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이 이상의 해명은 없다 (1)
작년 말, 한겨울.
유난히도 춥던 날이었다.
세종시에는 칼바람이 불었고 옷깃을 여며도 한기가 서렸다.
그래도 햇빛은 따뜻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뜨거웠다.
사무실 안은 금방 더워졌고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아니, 사실은 햇빛이 뜨거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나눈 대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속 3시간.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나중에는 목소리가 쉴 정도였다.
계속 긴장하며 앉아 있다 보니 온몸이 쑤셨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자리는 총성 없는 전쟁터였으며 소리 없는 칼날이 오가는 곳이었다.
우리는 말로써 서로의 지식을 시험했고 나는 모든 힘을 다해 맞섰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만약 그 짓을 한 번 더 하라고 하면 상대의 멱살을 잡고 창밖으로 던져 버릴 것이다.
오죽하면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아무도 끼어들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끝날 때까지 숨죽이며 지켜볼 정도였다.
나중에 부산청장조차 그날 저녁의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말했다.
-독한 인간들. 강하게 키운다고 해도 도가 지나쳤어. 하지만 그래. 솔직히 왜 그랬는지 이해는 할 것 같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절대 아무 말 못 할 거야. 나도 숨이 막혔거든요.
내가 승진 면접을 보던 날.
나 하나만을 위해 마련된 승진 시험자리.
이례적으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될 내게 그 누구도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민치호가 마련한 자리였으며 나로서는 모든 것을 내보인 자리였다.
그 시험의 증인이 되어준 사람은 민치호를 제외하고 모두 넷.
국세청장과 부산청장, 자산과세국장과 운영지원과장이다.
이들의 증언만 해도 신빙성이 있지만 민치호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판을 짜는 사람이었다.
그것 또한 내가 배워야 할 점이며, 그를 존경하는 이유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 참석자들이 모두 짜고 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그날의 국세청장실 구석에는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하나 더 있었다.
한 쌍이 아니라 하나라고 표현한 것은, 그 참석자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그것은 구석에서 또 한 명의 관객으로서 빨간 불빛을 빛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여론은 사실 그닥 반응이 좋지 않았다.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특혜 논란이다.
편법으로 부동산을 분양받아 부를 챙기는 것, 편법으로 면접 점수를 올려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 편법으로 입학 서류를 꾸며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그것은 모두 남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야 부모를 고르진 못한다 해도 실력만은 올바르게 평가되어 똑같이 경쟁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박탈당한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이 틀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것은 곧 기회의 새치기라도 볼 수 있다.
그러니 6급 승진에 대해 안 좋은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이 신재현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두고 보자’라는 반응이라도 나오는 것은 신재현이 그동안 좋은 이미지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사실상 신재현의 편을 든다기보다는 ‘해명의 기회를 주자’에 가까웠다.
그만큼 특혜 논란은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팬들마저도 쉽사리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재현이가 제발 이번 일 잘 해명해줬으면 좋겠다
-6급 올라가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네.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지? 형은 믿는다.
-오빠! 이거 입 닫는다고 해결되는 일 아니에요! 제발 하루라도 빨리 공식 성명 내줘요! 오빠!!!!!
신재현과 국세청에서 별다른 대응이 없을수록 기자들은 더욱 신나서 신재현을 물어뜯었다.
-뭔가 찔리는 게 있긴 있나 보다. 그러니까 조용하지.
-해명할 거였으면 시끄러워지기 전에 오피셜 나왔을 거다. 입 다물고 있다는 거는 뜨끔해서 그런 거야.
전 국민의 관심이 다시 신재현에게 쏠렸다.
그의 해명에 따라서 조사단의 부단장 자격 여부도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무대는 갖춰졌다.
“재현 씨, 민 청장님께서 영상의 공개 타이밍은 전적으로 재현 씨에게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디 잘 재보세요. 언제 터뜨리는 게 가장 좋을지.”
“그럼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올려주십시오.”
이선균 과장의 말에 힘입어 신재현이 영상을 푼 것은 승진 특혜 의혹이 나온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 3일간, 기사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갔다.
