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7)
조사단 서울본부에 모인 팀장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조사단의 본래 목적인 업무 자체도 꽤 만만치 않은데 업무 외적인 사건이 터져 버렸다.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종류의 건이었다.
어제 회의가 끝나고 다급히 원래 기관으로 돌아가 팀원들에게 그것부터 물었다.
집에, 아니면 주변인에게 우환거리가 없냐고.
어떻게 알았냐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조사단에 대한 공격이 맞구나, 하고.
부단장의 명령이 있었으니 일단 알아본 것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자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우리 딸이 이번에 공기업 인턴 원서 넣었는데 걱정이네요.”
딸이 무조건 붙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실력과 상관없이 무조건 떨어뜨린다면 문제다.
그것도 조사단 팀장의 딸이라는 이유로 떨어진다면 딸에게 미안해서 어떻게 고개를 든단 말인가.
“저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관세청의 나이 지긋한 팀장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우리 팀에서는 벌써 나가고 싶다는 사람이 나왔어요. 이런 말 자체가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건 아는데…….”
팀장이 팀원을 잘 규합하지 못했다는 말을 스스로 고백하는 셈이지만 그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숨긴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고 자기 팀만의 문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사례는 공유해야 했다.
“저놈들이 드럽게 치사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불이익당하는 거면 참겠는데 가족들 건드리는 건 선을 넘었죠. 그걸 어떻게 버텨요? 나가겠다는 직원도 이해합니다.”
“불이익당한 건 다른 팀원이에요. 같은 팀에 그런 사례가 보이니까 지레 겁먹고 원래 있던 부서로 돌아가겠다고 한 겁니다. 그것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닌데…… 제가 서운해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그래서 팀 나갔습니까?”
“일단 잘 달래놨습니다. 첫날이기도 하고 오늘 긴급회의 하기로 했으니까 뭔가 대책이 나올 거다. 그거 보고 옮겨도 늦지 않다고 했죠. 사실 대응 못하면 억지로 희생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원래 부서로 돌려보내 줘야죠.”
나이 지긋한 팀장들이 한숨을 쉬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자신들이 최대한 달랜다고 달래보았는데 그래도 분위기가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과연 대책이 있긴 할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게 수습이 가능하긴 합니까?”
사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외적으로 압박이 들어오는 것 말이다.
공무원 중에도 위에서 압박이 들어와서 승진에서 빠지거나, 지방으로 발령 나는 예가 수두룩했고 인기가 없는 한직으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자를 수는 없으니 업무를 몰아준다거나 구박하는 식으로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이기는 것은 힘 있는 자였다.
당하는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피해 본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어제 바로 알아보라는 지시가 내려온 걸 보니 상황 파악은 무척이나 빨랐는데 문제는 대처죠.”
하필 부단장 둘이 굉장히 젊었다.
능력 면에서야 이론이 없다.
그러나 이건 경우가 다르다.
하다못해 공무원들의 윗선에서 외압이 들어온 거라면 괜찮았다.
두 젊은 부단장이 직접 가서 들이받아도 할만했고, 그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국세청장이나 단장인 경제수석이 가서 몇 마디 하면 된다.
장관이라고 해도 청와대 경제수석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불이익을 받은 이들은 민간인이었고, 불이익을 준 이들도 민간 사기업이다.
공무원이 손을 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부단장님들 오기 전에는 대책을 마련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네요.”
일부러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모인 이유가 그것이었다.
두 젊은이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머리를 맞대보려고 한 것이다.
경력 되는 자신들도 가슴이 덜컥하는데 두 젊은이는 얼마나 무섭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지난밤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단장이신 경제수석님이 압박을 주면 어때요? 정치인도 사기업에 압박 줘서 이런 사태가 됐는데 청와대 수석 정도면 정책 갖고 이런저런 협박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탄핵당하겠죠.”
“그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요?”
“국회에서 얼씨구나 하고 대통령을 탄핵하겠죠.”
“크음…….”
팀장들이 머리를 맞대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사무실 문이 덜컥 열리며 신재현과 지현석이 들어왔다.
밖에서 만나서 따로 얘기라도 하는 건지, 이 둘은 회의에 출근할 때면 항상 함께였다.
하루 만에 대책이 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현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만 해도 잘하고 있다고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슬쩍 표정을 살펴보니 의외로 신재현은 평온했다.
조금의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신재현은 거침이 없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서 팀장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이 생각한 오늘의 회의는 이런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재현과 지현석을 얕본 것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사람다운 것 아닌가.
그런데 신재현은 제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손에 든 종이를 쭈욱 돌렸다.
스테이플러로 고정된 종이 뭉치는 맨 위에 각 기관과 팀장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팀장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각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나누어 가졌다.
두께와 내용 또한 사람마다 달랐다.
어떤 팀장이 받은 서류는 책처럼 두꺼웠으며 어떤 것은 대여섯 장 정도로 적은 것도 있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당연한 질문에 신재현은 가볍게 턱짓했다.
“여러분이 칠 회사와 기관들의 목록입니다.”
“혹시 조세범의 차명 회사입니까?”
이 조사단의 목적부터가 조세범을 조사하고 마땅한 절차를 밟는 것이니 당연히 조세범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탈세한 범법자도 있고 깨끗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신재현은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린 뒤 깍지를 꼈다.
그리고 살기가 도는 눈동자로 사무실을 훑었다.
