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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356화 (356/500)

356화. 우리 팀에는 괴물이 산다 (1)

온 국민이 흥분하며 떠들썩한 이때.

초상집 분위기인 곳이 딱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신재현 팬카페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곳, 국회의사당이다.

그중에서도 제1야당의 사무실에 모인 의원들은 어느 한 명의 눈치를 보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했다.

제1야당의 큰 어른이자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한 5선의 국회의원, 하동문이 상석에 앉아 이를 뿌드득 갈고 있었다.

하동문이 국회의원 생활을 한 것만 20년, 그 전에 정계에 입문한 것까지 합치면 25년은 족히 넘는다.

남들이 찾는 평생직장이 하동문에게는 바로 국회였고 정치판이었다.

그는 아무 힘 없는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부터 이 국회에서 살아왔고 지금은 국회와 일심동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 하동문이었으니 생각대로 안 되는 판이 처음은 아니다.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3선 때는 꼬투리를 잡혀 공천을 못 받을 뻔했다.

4선 때는 당 대표 직을 두고 당시 당내의 유력주자와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여당의 중진 의원이 자신과 같은 지역구에 전략공천으로 나와 고배를 마실뻔한 적도 있었다.

언제나 경쟁자는 있었고 그때마다 방법을 찾아왔다.

속이야 어떨지 몰라도 항상 여유 있는 척, 판세를 이끌어온 하동문이 오늘은 그 초조한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동문 의원님, 일단 진정하시는 게…….”

“나는 지금 침착합니다. 아니면 뭡니까, 진짜 흥분한 게 뭔지 보여드릴까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이미 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의원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차라리 일개 의원 하나의 문제라면 괜찮다.

유력 대선주자라 해도 당이 살기 위해서라면 칼을 빼 들 수 있다.

대선주자의 권력은 곧 지지율과 돈에서 나오는 법.

그는 여전히 지지율 30%에 육박하는 후보였으며, 돈과 약점을 이용해 당을 틀어쥔 권력의 화신 그 자체였다.

하동문을 버리기에 하동문은 이미 당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 사실 지금 이 사태는 하동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동문 하나에게 책임을 미루기에는 다른 중진 의원들도 찔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결국 의원들은 살기 위해 하동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동문 의원님, 뾰족한 수가 없겠습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동문은 골이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동문이 침묵하자 안달 난 중진 의원들이 저마다 불만을 토로했다.

“분명히 그걸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것은 하동문이 시작한 신재현 흠집 내기 여론전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선빵을 날린 것은 하동문인데 결국 승자는 신재현이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더욱 신재현이 활동하기 좋은 배경이 갖춰졌다.

이제 여론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국회의원도 자질을 검증할 때가 왔다!

자질 검증!

똑바로 살아온 놈들이라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면책 특권의 뒤에 숨어 온갖 비리를 저질러온 놈들이라면 지상 최대의 위기였다.

진짜 모가지가 뎅강 날아가게 생겼으니까!

“의원님들 영상 보셨습니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묻자 봇물 터진 듯 푸념이 쏟아져 나왔다.

“그놈 진짜 말도 안 되는 놈입니다. 제가 그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어요!”

그 긴 걸 대체 왜 봤냐고 묻지는 않았다.

이 중에서도 3시간 풀 영상을 본 사람이 꽤 있었다.

이유?

그야 뻔했다.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혹여라도 면접 장면에서 봐주기가 있지는 않았는지,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닌지, 말실수는 없었는지.

조금이라도 반격할 건수를 잡기 위해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어떻게 이 세상에 그런 괴물 같은 놈이 있을 수 있냔 말이에요. 그거 인간 맞습니까?”

“제가 작정하고 전문가들한테 전화 돌려봤는데, 질문자나 대답자나 세법 지식이 수준급이라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신재현 칭찬이나 듣자고 자문을 구했겠냐고요! 전문가라는 양반들이 남 속도 모르고!”

“업계에 아주 난리도 아니랍디다. 공무원들이야 대놓고 말 못 하니까 조용한데, 세무사 업계에서는 모이기만 하면 그 소리래요. 물건이 나왔다고.”

