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51화 (351/500)

351화. 이제 어쩝니까 (1)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오늘은 꽤 많은 수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4선과 5선 의원도 눈에 띄었다.

숨소리만 나도 죽일 것 같은 살기 어린 시선이 날아오고 있었다.

초선 의원들은 숨 막히는 분위기에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일단 오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숨통이 턱턱 막혀왔다.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저도 몰라요. 이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안 왔을 텐데…….”

“저희 당은 무조건 오라던데요.”

“저희는 올 사람만 오라고 했거든요. 근데 어차피 우리는 듣고만 있어야 되는데 굳이 안 와도 되는 거 아니에요? 의견 물어볼 것도 아니면서.”

자리가 부족해서 앉지도 못한 초선 의원들은 구석에 낑겨 서서 속닥거렸다.

말투야 이랬지만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봐 목소리는 한껏 낮춘 상태였다.

“근데 당끼리 안 앉아도 된대요? 왜 다 섞여 앉았대.”

아직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초선들은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분위기를 파악하려 애썼다.

“저도 얘기로만 들어봤어요. 이런 상황.”

“어떤 상황이요?”

“초당적 조치가 필요한 중차대한 경우.”

초당적 조치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에 초선들은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초당적 조치.

말 그대로 당적을 초월해서 의견을 모아야 하는 순간이다.

대체 언제 그런 경우가 생기겠는가.

나라에 위기 상황이 닥치거나 긴급한 재난이 일어난 경우인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초선들이 아무리 정보가 느리다지만 지금 국가에 그런 위기가 닥쳐온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 몰라 뉴스를 켜서 외국의 신문까지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럼 대체 왜 모인 거랍니까? 총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들이 초선이라고는 하나 차기 국회의원 자리에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제 한 번 더 당선되면 2선인데 거수기에 불과했던 초선 때와는 발언에 차원이 다르다.

물론 다선 위원에 밀리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원래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 법 아니겠는가.

한참 밖에 나가서 시민들에게 눈도장도 찍고 유세도 해야 한다.

이름값이 부족한 초선 의원들은 바빴다.

그런 귀한 시간을 일부러 내서 참석한 자리다.

“그래도 4선에 5선 영감들까지 모인 거 보면 뭔가 중요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참석해서 나쁠 건 없지요. 배워가는 것도 있을 테고.”

의원회관 구석 자리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초선 의원들이 못마땅했던지 희끗한 머리칼의 남자 하나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더욱 살벌해졌다.

“거기. 잡소리 떠들 거면 나가서 하시죠. 여기가 무슨 국민학교 교실입니까?”

사람이 많이 모였다 해도 다들 입을 다물고 있으니 초선들의 말소리가 들린 것이다.

내용까지야 모르겠지만 이 심란한 가운데 저들이 감히 잡담을 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심기를 거슬렀다.

“저기 저거 몇 선이야?”

“그…… 둘 다 초선으로 보입니다.”

“쯧쯧. 요즘엔 개나 소나 당적에 올려주나?”

“저, 왼쪽은 우리 당 의원입니다. 오른쪽은 제1야당이고요.”

누워서 침 뱉기가 된 꼴이 되자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노년의 남자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우리 당이면 뭐 어쩌라고. 내가 걸러서 받았나? 그래서? 총선 공천에는 쟤 빼면 돼?”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그저 사실을 알려줬을 뿐 실언은 아니었지만 3선의 의원은 조용히 물러났다.

안 그래도 잔뜩 뿔이 난 영감탱이다.

여기서 더 건드려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노년의 의원은 그러고도 한참을 못마땅해 하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지금 이 중요한 회의에 온갖 어중이떠중이 다 불러놓고 뭐하자는 거야! 다들 바쁜 사람들 아닙니까?”

“예? 예에…….”

괜히 옆에 앉아 있던 3선 의원이 불똥을 맞았다.

그는 눈알만 데굴 굴리더니 도움을 청하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를 구원해준 것은 제1야당의 하동문이었다.

“그때 나름 회의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평온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가 입을 열자마자 다들 바짝 얼어붙었다.

차기 대선 후보로서 그 어떤 더러운 이미지도 원치 않는 그가 여기에 나타난 것만 해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첫 운을 이렇게 뗀 이유도 명확했다.

책임 전가.

“몇몇 분들께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렇게 사람들 다 불러모은 이유가 뭡니까.”

여당의 3선 의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구시렁거렸다.

