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47화 (347/500)

347화. 조사단 발족식 (2)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것이 현장이 아닌 화면 너머로도 전해져 왔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전부 집음해내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의 플래시가 터져 나오고 질문 시간이 아닌데도 반사적으로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 올렸다.

대통령은 한쪽 손을 들어 올려 질문을 막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이미 우리가 사전에 설명받은 것들을 잘 포장하여 발표하는 내용에 가까웠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기자들의 손이 올라갔다.

어떻게든 눈에 띄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그나마 내가 했던 기자회견장에서처럼 지목하기 전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저기가 청와대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것이다.

대통령은 발표만 끝내고 나가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몸을 비틀며 손을 들고 있는 기자 하나를 지목했다.

기자는 공무원에게서 마이크를 빼앗듯 건네받았다.

-단장과 부단장 인사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특히 신재현 씨의 경우 어느 선에서 검토가 이루어진 겁니까?

옆에서 장세훈이 내 어깨에 턱, 손을 올리며 조그맣게 말했다.

“어떻게 조사단 만든다는 얘기보다 너한테 더 관심이 많냐? 아까 봤지? 조사단 얘기할 때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보는데 네 이름 나오자마자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난 거.”

장세훈이 너무 킬킬대고 웃길래 나는 살며시 민치호와 이선균의 눈치를 보았다.

진중한 분위기에서 우리 팀의 둘이 너무 들떠 있었다.

장세훈과 강혜원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강혜원은 본인이 자제가 안 될 것을 아니까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장세훈은 그런 자제력을 가질 생각 자체를 안 한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조용히 대답했다.

“진정이 안 되시는 것 같은데 이따 조사관님 빼고 나갈까요?”

장세훈에게서 바로 반응이 왔다.

“아, 미안. 조용히 할게.”

웬일로 장세훈이 즉시 조용해졌다.

평소라면 몇 마디 더 보태다가 강혜원의 한마디에 깨갱하는 것이 수순인데.

-인선은 각 부처의 추천을 받아 제가 직접 인가했습니다. 제가 이번 사안을 얼마나 중차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바로 이 인선에 드러나 있다고 봅니다.

TV에서는 혼란스러운 기자회견장의 모습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세범에게 칼을 빼 들었다, 이런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제 막 4년 차인 공무원이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신재현 조사관의 그간 행적을 보고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것으로, 적절한 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조사단의 방향성도 제시했다고 봅니다만.

수군거리는 소리에 섞여 대박이야, 미쳤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기자들이 성화였지만 대통령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연단을 내려갔다.

기자회견이 끝났다고 생각한 방송국이 스튜디오를 비췄다가 급하게 도로 기자회견장의 영상을 띄웠다.

그새 장소는 복도로 이동해 있었고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의 연장 선상이라기보다는 사담 같았다.

국회의원들이 이런 식으로 기자들과 따로 이야기 나누는 건 본 적 있는데 대통령이 이렇게 하는 건 처음 봤다.

-제가 대답을 다 해 드릴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 역할을 양보해 드리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마 바로 곧 얘기가 나올 거예요.

-자세히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대통령은 대답 대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제 역할은 끝입니다. 다음은 여러분 차례예요. 제 믿음의 표시는 잘 전달됐죠? 저는 여러분이 낼 결과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짧은 사담이 끝나고 대통령이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기자들이 붙으려고 했지만 경호원에게 저지되었다.

멀어져 가는 대통령의 뒷모습과 함께 카메라가 스튜디오로 전환되었다.

-청와대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이제는 기자회견 내용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가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을 모셨…….

삑, 하는 소리와 함께 TV가 꺼졌다.

까만 화면에 청장실의 모습이 비쳤다.

전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반사된 모습에 놀라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로 했다.

민치호가 손잡이를 툭툭 가볍게 내리치며 혼잣말을 했다.

“저분도 작정하셨네.”

“그러게 말입니다. 직접 기자회견 해준 것도 고마운데 마지막에 한마디를 날려주시네요.”

내가 느꼈던 것이 틀린 게 아닌 모양이다.

마지막에 카메라 너머로 했던 말은 명백히 누군가를 지정하고 한 말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즉시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라는 것을.

