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4)
내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직원들이 하나둘 얼굴을 펴기 시작했다.
“그렇죠……? 팀장님이라면 방법이 있으실 줄 알았어요.”
“괜히 위에서 부단장 자리 준 게 아니겠죠. 차기 국세청장님의 왼팔이나 다름없는데.”
‘차기’라는 말부터는 나름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직원이 흥분상태였나보다.
내 귀에는 충분히 들렸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시려는 걸까요?”
“에이, 그런 걸 우리에게 알려주진 않죠. 우리가 알 필요도 없고요.”
“그렇지. 뒤에서 어떻게 움직이시든 우리는 그냥 믿고 기다리면 되는 거죠.”
직원들은 조사단을 움직이는 무언가 거대한 그림이 있으며 내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력이 있는 건 맞지만 이 상황을 예상하고 준비했던 건 아니다.
무작정 당할 생각인 것도 아니지만…….
“그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씀드리면 되나요?”
직원 하나가 물었다.
그 얼굴에는 아직 조금의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 보였다.
정말 답이 없다 싶었으면 조사단을 나가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묻는다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조사단원으로서 계속 할 일을 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양손의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지금의 나는, 필사적이었다.
“예. 어떤 피해든 말씀해주세요. 개중에 정말 우연일 수도 있으니까 저희가 철저하게 조사해보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조차 떨쳐 버린 직원들이 환한 얼굴로 답했다.
“넵!”
사무실 분위기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직원들이 안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위기는 넘긴 거겠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은 이게 무섭다.
안에서부터 균열을 만들고 사람의 마음에 의심을 심는다.
오늘 내가 확신을 주지 못했다면 조사단에서 부서 이동을 신청하는 사람이 몇 명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이 빠져나가다 보면 결속력은 걷잡을 수 없이 약해지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에게도 유혹의 손길이 뻗쳐올 것이다.
만약 내가 유진환이라면 그렇게 유도했을 것이다.
“그럼 원래 업무로 돌아가죠. 조사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삼키고 내 자리로 다가갔다.
1반과 2반의 반장이 대표로 서류철을 가져왔다.
“하동문 의원의 보좌관이나 비서 같은 주변인 쪽을 확인해 봤습니다. 검찰에서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월급으로 신고된 급여 이외에 추가로 들어간 돈이 있었습니다. 추가금은 바로 출금했고요. 유진환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찰 쪽에 얘기해놨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유진환은 검찰하고 경찰 양쪽에서 착수해서 그렇습니다. 내일 서울본부에서 한 번 더 모이기로 했으니 보고 들으면 바로 전달 드릴게요.”
“넵.”
채유림이 체크리스트와 진행 상황표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자마자 2반의 보고가 이어졌다.
“차주혁 의원은 부인과 딸, 둘 다 고가의 골동품을 들여온 정황이 있습니다. 관세청에서 확인중이고, 저희는 현재 가족 명의로 과거 거래한 부동산들과 그 자금 출처 쫓고 있습니다.”
진행도가 느린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자금 출처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건 퍼즐 작업처럼 금액을 맞춰나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 맞는 부분이 더 많다.
그럴 때는 방법이 없다.
끝까지 파내보는 수밖에.
“차명은 현재 찾고 있습니다. 2반에서 차명으로 의심하고 조사 중인 명단은 현재 이렇습니다.”
“잠시만요.”
나는 2반 반장을 잠시 세워둔 후에 그가 준 명단을 훑었다.
차주혁 의원실을 거쳐 간 보좌관, 비서, 운전기사, 그리고 가사도우미에 이르기까지.
차명에 이용되었을 확률은 희박하지만 선거운동 도우미까지 명단에 올라 있었다.
차주혁과 옷깃만 스쳐도 일단 조사해보겠다는 것 같다.
아주 쌍끌이하듯이 이름들을 건져놨다.
내가 잠시 명단을 보고 있자 2반 반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가 찔리는 목소리다.
“좀 많죠……? 죄송합니다. 인턴이나 하루 이틀 일한 알바생은 뺄까 했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몰라서요. 다 넣어 봤습니다.”
확실히 조금 오버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다.
차주혁도 알바생한테 차명 계좌를 맡기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좋았다.
모두들 진심이라는 뜻이니까.
그만큼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반장의 말대로 지금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속에서 조사하고 있다.
철저하게 뜯어보고 싶은 심정은 다들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나는 눈치를 보고 있는 반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잘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아닐 것 같다 싶은 사람들도 우리 심증으로 배제하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조사해서 증거를 갖고 빼는 게 좋다고 봅니다. 반장님의 판단이 옳아요.”
