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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354화 (354/500)

354화. 이 이상의 해명은 없다 (2)

신재현 팬카페의 회장 한대희는 뉴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틀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게 뭐야! 처남님! 우리 처남님의 승진 시험 영상 아니야!!!”

감사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그들은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한대희를 보며 당혹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는 무려 회장님의 막내 아드님이시건만,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이랬다.

-뭐야, 미친놈인가?

그러나 한대희는 그런 눈빛마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아니, 알아챈다 해도 행동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창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신나 있었다.

죽으려고?

물론 아니다.

날개가 없는 걸 알지만 지금 발을 구르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저, 감사님……?”

“이건! 널리 알려야 해! 온 세상에 안 본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고!”

“감사님…….”

몇 명이 조심스럽게 한대희를 불렀으나 곧 포기했다.

지금껏 한대희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눈이 풀린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은 정도가 심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

지금 감사실 직원들의 느낌이 딱 그랬다.

그들은 한대희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못 본 척합시다.’

‘제정신으로 돌아오시면 그때 물어봐요.’

모르는 척이 상책이다.

직원들은 애써 한대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에 열중했다.

그런데 모니터 아래에 어떤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한대희 님의 메시지입니다.

“으아악!”

어느 직원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도 창문을 열고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고 있는 감사가 보낸 메시지라니.

귀신에게서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등골이 오싹했다.

실수로 보냈나, 아니면 버릇없게 쳐다봤다고 한소리 한 건가.

직원들은 떨리는 손으로 사내 메시지 함을 열었다.

그리고 기겁했다.

-한대희 : 여러분 꼭 보세요. https://newtu.be/…….

직원들은 고개를 들고 파티션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한대희는 창밖을 보며 숨쉬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원들은 서로에게 손짓했다.

‘주임님이 한번 물어보세요.’

‘저 감사님이랑 안 친해요. 주임님이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귓속말로 속닥거리던 직원들이 순간 화들짝 놀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리에 덥석 앉았다.

한대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들켰나 싶었더니 이번엔 한대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직원들은 인터넷에서 본 어떤 사진이 생각났다.

한 상사가 문어 인형의 표정으로 그날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서 그걸 보고 상사에게 보고할지 말지를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한대희의 상태는 웃는 인형 수십 개로 탑을 쌓아도 부족할 정도로 붕 떠 보였다.

“혹시 오늘 급한 일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일 그만해도 됩니다.”

“진심이세요……?”

직원들은 멍하니 한대희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그렇지, 오늘 일을 안 해도 된다니.

“학교는 개교기념일에 쉬고, 직장인은 창립기념일과 근로자의 날에 쉬잖습니까. 좋은 날엔 쉬면서 기쁨을 함께하는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퇴근하라고 하고 싶은데 실무도 잘 모르는 제 마음대로 퇴근시켰다가 급한 일 터질까 봐 안 되겠고. 대신 오늘은 놀아도 뭐라 안 하겠습니다. 다른 감사님이 뭐라 하시면 제 이름 파세요!”

그야 회장의 막내아들이 오늘 쉬는 날 선언을 했다는데 감사든 이사든 뭐라고 따지겠는가.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저…… 한대희 감사님. 오늘이 그렇게 중요한 날인가요? 대체 무슨…….”

“저는 지금부터 3시간짜리 영상을 봐야 합니다.”

“……예?”

사무실에서 대놓고 놀겠다는 선언에 직원들이 되물었다.

그러나 한대희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이었다.

“저 혼자 놀면 눈치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노시죠.”

“예에? 그러다 저희 혼나요. 그냥 퇴근하시고 보시지, 왜 하필 오늘…….”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깝습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봐야겠거든요. 그리고 제 욕심 같아서는 여러분께서도 영상 꼭 보셨으면 하는데, 그거 강요했다간 고소당해도 할 말 없으니 아예 자유시간 드리는 겁니다. 이해 가셨나요?”

“이해는 가는데요…….”

직원들은 말을 아꼈다.

저 말을 듣고서 알았다.

신재현에 지독하게 빠져 있구나.

아이돌을 쫓아다니던 극성팬의 모습이 한대희에게 겹쳐 보였다.

뭐에 하나 꽂힌 거라면 왜 오늘 한대희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갔다.

“어, 음.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유시간 주신다는데 저희야 감사하죠.”

직원들이 업무를 젖히고 자리에 앉아 홈쇼핑이나 주식 차트를 보는 등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한대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어폰을 꼈다.

