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12)
사장은 아차 했다.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별 어려운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당해고는 맞지만 들키지만 않으면 장땡 아닌가.
들켜도 사실 그렇게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둘러댈 말도 있었다.
직원이 사장인 자신과 잘 맞지 않으면 내보내는 게 당연하다.
일을 못해서, 성격이 맞지 않아서.
핑계는 많았다.
그 과정에서 욕설을 한 것이 문제의 여지가 될 수는 있어도 큰 문제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사단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국회의원 잡는답시고 난리를 치던 조사단이 대체 왜 자기 같은 중소기업 사장에게 눈독을 들인단 말인가.
그런데 팀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자 비로소 이해가 갔다.
‘그래서 별것 아닌 과장을 잘라달라고 나한테 부탁한 거였어! 미친!’
부탁해서 들어주긴 했지만 솔직히 지금껏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국회의원이 직접 부탁해온 게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도 있었다.
사장의 아는 사람이 국회의원 보좌관에게 따로 부탁을 받았다던가.
그래서 조사단과 연결짓지 못했다.
지인의 체면도 살려주고 연줄도 만들 겸 부탁을 들어줬던 건데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중하게 어떤 핑계를 대서든 거절했을 것이다.
사장은 일단 뭐라 변명을 하기 전에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아까 팀장이 읽어보라고 한 걸 보면 자신이 알아야 할 내용이 있는 게 분명했다.
조사단 노동부 지부의 직원들이 회사의 경영지원 부서를 뒤엎는 동안 팀장은 가만히 사장을 기다려 주었다.
스마트폰의 액정을 넘기는 사장의 손끝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장은 기사 몇 개를 훑어보더니 넋 나간 얼굴로 팀장을 보았다.
그는 잠시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춰 보았다.
아까 분명히 지산이 조사단 가족을 압박했다고 했다.
자신이 온갖 욕을 해가며 잘라 버린 과장도 조사단 가족이라고 했다.
청탁을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조사단이 지산을 엎어 버렸다.
“아……!”
깨달음은 금방이었다.
사장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니까 지금…… 국회의원이 조사단을 향해 외압을 행사했는데 우리가 거기에 이용됐고…… 조사단은 용납 못하겠다, 이거죠?”
“눈치는 빠르니 다행입니다.”
아니길 바랐는데.
팀장이 주저 없이 수긍하자 사장은 머리가 어질해졌다.
그러나 다시 뇌를 팽팽히 돌려보았다.
이대로 그냥 조사단에게 얻어맞기엔 너무 억울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한 겁니다! 지인이 껴 있어서 의심도 못했고, 국회의원씩이나 되어서 조사단 압박하는데 절 이용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단 말입니다! 모르고 하면 정상참작 해주는 거 아니에요? 저는 선의의 피해잡니다!”
팀장이 입꼬리를 꿈틀댔다.
그녀는 노동부에서 오래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장과 싸워 본 사람이었다.
노동자와 사장을 둘 다 불러놓고 조정해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팀장 앞에서는 어떤 변명을 하든, 얼마나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든 주눅 들 사람이 아니었다.
일부러 고르고 골라 조사단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현장에서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딱히 들을 필요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인데 그렇게 억울하시다니 일단 말씀드리죠. 어느 지인에게서 어느 의원님의 청탁을 받았든 결국 부당하게 해고한 건 맞잖아요?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
“그건…… 하지만 국회의원을 상대로 어떻게 거절을 합니까?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래서요? 국회의원이 시키면 면죄부가 됩니까? 잘못이 없어져요?”
팀장은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장도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조사단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본격적인 활약상은 없었지만 그 성격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무려 신재현이 부단장으로 있는 곳이다.
부당해고 한 건만 갖고 끝날 리가 없다.
당장 지금 뒤집어엎는 단원들만 해도 급여대장 가져와라, 출산휴가는 보장해줬냐, 등등 귀찮은 질문을 해대고 있었다.
사장은 솔직히 직원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경영인이 아니었다.
노동부에서 작정하고 털면 벌금만 몇백, 아니 몇 천만 원이 나올지 모른다.
