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3)
작업이 들어왔다.
비유적인 표현이었고 아주 간단한 말이었는데도 팀장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살벌하게 바뀌었다.
경력자들이 모이면 이래서 좋다.
모두 상황 파악이 빨랐다.
설마 하는 표정을 짓던 팀장들이 내게 물었다.
“괜히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닐 테고. 어디서 들어온 건지는 확인했습니까?”
“아니요. 아직은 모릅니다.”
물론 짐작 가는 곳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함부로 말할 수도 없으니까.
팀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각 기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덮었다.
“급한 건은 대충 끝났으니 오늘 회의는 일단 마무리하고 팀장님들은 각 근무지로 돌아가세요.”
팀장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조사 회의야 당연히 중요하지만 지금 우선순위는 따로 있었다.
“조사단원들의 가족과 친지 중에 갑작스럽게 해고당하거나 민원, 신고 등을 받아 불이익을 받은 분들이 없는지. 또한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분이 없는지. 최우선적으로 이것부터 조사하셔서 최대한 빨리 제게 연락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전부 집계가 안 되더라도 적어도 오늘 시간 지나기 전에는 여부를 알려주세요. 늦은 시간에 전화주셔도 됩니다.”
완벽한 정보보다는 속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판단이었다.
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은 얼굴을 한 팀장들이 다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사무실 안에는 나와 지현석 뿐이었다.
“수작을 걸어올 사람은 국회의원밖에 없긴 한데…… 진짜 국회의원들이 국세청 쪽에 손을 댔다고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조사를 부탁드린 거구요.”
우연의 일치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내가 호들갑 떤 셈 치고 사과하면 되니까.
그런데 진짜라면?
물밑에서 손을 쓰고 있는 거라면?
일분일초가 급했다.
“검사님도 확인해 보세요. 저도 일단 세종시에 내려가 봐야겠습니다.”
“사고 얘기는 뭡니까? 국세청 쪽에 다친 사람도 있습니까?”
“아뇨, 그건 혹시나 해서 말한 겁니다. 하지만 항상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이건 민치호에게 배운 것이다.
“만약 진짜라면…… 저들의 공격이 더 심해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조사를 끝낼 수 있을까요?”
지현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 속전속결을 택한 거겠지.
방어를 할 수 없으니 공격을 한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나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방법도 있긴 하다.
“신재현 씨. 현장 조사와 압수수색을 앞당기는 게 좋겠습니까?”
재차 묻는 지현석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미 조사단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몰아붙인다고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선제공격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대로 압수수색 가면 자료 제대로 가져올 수 있을까요?”
집에 쳐들어가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긁어온다고 끝이 아니다.
정확히 우리가 뭘 찾아야 하는지 알고 가야 한다.
특히나 차명, 페이퍼컴퍼니가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우리가 많이 알고 가면 갈수록 원하는 자료를 찾아올 확률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조사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으니 겉으로 보이는 연결고리는 다 파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님, 압수수색을 두 번 세 번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과하다는 말이 분명히 나올 테고, 여론에서 불리해질 거예요.”
지금은 여론이 우리 편이지만 그걸 놓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적 기대감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니 분명 첫 압수수색 때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거다.
우리는 이것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 높아진 관심 속에서 압수수색 결과 유력 대선주자의 비리를 찾아낸다!
그 임팩트라면 대선주자도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애매한 상태에서 압수수색을 가면 명백한 증거를 놓치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첫 조사 결과 발표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관심에서 멀어진다.
두 번째, 세 번째 발표에서는 그닥 힘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지현석도 사람 파악하는 것 하나는 참 귀신같다.
나는 복잡한 마음에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요. 근데 이러고 싶진 않아서…… 일단 상황 진행되는 거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 다시 모이기로 했으니 하루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또 없나 생각을 해 볼게요.”
나는 심경이 복잡한데 지현석은 한결 안심한 얼굴이었다.
“그럼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요. 정말 손쓸 수도 없는 위기상황이라면 신재현 씨가 이렇게 침착할 리가 없으니까요.”
“제가 지금 침착한가요? 온갖 생각이 다 드는데.”
내가 푸념하자 지현석이 피식 웃었다.
“그런 것 치곤 판단도 빨랐고 지시도 바로 나왔는데요.”