작정한 모양새다.

열심히 일하라고 회사 경영지원팀에서 설치해 준 듀얼 모니터 한쪽에는 영상을, 나머지 하나에는 팬카페와 메신저를 띄웠다.

메신저에는 이미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회장님! 빨리요! 저 기다리고 있다고요!

-빨리! 저 먼저 틀 거예요!

-왜 읽씹이야!!! 저 틉니다???

부회장인 다민이다.

-안 돼!!! 잠시만요, 부회장님! 같이 보기로 했잖아요!

-빨리 오시라고요!!! 팬카페 회원들 벌써 글 올라오고 있는 거 안보이세요?

화내는 다민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사실 둘은 지난 사흘간 신재현을 무척 걱정했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팬카페 회원들 대부분이 그랬다.

공무원에 대해 잘 몰라서 그동안은 신재현의 승진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혜 논란이라니.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가.

아무리 공들여 쌓은 탑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수두룩하다.

함부로 옹호하는 글도 쓸 수 없다.

특혜 논란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대희와 다민은 제발 하루라도 빨리 해명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이 모든 의혹이 가짜기를.

그러던 와중에 국세청의 해명 대신 나온 영상이다.

제목은 심지어 면접 영상 아닌가.

괜히 국세청이 이 영상을 내놓았을 리는 없다.

한대희는 이것이 모든 의혹을 불식시켜줄 열쇠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눈앞에서 신재현의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영상이 그 조사 수준만 되어도 족하다.

신재현의 조사는 그만큼 박력 있었다.

-지금 영상 틉니다. 재생!

-저도저도! 으와앙 지금 갤주님 들어오신다!

-긴장한 모습도 귀여우시다!

-여전히 단벌 신사시다!

-그래도 귀여우시다!

조용히 영상에 집중하는 한대희와 달리 다민은 요란한 메시지를 보냈다.

-와. 저게 다 뭔 소리야

-뭔진 모르겠고 일단 멋있네

-회장님! 보고 계세요?

-바쁨

-같은 영상 보고 있으면서 뭐가 바빠요. 솔직히 회장님도 이해 못하잖아요. 보다 졸고 있는 건 아니죠?

-지금 세법 검색하면서 보거든요?

-오~ 검색해서 이해 되세요?

-아뇨. 그냥 아는 척해 봤습니다.

-엇! 저 지금 10분 13초 보는데 머리 쓸어올리는 거 진짜 멋있네요. 연예인이 따로 없네.

-다민 씨가 연예인이잖아요.

-연예인의 연예인이라는 뜻이죠.

초반에는 신나게 메시지로 감상문을 남겨 가며 영상을 보았다.

그러나 둘은 점차 말이 없어졌다.

다민의 말대로 졸아서가 아니다.

마냥 신나서 영상을 보던 둘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영상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한대희는 팬카페를 눌렀다.

과연 다들 그의 심정과 비슷했는지 팬카페의 게시판에는 하나같이 통곡이 가득했다.

-아이고! 저러고 3시간 실화냐?

-오늘부터 국세청 안티다!!!

-신재현 좀 애껴라!!!!!!

-갤주님 왜 하필 공무원인가? 홍삼이라도 보내드려야 하는데!!!

-야! 국세청!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

초반에는 멋있었다.

신재현이 한울에서 세무조사하면서 전문가들과 맞상대하던 그 기백도 생각나서 좋았고.

그런데 영상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진이 빠지는 게 영상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세법에 대해 문외한인 자신이 봐도 둘의 대화는 살벌했다.

법정에서 원수를 만나면 저러할까?

처음 영상을 틀 때는 조금 가벼운 생각이었다.

-이 시기에 나온 영상이니 분명히 의심을 종식시킬 무언가가 찍혀 있을 것이다. 면접 영상이라고? 실력행사만큼 좋은 게 없지!

이랬던 생각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3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 영상은 그냥 ‘실력 행사’를 목표로 푼 게 아니다.

영상 그 자체로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얘가 6급이 안 되면 이 세상에 승진할 놈 없다.

아마 국세청 내부에서도 알게 모르게 있던 불만이 바로 종식되지 않을까.

한대희는 영상을 계속 틀어둔 채 이번에는 각종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켜 보았다.

주소를 퍼 나르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신재현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평소라면 순수하게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재현이 거론되어서 좋은 것과 씁쓸함 사이의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안티는 있는 법이고 신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뭘 하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놀랍게도 그런 글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신재현이 이런 놈이었음?

