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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365화 (365/500)

365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10)

범위를 세법에만 국한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털면 크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하청 업체다.

불법을 숨 쉬듯이 해 먹는 회사라면 당연히 하청 업체에도 손을 뻗쳤을 것이다.

대기업은 나름대로 수많은 규제가 엮여 있다.

그중 틈새라고 볼 수 있는 곳이 하청이다.

머리 위에 탈세액을 떡하니 띄우고 있는 부회장 놈이 손쉬운 먹잇감을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지.

거기다 하청 업체와 얽힌 거라면 깔끔하게 세탁해 두지도 못했을 거다.

건드리면 나오는 불법이 나오는 자판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임원이 주저하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허권에 하청 업체까지, 너무 많은 걸 내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임원은 내게 자꾸 묻고 싶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방금 우리는 부회장실에서 나왔다.

안에서 협상 비스무리한 것이 오고 갔을 거라는 건 짐작했을 것이다.

부회장은 사전에 임원에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안내하라고 언질을 줬을 것이고.

우리에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부회장을 의심하는 것이다.

더불어 내게 차마 질문할 용기는 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업무 지시를 받고 오겠습니다.”

결국 의심이 들었나 보다.

그는 우리를 복도에 세워두고 부회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임원이 들어가자마자 지현석이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특허권 분쟁만 들추기로 합의 본 것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해도 됩니까? 약속은 약속인데요.”

나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는 팔짱을 꼈다.

내가 감히 지현석을 평가할 위치는 아니지만 그는 정치나 모략 쪽에는 조금 어두운 것 같았다.

물론 우리 나이대에 지현석 정도면 머리가 휙휙 돌아가는 편이긴 하다.

그러니 부단장을 맡으면서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고.

그런데 간혹 내 계획에 조금 늦게 따라올 때가 있었다.

아까 부회장실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업무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깔끔하고 철저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니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나야 민치호를 보며 배운 것이고.

딱히 자랑은 아니지만 민치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계략 면에서는 최고다.

이런 식으로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있을 때는 내가 보완해주면 될 일이다.

지현석이라고 머리가 아예 굳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우리 목적은 지산을 아예 풍비박산 내려는 게 아니잖아요. 그랬다간 여의도보다 먼저 지산하고 싸워야 하니까.”

“그렇죠. 그리고 우리가 지산을 거덜 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지산 쪽에서도 양보해줄 거라는 생각에서 오늘 협상을 한 것 아닙니까? 적당한 선만 지키면 저쪽에서도 그냥 지켜보기만 할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역시 지현석도 상황 파악 자체는 따라오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협상은 성공한 것 같죠? 그것도 우리가 유리하게. 근데 검사님, 아까 우리가 여기 들어오면서 어떤 생각으로 왔는지 기억하세요?”

“특허권 분쟁을 빌미로 현장 조사를 나온 거였죠……? 그래서 화려하게 털어주려고…… 아!”

하나씩 짚다 보니 지현석도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 협상의 결과로 우리는 마치 특허권 분쟁만 수사하는 것처럼 생각이 박혀 버렸어요.”

지현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군요. 어느새 그렇게 유도되어 버린 거네요. 부회장이 산뜻하게 이야기를 들어줘서 얕봤나 봅니다. 하지만 사정이 어찌 되었건 속아 넘어간 건 우리입니다. 실수를 했든 어쨌든 약속을 한 것 아닌가요?”

나는 웃으며 검지를 흔들었다.

“방금의 그 협상은 길들이기의 초반 단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선심을 쓴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눈앞에 대놓고 먹잇감을 던져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걸 줄 테니 이것만 먹고 돌아가라, 하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넘어갔고, 형식적으로는 거래도 했습니다.”

지현석은 잠자코 내 말을 들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그 자리에서 부회장의 수를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런데 왜 거기서 다르게 협상하지 않은 겁니까?”

“우리에게 거래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요. 아까는 부회장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보기 위한 자리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갈 거다, 네가 던져주는 것만 먹지는 않겠다. 어디까지나 주도권은 우리가 쥐고 있다는 시위입니다.”

지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원래 물건을 사면서 흥정을 할 때는 일부러 가격을 낮게 부르고 조금씩 올리는 법이죠. 부회장은 단박에 특허권 분쟁을 조사해가라고 던졌고. 그게 우리에게 주려고 마음먹은 최소가격이겠군요.”

“네. 만약 거기서 제가 불만을 보였다면 판돈을 조금씩 더 얹어서 달랬겠죠. 그러니 하청 정도는 가져가도 수긍할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아까 말해보고 알았어요. 지산은 우리의 승률을 높게 치고 있습니다.”

“사업가는 올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기에는 판돈이 세긴 하군요. 바로 작년이 세무조사였고 이번에 또 불법 경영으로 기사를 탄다면 타격이 꽤 될 텐데.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내어주기에는 좀 크죠.”

정리가 끝나자 나는 바로 옆의 굳게 닫힌 부회장실 문을 가리켰다.

“한번 두고 보죠. 부회장이 어떻게 나오는지.”

“여기서 부회장이 순순히 나온다면 신재현 씨의 가설에 더 힘이 실리는 셈이 되겠군요.”

