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조사단 발족식 (3)
조사단 서울본부로 마련된 사무실 안에는 열댓 명 되는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이 고요했다.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통성명할 법한데도 단 한 명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몇 명은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앉아 있었고, 몇은 입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 회의의 주최자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은 핸드폰을 켜고 방송을 보고 있었다.
바로 이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빌딩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조회수가 10만까지 치솟은 이 방송은 기자회견 대상이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는데도 반응이 뜨거웠다.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이 차마 읽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뭐야, 마지막에 뭘 본 거야?
-권력층이랬는데 세종시? 청와대? 강남?
-현장에 있던 사람 여기 있어요?
-그냥 말로 하지 쳐다보면 어케 아냐구
-그래서 타겟이 누구래요?
-그쪽에 뭐가 있음?
-내가 지도 찾아왔다.
조사단 사무실에서 실시간 방송을 보던 사람들도 순간 침을 삼켰다.
누구를 칠 것인가.
그것은 자신들에게도 밀접하게 연관된 일이기도 하다.
-빌딩 주차장 있고 조사단 대표들이 서 있었으니까 지도에서 보면.
-야 다들 조용히 해봐. 묻혀서 안보이잖아.
-내가 제일 빡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말하다 끊는 것이고.
온갖 아우성 속에 누군가의 추측이 올라왔다.
-신재현이 말끝에 바라본 방향은 이거거든. 링크 첨부함. 거기서 일직선으로 그어보면.
-너 말 끊지 말라고 했지
-쉽게 설명 안 하냐?
-돌려 말하는 신재현보다 쟤가 사람 더 빡치게 한다.
-링크를 열어보면 되잖아. 빡대가리들아! 내가 선 그어놨다고!
-어! 여의도다!
-여의도? 진짜로?
-국회의사당???
-일단 여의도에 방송국, 증권가가 있긴 한데.
-아까 대놓고 권력자들이라고 말하지 않았음? 그럼 딱 국회의원인데.
-어. 아는데 설마 그건 아니겠지 싶어서 다들 모르는 척하는 거잖아ㅎㅎㅎㅎㅎ
-그치? 좀 미쳤지? 제정신으로 국회의원 친다고 한 건 아니겠지? 우리 착각이지?
-국회의원하고 전면전하면 청이고 나발이고 풍비박산 아님?
-그렇지. 거기는 아니지. 초선의원 한두 명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뒤지고 싶으면 몰라도.
신재현이 거의 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실시간 채팅에서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란 그런 성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조사단 사무실에 앉아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알았다.
이것이 진심이구나, 정말로 처음부터 국회의원을 치려고 하는구나.
한층 더 짙은 긴장감이 흘렀다.
-달칵.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동시에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들은 세 명이 각자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야 앉았다.
가장 상석에 앉은 세 명은 앞으로 이 조사단을 이끌어갈 중심이자 축이었다.
그중 가운데 있던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조사단에 참가해주신 여러분 모두 반갑고 고맙습니다. 역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이 가는 일도 있을 겁니다.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오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만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조사단이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해산하는 그날,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길이 남을 업적과 보람을 품고 돌아가게 되실 겁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단장으로서 이 자리에 임하는 제 각오입니다.”
경제수석이자 조사단의 대외적 얼굴을 맡게 된 단장 임현승은 그렇게 조사단의 시작을 알렸다.
조사단에 자리한 사람들의 눈매가 일제히 날카로워졌다.
어찌 보면 살기라도 보일 수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은 이들 나름의 대답이었다.
임현승의 각오에 대한 대답.
“저는 직위상으로는 단장이지만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최종 결재만 맡을 겁니다. 실무는 제 양옆의 부단장이 도맡을 거예요.”
긴장감 하나 없는 얼굴로 양옆에 앉아 있던 젊은이 둘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앞으로 이 사무실에 아주 가끔 올 겁니다.”
사무실에 앉은 사람들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어떤 뜻인지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임현승은 안심시키려는 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조사단에 신경을 안 쓰고 놀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들 짐작하시다시피 이제 곧 많은 공격이 들어올 거예요.”
몇몇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조사단의 대외적 이미지를 도맡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사단의 업무에만 신경을 쓸 수 있도록 밖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현승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험한 일인지는 모두가 알았다.
한마디로 혼자서 어그로 끌며 버텨보겠다는 말인데 이걸 누가 가볍게 생각하겠는가.
“자, 그럼 업무를 시작하셔야 하니 무늬만 단장인 저는 이만 빠져보겠습니다.”
임현승이 생각보다 빨리 일어서자 다들 당황했다.
그러나 곧 이해했다.
사람은 각자 맡은 역할이 있다.
물론 경제수석씩이나 되는 사람이니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주면 그것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눌러 앉아 현장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밖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 차라리 조사단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이미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생길을 떠나는 단장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존경의 마음이었다.
더불어 얼굴만 겨우 보여주는 단장이어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동료애가 있었다.
“그럼 곤란한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임현승은 양옆의 두 젊은이의 어깨를 다독여준 후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멈칫했다.
무언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하고 사람들은 속으로 침음했다.
‘그럴 만도 하지. 상대가 권력자들인데 조사단을 맡길 실세가 새파랗게 어린 청년들이니. 우리가 보좌를 잘할 수 있으려나.’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임현승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에게 당부를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우리 어린 부단장들 잘 부탁한다고 덧붙이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한마디 내뱉으면 된다.
부단장들을 믿어주라고.
하지만 임현승은 꾹 참았다.
어차피 남이 말로 세워주는 권위는 공허할 뿐이다.