-국세청, 침묵으로 일관. 무엇이 두렵나?
-신재현의 민낯 밝혀지나?
-실력 몰아주기? 신재현의 실적이 정말 그의 것이었는가?
신재현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될 정도의 도를 넘은 비방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이 올라왔다.
[FULL] 신재현 6급 특별승진 면접 영상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일단 눈을 의심했다.
재생시간은 3시간 5분 47초.
분명히 면접 영상이라고 했는데 뭐가 이렇게 길단 말인가.
오디션을 봐도 이렇게 길지는 않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사람들은 재생을 눌렀다.
새로고침 할 때마다 조회수가 500씩 올라갈 정도였다.
가뜩이나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던 소식이다.
링크는 돌고 돌았고 누군가는 커뮤니티에 영상을 퍼다 날랐다.
영상이 퍼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뭐 때문에 영상이 이렇게 긴 건지, 국세청에서 해명 대신 내놓은 이 영상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호기심과 함께 재생을 눌렀다.
그리고 영상을 틀어둔 채 다 함께 커뮤니티에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흔히 ‘중계 달린다’라고 하는 행위였다.
같은 영상을 보면서 그에 대한 감상을 쓰는 것이다.
-나 지금 영상 시작한다.
-나도.
-야 이거 장난 아니다. 지금 10분 정도 보고 있는데 너네 보면 기겁할 거임.
-글케 재밌음?
-스포일러 하지 마!!!!!!!!!!!
-면접 영상에 무슨 스포일러야. 결말은 어차피 ‘합격입니다’ 아님?
-일단 보고 나서 말해라. 내가 왜 그런 말 했는지 알게 될 거임.
-ㅇㅋ 딱 기다려라.
영상은 다섯 명의 중년 남녀가 소파에 앉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3초가 흐른 후 신재현이 들어왔고, 가벼운 인사와 함께 그가 앉았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양도세율 말할 수 있습니까?’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무공무원이라 그런지 이 정도는 물어보는구나.
그렇지. 면접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신재현이 세율을 줄줄 읊자 실시간 반응은 ‘올~’로 도배되었다.
그래도 아직은 다들 평범하다는 반응이었다.
왜 이걸 공개했는지 모르겠다는 글도 간간이 보였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그 이후였다.
‘3초 안에 대답하세요.’
톡톡, 손끝으로 테이블을 치는 소리와 함께 신재현이 얼른 대답했다.
‘3억 이하 20%, 3억 초과 25%의 누진세율 적용받습니다.’
-올~
-이건 좀 셌다.
-압박 면접 좀 치네
-청장 왤케 얼굴 무서움? 면접 최적화네
-청장이 좀 무섭게 생기긴 했다. 일부러 저 사람이 질문하는 거 아님? 신재현 개쫄으라고.
민치호에 대한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영상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켜보던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가세에서 매입세액 불공제되는 경우에 대해 말해보세요.’
‘간이, 면세사업자로부터 매입한 재화, 필요적 기재사항 누락, 비영업용 소형승용차 구입유지, 접대비…….’
‘그럼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가 무엇입니까.’
‘가공, 위장 세금계산서를 말합니다. 실제 재화나 용역의 거래 없이 오로지 세금을 줄이거나 매출을 부풀릴 이유로 세금계산서만 끊어주는 경우입니다.’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를 엄격히 규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는 국세부과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과세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본인 의견을 말해보세요.’
‘과세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세금계산서를 위장한다는 것은 과세의 근거인 필수 자료를 위장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세원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넓게는 일부에게만 과세의 부담이…….’
‘……이런 판례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납세자의 근거는 무엇이며 과세관청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매입자가 세금계산서의 명의위장 사실을 알기 어려운 점, 알지 못한 데에 매입자의 과실이 없었던 점을 미루어 조세액을 탈루하기 위한 고의성이 있다거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의 입증 책임은 과세관청에 있으므로…….’
영상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둘째치고, 둘의 분위기는 사람들이 상상했던 면접이 아니었다.
흡사 청문회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원래 면접 이렇게 빡셈?