“예, 팀장님.”
의심 가는 몇 명만 콕 집어서 조사하면 물론 진행이 빠르다.
그렇게 한다 해도 99% 확률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데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말씀드린 대로 다 조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반장이 미약한 한숨을 쉬었다.
아마 앞으로 해야 할 작업이 몇 배로 늘어난 걸 막상 하려니 암담해서 그럴 것이다.
스스로 자초했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작업량인 건 틀림없다.
“잠시만요.”
나는 2반 반장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펜을 들어 이름 수십 개를 주르륵 지워나갔다.
대부분 차주혁과 별 상관이 없는 선거운동 알바생 같은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안 파도 됩니다.”
“어? 그렇습니까?”
내가 거침없이 이름을 지운 명단을 내밀자 2반 반장이 의아해하며 날 살폈다.
그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질문을 하려다가 이내 이해한 듯 명단을 받아 들었다.
“다른 기관과 조사하는 게 이렇게 편하군요. 쓸데없는 시행착오를 안 해도 되니.”
반장은 다른 쪽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이럴 땐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근거로 이름을 지웠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팀장님,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요. 속전속결로 하려고 하셨던 것 아닌가요?”
아직 책상 앞에 서 있던 채유림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렇다고 어중간하게 준비한 채로 공격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차라리 시간이 걸려도 자세하게 알고 들어가는 편이 좋습니다.”
이건 오늘 오전에 지현석에게도 했던 말이다.
채유림도 아마 그게 걱정이었나 보다.
그래도 걱정스러운 얼굴의 채유림에게 덧붙였다.
“이번 일만 해결되면 저도 본격적으로 조사를 도울 겁니다. 그럼 좀 빨리 끝날 거예요.”
“……예? 지금도 조사단 일 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그녀가 말한 조사단 일은 자료 취합해서 지시하고 각 기관 간 조율하는 일을 말하는 거겠지.
내가 말하는 ‘본격적’이라는 것은 아예 내가 기초자료를 다 훑겠다는 소리였다.
조사단 직원의 친인척에 대한 공격이 해결될 때쯤에는 두 의원에 대한 기본 자료도 꽤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럼 날 잡고 쭉 훑으면 어딜 조사하고 어디는 넘겨도 되는지 금방 보이겠지.
내 계획은 그랬다.
채유림은 잠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더니 예, 하는 대답과 함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와…… 여기서 더 일한다고? 진짜 몸이 두 세 개쯤 되나? 아니면 하루를 36시간으로 살고 있나…….”
채유림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메일을 열었다.
각 기관에서 보낸 불이익자의 자세한 내용과 그 외의 업무 사항 메일이 수십 통 들어와 있었다.
“후…….”
일이 쌓이기 시작한다.
내일도 분명히 업무 메일이 쌓이겠지.
그럼 오늘 이걸 다 처리해야 내일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
명언 중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는 말도 있던데, 지금 내게는 해당이 없는 말이었다.
이걸 내일로 미루면 내일의 나는 죽어나겠지.
그렇게 메일 하나를 잡아서 열기 시작할 때, 책상 위에 그림자가 졌다.
올려다보니 황민우였다.
“팀장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 지금 몇 시죠?”
시계를 보니 1시 40분이었다.
회의하다가 급하게 접고 내려왔으니 밥 먹을 틈이 없었다.
“팀장님이 운전해서 오신 시간 생각하면 식사 안 하신 것 같은데, 일단 나가시죠.”
“메일 몇 개만 보구요.”
“그거 보시면 금방 2시, 3시 됩니다. 가시죠.”
황민우의 재촉에 나는 억지로 일어났다.
사실 안 그래도 눈에 글자가 잘 안 들어오던 참이다.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심적인 스트레스 때문일까.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잠시 바람을 쐬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복도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자 황민우가 내 왼손을 가리켜 보였다.
“팀장님, 안 아프세요?”
“예? 뭐를요?”
“손이요.”
무슨 소리지?
나는 멈춰 서서 내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웃는 얼굴을 하면서 손을 쥐었는데 그걸 아직도 펴지 않고 있었다.
“어…… 그러네요.”
나는 멍하니 주먹 쥔 왼손을 들어 올렸다.
내 손인데도 쉽게 펴지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왼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나자 손바닥에 선명히 남은 손톱자국이 보였다.
