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이 이상의 해명은 없다 (3)
파란은 금방 잦아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재현에 대한 의혹이 금방 잦아들었다.
그에 반해 인터넷의 전체적인 반응은 쉽게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어딜 가든 국세청과 신재현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관심이 뜨거운 상황에서 오전에는 영상이 공개되고 오후에는 조사단 오피셜로 조사대상이 공개되었다.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장작을 들이부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3시간짜리 영상 하나만 갖고도 몇 날 며칠을 떠들었을 텐데 거기에 국회의원 조사까지.
그런데 여론이 조금 들떠 보였다.
평소라면 국회의원을 조사한다는 기사가 뜨면 자동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아무리 신재현이라도 선 넘는 거 아니야? 국회의원이 괜히 면책특권 있는 거 아니잖아. 국민의 대표인데 지가 뭐라고 조사를 해? 너무 건방진 거 아냐?
당의 지지자들이 곱지 않은 눈빛으로 반대 댓글을 달았을 것이고.
-조사 좀 해봤다고 나대는 거 보기 싫은 거 나뿐임?
그냥 신재현이 인기 있는 게 싫어서 악플을 다는 사람도 보였을 것이다.
아무리 신재현이 ‘정치와 연관 없이 순수하게 조사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도 악플은 분명히 달렸을 것이다.
세상에 신재현을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댓글 하나조차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부단장님!!! 믿었습니다, 부단장님!!! 국회의원 치는 게 맞았어!!!
-이야, 권력자들이라고 했을 때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국회의원이래. 신재현 난 놈이다. 난 놈.
-오늘부터 나는 신재현과 한 몸이다. 신재현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정치인들 지랄할까 봐 공평하게 여당야당 둘 다 잡는 거 봐라ㅋㅋㅋ 기사 봄? 차주혁, 하동문 둘 다 올라가 있음ㅋㅋㅋㅋㅋ
-신재현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이오이 믿었다구! 국회의원 탈탈 털어서 여당이고 야당이고 불법 저지른 놈은 이 기회에 조져 버리자!
“허, 참…….”
국세청장 오낙현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연신 혀를 찼다.
나쁜 뜻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TV를 틀어둔 채 귀로는 뉴스를 들으며 손으로는 인터넷을 뒤져보던 오낙현은 보자마자 느꼈다.
이건 딱 봐도 계획한 것이 맞다.
그러나 민치호가 했다기엔 조금 티가 난다.
그렇다면 신재현의 작품이라는 뜻인데.
“뭘 어떻게 가르친 거야, 그놈은?”
국세청에서 민치호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이라면 분명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불리한 무대가 있으면 그 무대마저 바꿔 버리는 것.
이번 세팅은 민치호의 그것과 쏙 닮아 있었다.
항해에 바람이 중요하다고 하던가.
지금 조사단이라는 배에는 더없이 완벽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제는 먼 바다 위로 나가 버린 배를 그 누구도 잡아 세울 수 없다.
그저 항구에서 선미를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어디서 배웠는지 차암~ 잘 배웠다!”
오낙현은 투덜거렸다.
민치호 하나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그놈과 똑같은 놈이 쑥쑥 자라고 있다.
벌써부터 민치호의 계략을 보고 배우고 있지 않은가.
그 성장 속도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지금도 벌써 세태를 읽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의도할 줄 아는데, 몇 년 지나 걸맞은 경력까지 쌓고 국장급까지 된다면 이 국세청은 어떻게 될까.
민치호보다 더한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땐 이미 자신은 국세청을 떠나고 없겠지만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신재현이라는 존재가 과연 국세청에 복일까, 재난일까?
진지하게 생각하던 오낙현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내 알 바 아니지.”
국세청장인 자신을 우산으로 쓰는 놈들이다.
얄미워서 걱정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단적인 예로, 지금 여론 반응이 그러했다.
이것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재현을 칭찬하기만 하던 목소리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승진 얘기 걸고넘어진 거 이상하지 않음? 보통 일반인은 공무원이 몇 년 해야 승진하는지 잘 모르잖아. 나만 해도 신재현이 6급 단 게 뭐가 이상한지 눈치 못 챘는데.
-공무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 수도 있지. 신재현이 6급을 존나 빨리 달긴 했잖아.
-그렇긴 한데 7급으로 출발해서 6급 단 거고, 특별 승진이라매. 뭐 특별한 공로를 세우고 능력이 출중하면 올려주는 그런 개념이라고 기사에서 그러던데, 그게 왜 문제 되는지 의혹이 나오려면 내부에 빠삭해야 하는 거 아님?
-나는 기자들이 특별 승진 문제 있다고 까길래 알게 된 건데,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해. 조사단 결성하고 신재현이 부단장 올라간다고 발표 나자마자 그다음 날 아침 일찍 바로 승진 특혜 기사 뜨지 않았음?
