은 당끼리도 갈리는 법이다.

가뜩이나 지금 조사단은 여당까지 공격한다는 낌새를 풍기고 있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의 정적이기도 했으며, 어쩌면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아직 조사단에서는 국회의원만 대상으로 삼았지만 서울시장은 불안했다.

‘건드려도 야당만 건드려야지!’

국회의원에 대한 본격적인 압수수색이 들어가면 먼지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차주혁의 입지가 흔들리는 건 좋지만 지금 상황은 그에게도 악재였다.

‘어쩌면 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어.’

그러니 지금, 서울시장은 조사단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다.

적당히 하라고 말이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닌 이상 불체포특권이 있습니다. 수석님이 그 이유를 모르진 않을 텐데요.”

행정부가 입법부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 시작하면 독재다.

미우나 고우나 입법부는 나라에 필수적인 기관이었고 지금 조사단이 하는 일은 선을 넘었다고 비칠 수 있었다.

그것은 조사단을 결성하도록 허락한 대통령도 아는 일이었고, 단장인 경제수석은 더더욱 잘 아는 것이었다.

“시장님께서 우려하시는 게 뭔지는 압니다. 하지만 반대로 고이면 썩게 마련이죠. 입법부는 지난 선례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희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시기 전에 입법부가 도를 넘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너무나도 노골적인 말에 장관들이 아연실색했다.

대놓고 너희는 썩었다고 말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시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지금 국회가 다 썩어빠졌다 이 말입니까? 왜 가만히 있는 국회를 먼저 적으로 돌리는 겁니까? 지금 행동이 이상하시잖아요. 모든 국회의원이 다 썩었다는 전제 하에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다 쳐내고 나면 다음 국회는 뭘로 채울 겁니까? 수석님의 사람? 그게 곧 입법부를 집어삼키려는 수작이 아니고 뭡니까?”

이 자리에 만약 여당 의원들이 있었다면 옳거니, 하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들의 걱정은 사실 자기들의 치부가 드러나 낙선할까 봐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 속셈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자기가 구리다는 걸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 나라를 위하는 척 국민을 위하는 척 잘 포장해서 말해야 했는데 지금 서울시장이 한 말은 딱 그들이 원하는 식이었다.

미친 행정부가 날뛴다는 것 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삼권분립인 만큼 조사단이 국회의원을 건드린다는 것이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다.

그러나 임현승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누가 국회의원 모두에게 썩었다고 했습니까? 분명 그 안에도 청렴하고 일 잘하고 깨끗한 분이 계실 겁니다. 그분들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아니면 뭡니까.”

임현승의 목소리가 살벌해졌다.

“시장님은 깨끗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저는 조사단이 지금 당장 절 조사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인데. 오히려 의원님들께서는 이득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적들이 거꾸러지고 청렴하고 깨끗한 시장님만 남게 되시니.”

임현승은 일부러 청렴과 깨끗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단순히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여기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깨끗한 놈이면 가만있을 거다, 항의하는 놈은 다 구린 놈이다!

의원들이 흔히 쓰는 프레임이었고 흑백 논리였다.

그러나 의원들이 자주 쓰는 것인 만큼 효과가 탁월하기도 했다.

당장 서울시장의 입이 턱 막혔으니까.

임현승은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부단장의 성격을 잘 아시잖습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번에 대기업 한울 조사 갔다가 50억도 못 걷은 거 기억하시죠? 억지로 없는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자잘한 먼지를 일부러 크게 부풀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딱 잘못한 만큼만 법대로 처리하는 사람이잖습니까.”

수석이 이겼군, 국무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동시에 생각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신재현이 이미지를 잘 쌓아온 덕분이었다.

삼권분립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면서도 조사단이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신재현을 믿기 때문이다.

신재현이 부단장을 맡고 실무를 이끌고 있으니 조사단도 어련히 알아서 깔끔하게 일 처리할 거란 믿음이었다.

그러니 조사단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신재현부터 깎아내야 했는데 그의 아성은 서울시장조차 넘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울시장은 이를 뿌득 갈며 문득 생각했다.

‘신재현이 대선 주자가 아닌 게 다행이네. 만약 그놈이 대선에 나왔으면 차주혁이고 하동문이고 나도 손가락만 빨고 지켜봐야 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재현의 나이가 어린 것이 행운이었다.

최소 40세가 되어야 대선에 나갈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떠오르자 서울시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뼛속부터 정치인이었다.

만약 자기가 신재현이라면 어떤 과정을 밟아 나갈지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국회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편성하고 그 과정에서 유력 대선주자를 쳐낸다.

자동으로 대선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다.

서른에 신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가 되고 모든 행정기관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져 나간다.

30대에는 국세청 내부에서 굵직한 사건만 골라 맡으며 승진하고 때에 따라 다른 관계 부처나 청와대에도 손을 뻗친다.

그리고 마흔이 된 순간 총선이나 대선에 출마한다.

현재 전 국세청장이 국회에 신당을 창당했으므로 약 10년 후에는 중견 규모의 당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신당은 오로지 신재현의 인기에 힘입어 얻어걸린 지지율이나 다름없었다.

신재현은 총선에 나오지 않으므로 갈 데 없는 지지율이 전 국세청장의 신당에 쏠린 것이다.

물론 신재현 본인은 어떤 길을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서울청장에게는 화사하게 깔린 꽃길이 보이는 듯했다.

서울청장 자신도 꽤 꿀리지 않는 경력을 쌓아왔다고 자신하지만 지금은 신재현이 질투가 날 정도였다.

신재현은 지금 어느 쪽으로 가든 승승장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나만 물읍시다, 수석님.”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온다.

시장은 계속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신재현 부단장이 정치에 손을 대려는 건 아니겠죠?”

