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57화 (357/500)

357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2)

박원형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난 며칠, 조사단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다.

마치 자신이 역사의 한순간에 들어온 기분마저 들었다.

흔히 역사책에서 유명인을 보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 사람과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박원형은 지금 그것을 직접 겪고 있었다.

그런데 조사단의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상대가 상대라서?

아니다.

일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왜 다른 기관과 협조까지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지방의 한적한 세무서에서야 일어나는 일이 거의 뻔했다.

사람이든 법인이든 매출을 누락하고 경비를 과대 계상하는 아주 기본적인 탈세 방법을 썼다.

원장과 증빙 서류를 비교해 보면 얼마를 탈세했는지 답이 딱 나왔다.

그러나 지금 하는 일은 그런 단순 작업이 아니었다.

애초에 조사 대상자가 어떤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분명히 차명의 흔적이 있는데, 그걸 찾아내는 것부터가 관건이었다.

이 조사단은 항해하는 방향부터가 다르다, 박원형은 첫날에 그것을 깨달았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쉽지 않은 대규모 조사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방향키를 잡은 팀장의 능력이다.

‘우리 팀장님이 좀 어리긴 해도 잘 하겠지?’

처음에야 신재현을 부단장 자리에 앉힌 윗선의 선택을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TF팀을 굴려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지시는 곧잘 내렸다.

자료를 검토하다 이상한 점을 찾아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확실히 능력 면에서는 믿을 만했다.

자연스럽게 그다음으로 든 걱정은 이거였다.

‘압박을 막아줄 수 있나?’

유력 대선주자를 시작으로 300명의 국회의원 전수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그들을 조사하면서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직원들의 의욕이야 물론 충만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야 상대가 상대니까.

국세청이 한 축을 맡고 있는 만큼 상대에게 전혀 틈을 주지 않을 만한 세법 지식도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세법 적용을 잘못했다간 바로 소송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면접 영상이 올라온 순간, 직원들의 근심은 한 방에 날아갔다.

아니,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한참 어리고 경력도 부족한데도.

미친놈 소리가 절로 나오는 영상이었다.

세법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자신들도 힘들게 공부했고, 그것을 실무에 적용하기 위해 일선에서 굴러봤으니까.

세법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신재현이 얼마나 미친 짓을 한 건지 바로 와 닿았다.

“팀장님, 제가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미리 문제 내용 알고 들어갔어요?”

말 나온 김에 묻자는 식으로 채유림이 대놓고 질문했다.

신재현은 바로 정색했다.

“아뇨. 그 짓을 왜 해요?”

“하긴. 한두 문제라면 몰라도 그 정도면 의미가 없죠. 책 던져주고 시험 범위가 책 전체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채유림을 대표로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신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장님이라면 그 정도 면접은 가능하지 않아요?”

채유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전혀 아닌데요.”

그리고서 채유림이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잠깐, 팀장님. 설마 승진할 때 세법 토론 형식으로 면접 보자고 건의한 거 아니죠? 아니면, 혹시 청장님이나 국장님들이 그 방식 좋은 것 같다는 얘기 나왔어요?”

채유림의 의문에 다른 직원들도 곳곳에서 숨을 삼켰다.

입을 틀어막으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아우성쳤다.

“그러면 국세청에서 승진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요?”

“그러니까 문제죠! 팀장님이 해냈다고 우리까지 다 해낼 줄 알까 봐!”

신재현이 결재 도장을 꺼내다 말고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근데 그런 방식 자체는 괜찮지 않아요? 그냥 시험 보는 것보다 확실히 실무를 할 줄 아는지 증명도 되고…….”

직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절실함이 묻어 있었다.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준비 중이던 강혜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팀장님한테 디폴트를 맞추는 거 진짜 나쁜 버릇이에요.”

“그래. 남들이 다 너 같은 건 아니거든?”

장세훈이 거들었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저런 식으로 팀장을 대하는 건 보기 안 좋다.

그래서 첫날 이미 채유림이 장세훈에게 주의를 준 적이 있다.

국세청에서는 팀장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라고.

그러나 이번에는 채유림도 그와 동감이었다.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장세훈이 대신 해준 기분이다.

때문에 채유림은 그냥 한번 장세훈을 보는 것으로 잔소리를 대신했다.

