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46화 (346/500)

346화. 조사단 발족식 (1)

“어으, 추워…….”

나는 아침 일찍 서울청 본관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옆에는 황민우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조용히 서 있었다.

“으으어, 추워어…….”

코트를 바짝 여며도 찬 바람이 파고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곧 봄이 올 때가 됐는데 이 칼바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영하 10도는 되는 것 같다.

이거 한겨울 아닌가?

내가 덜덜 떨고 있자 황민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감기 걸리는 거 아니에요?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시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안 그래도 지금 후회 중이에요.”

“그럼 지금이라도 들어가실래요?”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있으렵니다. 으으…….”

지금 들어가면 뒤에 오는 사람들은 우리가 따뜻한 건물 안에서 기다린 줄 알 것 아닌가.

뭐, 상관없긴 한데 아침 일찍 나와서 추위에 떨고 서 있던 시간을 생각하니 왠지 억울해졌다.

“되게 어이없는 거 아시죠?”

“……네. 제가 봐도 바보 같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자리를 지켰다.

이제 와서 들어가기 싫다는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얼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얼굴이 오면 버선발로 나가서 맞이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 심정이 딱 그랬다.

“그래도 곧 오겠네요. 출근 시간 다 됐네.”

나는 1분에 한 번씩 시계를 들여다보며 양손을 빠르게 비볐다.

서울지방국세청이 골목 안에 있긴 하지만 근처에 고층 빌딩이 있어서 그런지 간혹 골목에 스치는 바람이 매서웠다.

서울청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졸린 얼굴로 묵묵히 들어가다가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를 보고 흠칫했다.

잠시 멈춰 서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우리 얼굴을 스윽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출근길을 재촉했다.

가볍게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탄식하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언가를 각오하는 표정들이었다.

“참 이상하다. 각오는 우리가 해야 되는데, 그죠?”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팀장님이 어떤 파란을 몰고 올지 보자마자 딱 느낌이 오지 않아요?”

“사람을 너무 재해 취급하는데요.”

“재해 맞잖아요.”

“자꾸 그럴 거예요?”

지루해지자 우리는 티격태격을 시작했다.

그리운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지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그리고 한 가지 황민우가 나와 다른 점을 깨달았다.

이 추운 날에 황민우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어? 형은 안 추워요? 저는 엄청 추운데.”

옷차림을 봐도 나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도 그렇고 황민우도 그렇게 정장 위에 코트 차림이다.

추워서 목도리를 두르긴 했는데 딱 봐도 직장인 같은 모양새였다.

황민우는 입맛을 다시더니 코트 주머니에 꽂았던 손을 뺐다.

핫팩 두 개가 들려 나왔다.

“아, 뭐예요! 언제 이런 걸 가져왔어!”

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니 황민우는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멍하니 있는 것 같아도 지금 저건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니 대체 뭘 고민하는 거야?

세 번 계산기를 두드렸는데 세 번 다 틀린 결괏값을 봤을 때만큼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은 황민우가 이윽고 내게 핫팩을 내밀었다.

굉장히 아쉬운 얼굴이다.

“아니, 형.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아니에요? 그럼 제가 계속 쓰겠습니다.”

“그렇다고 안 줘요? 양심상 한번 사양해본 건데.”

“양심상 계속 사양하세요. 안에서 기다리면 될 걸 팀장님 때문에 찬바람 맞고 있는 거잖습니까. 추워 죽겠습니다.”

“저도 추운데요. 하나만 주시죠.”

내가 손을 뻗자 황민우가 정색하며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바로 앞에 편의점 있으니까 다녀오세요.”

“귀찮은데.”

“아, 씨…… 직급이 깡패지.”

황민우는 투덜거리면서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나도 장난이다.

그래도 여기서 더 서 있을 생각이면 핫팩이라도 사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인데 저 멀리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청으로 통하는 골목에 낯익은 세 명의 얼굴이 나타났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이제는 직장 동료가 아니라 거의 친구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와아아! 팀장니임!”

가장 먼저 강혜원이 돌고래 초음파 같은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출근하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지만 강혜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뒤를 쫓아오던 장세훈과 안길진은 질색하는 얼굴로 속도를 늦췄다.

“아, 제발. 강혜원 그런 것 좀 하지 마!”

“왜요! 오랜만에 보니까 엄청 좋구만!”

장세훈은 강혜원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며 손을 흔들었다.

강혜원은 황민우를 껴안을 것처럼 덤벼들고 있었다.