역시 5선의 중진 의원 아니랄까 봐 입 여는 순간부터가 다 계산된 말이었다.

저 구석 자리에 있는 초선들이야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앞자리에 앉은 3선 이상의 의원들은 일제히 이맛살을 구겼다.

-몇몇 분들께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들었는데요.

└너희들 선에서 해결했어야지.

-이렇게 사람들 다 불러모은 이유가 뭡니까.

└동네방네 무능하다고 소문 내가면서 불러모으니 참 꼴좋다. 그런 일도 알아서 처리 못 하냐.

하동문의 목소리 뒤에 이런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지요. 우리 모두의 문제 아닙니까.”

여당의 대선주자인 차주혁이었다.

하동문이 나서니 자연스럽게 그가 나선 것이다.

하동문이 작정하고 여당 몰아가기를 시작하면 막을 자가 거의 없기도 하고, 그로서는 총선 전에 이상한 이미지가 씌는 걸 우려해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 입장에서는 첫판에 보스전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뭐야.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저 둘이 왜 여기서 싸워?’

‘둘 다 참석하길래 이상하다 했지. 이거 작정하고 온 거구만.’

그리고 한쪽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그 둘의 설전을 구경하는 이가 하나 있었다.

‘어우, 재밌다. 일부러 하 의원한테 부탁해서 오길 잘했네.’

현재 국회의원이 아니지만 신당의 대표라는 이유로 어찌어찌 참석하게 된 정상훈이었다.

그는 팝콘이라도 가져올걸, 하는 기분으로 저 멀리서 벌어지는 두 능구렁이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먼저 선타를 날린 것은 하동문이었다.

“어째서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까? 차 의원님께서는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걸리는 점이라뇨. 하 의원님께서 평소 저를 어떻게 보시는지 잘 알겠습니다만 저는 떳떳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권력의 횡포지요.”

“여당의 큰 어른이신 차 의원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가 다 있다니, 제가 의원 생활을 오래 하긴 했나 봅니다. 크허허!”

“무조건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여당의 역할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그릇된 길로 간다 하시면 붙잡아 드리는 것이 여당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두 늙은이는 결코 날카롭게 말하지 않았으나 근처에 앉은 의원들의 눈에는 공중에서 칼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초선 의원들은 못 참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대화를 들어도 아직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왜 모인 거래요? 무슨 일 났어요?”

“대통령이 특별 조사본부 만들어서 그렇잖습니까. 신재현이 국회의원들 조사한다고 소문이 파다한데요.”

“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권력자들이 국회의원 얘기였어요?”

“네. 그래서 지금 이 난리를 떠는 거죠.”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초선 의원은 다시 앞으로 시선을 보내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게 초당적 조치가 필요할 정도의 위기래요? 평소에 대체 얼마나 해 처먹은 거야? 이게 이렇게 심각하게 회의할 일인가?”

“어허! 쉿!”

한 초선 의원이 다른 의원의 입을 틀어막고는 조용히 옆을 가리켰다.

같은 초선 의원 하나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선배 정치인의 대담을 경청하고 있었다.

“설마…….”

“쉿.”

두 초선 의원은 흘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여기 모인 의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신재현이 국회의원을 조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것은 이들에게 있어서 날벼락이 맞았다.

다들 그만큼 해 처먹은 것이 많았던 것이다.

남의 일일 때야 재밌지만 자기 일이 되면 웃을 일이 아니다.

“설마 여기 모인 사람 전부…….”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

어째서 ‘초당적 조치’가 필요한 것인지 알아챈 것이다.

정치판이 원래 이렇다는 건 알았지만 그걸 막상 눈으로 보게 되자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차주혁을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여당의 결심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파하고 있었다.

“우리 여당은 대통령의 이번 조치를 국회의원에 대한 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선택으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에 대한 세무조사라니요. 이게 길들이기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차주혁 의원님께서 겉으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계신 것 아닙니까? 어떻게 대통령님이 혼자서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셨겠습니까. 제가 보기엔 차 의원님이 입김을 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무슨 소리입니까? 억측을 삼가세요!”

그 사이 둘의 설전은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에둘러 말하는 대신 조금 노골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만큼 둘 다 예민해져 있는 것이다.

“혹시 여당에서 국회의원 전체 세무조사를 하라고 부추겨 놓고, 야당 의원들만 콕 짚어서 저격한 후에 여당은 이렇게나 깨끗합니다! 하려는 거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총선도 대선도 완벽한 여당의 승리 아닙니까. 대놓고 짜여진 판 같은데. 차 의원님이라면 충분히 그런 수를 내실 분 아닙니까.”