그를 거들듯이 박원형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팀장님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했다간 면직률 높아져요.”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버린 박원형이 움찔했지만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사람이 너무 인간미가 없어도 멀어 보이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 직원들에게 있어 신재현은 정체 모를 무언가였다.

직원들이 너무 질린 듯한 얼굴로 보고 있어서일까.

채유림이 아무렇지 않은 척 결재판 끝으로 신재현을 가리켰다.

“그래도 세법은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네요.”

채유림의 말에 정체 모를 두려움의 대상은 다시 그들의 팀장으로 돌아왔다.

직원들이 눈빛이 하나둘 원래 그를 대하던 것으로 돌아오자 신재현이 은근슬쩍 감사의 뜻으로 눈인사를 했다.

채유림은 그에 이렇게 화답했다.

“저도 한 세법 해요. 나중에 기회 되면 꼭 보여드릴게요.”

“네. 기대하겠습니다.”

***

조사단이 결성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아무리 평소 전화나 메일로 협조하고 있다고 해도 많은 기관이 모인 단체다.

서로 어느 부서가 어떤 조사를 하고 있는지 업무를 공유할 필요도 있고, 진행도를 체크할 필요도 있다.

더욱이 이 조사단의 가장 위태로운 점은 각자 떨어져서 일한다는 것이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잡음이 나기 쉽다.

상위 명령권자가 어릴수록 더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은 필수적으로 서울 본부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신재현은 국세청 지부를 대표하는 팀장이자 조사단의 부단장 자격으로 서울로 출근했다.

다른 기관 지부의 팀장들과 회의를 마친 후 본청으로 돌아오면 아마 오후나 될 것이다.

팀장이 없는 사무실.

책임자가 자리를 비웠지만 흔들림 없이 각자 맡은 대상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뭐지? 이상한데…….’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던 채유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 주 금요일에 퇴근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은 직원들이 불안해 보였다.

‘불안할 요소가 하나도 없는데.’

채유림은 손끝에 턱을 괴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길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팀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채유림이 아무 이상 없이 이 사무실을 관리해야 했다.

굳이 그것만이 아니라, 바쁜 팀장이 신경 쓰지 못한 곳을 자신이 잡아내야 했다.

무언가가 삐그덕거리고 있다.

여러 조사팀을 다녀본 그녀의 감각이 소리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대체 이유가 뭐지?’

채유림은 하나둘 가능성 없는 후보들을 제거해 보았다.

상대가 국회의원이라 직원들이 겁먹었는가?

아니다. 그런 단계는 이미 저번 주에 지났다.

지금은 국회의원을 친다니 재밌겠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럼 팀장이 자리를 비워서 그런가?

그럴 리가. 팀장의 공식 직함은 부단장이고 외부일정이 있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의 대리를 맡을 반장도 둘이나 있고, 그가 서울청 시절부터 함께 해온 팀원들도 여기에 있다.

사무실의 안정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다음 가능성으로는 팀장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어서?

그것도 말이 안 된다.

팀장은 이미 실력 행사를 했다.

그 영상을 보고도 아직 그를 믿지 못한다면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지.

영상에서 얼마나 어려운 대화가 오갔는지 모른다는 것은 곧 세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결국 다 지우고 보니 채유림의 손에 남은 가설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뭐지? 뭔가 있는데…… 팀장님이라면 눈치챘으려나?’

조사단 첫날이라면 팀장이나 자기나 별 차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봤다.

그라면 여기서 자신이 보지 못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까?

지금 여기에 필요한 건 자기가 아니라 팀장인데, 진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나도 반장인데.’

이럴 때는 직진이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물어보는 것이 실마리가 될 때도 있었다.

채유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 안을 쭈욱 훑어본 후, 중간쯤 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을 불렀다.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에 무의식적으로 손톱 끝을 물어뜯던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최영진 조사관님.”

“예?”

이름을 불린 것뿐인데도 남자는 옆구리를 바늘로 찔린 것처럼 놀랐다.

잔뜩 예민해진 눈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최 조사관님, 댁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예에에?”

순간 채유림의 머리에 스친 생각은 ‘과하게 놀라네’였다.

고민거리가 있나 해서 물어봤는데 진짜 집에 우환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한 눈치 합니다.”

채유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안색이 안 좋으세요?”