-이상하지. 타이밍이 절묘하잖아. 만약에 거기서 신재현이 진짜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낙마했다고 쳐보자. 일단 부단장은 시원하게 없어졌을 거고. 조사단 자체도 개쌍욕 먹고 와해 됐을걸? 부단장이 깨끗하지 않은데 어떻게 조사단이 국회의원을 조사할 자격이 있냐! 이런 소리 백퍼 나오고도 남는다.
-오늘 신재현이 조사대상 발표했잖아. 근데 이게 사실 조사단 결성하던 첫날에 기자회견에서 이미 나온 거나 다름없거든. 높으신 분들이라면 다들 자기 얘기하는 걸 알고 있었을 거란 소리지.
-그럼 뭐야? 자기들 세무조사한다고 선전포고하니까 괜히 쫄려 가지고 신재현 낙마시키려고 꼼수 썼다 이거야? 찌라시 뿌려 가면서?
-숲속 친구들!!! 이것도 확인되지 않은 얘기니까 다들 닥치도록 해요~ 신재현 의심할 때도 중립 기어 박으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냐!!!
-여기서도 중립 박아야 되냐?
-고소 들어오니까 박아야 함. 신재현은 고소 안 해도 국회의원은 고소함.
-고소ㅋㅋㅋㅋㅋ 그럴듯해서 더 무섭네ㄷㄷㄷ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
-뭘 손 떼ㅅㅂ 할 말은 해야지. 신재현이 국회의원 조사한다고 선전포고하고 다음 날 신재현 특혜라고 대대적으로 줘팸. 이거 합리적 의심 들지 않냐?
사람들 생각이 각각 다양하듯이 개중에는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향을 국회의원 쪽으로 잡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신재현에게 의혹이 있다고 생각할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신재현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세법으로 토론하는 영상을 3시간이나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대단하다’였고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이 ‘승진할 만하네’다.
거기에 이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 미안함도 함께 밀려왔다.
미약하지만 신재현을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 말이다.
덕분에 의심의 화살은 모두 국회의원에게 쏠리고 있었다.
-승진 얘기는 공무원들도 잘 알잖아. 맨 처음에 의혹 제기한 게 혹시 공무원 아니야? 자기는 승진 못했는데 신재현이 3년 만에 승진하는 거 보면 열등감 들 만하지.
-개빡대가리야. 영상 보고 느낀 거 없냐? 공무원이면 신재현이 어떤 놈인지 더 확실하게 보고 들었을 텐데 그런 놈이 의혹을 제기해? 이건 백퍼 국회의원이야.
-신재현 조지려고 여론전 한 게 맞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자꾸만 의심이 감. 신재현이 그동안 한 짓도 있으니까 국회의원이 위기감 느낄 만하지 않음?
-그럼 더더욱 털어야지! 얼마나 찔리는 짓을 많이 했길래 조사 들어가기도 전에 입을 막으려고 했을까?
-재현아!!! 누나가 너 응원한다!!!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싹 밀어 버려!!!
댓글만 잠깐 훑어봐도 여론은 잔뜩 흥분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낙현은 여론이 같은 편인 것에 감사하면서도 무서워졌다.
신재현이 좋은 방향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긴 한데, 나중에 혹시라도 신재현이 막 나가기 시작하면?
민치호처럼 커 버린 신재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당장 며칠 전에 그 상사인 민치호에게서 협박 아닌 협박을 들은 오낙현으로서는 쓸데없는 생각인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는 그저 민치호가 신재현을 잘 잡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든든하네.”
이래서 성공률을 반반이라고 높게 잡았나 싶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으면 할 만하지.
문득 오낙현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본 사진이 하나 떠올랐다.
[우리 부서에 성격 지랄 맞은 대리가 하나 있는데, 옆 부서랑 싸움 붙으니까 진짜 든든하더라. 가서 다 물어뜯으라고 속으로 응원해줬음. 우리 집 개새끼는 물어요!!!]
오낙현은 힘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 개새끼는 찢는다…….”
***
-팔락.
나는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국세청 건물은 더웠다.
늦겨울이라 밖에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창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등이 뜨끈했다.
내 자리가 창가에 있어서였다.
조사단 국세청 지부 사무실의 가장 안쪽 자리, 통괄 책임자의 자리다.
막중한 책임감만큼이나 햇빛도 뜨거웠다.
세종청사에서 제대로 일해 보는 건 처음인데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린 후 마저 서류를 읽었다.
내 책상에는 지금 1반과 2반, 양옆에서 올라온 보고서로 산이 되어 있었다.
“팀장님, 10년 전에 하동문 부인 계좌에서 10억 빠져나간 흔적이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관련 회사 통장 다 뒤져봤는데도 흔적이 없네요. 저희가 가진 자료로는 추적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고를 올린 것은 하동문을 중점적으로 조사 중인 1반의 직원에게서였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지시를 내렸다.