“그럼 슬슬 일어나야지. 이제는 진짜 본무대야.”

민치호가 내게 말했다.

대통령이 카메라 너머로 보냈던 눈빛이 떠올랐다.

민치호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걱정이 깔려있지만 그 이상의 믿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시선에 따뜻함과 힘이 실려 있었다.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하나둘 청장실을 빠져나가는데 문득 민치호가 불러세웠다.

“아, 이 말을 깜빡했네.”

“예?”

민치호는 우리 다섯을 스윽 훑어보더니 티 없이 맑게 웃었다.

험악한 인상 때문에 웃어도 악당처럼 보이던 민치호였는데 오늘은 놀랍게도 순수해 보였다.

“오늘 다들 멋있게 하고 왔구만. 화면 앞에 서면 윤이 나겠어.”

이선균 역시 흡족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때아닌 칭찬에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어……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민치호는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넥타이를 만져 주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당당하게 하고 와. 기자 앞에서 국회의원 멱살을 잡고 패대기쳐도 저 위의 높으신 분이 다 막아줄 거니까. 그러기로 했어.”

“예……?”

“우리도 손 닿는 대로 도울 거고.”

따뜻한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제 모든 일은 우리 손으로 넘어왔다.

민치호를 포함한 윗선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그 칼자루를 내게 쥐여주었다.

본인들의 목도 걸려 있는 일이니 불안한 것이 당연할 텐데도 오히려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격려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소처럼만 하고 와!”

민치호가 힘주어 말하며 등을 세게 내리쳤다.

등골에 흐르는 아픔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믿어주신 만큼 열심히 날뛰고 오겠습니다!”

***

청와대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이 끝난 바로 그 시각.

정확하게 그 시간에 맞추어 한 통의 안내 문자가 국세청, 그리고 검찰청 취재기자들에게 발송되었다.

또 다른 긴급 기자회견의 알림이었다.

국세청과 검찰청의 홍보담당관들이 보낸 공지였다.

문자에는 간략하게 딱 두 가지의 사항만 적혀 있었다.

예정 시각은 아침 9시.

그리고 장소는 조사단의 서울 본부인 사무실.

급작스러운 문자였지만 기자들은 부리나케 달렸다.

“이거 놓치면 등신이다! 무조건 찍어야 돼!”

“청와대에서 언급한 게 이거지! 딱 봐도 특종감이야! 뛰어!”

덕분에 문자에 찍힌 주소 앞은 기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청와대처럼 출입 기자 자격조차 없는 곳이라 더했다.

예전 신재현이 문체부 장관 집을 수색하러 갔을 때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인 듯했다.

오피스텔 건물 앞 지상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도 부족해서 골목까지 카메라가 꽉 찰 정도였다.

보통 동원된 카메라와 장비, 그리고 기자들의 숫자를 보면 그 건의 중요성을 미루어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조사단에 쏟아지는 관심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근처 출근하던 사람들까지 무슨 일 났나 싶어 구경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었다.

개중에는 순수하게 ‘당분간 기삿거리 굳었다’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인상을 찌푸리며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씨발. 뭘 얼마나 족치겠다는 거야? 이거 그냥 대한민국에 선전포고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냐? 부단장이 신재현? 돌겠네, 진짜.”

“피바람이 불겠네. 사화가 따로 없어. 이러다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 차리지! 이게 이렇게 조사단까지 꾸려서 겁줄 일인가?”

물론 고깝게 보는 사람은 찔리는 게 있어서 지레 겁 먹은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저렇게 대놓고 자기들 탈세했소, 광고하는 놈들도 있네. 그래 봤자 조사단이 저놈들 같은 잔챙이를 잡겠냐고. 찔리나 봐. 에잇, 퉤!”

“구경 재밌겠는데. 누가 불타려나! 당분간은 기삿거리가 넘치겠어!”

“나만 아니면 돼~”

금방 집에서 나온 건지 머리가 부스스한 기자들 몇이 킬킬대며 전전긍긍해 하는 기자들을 비웃었다.

“어우, 재밌겠다. 난 이럴 때가 제일 좋더라.”

“조용! 조사단 대표들 나옵니다! 지금 기자분들 많이 모여서 다들 조금이라도 조용히 해주셔야 뒤까지 들립니다!”