-청장도 박력 장난 아닌데 신재현 얘도 도저히 20대 후반으로 안 보임. 아니 생긴 거야 어려 보이긴 하는데 저 박력으로 쳐들어가면 체납자들 무사하냐? 기절 안 함?

-국세청 다시 봤다. 원래 이런 데였냐? 이렇게 전문성 갖춘 데면 세금값 한다고 봐도 되겠는데.

-이래서 중립 박아야 되는 거임. 신재현 6급 올라갈 실력 안 된다고 까던 놈들 다 어디 갔음???

오로지 신재현을 위하는 입장의 팬카페 글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신재현을 칭찬하는 걸 보고 있자니 기묘했다.

“엇!”

침울한 얼굴로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있자니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직원 하나가 기함하는 것이 보였다.

“감사님! 감사님이 보내주신 영상이요! 이거 국세청에서 오피셜로 뜬 거 맞죠?”

“네에.”

“앞부분 지루해 가지고 뒷부분 넘겨서 봤는데 왜 이렇게 살벌해요? 국세청 원래 저런 동네예요?”

“크흡…….”

우는 아이 뺨 때려준 격이나 다름없다.

차마 뭐라 대답하지 못한 한대희는 참담한 심정으로 모니터를 보았다.

댓글 위에서 커서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서 한대희는 대답 대신 댓글을 달았다.

-팬들 지금 통곡 중이다. 어떻게 저렇게 굴리지? 나는 오늘부터 저 청장 안티다.

***

오랜만에 서울의 사무실을 찾은 유진환은 먼지가 뿌옇게 쌓인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굴욕적으로 쫓겨난 이후 하동문이 다시 불러 주길 오매불망 기다렸다.

어차피 하동문은 자신을 버릴 수 없다.

다만 거듭된 실패에 화가 났을 뿐이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계 빅 이벤트가 남아 있으니 언젠가는 하동문이 자신을 부를 거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복귀가 빨라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재현 덕분이었다.

자신이 떠나게 된 원흉이 자신의 복귀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얄미운 원수와도 같은 신재현 덕분에 돌아온 것인데도 유진환은 꽤 침착했다.

정확히는 분노로 잃었던 이성을 지금은 독기로 바꾼 상태였다.

유진환은 지금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만이었다. 내게 실패를 가르쳐준 건 네 실수가 될 거다. 그때 아예 나를 죽였어야지.’

이제는 신재현의 몰락만으로는 참을 수 없다.

명예를 더럽히고 자리에서 끌어내려서 그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할 거다.

곧 최고 권력이 될 하동문의 힘으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신재현의 승진을 문제 삼은 것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사흘이나 지났으니 이제 슬슬 수위를 올려 볼까.’

승진 얘기는 하나의 균열일 뿐이다.

나아가서는 국세청의 청장들까지 물고 늘어져서 국세청의 이미지 자체를 더럽힐 생각이었다.

유진환은 반응을 살필 겸 뉴스란을 열었다.

“어?”

그리고 예상과 다른 사태에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먼저 든 것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릴 정도로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왜, 왜 이렇게 됐지?”

시작도 해보기 전에 고꾸라지게 생겼다.

유진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댓글에 링크된 영상을 눌렀다.

손가락이 덜덜덜 떨렸다.

“3시간……?”

유진환은 영상의 제목을 본 순간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는데 지금 유진환이 딱 그랬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미친놈,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어?”

유진환은 멍하니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려두었다.

첫 번째 단계부터 막혀 버렸다.

균열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거대한 벽의 일부였다.

뚫고 나갈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겨우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차이가 너무 벌어져 버렸다.

“씨발…….”

머릿속으로 여러 개의 계획을 떠올렸지만 어느 하나 괜찮은 것이 없었다.

상대가 너무 커져 버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유진환의 눈에 알람이 들어왔다.

나학진의 기사가 뜨면 자동으로 알람이 오게 해 두었는데 그것이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조세범 조사단, 국회의원 하동문과 차주혁에게 세무조사 예고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이것은 신재현이 노린 것이 분명했다.

조사단 결성 직후에 발표했다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을 테고, 어느 정도 정치적인 공세도 가능했을 텐데.

3시간짜리 면접 영상을 올려놓고 여론이 반전되는 순간에 이런 발표라니.

유진환은 한탄했다.

“이젠 정말 완전히 역전됐구나.”

유진환은 인정했다.

신재현은 이제 그가 올려다봐야 할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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