그중 세 개의 자국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황민우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멍했다.
막연하게 웃음이 나왔다.
“팀장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아까 잘하셨잖아요.”
그 말에 나는 황민우가 내 상태를 파악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서울청 TF 시절 팀원들이라면 내가 꾸며내서 웃고 있다는 걸 눈치챘겠지.
그래서 일부러 황민우가 밥을 빙자해서 데리고 나온 거구나.
“혹시 티 나던가요?”
내가 묻자 황민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 직원들은 전혀 몰랐을 거예요. 저희만 눈치챘습니다. 의연하게 대처하셨고,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모두 계획이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나는 손을 내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단원들 그 누구도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각자 몇 명씩 맡아서 모든 단원들 표정을 살피고 있었어요. 다들 팀장님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분위기였습니다. 조사단이 깨질 일은 없어요. 팀장님은 오늘 충분히 할 일을 하셨습니다.”
황민우가 위로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순순히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도로 질문했다.
약한 모습은 나중에 일이 해결되고 보여줘도 된다.
지금은 긴장을 풀고 싶지 않았다.
“직원들이 많이 불안해했습니까? 저 없을 때 흔들리던가요?”
나는 아까 잔뜩 긴장한 상태였고 내 스스로 표정 관리를 하느라 남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자신도 없었고.
다행히 서울청 시절의 팀원들이 사무실의 모든 단원들을 주시했다고 하니 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알아둬야 한다.
내가 앞으로 사무실을 비울 일도 잦을 테니까.
“채유림 반장님이 신경을 쓰시더군요.”
“반장님이요?”
“예. 오전에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파악한 분이십니다. 바로 직원들 상황을 물어보고 팀장님께 전화하더군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졌다.
채유림이라.
보고서에서 본 신상명세가 떠올랐다.
무려 세무사 합격 후 세무공무원 7급 시험을 본 사람이다.
흔히 7무사라고 부르는데, 반포 세무서에서 서울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세청 조사국으로 온 인재였다.
능력도 있는 것 같고 상황 파악도 빠르고 직급도 되고.
내가 자리를 비울 때 믿고 맡겨도 될까?
“고민은 그만하시고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내 속을 꿰뚫은 것처럼 황민우가 말했다.
“고민거리가 아주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서 한숨을 섞어 말했다.
오늘은 드물게 6시에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월의 해는 아직 짧다.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민치호는 자신의 집 거실에 앉아 있다가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이 과장. 우산 가져왔어?”
“아뇨, 청장님. 하나 빌려주시죠.”
“그러지 뭐. 저기서 긴 거 하나 가져가.”
민치호와 함께 술잔을 나누고 있는 이는 바로 이선균이었다.
그는 민치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흘끗 보더니 손에 든 위스키를 마셨다.
“이번엔 효과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신 팀장이 타이밍도 아주 잘 맞췄고요. 이제 제법 흐름도 읽을 줄 압니다.”
“크허허. 그러게 말이야. 손에 좋은 패가 들어오면 그냥 깔 줄 알았는데. 3일 묵히는 건 어떻게 생각했을까.”
손에 좋은 패를 쥐고 있으면 당연히 이기는 법이다.
하지만 그 패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나쁜 패를 쥔 척하고 상대를 끌어들여 더 많은 돈을 걸도록 하는 것.
신재현이 이번에 해낸 것이 그것이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는 국회의원인데…….”
민치호는 주먹을 쥔 채 규칙적으로 팔걸이를 내리쳤다.
툭, 하는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잘하면 현직 국회의원도 반으로 쪼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민치호가 또 무언가 판을 짜고 있다.
이선균은 익히 봐온 모습이었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선균은 가만히 술을 홀짝였다.
얼음이 잘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빗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그리고 9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
-딩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둘은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여기는 민치호의 사택이다.
지금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종종 찾아와 민치호와 대작하는 이선균은 이미 거실에 있었고, 남은 사람은 민치호의 친구인 송대희 지검장 정도였다.
“내가 나가보지.”
민치호는 안방에서 고개를 내미는 아내를 만류하고 터덜터덜 일어나서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이 열린 순간 쏴아, 하는 빗소리와 함께 민치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선균이 앉은 채로 현관 쪽을 내다보더니 거기에 서 있는 청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 팀장!”
어깨에 흐르는 빗물을 털어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수심이 깃든 눈동자로 신재현이 물었다.
“청장님, 오늘 하루만 신세를 져도 되겠습니까?”
민치호는 두말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당연하지.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