게다가 돈만 내고 끝나는 세법과 노동법은 다르다.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이건 권한 남용이야! 복수라고! 조사단이라더니 사적인 이유로 중소기업 때리는 게 맞는 거예요? 소송 걸 거라고요!”
공무원은 자기 권한 범위 내에서만 일하려 한다.
그 너머에서 일하다 책임을 지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찔러 본 거였는데 팀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신재현이 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어디까지 나가도 되는지, 그리고 지금 조사단을 위해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도.
분명히 신재현은 가차 없이 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장의 협박에 굴할 필요가 없었다.
“어디 해보시죠. 국회의원의 부탁을 받아서 공무원에게 외압을 시도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보세요. 사장님은 무슨 혐의가 걸릴까요? 이 일이 기사화되면 과연 누가 욕을 먹을까요? 피해를 본 공무원? 아니면 탈세 조사 피하겠답시고 외압 행사하려는 국회의원에게 한 손 거든 사장님?”
사장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물론 뇌물죄는 대가성 여부를 따진다.
사장은 지금 부탁을 들어주면 나쁠 것 없겠지,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대가 없이 도와주긴 했다.
그러나 ‘추후 나를 도와줄 거라는 기대감’도 대가로 본 경우가 있긴 했다.
사장은 이런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판사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큰소리 치지 못하고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쁜 놈들…… 국회의원이나 때리러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와서…….”
팀장은 사장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사장과 말싸움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무라기보다 약간 감정에 치우친 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팀장은 적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부하 직원 중에도 피해를 본 사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극히 경멸했다.
과정도 악의가 가득했고 피해를 볼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잘못한 건 생각도 않고 억울하다니.
팀장은 눈을 치켜뜨고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느 의원님이 부탁하신 건지는 몰라도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조사단에 이런저런 압박을 넣으려고 하신 것 아니겠어요? 저희는 어차피 예고한 대로 의원님들을 조사할 겁니다. 뭔가 불법적인 게 있다면 거기서 나오겠죠. 우리 부단장님은 국회의원이라고 봐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사장이 침울해졌다.
탈세 좀 해봤다는 사람들에게 신재현은 악명이 높았다.
한마디로,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봐줄 리도 없고 대충할 리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조사단이니까 부단장한테서 그런 거나 배워왔다 이건가? 얄짤 없이 엎어 버릴 거라고? 참 좋은 거 배워왔네.’
사장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속마음이라도 읽는 것처럼 팀장이 찌릿, 눈을 흘기자 사장은 얼른 시선을 내렸다.
억울하다고 난리 치던 아까보다는 한결 풀 죽은 모습이었다.
***
오전에는 신재현이 지산을 치고, 오후에는 각 부서에서 맡은 회사들을 쳤다.
물론 반나절 안에 담당한 모든 회사들로 현장 조사를 나갈 수는 없었다.
각 부서에서 한두 군데만 쳤는데도 오후가 훌쩍 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후, 기업들의 반응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사단에 압박을 가한 기업체와 공공기관 등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보고 번뜩 눈치를 챘다.
-어? 우리도 국회의원 정책실장한테서 부탁받은 거 있는데?
-거래……? 저거 무슨 메시지 같은데.
-잠깐, 국회의원하고 조사단하고 싸우고 있잖아. 이 시점에서 국회의원이 부탁한 게 혹시 조사단하고 관련 있는 거 아냐?
-신재현이 인터뷰에서 분명히 외압, 회유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분명히 국회의원을 겨냥해서 한 말일 테고. 근데 지산은 왜 쳐? 거래는 또 뭐야? 다른 회사는 또 왜 쳐? 설마…….
신재현이 일부러 노골적인 메시지를 보낸 보람이 있었다.
국회의원과 조사단이 대립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거기에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 청탁을 했고, 모르긴 몰라도 조사단이 일반 기업체들을 치기 시작했다.
청탁을 받은 사람들 중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은 금세 이 모든 것이 국회의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더불어 자신들이 받은 청탁이 어쩌면 조사단의 심기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메시지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도 상관은 없었다.