“여보세요, 하 의원님! 근거도 없이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 신재현이라는 놈이 여당만 쏙 빼서 봐줄 것 같습니까! 우리도 지금 피해자란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신재현이 복귀하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잖습니까. 그건 신재현과 미리 어떤 밀약이 있었다는 뜻 아닙니까.”

하동문의 지적에 몇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하동문도 차주혁도 저런 판을 짤 머리가 되었고 능력도 되었다.

그리고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저런 더러운 수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동문은 이렇게 의심하고 있었다.

-신재현의 이름값을 이용해서 여당 의원들을 세탁하려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동문이 여당이었다면 신재현을 그렇게 이용했을 테니까.

자신이 떠올린 방법을 차주혁이 모를 리가 없다.

차주혁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곤란한데, 하동문은 차주혁보다 한 수 위였다.

당장 세무조사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여기서 밀리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적어도 5선의 의원 둘이 말싸움을 벌였으면 서로 어떻게든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하 의원님께서는 자꾸 저를 몰아가시는데 오히려 하 의원님의 계획 아닙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신재현이 공무원이고 대통령이 그런 말을 꺼낸 이상 여당을 의심하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하 의원님 휘하에는 머리 좋은 친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듣자 하니 다른 의원님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지요. 그 친구가 신재현을 영입하려고 쫓아다닌 걸 압니다.”

하동문이 미세하게 코끝을 찡그렸다.

꼴도 보기 싫어서 지방에 보내버린 정책실장은 하동문에게 있어서도 금기였다.

유진환의 이름을 들으면 자꾸만 연이은 실패가 떠올랐다.

그 대부분이 신재현 때문에 막힌 것이었다.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늙은이가 자신의 오점을 들쑤시니 평정심이 흐트러졌다.

“그게 어째서 제 잘못으로 이어지는 겁니까?”

“그 친구가 요즘 통 안 보이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책 실장이 혹시 신재현과 손을 잡고 뭔가를 꾸민 것 아닙니까? 그게 이번 판인 거고. 그러면 얘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데요.”

차주혁으로서도 이게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감에 이것이 하동문의 약점인 것은 분명했다.

하동문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서 차주혁은 그것을 물고 늘어졌다.

“아니면 그 친구가 하 의원님을 떠나기라도 했습니까? 어떤 사정이 있는지 시원히 말씀해보시죠.”

여기서 하동문이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오른팔이 신재현과 몇 차례 붙었는데 졌다, 그래서 빡쳐서 내보냈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하동문이 끙끙대고 앓고만 있자 차주혁은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다.

‘내내 밀린다 싶었는데 이걸 건졌네! 뭔가 있긴 있었구나!’

차주혁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걸 본 하동문이 이를 갈았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공방에서 한 대 맞은 거나 다름없다.

“차 의원님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보다는 차라리 정부와 차 의원님이 짜고 벌인 일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왜 신재현을 가만 놔뒀는지부터 설명해보시죠.”

하동문은 얼른 주제를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차주혁에게 이 책임을 덮어씌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방해한 것은 또 다른 5선 의원이었다.

“그만하십시다.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잖습니까.”

평소라면 하동문과 차주혁이 지지든 볶든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조금 마음이 급했다.

그 역시 국회의원 생활을 20년이나 해오면서 들키면 곤란한 일들이 많았다.

그는 지금 여기서 둘의 말싸움을 참아줄 생각이 없었다.

“제가 듣기로는 일전에 모 의원님들께서 만나셔서 따로 결론을 냈다고 들었는데요. 괜히 들쑤셨다가 피 보지 말고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참석하신 의원님 혹시 여기 계시면 자세한 상황 좀 말해주시죠.”

지친듯한 5선 의원의 말투에 다른 의원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다 어느 의원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신당 대표이신 정상훈 전 청장님께서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정상훈이라면 요즘 한창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주목받는 신예다.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냐는 식의 못마땅한 눈빛이 쏠리자 정상훈이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맞습니다. 제가 거기 있었죠.”

“왜 그런 결론을 내신 겁니까? 무슨 의도라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의심과 불만이 가득 담긴 질문이 날아왔다.

정상훈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그야 가만 놔두면 여러분이 괜히 국세청을 들쑤실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만.”

그게 뭐가 어떠냐는 식의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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