“검찰 쪽에 전화해서 계좌 추적해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하동문 의원의 정책실장 유진환이 굴리는 페이퍼 컴퍼니가 몇 개 있을 겁니다. 그쪽은 정리 됐습니까?”
“그 유진환이라는 사람 뒤져보다가 이상한 게 발견됐는데요. 집은 분명히 서울에 있는데 카드 내역 뽑아 보니까 최근 몇 달간 서울 말고 지방 쪽으로 다녔던 것 같아요.”
양도세 감면을 조사하다 보면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생활반경이다 보니 1반의 직원도 유진환의 카드내역부터 뽑아 본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유진환이 서울에 없었다구요?”
나는 직원의 말을 막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하동문의 오른팔이며 페이퍼 컴퍼니와 돈줄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가 괜히 지방으로 다닐 리가 없다.
“이거는 제가 자료 요청할게요.”
“넵.”
나는 지현석 검사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유진환 생활반응 조사 필요합니다. 어디를 다녔고 어디에 머물렀는지 추적 가능할까요?
답장은 바로 왔다.
-생활반응 전부 다요?
-유진환은 자금 관리책입니다. 제가 없는 동안 지방으로 돌았다고 하니 돈줄을 관리하러 다녔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조사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바로 조사 들어갈게요. 이건 현지조사도 필요할 것 같네요. 경찰 쪽에도 협조 구하겠습니다.
공문이 필요 없다는 것이 이럴 때 너무 편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요청한다.
그러면 즉시 각 기관에서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우리도 다른 기관에서 자료를 요청 받기도 했다.
식약처 쪽에서 모 법인의 재무제표와 세무신고 자료를 요구한 적도 있었다.
“팀장님! 차주혁 딸 블로그를 살펴보니까 외국 나갔다 들어오면서 샀다고 자랑하듯 올린 글이 있는데요. 물품 가액이 꽤 나가 보입니다. 확인해봐야 할까요?”
이번엔 차주혁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2반의 직원이었다.
평소라면 넘어갈 일이지만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문도 없이 서로 협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관세청 연락해서 딸 이름으로 국내 들여온 물품들 확인해보세요.”
“넵!”
며칠 안 되었지만 이제 이 팀도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다.
다들 실무 좀 뛰어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적응도 빨랐다.
상대가 국회의원이라 그런가 일반인보다 복잡하긴 했다.
무엇보다 차명이 많았다.
하동문이고 차주혁이고 둘 다 까보면 까볼수록 더러운 놈들이었다.
어쩌자고 저런 놈들이 5선이나 해 먹었는지.
물론 꼭꼭 숨겨서 겉으로 보기엔 깔끔하니까 국민들도 모르고 뽑았겠지.
그들을 캐는 것은 끈질긴 작업이었다.
수많은 자료 더미 속에서 실마리 하나를 잡고, 그걸 더듬어서 숨겨진 회사를 찾아낸다.
다른 기관의 협조는 필수적이었다.
이들처럼 조사 깨나 해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헤매다 끝났을 것 같다.
내가 보이는 건 탈세액일 뿐, 어느 회사에 얼마를 숨겨뒀으며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 등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흘끔 시계로 시선을 보냈다.
오후 3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쯤이면 아마 우리가 국회의원을 조사한다는 국세청의 공식 발표가 떴을 텐데.
바쁘게 일하느라 아직 나는 뉴스 란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집에 가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겠지.
하지만 그들에게는 최대한 영향이 없게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이다.
골치 아픈 건에 매달리느라 힘든데 정치질까지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일만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이젠 내가 이 팀의 책임자니까.
오전에 영상을 공개하고 오후에는 조사대상을 공개하는 것.
솔직히 내가 노린 게 맞다.
조사단이 결성되자마자 나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느꼈다.
나도 마냥 순수하고 깨끗하게 상대할 수는 없겠구나.
상대가 더럽게 나온다고 나까지 진흙탕을 뒹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발에 진창이 묻지 않게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상대하는 자들은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 할 정도로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꼼수를 좀 쓰긴 했지만 그들이 과연 겨우 이걸로 물러서 줄까?
이걸로 그들의 공격이 끝이라고 안심해도 될까?
곰곰이 생각해도 대답은 ‘NO’ 였다.
나는 걱정스레 사무실의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다음 공격이 온다.
그들 앞에서 방어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민치호와 이선균이 떠올랐다.
내가 그동안 걱정 없이 날뛸 수 있던 것은 그 둘이 지켜줬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는 지금 타이밍 하나 맞추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그래도 정치적 공격에 대해 조금이나마 머리를 굴릴 수 있는 것은 민치호와 이선균을 옆에서 봐온 덕이 컸다.
나는 다시 시선을 내려 자료를 넘기는 손에 속도를 붙였다.
중간에서 치인다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지켜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