사적인 일이라 대답을 안 할 줄 알았는데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도 내심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 동생이 국회도서관에 인턴으로 다니는데요, 지난주까지만 일하고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했답니다.”

“국회도서관이요……?”

채유림은 자신의 생각을 취소했다.

이 남자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국회도서관에서 인턴을 잘렸다는 말을 듣자마자 느껴진 이 껄끄러움.

인턴이라면 언제든 잘릴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들어가는 거고.

그런데 직장이 국회도서관이라는 것에서 기분이 확 나빠졌다.

뇌 언저리에 무언가 턱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이 남자도 느꼈던 것이다.

“어? 최 조사관님 동생도 잘리셨어요? 우리 오빠도 비슷한데.”

“양 조사관님 오빠분은 어디 다니세요?”

“대기업이에요. 실적이 좋지 않아서 발령 대기 났대요. 오늘부터 창고지기 해야 한다고 우울해하던데…….”

채유림의 머리에 울리는 경종이 더욱 커졌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감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에휴, 저희 집은 더 큰 난리가 났어요. 부모님이 식당을 하시는데 지난주에 어떤 민원이 들어갔는지 영업정지 먹이겠다고 담당자한테서 전화 왔었대요.”

“저는 형부가 토요일에 갑자기 회사 불려 가더니 무슨 지사 발령 났다고…….”

각자 사연을 들어보자면 다들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도!’라고 외치며 일어나는 사람이 총 넷이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채유림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 현장 조사 나갈 때만큼이나 긴장감에 목이 탔다.

“신기하네요. 불행은 원래 한꺼번에 오는 법인가?”

“액땜 한다고 생각해야죠, 뭐. 조사단이 잘 되려나 보네.”

“올해 삼재인가?”

아니, 절대 아니다.

채유림의 머리에는 가설이 하나 있었다.

그냥 기우였으면, 예민한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음모론이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서로를 보며 씁쓸하게 웃는 조사관들을 보자 덜컥 겁이 났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머리 위에 칼날이 매달린 것처럼 보였다.

순간 두려움이 채유림의 머리 위에도 내려앉았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두려움은 천천히 흘러내려 발끝에 고이고 허리를 지나 심장까지 차올랐다.

‘무서운 새끼들. 손에 쥔 걸 놓기 싫어서 이렇게까지 나온다 이거지?’

그리고 그 두려움에 잠식되려는 순간 신재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 해도 알려야 한다.

아니, 착각이라면 더 좋았다.

신재현이 자신의 가설을 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채유림은 핸드폰을 들었다.

***

“유진환이 서울로 돌아왔다구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경찰 쪽에서 나온 대표자는 날 마주 보며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신 유진환이 서울로 들어온 게 확인됐습니다. 생활 반응도 근 일주일간 서울에서만 나왔고요.”

나는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놈은 사람 목숨마저 내게 날리는 경고장으로 써 버렸던 놈이다.

지금 이 시기에 서울로 돌아왔다면 분명 음지에서 뭔가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지현석이 내 얼굴을 살폈다.

“걸리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검사님. 권력자가 자기 권력을 잃을 위기가 오면 어디까지 추락합니까? 검사님은 보셨을 것 아닙니까.”

내 뜬금없는 질문에도 지현석은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다.

“한계가 없죠. 그 권력을 잃는 순간 자신의 허물을 감춰 줄 방패가 없어지는 건데요. 모든 걸 잃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짓이라도 할 걸요.”

“그럼…….”

내가 덧붙이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반장 채유림이었다.

내가 회의 중인 걸 알면서도 문자가 아닌 전화를 걸었다는 건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회의에 참여한 팀장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팀장님, 급한 일입니다. 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하시고 하나씩 말씀해 보세요. 듣고 있습니다.”

채유림은 꽤 흥분한 상태였다.

그녀는 최대한 간결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일단 제가 갈 때까지 평소처럼 행동하세요. 금방 갈 겁니다. 걱정 마세요.”

-예, 팀장님.

내게 털어놨기 때문인지 채유림의 목소리가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전화를 끊자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채유림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건 이상했다.

당장 뛰쳐나가 국회의원이고 뭐고 멱살을 잡고 패대기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로 이가 갈렸다.

“무슨 일입니까?”

다른 팀장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지현석이 물었다.

나는 도로 시선을 내리고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저희 국세청 쪽에 작업 들어온 것 같습니다.”

팀장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