그야 그때는 내가 판단을 내려야 했으니까.
남의 판단을 기다리던 일개 직원 시절처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뭐라도 해야 했다.
“제 판단이 맞았는지는 아직 모르죠.”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애매했던 감정은 뚜렷한 불안감이 되었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이 모든 게 그냥 우연이었으면 좋겠다.
직원들이 예민해서 착각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진짜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차라리 나에 대한 공격이면 이렇게까지 떨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 손끝이 가늘게 떨려오기 시작할 때 지현석이 덜컥 일어섰다.
“아뇨. 최선이었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거니까.”
그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지현석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위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갑시다. 저도 얼른 우리 쪽에 무슨 일 있나 봐야겠네요. 그리고 조사단원 전부 신상명세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혹여나 친인척 중에서 약점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요.”
사실 단원 본인만 일 잘하면 되지, 친인척까지 캐고 싶지는 않았다.
연좌제 폐지된 지가 언제인데.
하지만 지현석의 말이 맞다.
저쪽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미리 알고는 있어야 한다.
각오는 하고 있어야 맞아도 덜 아프지.
나도 잡생각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네요. 여기 있어 봤자 해결이 안 나니까. 일단 뭐라도 움직여보죠. 이따가 다른 부서에서 연락 오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조사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오늘은 외부 일정 없으니까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말은 이렇게 해도 속으로는 이미 직감했다.
우리는 씁쓸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다 말고 도로 들어가서 평소보다 문단속을 철저히 한 것은 덤이다.
***
나는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어떻게 그 긴 거리를 갔는지 모르겠다.
국세청을 들어가면서 다른 직원들의 인사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환영 인사가 돌아왔다.
“팀장님!”
“오셨어요!”
나는 들어서자마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대충 책상 위에 던졌다.
무거운 종이 다발이 쿵 소리를 냈다.
나에겐 그 소리가 지금 사무실에 내려앉은 이 무거운 분위기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잠깐 하던 거 내려놓으시고 주목해주세요. 아까 제가 연락 한 통을 받았는데 그거부터 여쭤볼게요. 일단 양 조사관님, 오빠분이 다니는 기업 이름하고 오빠분 부서 알려주세요.”
“예? 갑자기요?”
“네. 필요합니다.”
“어…… 신기원 카드 제2 영업부라고 알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나는 그 이름을 외운 후 이번에는 2반에 있는 여성 조사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 조사관님!”
“넵!”
“형부가 다니는 회사는 어딥니까?”
“어, 정유회사인데요, 지엔에이 칼텍스라고…… 한 달간 현재 업무 정리하고 중국 지사로 간다고 들은 것 같아요. 정확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형부한테 연락하셔서 소속부서 정확하게 알아봐 주세요.”
“……예?”
어리둥절해 하는 박 조사관을 뒤로하고 나는 1반의 남성을 불렀다.
“다음으로 김 조사관님, 부모님 식당 어디서 하세요?”
“속초인데요.”
“본가가 속초시구나. 영업정지 사유는 뭡니까?”
질문을 받은 조사관은 사정을 이야기하기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뭔가 있다고 느낀 건지 눈에 띄게 안색이 흐려졌다.
“청소년에게 술을 판매했다는 사유입니다.”
“상대가 청소년 맞아요?”
“네. 애들끼리 여행 왔다가 부모님 가게에서 술을 먹었다는데, 나중에 그 아이들이 스스로 신고했다고 하네요.”
“김 조사관님은 당장 부모님께 전화하셔서 영업정지 내린 데가 어딘지, 담당자가 누군지 여쭤보시고 저한테 알려주세요.”
“예? 담당자를요? 저희 부모님이 잘못한 게 맞는데요. 팀장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먹은 조사관은 조심스럽고도 정중하게 물었다.
“여러분께, 정확히는 여러분 근처에서 일어난 그 일들이 진짜 우연인지 알아보기 위해섭니다.”
“설마 의도가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그걸 모르니 알아봐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보고를 들은 건 최 조사관님까지 총 네 분입니다. 혹시 그 외에 친인척 중에서 부당한 해고나 처사를 받은 사람 계십니까?”
내가 하는 말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수런거렸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그들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불안이 점점 번지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책상을 내리쳤다.