신재현은 회유가 불가능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용해야 하는데, 그의 행보에 따라 자신의 길도 바뀔 수 있었다.

임현승의 눈동자에 아주 잠시, 경멸의 감정이 섞였다.

‘이런 상황에 와서도 정치할 거냐는 소리가 먼저 나오네.’

임현승은 욕을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을 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건 본인한테 직접 가서 물어보십시오.”

임현승 입장에서야 어이가 없으니 나온 말이었지만 서울시장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신재현이 회유와 압박 둘 다 불가능한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조사단이 순조롭게 나아간다면 정계 구조는 일대 개변을 이루게 된다.

개혁 수준이 아니다.

분명히 지지율이 확 떨어지고 낙선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어? 오히려 괜찮은 것 같은데?’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살아날 구멍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었다.

조사단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은 것은 국회의원이다.

그렇다면 시장 같은 비 국회의원 정치인은 한참 뒤로 밀릴 것이다.

300명만 조사해도 1년은 훌쩍 넘어갈 테니까.

‘이번 총선하고 대선은 포기하고 쥐 죽은 듯이 지내면 되지 않을까?’

설령 시장의 지난 행적이 걸려서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된다 해도 조용히 지내는 상황이라면 큰 관심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그때쯤이면 국회의원 수백 명이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기억에서 사라진 시장 하나가 더해진다고 큰 치부가 될까?

깨끗한 사람만 모인 곳에서는 무단횡단만 해도 죽일 놈이 되지만 다들 탈세 하나씩 있는 상황에서 얼룩 하나 있다고 눈에 띄지 않는다.

‘몇 년만 쥐 죽은 듯이 있으면 그 후엔 내 세상이겠는데.’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뻔했다.

3선 이상인 놈들 중에서 깨끗한 놈은 하나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물어보죠.”

서울시장이 히죽 웃자 임현승은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미친놈 보듯 서울시장을 보던 임현승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통령 역시 질린다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앞길이 막히니까 미쳤나 보네. 설마 다른 정치인들도 다 이런 상황인 건 아니겠지?’

사실 그동안 임현승은 가장 미친 것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임기 마지막 해라고 해도 자신의 기반인 여당까지 깎아 먹어가면서 조사단을 지원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정치인이란 족속은 다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가서 욕이나 처먹고 와라.’

임현승은 대놓고 불만의 눈빛을 보냈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회가 깡그리 정화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찌 되었건 그가 일부러 국무회의에 참석한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었다.

그의 경고를 무시하는 장관은 없을 거라 믿었다.

이렇게 대놓고 말했는데도 만약 어리석은 짓을 하는 장관이 있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조사단의 힘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신재현이 했듯이.

***

조사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래도 지산을 압수 수색한 이후 국세청은 잠시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한 국회의원들에게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하동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국회가 아닌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국회에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뿐더러 멍청한 의원들에게 질렸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찾아와서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종용했다.

‘너희들 살길은 알아서 도모해! 나한테 맡겨놨냐!’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반은 자신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아예 자리를 피한 것이다.

‘그걸 성공했어야 했는데. 아니, 어떻게 그걸 막아냈지?’

바로 의원회관에서 백 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모였던 ‘초당적 회의’ 때문이다.

그때 하동문은 자신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의원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 것이기도 했다.

그때는 차주혁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줬다고 기뻐했는데.

“후…….”

하동문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유진환의 당시 수법은 지금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공무원을 압박하는 것도 괜찮지만 그건 너무 티가 난다.

그리고 국세청에 손을 뻗지 못하는데 어떻게 압박하겠는가.

그래서 가족을 건드렸다.

원래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불이익은 버텨도 주위 사람들이 피해 입는 건 못 버티는 법이다.

죄책감에 무너지기 일쑤고.

물론 끝까지 압박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장이 경제수석이고 뒷배는 대통령이니 사태를 파악하면 그들이 권력으로 적당히 수습하겠지.

그때까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면 조사단 하나 와해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사태 파악이 너무도 빨랐다.

아니, 사태 파악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해결은 또 왜 이렇게 빠른가.

하동문은 인정했다.

자신이 신재현을 얕보고 있었다.

외압과 회유, 둘 다 먹히지 않는다.

직접적인 수단은 이제 다 통하지 않는다.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정치판에 뛰어든 지 수십 년,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그가 싸워 온 수많은 정적들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 국민들의 관심이 식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신재현이 날뛸 수 있는 건 오로지 국민 덕분이다.

대통령?

곧 자리에서 내려올 대통령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관심만 식으면 까짓거 탄핵해 버리면 된다.

그런데 다행히도 조사라는 건 금방 끝나는 게 아니다.

과거 거물들을 조사하는 특검들도 그랬다.

잊혀지지 않으려면 항상 뭔가를 발표하면서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지금 조사단은 외압을 해결하느라 조사가 늦춰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발목을 잡은 셈이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 달만 기다려 볼까…….”

한 달이면 잊혀지고도 남는다.

하동문은 턱을 쓸면서 저번 외압처럼 조사단의 발목을 잡고 시간을 걸리게 할 방해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한 달 후에는 확실히 원래의 유리한 페이스로 몰고 올 자신이 있었다.

“잊혀지기만 한다면……!”

하동문이 어떤 방법을 써볼까 고민하던 때, 노크도 하지 않고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불쾌한 하동문이 소리치려는데 유진환이 다급한 얼굴로 국회에서의 소식을 알려왔다.

“의, 의원님. 우리 측 3선 의원 몇이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하동문은 바로 이를 빠득 갈았다.

“영악한 놈……!”

상대도 잊혀지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조사단과 하동문의 수 싸움에서 여전히 신재현이 한 수 앞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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