황민우 역시 기겁하며 내 뒤로 도망쳤다.

셋 다 조금 들떠 보이는 것만 빼면 여느 때와 똑같았다.

아니, 얼굴에 더 화색이 도는데.

“잘 꾸미고 나오셨네요.”

“힘 빡 주고 입고 나오라며.”

아닌 게 아니라 셋 다 누구 결혼식에서나 입을 법한 깔끔한 정장과 코트를 차려입은 상태였다.

출퇴근 할 때는 어차피 야근이겠다, 적당히 옷장에 굴러다니는 와이셔츠 대충 입고 그 위에 패딩 걸치고 나오는 일도 빈번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팀장님! 잘 지내셨죠? 여기서는 도망 못 가니까 제가 뭘 좀 보여줘도…… 아니, 어디 가세요?”

강혜원이 슬쩍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내가 재빨리 세 걸음을 물러났다.

나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휭, 하고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지만 이것은 순간이다.

강혜원이 꺼낼 내 흑역사는 영원하고.

“꺼내기만 해 봐요. 여기서 술래잡기 하게 될 겁니다.”

“종로에서 공무원들이 미친 짓 한다고 바로 SNS에 뜰지도 몰라요. 진정하세요!”

안길진이 와락 겁을 먹으며 우리를 말렸다.

그러나 나는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 순간을 잘 회피하지 못하면 앞으로 생각나는 대로 놀릴 테니까.

내가 굳은 의지로 버티자 강혜원이 아쉬워하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내가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가자 가만히 보고 있던 장세훈이 덥석 내 팔목을 잡았다.

도망 못 가게 잡은 건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장세훈은 나를 위아래로 쓰윽 훑었다.

“어? 옷 뭐야. 샀어? 못 보던 코트인데.”

장세훈은 슬쩍 내 코트를 만져 보더니 감탄했다.

“와…… 이거 질감이 장난 아니야. 우리 거랑 확 달라. 돈 좀 줬겠는데. 웬일이야?”

“아, 이거요?”

나는 가볍게 코트를 털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청장님이 사주셨습니다.”

“와, 미친. 청장님이?”

“안에 정장은 과장님이 사주셨구요.”

“미쳤다, 미쳤어! 역시 청장님의 후계자! 애제자!”

순식간에 세 명의 남녀가 들러붙어 옷을 살피기 시작했다.

“브랜드는 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비싼 건 아니랬어요. 제 월급으로 살 수 있을 정도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으니 일이십 정도 아닐까요?”

“미친놈아. 청장님이랑 과장님이 사주셨는데 어디 일이십이겠냐? 그래도 너 이미지 있으니까 적당히 50~60선에서 타협 보신 것 같은데. 강혜원, 코트는 얼마짜리 같냐?”

장세훈의 질문을 받은 강혜원이 양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렸다.

어딘가에서 전파라도 수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음, 제 심미안에 따르면 이 코트는 한 127만 원 정도 하지 않을까 싶네요.”

강혜원이 사뭇 진지하게 말하기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설마요. 그렇게 비싼 걸 제가 어떻게 입어요. 그리고 왜 이렇게 구체적이에요? 어디 가격표라도 붙어 있어요?”

내가 당황해서 상체를 이리저리 돌려 옷을 뒤지자 강혜원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냥 찍었는데요.”

“아, 진짜…….”

“그래도 100만 원대인 건 맞을걸요? 코트 비싼 건 진짜 비싸요. 그 정도는 해야 입을 만하고.”

홍일점인 강혜원의 말에 남자 넷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니야. 내 코트 이거 30만 원인데도 쓸 만해!”

“그니까 천이 텁텁하잖아요! 제가 정확하다니까요?”

“너도 브랜드 잘 안 입어서 모르잖아!”

“브랜드는 몰라도 딱 만져 보면 안다니까! 아, 장세훈 조사관님은 빠져요!”

“뭐 인마?”

급기야 장세훈과 강혜원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황민우가 옆에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지금 거리에 부는 바람만큼이나 냉정한 목소리였다.

“저 추운데 먼저 들어가도 되죠? 두 분은 알아서 하시고요.”

“나도 추워! 들어갈 거야!”

장세훈이 코트 깃을 여미며 앞장서다가 입구 문을 앞에 두고 멈췄다.

그리고 어색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어디로 가야 돼……? 우리 사무실 없어졌잖아.”