이것 또한 신재현과 지현석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임현승이 자신의 입으로 조사단의 질서를 잡아준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단원들은 순순히 두 부단장을 따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사단이 원활히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큰 벽을 만나면 뭉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이 조사단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둘이 편히 장악할 수 있도록 아예 빠져주는 것이 맞았다.
또한 여기서는 아무 말 없이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단원들이 부단장을 자기 윗사람으로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언젠가 겪고 넘어가야 할 홍역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초반에 겪는 것이 낫겠지.
임현승은 그런 마음을 담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신재현과 지현석을 지그시 보기만 했다.
마치 무게가 담긴 것마냥 진득한 눈빛이었다.
“들어가십시오, 단장님.”
신재현은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 임현승에게 인사했다.
맡기고 가도 된다는 눈빛이 임현승에게 얽혔다.
그제야 임현승은 발걸음을 떼었다.
“그럼 갑니다.”
이제 임현승의 걸음에 망설임이나 거리낌은 없었다.
올 때처럼이나 빠르게 임현승이 떠나간 후 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딱 한 명 빠졌을 뿐인데 분위기가 옅어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임현승의 무게감이 상당했다는 뜻이다.
이것을 가장 느끼는 것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잠깐의 순간은 이들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진짜 제대로 굴러가려나.’
부단장이 누구인지 들은 이후부터 애써 외면해왔던 걱정이었다.
그 분위기를 떨쳐내듯 지현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본격적인 실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지현석은 신재현과 시선을 나누었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열다섯 명 남짓의 사람들의 직함은 모두 과장 아니면 팀장이었다.
조사단의 구성 자체가 그랬다.
여러 기관이 모인 만큼 각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팀을 꾸리고, 그 대표 1명만이 서울본부의 회의에 참석했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영역에서 한 가락씩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관세청의 대표로 나온 사람은 밀수 잡는 귀신이라 불리는 과장이었다.
조사단 구성 보고서에는 그가 잡은 온갖 기상천외한 밀수 방법이 적혀 있었다.
앞으로 그들을 다룰 일이 관건이었다.
그리고 한편 팀장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부단장 둘 중 좀 더 실권을 가진 사람은 지현석 검사겠군.’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수사 권한을 받은 특사경인 이상 검사의 수사지휘를 따르도록 되어 있다.
더불어서 직함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지현석이 실권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했다.
그러나 팀장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입을 연 것은 신재현이었다.
“아까 기자회견 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거침없이 갈 겁니다. 이런 기회 흔치 않거든요.”
팀장들은 당황했다.
젊은이의 패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자신만만했다.
그렇다고 손에 들어온 장난감을 굴려 보고 싶어 안달 난 어린애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손에 무엇을 쥐었는지 알고서 행동하는 진중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팀장들에게 있어서 의외로 다가왔다.
어디까지나 이들이 불안해 한 것은 신재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신재현은 지금껏 보란 듯이 실력을 증명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능력에 국한되는 영역이었다.
100명도 넘는 특사경을 이끄는 수장의 자리를 맡길 수 있는가.
그것은 실력과는 또 다른 문제다.
‘윗분들이 그런 생각 없이 맡겼을 리는 없으니 두고 볼까.’
팀장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며 신재현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것을 못 알아들은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당연하다.
그것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보고 있던 팀장들조차 뒤통수가 찌릿할 정도로,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짜릿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여의도에 계신 국회의원님들입니다. 대통령이 임기 말에 다다른 이상 그들이 우리나라 최강의 권력자들이고 조사의 사각지대죠. 그 안에서 다음 대통령도 나올 테구요.”
팀장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신재현의 말을 들었다.
“이렇게 말했지만 감히 우리가 최고 권력층을 검증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한 가지 생각만 갖고 가면 됩니다. 탈세범은? 잡는다. 비리는? 족친다. 가차 없이 갈 겁니다.”
신재현의 목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팀장들은 문득 그에게서 강렬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부터 모든 현직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들의 부동산, 가족 간 자금 흐름, 소속된 위원회에서 내부 정보를 얻어 투기한 흔적이 있는지, 해외에서 자금 사용한 기록 등 할 수 있는 모든 생활 흔적을 조사합니다. 5선 국회의원부터 조사해서 초선까지 내려올 겁니다.”
신재현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명료하게 회의실에 흘렀다.
너무나도 칼 같이 말해서 국회의원 조사가 아니라 평범한 세무조사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나 벼르고 왔는지 목소리에는 한 점의 떨림조차 없었다.
이상하게도 팀장들은 그런 칼 같은 면에서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팀장님들 모두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해오신 분들이시니 뭘 조사하셔야 할지 알 겁니다. 그 대상이 국회의원인 것뿐이에요. 한 명도 거르지 말고 탈탈 털어주세요. 여당이라고 봐주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살벌하기까지 한 그 말투에 팀장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국회의원이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른도 안 된 까마득한 젊은이가 뿜어내는 혈기는 팀장들에게도 전염되어 왔다.
다르게 말하면, 압도되고 있었다.
“일차적인 보고는 제게 하시면 됩니다.”
이것 또한 의외의 말이라서 팀장들은 흘끔 지현석 검사의 눈치를 보았다.
이미 논의가 끝난 일인지 검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 조사단의 실권자가 지현석이 아닌 신재현이라는 것을 뜻했다.
당혹과 경악의 눈길을 느꼈는지 신재현이 덧붙였다.
“부단장이 둘이니 보고 체계가 중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취합하여 최종적으로는 지현석 검사님의 수사지휘를 받게 될 겁니다.”
형식상으로야 검사의 수사지휘지만 실제로는 둘이 상의하여 처리할 것임을 알았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단장 둘이 고개를 숙였다.
겨우 10분 남짓이었지만 팀장들에게 있어 조사단의 방향성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팀장들은 거리낌 없이 진심을 담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단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