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조사단 국세청 지부 (2)
신재현이 국세청으로 돌아온 것은 반장 말대로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업무에 대한 진지한 대화와 함께 국세청에 들어선 다섯 명은 다소 빠른 걸음으로 로비를 가로질렀다.
“우선 순서 정해 놨어?”
“리스트업부터 해야죠. 그거는 일단 반장님한테 문자 보내 놨어요.”
“반장님이요? 어떤 분이에요?”
“저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는데 저랑 경력 자체는 저랑 비슷하더라구요. 올해로 5년 차던가 그래요.”
팀원들이 묻고 신재현이 대답하는 일문일답식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이들은 개찰구로 다가섰다.
그 옆에는 정부청사관리본부 소속의 직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신재현을 보더니 아는 체를 했다.
“결국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팀장님!”
당연히 올 줄 알았다는 말투였다.
신재현도 말을 멈추고 반갑게 받았다.
“네. 예고한 대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얼른 들어가세요.”
개찰구 앞을 지키는 관리본부 직원들의 반가운 인사와 함께 신재현이 개찰구에 공무원증을 찍고 통과했다.
뒤이어서 팀원들이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삑.
“응?”
“왜요? 안 찍혀요?”
“어, 승인 났을 텐데 왜 안 찍히지? 오류인가?”
장세훈이 공무원증을 이리저리 대 보며 당황해하고 있을 때 관리본부 공무원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 건물 리더기가 좀 그래요. 인식을 못하더라고요. 그래도 1층 입구 리더기는 잘 인식되는 편인데, 이쪽으로 해서 이렇게 대 보세요.”
관리본부의 공무원이 시범을 보이며 센서 앞에 공무원증을 댔다.
귀신 같이 개찰구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와, 되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처음 오는 분들은 다 겪는 통과 의례 비스무리한 겁니다. 다들 처음 센서 위치 잡는 걸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올해 발령 받으신 분은 아직도 한 번에 못 대는 분도 계세요.”
“아, 그래요? 혹시 우리 팀장님도……?”
장세훈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신재현에게 향했다.
이미 통과해서 기다리고 있던 신재현이 짐짓 딴청을 부렸다.
“신 팀장님도 적응하시는데 좀 걸리긴 했죠.”
“위층 사무실 앞에 달린 리더기는 아직도 한 번에 못 열어요…….”
신재현이 머쓱하게 웃자 관리본부 공무원들이 시원하게 웃었다.
“계속 다니시다 보면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쇼, 조사관님들!”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타자 강혜원이 의외라는 얼굴로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팀장님, 원래 그렇게 친화력 좋았어요? 입구 직원분하고 안면 텄을 줄은 몰랐네요.”
신재현은 머쓱하게 웃었고 그를 대신해 대답한 것은 황민우였다.
“팀장님이 친화력 좋아졌다기보다 주변 인식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쳐다보는 눈빛이 바뀐 거 팀장님도 느끼지 않아요?”
“어…… 좀 좋게 봐주시는 거죠.”
“그니까요. 저번에는 팀장님 지나가니까 복도에서 알아서 길 내주더라니까요.”
장세훈이 손을 탁 내리쳤다.
“아. 한마디로 그거네. 낙하산 이미지를 탈피했다?”
“조사관님은 말을 해도 꼭…… 팀장님이 그 이미지 벗어 던진 지가 언젠데.”
강혜원이 눈을 흘기자 장세훈이 아차 하는 표정을 했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원래는 너무 일찍 팀장 자리 앉혔다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잖아. 근데 지금은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라니까.”
그래도 강혜원의 매서운 째려보기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장세훈이 신재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내가 잘못 말했네. 아무리 친해도 팀장인데 예의는 지켜야지. 팀장님,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기에 신재현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이미 그만큼 친하기도 하고 사람이 살다 보면 말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다만 강혜원이 장세훈보다 하급자인데도 세게 나간 것은 스스로 선을 지키자는 무언의 압박에 가까웠다.
“그럼 들어가 보죠.”
신재현이 멈춰 선 사무실에는 아무런 팻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문과 창문의 유리에는 모두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어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열자 넓은 사무실 대신 사람 키만 한 칸막이가 그들을 맞이했다.
문을 열어도 안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엿볼 수 없도록 시야를 차단해 놓은 것이다.
이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절대 외부에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칸막이를 돌아 들어가자 직원들이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재현이 들어서자마자 동시에 손을 멈추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눈에서는 존경마저 묻어났다.
신재현은 사무실 앞에 멈춰 서서 안을 쭉 둘러보았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친숙했다.
조사단이 정식으로 발족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을 때마다 보고서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만큼의 인원을 홀로 다루는 것은 신재현으로서도 처음이었기에 그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첫 번째가 참가자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조사단 국세청 지부의 총괄을 맡게 된 팀장 신재현입니다.”
신재현의 인사와 함께 가벼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만남이니 연설이 있겠지, 직원들은 자리에 선 채로 신재현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신재현은 바로 반장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직원들이 살짝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성격이 급한 건가? 아니면 군더더기를 싫어하나?’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시선을 받은 반장은 움찔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도전적인 시선을 보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지금 신재현이 사무실을 휘어잡으려고 선제공격한다고 이해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현직 국회의원들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리스트업을 지시했습니다. 현재 300명의 현직 국회의원 신고서 및 재무제표를 준비하여 파일철을 만드는 중입니다. 이후에는 한 사람당 국회의원 몇을 담당해서 조사하는 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반장은 말을 끝낸 후 신재현의 눈치를 살폈다.
어찌 보면 조금 주제넘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원래부터 운영하던 팀에서 팀장이 자리를 비워 반장이 업무를 대리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첫날부터 팀장의 직접 지시 없이 반장인 자신이 세부지시를 내린 것이다.