-승진 면접이라고 하지 않았어? 공무원들 승진할 때 이렇게 힘들게 해?ㄷㄷㄷㄷㄷ
-아니; 나 현직 공뭔인데 이렇게 하면 차라리 승진 안 하고 말지;;;
-야 신재현 얼굴에 땀 나는 거 봐.
-존나 살벌하다. 내용은 하나도 모르겠는데 내가 손에 땀이 난다. 꿈에 나올 것 같다.
-나 대기업 압박 면접 보다 떨어진 적 있는데 영상 괜히 봤다. 트라우마 도질 것 같음. 잠깐 토하고 오겠음.
-누구 다 본 사람 없음? 설마 이 분위기 그대로 3시간 하는 거 아니지? 중간에 뭐 쉬는 시간 껴서 3시간이지?
-아니, 내가 스킵해서 보고 왔는데 끝까지 저 분위기임. 2시간 47분 보면 신재현 손도 부들부들 떨림.
-미친; 저러고 3시간 했다고? 신재현 예쁨 받는 거 아니었어? 국세청에서 뭐 은따임? 청장이 왜 저렇게 잡아먹으려고 해?
-국세청 진심 두렵다 나 같으면 선 채로 죽을 듯
-3분 만에 울면서 뛰쳐나갈 자신 있음!
-아이고! 우리 갤주님 아껴욧!!!!!
-팬카페 가 봤냐?ㅋㅋㅋㅋㅋ거기 지금 초상집 분위기임ㅋㅋㅋㅋㅋ 너무 괴롭힌다곸ㅋㅋㅋㅋㅋ
-신재현 용케 버티네. 첨엔 구경하는 사람들 관람석 1열에서 팝콘 뜯는 줄 알고 개부러웠는데 이제 보니 저 사람들도 불쌍함. 저 살벌한 분위기에서 눈치 보는 거 봐ㅋㅋㅋㅋㅋㅋㅋ
-현직 업계인 없음? 썰 좀 풀어봐. 재밌을 것 같은데.
워낙 인터넷에 뜨거운 내용이다 보니 현직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리뷰도 나왔다.
[나 현직 세무사인데]
-저거 세무사 2차 문제랑 느낌 비슷하네.
단순히 세법 조문 외웠냐만 확인하는 게 아니고 그걸 실무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도 물어보고 있음.
간간이 판례도 물어보는데 납세자 입장, 과세관청 입장 양쪽으로 대답하게 하고 있음.
물어보는 사람도 진짜 웬만한 지식으로는 못 함.
게다가 지금 질문지 없이 그냥 말로만 물어보잖아.
나 같으면 3시간 내내 저렇게 못 물어봄. 질문 바닥나서.
그리고 신재현 대답 수준도 장난 아님.
문제 듣자마자 의도 파악해서 법조문 주르륵 읊고 그거 어케 적용하는지도 바로 나옴.
이건 하루 이틀 공부해서는 절대 대답 못 함.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하면서 듣고 있는데, 나도 막힌 질문 몇 개 있었음.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줄 몰랐네. 반성했다.
└오오오 세무사횽. 혹시 미리 문제 알려준 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미리 알려준다고 해도 저렇게 대답하려면 공부해서 자기 걸로 만들어야 됨. 자기 생각도 곁들여서 말할 때 보면 저거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거 맞음.
└찐 세무사가 인증한 세잘알 공무원ㄷㄷㄷㄷㄷ
└공뭔이면 원래 세잘알이어야 하는 거 아님?
└나 예전에 종소세 때문에 세무서 전화했을 때 담당자가 신참인지 어버버 거리던데.
└지나가던 세공인데요, 신재현 공부량 탑급 맞음; 걔 인간 아닌 듯; 지금 우리 동기들도 영상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음. 저거 뭐야, 몰라 무서워.
└세공이 뭐임?
└세무공무원 줄임말.
그리고 신재현을 믿었든, 믿지 않았든 영상을 본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다.
-신재현 멘탈 무사함? 국세청 차원에서 산재 처리하고 심리상담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누가 신재현 특혜라고 했냐? 너네가 국세청 가서 면접 보고 와라.
신재현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