“세무사 놈들 맘에 안 드네. 불난 데 기름 붓는 거야, 뭐야.”

“그 긴 영상에서 정말 건질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까?”

중진 의원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처지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놈 팬이 될 뻔했다니까요. 예비 청문회 연습시켰나?”

“진짜 왜 하필 적이 되어서…… 그런 놈이 내 밑에 있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었을 텐데. 국세청은 대체 어디서 그런 놈을 주워다…… 아니지, 참. 시험 봐서 지가 들어간 거지? 하, 진짜 국세청 노났네, 노났어.”

“당에 인재가 없다고 허구한 날 노래를 부르는데 왜 항상 그런 인재는 남의 편인지 모르겠습니다. 아깝다, 너무 아까워.”

내내 초조한 기색을 보이던 의원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지금 남의 얘기 하십니까! 그런 말이 나와요? 다들 아주 느긋하십니다!”

여기서 화내는 것은 곧 자신이 뭔가 많이 해 먹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사치였다.

어차피 다 비슷한 처지다.

지금은 대책을 강구할 때였다.

“그 방법 진짜 좋았는데 왜 안 통한 겁니까! 뭔가 중간에 실수라도 한 겁니까?”

의원이 통탄하자 하동문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나에게 책임을 돌리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제 코가 석 자라도 말은 바로 하세요! 김 의원이라면 그 이상의 대책을 낼 수 있습니까?”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다른 의원이 그를 살살 구슬렸다.

“저도 하 의원님의 계책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절한 한 수였고, 최선의 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놈이 그렇게 빠져나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의원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신재현이 거꾸러질 거라 생각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확실했다.

흔히 그들 사이에 ‘메시지에 틈이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해라’라는 말이 있다.

신재현이 국회의원을 조사한다는 것은 지금 와서는 정설, 정확히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니 신재현을 공격한다.

이들이 보기에도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신재현은커녕 조사단에도 한마디도 못 하게 생겼다.

지금 당장 눈앞에 신재현이 나타나도 뭐라 받아칠 수가 없다.

신재현의 완벽한 승리였다.

의원들이 재차 탄식했다.

“어쩌다 판이 이렇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잖아요. 불리해도 너무 불리해!”

“말 나온 김에 물어봅시다. 의원님들은 신재현이 지금 상황을 의도한 거라고 보십니까?”

“그럼 뭐겠어요? 설마 이 의원님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이런 사태가 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한쪽이 더없이 유리해졌습니다. 이건 의도한 게 맞아요.”

“제 생각에도 신재현의 계략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놈은 자기 손에 패를 쥐고 있었어요. 그걸 공개한 시기를 보십시오. 한계까지 관심을 끌어모았습니다. 때문에 패의 효과도 더 커졌죠. 대놓고 티가 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신재현이 단순히 공무원으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판단도 가능하단 소리가 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놈 나이가 이제 겨우 29살이에요. 국회의원을 상대로 정치 게임을 한다고요?”

“끄응…….”

다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일만 잘하는 사람은 어느 분야든 찾아보면 수두룩하다.

머리 좀 굴려서 정치질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일은 못하면서 라인 잘 타서 승진하는 사람이 사기업에 꼭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놈은 이 둘을 합쳐 놓았다.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완전체였다.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놈이…….”

그러나 의원 여럿이 머리를 맞대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자니 누군가 의원실 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마자 누구인지 묻기도 전에 하동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하동문의 오른팔인 유진환이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음지의 사람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의원 중에도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있었지만, 그때도 항상 밖에서 몰래 만나곤 했다.

그런 유진환을 여기까지 불러들인 걸 보니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인가 싶었다.

“잠시 얘기 좀 나누게 여러분은 자리 좀 비켜주시죠.”

“예?”

의원실에서 의원들을 나가라니.

당황스러웠지만 하동문의 눈치가 워낙에 살벌해서 얼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하동문과 유진환, 둘만 남게 되자 하동문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잡았다.

“이……!”

재떨이를 던지려는 듯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유진환은 그 자리에서 즉시 무릎을 꿇었다.

하동문은 재떨이를 든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춘 채 숨을 몰아쉬었다.