‘여기서 화를 낼까? 아니면 내가 자신을 시험했다는 것도 모르고 넘어가려나?’
그러나 신재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이었다.
겉으로는 그저 부드럽게 웃는 낯으로 그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꽤 제대로 배웠네, 반장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상황 보고를 했다.
“300명에 대한 기본적인 5개년에 대한 파일철은 마무리했습니다. 이제 조사해서 추가하시면 됩니다.”
반장을 포함해서 사무실 안의 직원들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어떤 조사를 하든 출발은 기초 자료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점점 자료가 쌓이면서 비교도 하고 이상한 점을 발견해서 상세 조사도 들어가는 것이다.
신재현이 서울에서 출발해 본청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약 2시간 반 동안, 300명의 기초 자료를 마쳐 놓았다.
이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이런 작업에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신입 조사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로 분담해서 빠르게 일을 처리해나갔다.
그만큼 조사깨나 해본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 정도면 신재현도 감탄했겠지. 여기에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걸 깨달을 테고.’
신재현과 기 싸움 해보려는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반장은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 밑에 모인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조사국 같은 다른 좋은 선택지를 포기하고 모였다.
그러니 너도 정신 차리고 해야 한다.
그런 뜻이었다.
그런데 신재현은 여전히 동요가 없었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근무 첫날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다만 제가 좀 추가를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반장은 긴장했다.
추가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자칫하면 자신의 지시가 부족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5년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소득세만 조사할 건 아니라서요. 전 세목 다 봐야 하니 15년까지도 봐야 합니다.”
보통 소득세 조사는 5년을 한계로 둔다.
거기에 증여세와 상속세 같은 재산 관련 세목이면 10년이다.
15년을 거슬러 올라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경우는 하나다.
부정한 경우, 즉 일부러 노리고 탈세했을 때이다.
“……15년이요?”
반장은 사뭇 얼굴을 굳혔다.
일부러 직원들 길들이기를 하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업무 범위가 확대되었다.
“국회의원들이 전부 부정으로 탈세하진 않았을 겁니다. 조사하다가 눈에 띄면 15년으로 확장하는 게 정석 아닙니까?”
그래서 반장은 저도 모르게 반기를 들었다.
그제야 신재현의 눈빛에 조금 이채가 돌았다.
“저도 원래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만 그러기엔 다들 너무 수상하셔서요. 제 판단에는 처음부터 15년 치 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나중에 두 번 일하게 될 것 같아요.”
“……네?”
신재현 입장에서야 당연한 것이었다.
예전에 국회에 갔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다.
탈세액이 의외로 크다.
이 사람들 진짜 뭔가 있다 싶을 정도로.
신재현도 처음에는 반장 말대로 하려고 했다.
일단 조사해 보고, 그다음에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탈세액과 조사 결과가 많이 차이 나면 더 깊이 파보려고.
그러다 탈세 규모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건 아예 처음부터 파고들어야겠네.’
한두 명이라면 추가조사를 지시해도 된다.
그러나 나중에 수십 명의 조사 보고서를 빠꾸시키며 추가로 조사해오라고 하면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 같았다.
심지어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도 못한다.
탈세액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으니까.
미친놈 취급하지 않을까.
나중에 ‘다시 조사해 오세요’하고 불신의 눈초리를 받느니 차라리 지금 처음부터 모조리 파는 것이 나았다.
반면에 반장은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뭐야, 이미 훑어보고 왔다는 거야?’
반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팀장의 지시가 떨어진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족히 서른 명에 달하는 인원이 움직이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신재현이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건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조사단에 참가하는 기관만 열다섯이다.
국세청이 아닌 다른 출처에서 나온 정보라면 팀원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반장은 불타올랐던 경쟁심이 팍 식는 것을 느꼈다.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확실히 괜히 위에서 부단장 자리에 앉혀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역시 뭔가 있긴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 이 사무실에서의 생활이 꽤 험난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끼리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보다도 일이 굉장히 힘들어질 것 같았다.
‘쉽지 않겠네…….’
그나마 궁금한 것은 신재현이 직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굴릴 수 있을까였다.
안 그래도 일이 힘들 것 같은데 직원들마저 힘들게 굴리면 자신이 중간에서 조율해야 한다.
당장 업무가 몇 배로 늘어났으니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런데 신재현은 굉장히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봐야 하니까 이왕이면 방법을 통일합시다. 파일철은 이렇게 하죠. 일단 사람마다 세목별로 분리하고 연도도 나눕니다. 그다음에 조사 대상자의 특수관계자와 법인, 차명 순으로 파일을 파생해 나갑시다. 그리고 납세자 본인, 특수관계자, 법인, 차명은 각각 다른 색으로 구분하죠. 그 후에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누가 보든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장을 많이 뛰어보고 본인이 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사람만이 가능한 지시였다.
자료 조사야 이들이 항상 해오던 일이고 자신 있다.
그러나 나중에 열어보면 그 많은 자료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결국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걸 아예 처음부터 방지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건 실무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긴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만큼 세세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당 파일이 최소 10권은 나오겠지만 적어도 나중에는 편해질 겁니다. 지금 최소 조사 대상만 300명이고 거기서 얼마나 다 불어날지 모르니까요.”
직원들은 하나같이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실무 출신의 상사는 이래서 좋다.
반장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가 얼른 표정을 관리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흡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실무 잘 아네. 의외로 편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신재현은 마지막 한마디로 직원들의 감동을 깨부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자료 파일 얘기할 때와 변함없는 어조와 목소리로 신재현은 폭탄을 던졌다.
“조사는 5선 의원부터 순서대로 초선까지 내려가겠습니다.”
“지, 진짜 하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