다시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지금 가장 최우선적으로 그것부터 알아보세요. 가족들에게 어떤 부당한 일이 있지 않은지.”
“팀장님…….”
“지금 바로요. 어서.”
내가 재촉하자 긴가민가한 상태로 직원들이 각자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표정은 다 비슷했다.
불안해한다.
그 사이 내게도 문자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종시로 내려오는 동안 먼저 각 기관으로 돌아갔던 팀장들이 보내오는 것이다.
내용 역시 짐작한 대로였다.
우리 국세청보다 적긴 하지만 저쪽에도 한두 명씩 피해자가 나오고 있었다.
방식도 다양했다.
민원, 신고, 직장 내 괴롭힘 등등이다.
한두 개가 겹치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정도면 정말 노리고 했다고 봐도 된다.
그것도 지난주엔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오늘 와서 이런 불이익을 받았다고?
이게 우연이라면 로또 당첨되고도 남겠다.
나는 다른 팀장들이 보내온 내용에 내 의견을 덧붙여서 지현석에게 전달했다.
구체적으로 불이익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제 중요한 건 불이익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불이익을 준 사람들이다.
이게 우연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그들을 사주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팀장님, 나간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어느 샌가 채유림이 옆에 다가와 있었다.
황민우와 강혜원 등, 기존 팀원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내가 아닌 국세청의 직원들이었다.
“팀장님, 조사단이 깨질 수도 있어요.”
가장 가까이에 있던 강혜원이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채유림과 강혜원의 말대로다.
사무실 내에 안 좋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일이 어렵거나 실수해서 까이는 거라면 이들도 이렇게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많이 해본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자기가 아닌 주변인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게 공포가 번져가는 이유는 내가 대놓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기는 게 나았을까?
불이익 받은 사람들을 한 명씩 따로 불러서 물어보는 게 나았을까?
아니다.
내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질 일이 아니다.
언젠가 저들끼리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상함을 느낄 테고 그때는 나도 수습할 수 없을 거다.
아예 지금 까발리는 게 맞았다.
나는 딛고 서 있는 발에 힘을 주었다.
여기선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속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저들에게는 믿음을 줘야 했다.
나는 이선균이 늘 그러했듯 은은한 미소를 띠었다.
전혀 겁먹지 않은 것처럼, 지금 이 모든 일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랑비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최대한 자신감 있어 보이게 웃었다.
“제가 여러분께 왜 불이익 받은 주변인을 알아봐 달라고 했을 것 같습니까?”
내가 웃으며 말하자 순간 직원들이 행동을 뚝 멈췄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왜 이 상황에서 웃고 있는가, 왜 물어봤는가.
대충 이런 의문이겠지.
나는 앞에 놓인 직원 책상으로 다가간 후 명치까지 오는 파티션 위에 팔을 살짝 올렸다.
“왜 쉬쉬하지 않고 여러분께 이렇게 공개적으로 물어봤을까요?”
나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
숨 두어 번 들이쉴 시간이 지나자 채유림이 문득 입을 열었다.
“해결할 수 없는 거라면 아예 묻지도 않았겠죠. 우연으로 치부하고 모르는 척해 버리면 이런 분위기까지는 안 되었을 테니까.”
와, 이건 좀 놀랐다.
나도 모르게 채유림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치질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던데, 눈치는 꽤 빨랐다.
심지어 여기서 일부러 치고 들어와서 날 도와주는 것도 그랬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채유림은 확인하듯 말했다.
“아까 영업정지 내린 담당자를 물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팀장님은…… 뭔가 방법이 있으신 거죠?”
아주 좋은 타이밍에 좋은 질문이다.
나는 감사의 눈짓을 하고는 큼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는 것은 덤이었다.
“이번 조사단은 VIP가 직접 명령을 내려서 결성되었고 참여하는 기관만 열 개가 넘습니다. 국세청장님도 눈여겨보고 계시죠. 여기에 수작이 들어올 거라는 건 저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상?
아니다. 방해 공작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친인척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들 앞에서는 모든 걸 미리 아는 팀장이어야 했다.
“시기가 제 생각보다 조금 빠르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가 다급하다는 신호나 다름없으니 우리가 방향을 잘 잡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였다.
할 수 있는 최대한 환하게.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