이윽고 하동문은 재떨이를 던지는 대신 허공에 휘둘렀다.

담뱃재가 흩뿌려지며 유진환의 머리에 쌓였다.

-탁!

테이블 위에 거칠게 재떨이를 내려놓은 하동문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걸 너한테 던지지 않은 이유는 이번 일이 네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야.”

“죄송합니다, 선생님.”

유진환은 무릎을 꿇은 채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가려진 얼굴은 악귀처럼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신재현 그놈만 아니었으면 널 다시 부르지도 않았을 거다. 그만큼 넌 나를 실망시켰어.”

“예, 선생님.”

“아직도 신재현을 발아래로 두는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다면 미리 말해라. 당장 내려보낼 테니까.”

“아닙니다. 그런 교만함은 이미 버렸습니다. 엄연히 신재현은 제 머리 위에 있는 놈이고, 저는 실패자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못났다고 말하는 것은 꽤 비참한 일이었다.

그것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놈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너에게 다시 기회를 주마. 대신에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해결해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이젠 평범한 방법으로 그놈을 처리하긴 힘들어. 그러니까 그 주변인들을 공략해.”

“……예?”

유진환은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하동문의 차디찬 눈빛은 방금 들은 말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설마 이제 와서 더러운 수는 싫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이미 위험 없이 쳐내기엔 너무 늦었어.”

유진환은 마른침을 삼켰다.

돌려 말하는 정치인의 특성상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뜻은 매우 명확했다.

-더럽고 위험한 수를 써서라도 신재현을 막아라!

여기서 거부할 수는 없다.

이미 자신은 하동문과 한 배를 타고 멀리 와 버려서 내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 지시를 거부하면 이젠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사실 내려오는 지시와 행동에도 급이 있다.

본래라면 이런 종류의 일은 오른팔인 유진환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유진환이 아랫놈들에게 하곤 했다.

지금은 그 명령을 마다할 수가 없다.

유진환은 쓴 물을 삼키는 기분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1년도 안 남았어. 눈앞에 고지를 놔두고 고배를 마실 수는 없지. 무슨 일이 있어도 조사단을 막아. 이번에도 실패했다간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예.”

유진환뿐 아니라 하동문에게도 마지막 기회였다.

살벌한 협박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유진환은 독기 어린 눈으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조사단 국세청 쪽 사람들의 신상명세 조사해서 알려주세요. 가능한 빨리.”

***

영상이 공개된 다음 날.

“허억!”

“시, 신재현 팀장이다…….”

국세청으로 출근한 나는 묘한 시선이 따라붙는 것을 느꼈다.

1층에서 공무원증을 찍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그랬고, 복도에서도 그랬다.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날 보고는 질린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국세청 처음 출근할 때는 그래도 나름 존중의 눈빛을 보내왔는데.

이제 와서 왜 저런 반응일까.

혹시 국회의원 친다고 발표해서 그런가?

나 혼자 납득하고 사무실로 들어서자 다른 공무원들과 똑같은 시선들이 내게 우수수 꽂혔다.

이 사람들은 국회의원 조사인 걸 첫날부터 알고 있었는데 왜 저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네에……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색하게 인사를 받은 직원들이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나를 슬금슬금 피했다.

체납자들이 저러는 건 봤어도 직원들이 저러니까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내 앞에 앉은 1반의 반장에게 물어보았다.

“저, 채유림 반장님. 혹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자리에 앉아 있던 반장이 생머리를 한차례 쓸어넘기더니 내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라뇨?”

“분위기가 영 살벌한데, 저 오기 전에 뭐 있었나요?”

채유림은 귀 뒤로 머리를 넘기던 손을 멈추더니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그걸 몰라서 묻나 싶어서요.”

“그러니까 왜…….”

채유림은 손에 잡힌 머리칼을 마저 뒤로 넘기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세법 얘기로 청장님하고 맞싸우는 사람 처음 봤으니까 그렇죠.”

어제 퇴근하고 다들 그걸 봤구나.

나는 멋쩍어져서 짧게 대답했다.

“아.”

“‘아,’ 가 아니에요. 이 괴물 같은 팀장님아!”

채유림이 답답한 듯 소리치자 직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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