오피스텔 로비에 사람이 나타나자 중간 열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족히 백 오십은 되는 기자들이 순식간에 침묵했다.

마치 음소거를 누른 것 같았다.

옆 사람의 숨소리조차 거슬릴 정도로 기자들은 바짝 귀를 기울였다.

막 건물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의 숫자는 열 명 남짓.

그중 중앙에 선 중년 남자는 청와대의 경제수석 임현승이었다.

불과 1시간 전에 있었던 청와대의 기자회견 내용대로였다.

임현승의 바로 옆에는 과연 전 국민에게 익숙한 얼굴의 청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미리 만들어둔 포토라인 앞에 그들이 섰다.

구성원 대부분이 젊었다.

그 때문인지 얼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앞 줄의 세 명이 더욱 돋보였다.

자칫 젊다고 얕보일 수 있는 조사단의 권위는 임현승의 묵직함으로 눌렀다.

그 옆의 검찰과 국세청 대표는 각각 실무자로서 의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기자들은 결코 조사단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잡담이나 혼잣말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저희 조세범처벌 특별조사단이 오늘부터 활동을 시작합니다. 조사단의 목적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탈세, 불법 비자금 조성, 위법 금융 행위 등 광범위에 걸쳐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겁니다. 시간이 있으면 조사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는 저희 단원들의 의견상 따로 발족식은 하지 않겠습니다.”

기자들의 눈에서 실망감이 엿보였다.

일부러 아침 일찍 부랴부랴 달려왔다.

지금 이 상황만 해도 충분히 기삿거리가 되긴 하지만 뭔가 화려한 발족식 같은 게 있어야 기사가 볼만해진다.

지금은 솔직히 기대한 만큼의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임현승은 기자들을 쭉 둘러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나무판자 같은 것을 들어 올렸다.

자그마한 공책 크기의 나무 현판이었다.

사무실 문 옆에 붙여 놓는 네모난 현판 말이다.

[조세범 처벌 특별조사단 서울본부]

인쇄본 같지는 않았다.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자 임현승이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께서 조사단의 활약을 기대하며 직접 써 주신 현판입니다. 저희 조사단도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겠습니다.”

확실히 임현승은 장면을 만들 줄 알았다.

기자들의 머릿속에 이번 기사의 헤드라인이 뽑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묵직한 한 방이 없다.

“그럼 발족식도 생략하셨으니 질문 좀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혹여라도 조사단이 들어갈까 봐 기자들은 질문을 터뜨렸다.

한 명이 소리치자 아우성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뭔가요! 혹시 대상을 정해 두셨습니까!”

“혹시 대기업 전수조사를 하실 생각입니까!”

“주 조사 업무는 조세 포탈 혐의가 확실한가요!”

임현승은 익숙하게 한 손을 들어 올려 기자들의 외침을 잠재웠다.

“그건 제가 아니라 저희 부단장이 답해야 할 것 같군요. 저는 최종 결재자일 뿐 실무자는 부단장이거든요.”

공식적 자리에서 경제수석마저 실권자는 부단장이라는 것을 밝히자 기자들은 머리를 굴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뭔가 취재를 하려면 부단장을 따라다녀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지목을 받은 것은 신재현이었다.

“글쎄요. 질문하신 대로 조세 포탈 혐의자에 대한 조사가 우선입니다만, 조사 중에 수사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굳이 조세에 국한되지는 않을 겁니다. 대상은…….”

신재현은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리고 당황한 기색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조사의 사각지대에 있던 분들을 한번 볼까 합니다.”

“조사의 사각지대요?”

기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얼핏 뭘 말하는 건지 짐작은 갔다.

‘설마 그거? 정말 그거라고?’

그러나 머리로는 알아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기자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재현의 말을 기다렸다.

순식간에 휘어잡은 신재현을 보며 임현승은 제법이네, 하는 얼굴로 신재현에게 포커스를 양보했다.

“네. 권력자들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신재현은 스윽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본 기자들이 입을 쩍 벌렸다.

“미, 미쳤어…….”

누군가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조용하던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다른 기자들 역시 그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신재현의 시선이 향한 곳.

그 너머에는 여의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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