조사단의 살기 어린 방문 한 번이면 바로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국회의원이 손을 뻗친 회사나 기관에 조사단은 하나씩 차분히 처리해나갔다.
이제나저제나 차례를 기다리던 회사들과, 아직 국회의원의 청탁을 받고 일을 착수하기 전인 회사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치를 보았다.
-이거 여의도하고 조사단 싸움인데 왜 우리가 얻어터지는 거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거 아닌가?
-잘못하면 여의도 대신 우리가 처맞고 뒤지겠는데.
-이러면 국회의원 부탁이고 나발이고 우리가 먼저 살아야지! 아이씨, 꼭 둘 중 한쪽 편만 선택해야 하나?
-분위기 보니까 지는 해와 뜨는 해의 싸움 같은데. 이러면 뜨는 해를 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의도에서 확실하게 조사단을 꺾을 수 있는 것 맞아? 지금 상황만 봐도 조사단이 우세해 보이는데. 이러면 굳이 우리가 국회의원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는 것 아냐……?
기업들은 슬금슬금 방향을 바꾸었다.
굳이 조사단의 분노를 사느니 몸을 사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물론 그랬다간 이번엔 여의도 쪽에서 화를 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여의도에 그런 여유는 없어 보였다.
일반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조심스럽게 조사단의 승리를 점쳤다.
그들은 하나둘 조사단의 가족에게 가했던 부당한 압박을 취소했다.
다른 기업들이 조사단의 철퇴를 맞는 걸 보니 언감생심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외압에 대한 일이 해결되자 신재현은 드디어 국세청으로 출근을 했다.
겨우 며칠 비운 것뿐이었는데도 국세청 직원들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그동안 별일 없었죠?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평소처럼 웃음과 함께 출근하는 신재현은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서울에서의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뜻이어서 국세청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신재현을 믿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신재현이 서울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한 건 알고 있었지만 내막은 몰랐기 때문이다.
공무원에게 국회의원이란 굉장히 막강한 벽과 같은 존재기도 했다.
국회의원에게 뺨을 맞은 공무원도 있었으니 말이다.
신재현은 그런 분위기를 읽고는 걱정 말라는 것처럼 활짝 웃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스스럼없고도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무도 조사단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국회의원이 누굴 시켜서 압박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국세청 직원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실제로 가족이 피해를 입은 직원들은 참지 못하고 직접 가족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헉, 진짜네요! 부모님 식당 영업정지 취소됐대요! 뭔가 착오가 있었다고 전화 왔다는데요?”
“저희 형부도 지사 발령 취소됐대요. 원래 일하던 데서 근무하면 된대요!”
제각기 가족과 친지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제 말 맞죠? 이제 외압 같은 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너무도 당연하다는 말투라서 직원들은 순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신재현은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며칠간 쌓인 결재서류와 보고서들이 책상 위에 탑을 이루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작업을 막아냈는데도 신재현의 결과 통보는 간결했다.
그저 신고서 작성 하나 끝냈다고 말하는 느낌의 담담함이었다.
그 모습에서 직원들은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국회의원을 조사한다고 했을 때부터 제정신은 아니다 싶었는데.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거구나.’
실제로는 신재현의 속이 타들어 갔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는 그의 노력은 완벽히 성공이었다.
그동안 위에서 압박이 들어오면 눈물을 삼키며 물러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며칠 만에 막아내다니.
상식을 벗어난 일에 직원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른다.
지금 조사단을 지켜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었다.
애써 상황을 이해한 후 그들은 감탄을 섞어 생각했다.
‘지금까지 국세청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사람은 민치호 청장님이나 손경진 원장님 같은 분밖에 없었어. 우리 부단장님은, 진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구나.’
그래도 두려움보다 고마움과 경외감이 더 큰 것은 그가 자신들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말은 안 해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정치판은 흔히 늪이라고들 한다.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언젠가 가라앉아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진창에 도사리고 앉아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번 일이 딱 그랬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건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재현은 그들과 다르다.
직원들은 다르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자부심을 담아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팀에도 괴물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