“으이구! 그니까 얘기 좀 잘 듣고 가라고요!”

투덕거리며 서울청 문 앞을 점령한 둘을 보며 황민우가 냉담하게 다른 입구로 들어갔다.

안길진은 길이 막혀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죄송하다고 허리 굽혀 사과하고 있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을지 미리 들어 알고 있을 텐데도 참 변함없는 나의 팀원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사실 내가 아침 일찍 나온 건 새벽같이 눈이 떠져서였다.

마음의 준비는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저 꼬라지를 보면 굳었던 근육도 팔딱거리게 생겼다.

일단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지거든.

“팀장님, 저 둘은 놔두고 가시죠.”

황민우가 냉담하게 여닫이 유리문을 붙잡고 날 불렀다.

나도 모른 척 그 문을 통해 서울청으로 들어섰다.

“같이 가요!”

“잠깐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뒤늦게 팀원들이 뒤에 따라붙었다.

1층의 로비를 가로지르자 출근길이던 직원들이 우리를 보고는 먼저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주었다.

출근하는 직원들은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보자마자 멈춰 서서 고개를 숙였다.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간혹 보이는 팀장급들은 가볍게 눈인사만 했다.

아마 7급 이하의 직원들만 인사한 듯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한데.

대체 국세청 내에 전달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사단 얘기는 아직 세무공무원들도 모를 텐데.

“미리 전달 받았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입구를 지키던 직원이 개찰구를 열어주었다.

덕분에 따로 방문증은 받을 필요가 없었다.

민치호가 준비를 해 둔 듯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예, 팀장님도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위층으로 향했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공무원들 모두가 내게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랐다.

“되게 분위기가 조심스럽네요. 여기 근무할 때는 저렇게까진 아니었는데.”

복도를 걸으며 말하자 대답은 내 뒤에서 나왔다.

강혜원이었다.

“입사 4년 차에 6급 팀장 다는 공무원이 있으면 그건 알아서 기라는 뜻이죠.”

장세훈이 발음을 꼬며 말을 받았다.

“고렇취! 연차가 쌓인 것도 아니고! 능력 있어도 원래는 못 가는 게 당연한 직급인데 4년 차에 특별승진으로 확 올려 버린 거잖아. 국세청 수장이 대놓고 아낀다고 공지 때린 거나 다름없는데 당연히 허리가 숙여지지.”

“그런데 왜 장세훈 조사관님이 더 콧대가 높아지셨을까요? 점잖게 구세요, 좀!”

“헹.”

우리는 복도를 지나 청장실로 들어섰다.

이미 청장실에는 민치호와 이선균이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어, 왔네. 인사는 됐고, 얼른 앉아. 곧 시작할 거야.”

민치호는 고개를 숙이는 우리를 보며 손짓했다.

TV에서는 긴급 기자회견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계를 보니 8시 9분이다.

미리 언질 들은 시간이 코앞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소파에 앉았다.

떡하니 청와대 로고가 찍힌 기자회견장에는 수십의 기자들이 자리 잡은 모습이 보였다.

아직 그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아나운서의 설명이 흘러나왔다.

-지금 저희 취재기자가 청와대 현장을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곧 긴급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입니다. 어떤 내용일지는 아직 전해진 바가 없습니다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부동산 대책이나 세금 대책이 아닐까 하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잠시 후 기자회견이 시작되면 즉시 현장을 연결해 생생하게 전해…….

아나운서가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천천히 말하는 동안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카메라가 급히 회전하며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는 남자를 찍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막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대변인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잠시 기자회견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아나운서가 급히 말을 끝맺었다.

“직접 나오셨네요.”

“이제 곧 레임덕 시작일 텐데 없는 힘이라도 실어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옆에서 민치호와 이선균이 자그맣게 의견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곧 대통령이 마이크 앞에 서자 뚝 끊겼다.

내가 딱 한 번 만나 본 그는, 긴장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세정질서와 법치를 바로 세우고 사회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하나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적당한 미사여구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었다.

-부동산, 해외 자금 도피, 지하경제 등의 광범위한 조세포탈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단이 발족할 예정입니다. 검찰과 국세청을 중심으로 한 이 조사단에서는 성역 없는 조사를 모토로 분야와 대상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내용에 기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단장에는 경제수석 임현승, 부단장에는 서울중앙지검의 지현석 검사. 그리고 국세청의 6급 조사관 신재현이 부임할 예정입니다.

조사단 설립까지는 평정을 유지하던 기자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