작정한 신재현을 몇 번 본 지현석은 잠시 움찔하고 말았지만 팀장들은 눈이 마주치자 흠칫했다.
올해 막 스물아홉이 된 젊은이가 가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금부터 잘 들으십시오. 의아한 점이 있겠지만 다 듣고 질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지금 드린 것은 저쪽의 외압을 받고 우리 조사단원의 친인척에게 부당한 조치를 취한 기업 및 기관의 명단입니다.”
당장에라도 질문하고 싶은 듯한 얼굴의 팀장들이 뚫어져라 앞을 바라보았지만 신재현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했듯 지금은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보통 조사할 때는 보안 유지가 원칙인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조사에는 일가견이 있으시잖아요, 그렇죠? 사방에 알려 가면서 대대적으로 티를 내면서 조사해주세요. 그리고 가차 없이 탈탈 털어주세요. 사람도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받잖아요. 이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처럼 조사하는 거니까 검진해준다 생각하시고 싹 털어주시기 바랍니다.”
팀장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지금 무슨 소린가, 싶던 아리송한 얼굴에서 점점 신재현의 말뜻을 깨닫고 파리하게 질려 갔다.
지금 부단장이 하는 말은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그, 그건 권한 남용입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팀장 하나가 중얼거렸다.
숨이 막힌다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공무원의 입장에서 이런 지시는 기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재현은 단호했다.
분명 이 자리에 있는 팀장들은 아군인데도 마치 찔릴 것 같은 기세가 훅훅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요? 조사단원은 백 명에 달합니다. 그들의 친인척과 친구들은 족히 수백 명이 되죠. 지금 피해를 입은 분은 겨우 열여섯 명이죠?”
“겨우요?”
저런 수식어가 붙기에는 피해자가 많았다.
팀장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자 신재현은 단언했다.
“네. 겨우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오늘은 또 누가 어떤 피해를 입을까요? 이번 주가 지나면 몇 명으로 늘어날까요? 한 달 후에는 어떨까요? 여러분의 친구, 자녀, 형제가 도산에 몰리고 해고당하고 거래가 끊길 겁니다. 저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압박을 주고 괴롭히는지 여러분은 아시잖아요.”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언제나 현실은 무겁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러니 신재현의 말에 이 일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팀장들은 쉽사리 동의할 수가 없었다.
평생 원칙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것은 권한 남용이었다.
그 심정을 아는 것처럼 신재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납득하기 어려우시면 이렇게 생각해주세요. 피할 수 없는 상부의 부당한 지시라고. 많이 있었잖습니까. 명령은 내려왔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요. 지금 제가 드린 지시가 바로 그렇습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든 결정은 제가 했습니다.”
팀장들이 멍하니 시선을 돌렸다.
공무원이 강제로 따른 명령이라면 당연히 명령권자의 잘못이 된다.
신재현은 지금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야 부단장이자 실무책임자인 그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뻔했다.
팀장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부담을 덜어주려고 회의했던 건데…….’
일부러 일찌감치 나와서 머리를 맞대도 답이 없던 것을, 지금 신재현은 그 답과 함께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말까지 전했다.
“조사단은 제가 지킬 겁니다. 앞으로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게 할 거예요. 이왕이면 그렇죠, 다들 두려워하게 할 겁니다. 감히 건드릴 엄두도 못 내게.”
더 이상 팀장들은 못한다며 반대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마웠기 때문이고 원칙을 들먹이며 그를 막을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
회의실 안을 훑는 신재현과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말만으로 이 정도 압박을 느껴본 적은 꽤 오랜만이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만 현장 조사는 오후부터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한다 해도 어차피 오후가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굳이 시간을 지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팀장들이 다시 고개를 들자 신재현이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코트를 챙겨 들었다.
“여러분께서 편하게 움직이실 수 있도록 압박을 해 드릴까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 털어도 되는지 그 선을 모르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요.”
감이 안 잡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신재현이 말로는 탈탈 털어주라고 하지만 이게 조사단의 본 업무가 아닌데 어디까지 쳐도 되는가.
주저하는 마음도 있다.
신재현은 지시만 내리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선봉까지 서겠다는 것이다.
내내 가만히 있던 지현석도 함께 일어서며 덧붙였다.
지시가 양쪽에서 내려가서 체계에 혼선이 생길까 봐 신재현에게 회의 주재를 맡긴 것이다.
“일부러 요란하게 쳐들어갈 거니까 아마 기사 뜨겠죠? 그럼 그때부터 편안하게 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가차 없이 칠수록 조사단원들은 안전해집니다. 진행 상황은 수시로 신재현 부단장님 쪽에 보고해주세요.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려는 둘을 향해 팀장 하나가 물었다.
“요란하게요? 그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야 할 텐데, 가장 먼저 어딜 치시려는 겁니까?”
신재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도저히 청렴과 조사단을 상징하는 공무원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음흉한 웃음이었다.
“어디를 가야 화제가 될까 고민을 해봤는데 마침 국토부 직원분의 동생분이랑 특허권 분쟁이 붙은 대기업이 하나 있더라구요. 마침 예전에 한 번 나갔던 곳이라 인사차 가볍게 털어볼까 합니다.”
“……나갔던 곳이요?”
신재현이 조사 나갔던 대기업이라면 딱 둘밖에 없다.
팀장들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딱딱하게 굳었다.
“맞아요. 지산으로 갑니다.”
아주 작정했구나.
팀장들의 머릿속에 일제히 스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