지현석도 내 옆으로 와서 벽에 등을 기댔다.

부회장이 내어주는 것이 클수록 우리의 평가에 대한 간접적 지표가 된다.

나는 부회장이 승낙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과연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화를 낼까, 아니면 순순히 납득할까?

선물을 풀기 직전 두근거리는 마음이었다.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부회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임원이 나왔다.

아까 들어갈 때는 땀을 비 오듯 흘리더니 지금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대답은 어떠십니까?”

“그게……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으시던데요. 특허권 분쟁, 하청 업체, 그 외에도 더 원하는 게 있으면 내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임원은 우리가 앞에 있는데도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지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지현석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가 선을 넘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시험하는 듯한 느낌도 났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다.

부회장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사단을 높게 쳐주고 있었다.

우리는 애써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지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검사님은 연구부서 쪽으로 가보세요. 저는 하청 업체 털겠습니다.”

“네. 수사관 반을 붙여 드릴 테니 이따 작업 끝나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사관들을 대동한 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

복도 끝으로 향하는 지현석의 뒷모습에는 자신감이 뚝뚝 묻어났다.

나 역시 임원을 앞장세우고 성큼성큼 걸었다.

조금이나마 목 언저리에 걸려 있던 불안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

기자들은 언제나 기사에 목마르다.

진실을 캐는 사명감을 가진 기자들이든 조회수나 신경 쓰는 족속들이든 새로운 기삿거리를 찾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내용이 최근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조사단의 내용이라면 더했다.

지금 조사단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바로 기자들이 가장 잘 실감하고 있었다.

조사단에 대한 기사는 뭐가 되었든 바로 조회수가 폭발했다.

스무 줄의 기사 중에서 새로운 사실이 단 한 줄만 들어가 있어도 그랬다.

하다못해 오늘 조사단이 서울에서 회의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모 처의 팀장들이 참석했다는 내용만 있어도 사람들은 온갖 이유를 추측하며 댓글을 달았다.

신재현은 과분하게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랑을 그냥 받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가 의도한 대로 기자들은 지산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야 이렇게 요란하게 움직였으니 당연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지산 문턱에 포진한 것은 기자들이 모여들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부단장이 한꺼번에 나타나자 기자들은 이것이 특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신재현이 기삿거리를 던져주는 거라는 것도.

때문에 양손 가득 상자를 든 수사관들을 거느리고 신재현과 지현석이 지산 1층에 나타났을 때, 이미 환영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기자들은 수사관 아무나 붙잡고 한마디만 던져달라고 사정했다.

수사관들 또한 익숙하게 기자들 틈을 헤치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것은 조사를 하면 으레 하는 행사 같은 것이었다.

기자들도 입을 꾹 다물고 물러나는 수사관들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순순히 보내주고 대신 느긋한 걸음걸이로 나오는 두 부단장을 붙잡았다.

무슨 말이 나오든 무조건 특종이다.

기자들은 조용히 침을 삼키며 두 부단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바짝 달라붙어서 질리도록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말실수 한둘은 나오는 법이니까.

그러나 지금 기자들 중에 섣불리 압박을 해본다거나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들이미는 기자는 없었다.

이것은 기자들조차 신재현을 두려워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전에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제주도의 신문사 사건에서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한 언론인은 없었다.

“제가 말하죠. 검사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둘 다 기자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둘 중 기자들에게 넘어가지 않을 만큼 잔머리가 굴러가는 것은 단연 신재현이었다.

지현석이 먼저 차를 몰고 떠나자 신재현은 기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무작정 재촉하거나 밀치지 않는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부단장님! 일전에 분명히 조사대상을 암시하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오늘 지산으로 나오신 이유는 뭡니까?”

두려움은 있더라도 질문의 수위는 낮추지 않았다.

그것은 국세청이 일전의 사건으로 어느 선을 그어줬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에서 도를 넘은 행동을 한 적은 처음이 아니다.

신재현의 가정사는 이제 와서 모든 사람들이 술안줏거리로 삼을 정도로 퍼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적인 영역이다.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깊이 파고들어 간 것이다.

신재현의 거침없는 수법을 비판하는 사람도 몇 있었다.

국세청은 그런 기자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즉, 가짜뉴스만 아니라면 어떤 비판이든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기자들이 언론탄압을 외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어디 보자,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

지금 여기서 하는 말은 중요했다.

오늘 지산까지 온 목적이 이들의 기사를 통해서 전달되어야 했으니까.

더불어 일반인의 기대도 충족시켜줘야 했다.

조사단이 설립되고 처음으로 있었던 외부 출입이니까.

여의도가 아닌 기업체로 압수수색 나온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줘야 했다.

가뜩이나 조사할 것이 많아서 국회의원을 잡으러 갈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한 달만 무소식이어도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그러니 지금 신재현이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잊혀지지 않기 위한 수이기도 했다.

“지산에서 말입니다.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거든요.”

“뭘 말씀이시죠?”

역시 이 시점에 그냥 지산을 친 게 아니었다.

살살 풍겨오는 특종의 냄새에 기자들은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왔다.

“조사단과의 거래를 시도했지 뭡니까.”

이건 특종이다!

거래라는 말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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