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국세청장의 한탄 (2)
오낙현의 주름 낀 눈두덩이가 한계까지 늘어났다.
어찌나 눈을 부릅떴는지 흰자위가 선명하게 보였다.
핏발 선 눈동자 한가운데에 자리한 검은자위가 처음엔 경악으로 가득 찼다가 그다음은 혼돈,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분노로 물들었다.
민치호의 설득으로 가라앉았던 화가 도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오낙현은 양쪽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민치호를 가리켰다.
주체가 되지 않는지 그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내가 다른 건 다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나한테 말 안 한 것도 이해하고 사후보고한 것도 이해했습니다. 왜냐? 위에서 까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 나도 공무원이고 겪어봤으니까!”
민치호는 말없이 오낙현이 쏟아내는 분노를 듣기만 했다.
예상했다는 듯 미동도 없었다.
그것이 오낙현을 더욱 화나게 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화를 삭일 생각은 없었다.
첫째는 이미 화를 낸 상황에서 이대로 끝내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아서였고, 둘째는 민치호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었다.
오낙현 입장에서는 그동안 민치호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왔다.
-계략을 꾸미는 작자지만 그 결과가 대체적으로 국세청과 내게 이득이 된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손을 더럽히고 나 대신 귀찮은 일을 처리해줄 인간이다.
민치호의 판 까는 능력은 지금까지 여러 번 보고 감탄했다.
손경진을 날려 버린 실질적 공신도 민치호였으니까.
그러나 그 계략의 칼날이 자신을 향해 온다면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민치호는 상황이 불리하면 자신에게 유리해지도록 판 자체를 몰고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람은 또 끔찍이도 아껴서,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무대 위에 사람들을 올린다.
그 위에 오른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판을 깔아주니 아주 미쳐 날뛰는데 그냥 날뛰어도 남들의 두 배는 미친놈들이 민치호의 무대 효과까지 받으니 그 효력이 세 배, 네 배는 된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뿐 아니라 시기도 다룰 줄 아니 타고난 지략가였다.
오낙현 자신도 지금 그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상대가 뭐? 여의도요? 보자 보자 하니까 지금 민 청장이 날 죽이려고 작정했네?”
오낙현의 심약한 기질은 평소 자기 보신을 위한 위기감지 정도로 발휘될 때는 괜찮았다.
민치호 입장에서 다루기도 좋았고.
그러나 이렇게 자기 자리가 위태롭다는 생각이 들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오낙현의 날 선 본능이 민치호를 향했다.
“어차피 국세청도 다 장악했겠다, 바지사장에 불과한 나는 개떼들 먹잇감이나 되어서 물어뜯기라 이 말입니까? 피는 나 혼자 흘리고 민 청장은 내가 데워 놓은 의자에 편안하게 앉고? 야, 이 사람아! 민 청장, 당신 그렇게 음흉하게 살면 안 돼!”
오낙현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가면 민치호가 수그리고 사과할 줄 알았다.
어차피 엎질러진 일이고 윗선의 명령도 있으니 국세청장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렇게 민치호를 닦달해서 자기 지위만이라도 보장받고 싶었다.
한마디로 오낙현이 지금 민치호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청장님께는 폐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민치호의 반응은 냉담했다.
“청장님. 제가 그 자리 앉혀드렸잖습니까.”
“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라서 오낙현은 순간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되물었다.
국세청장 오낙현은 서울청장 자리까지 혼자서 치고 올라온 사람이다.
그 독사 같은 손경진과도 다투던 사람이다.
그 스스로는 자신이 엄연히 국세청장에 앉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민치호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민 청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오낙현은 귀를 의심했다.
여기서는 민치호가 무조건 낮은 자세로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사를 약속해줘야 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민치호는 자신의 편이었고 자신의 아랫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그의 말이 되는 일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가 민치호를 이용한 것이어야 해……! 내가, 내가 민치호의 말이 될 수는 없어.’
오낙현은 팔걸이를 꾹 쥐었다.
아까는 삐진 것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위기감에서 우러나온 공격이었다.
“민 청장.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민 청장의 도움이 있었던 건 맞지. 그럼 민 청장이 없었다고 해서 내가 이 자리에 못 왔을까?”
여기서 민치호가 약점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우위를 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낙현은 일부러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며 여유로운 태도를 취했다.
그래 봤자 팔걸이를 꾹 쥔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민치호의 시선이 잠시 밑으로 내려갔다가 오낙현의 눈을 마주 보았다.
서로 둘 다 이런 잔꾀는 통하지 않는 상대다.
‘내가 여유로운 척한다는 건 이미 꿰뚫었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렇게 밀고 나가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속사정을 아는 두 능구렁이는 무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맞붙었다.
“민 청장, 대통령의 힘을 믿고 나대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당연히 지금이야 힘이 커 보이지. 그래도 그 사람은 대통령이야.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면 바로 쳐낼 거라고. 아직까지 이 국세청의 수장은 나야! 민 청장이 벌써부터 이빨을 드러내도 될 거라고 생각하나? 주인을 그렇게 믿어?”
지금 국세청은 나의 것이다, 네가 숙여라.
오낙현의 서슬 퍼렇고 직관적인 협박에 민치호가 살짝 고개를 아래로 내리더니 눈을 치켜떴다.
항상 오낙현에게는 허리를 숙여왔던 민치호가 이렇게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민치호가 험악한 인상을 작정하고 구기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이건 무슨 공무원이 아니라 어디 조폭 두목 같았다.
순간 여기가 국세청장실이 아니라 경찰서 조폭전담팀 취조실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서 기가 눌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오낙현은 흠칫했다.
“당연히 제 도움이 없어도 청장님은 그 자리에 가셨을 겁니다.”
표정과는 다르게 자신의 말을 긍정하기에 오낙현은 미심쩍은 표정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나온 것은 오낙현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청장님을 그 자리에 못 오르게 할 수는 있었죠. 손경진 원장님처럼 말입니다.”
“지금 무슨……!”
“그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지금 제주도로 내려간 사람이 청장님이 되셨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손경진 원장님이 한순간에 몰락해 청장 자리를 내려놓으신 것은 제가 그러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봐요, 민 청장! 감히 날 겁박하는 겁니까!”
“청장님께서 착각을 하고 계시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뭐라고요!”
민치호는 아까 오낙현이 그랬던 것처럼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러나 여유로운 ‘척’이었던 오낙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긴장감이 없는 여유로운 모습이었으니까.
“청장님. 대통령은 제 주인이 아닙니다.”
“지금 그 힘을 빌리고 있으면서 주인이 아니다? 그걸 믿으라는 겁니까?”
“믿든 말든 자유지요. 하지만 대통령이 절 이 자리에 앉혀줬을 것 같습니까? 아까 그러셨죠. 조금이라도 걸리적거리면 바로 쳐낼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위치라고. 말씀 잘 하셨습니다. 그가 괜히 절 도왔을 것 같습니까? 저는 끊임없이 제 능력을 증명했고 결과를 보였기에 지원을 받은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대통령이 불법이나 저지르고 다니는 종류의 사람이었다면 조사단은 가장 먼저 그 사람을 칠 겁니다. 저는 그런 칼을 키웠습니다.”
대통령을 칠 수도 있다, 공무원으로서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말이었다.
오낙현이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미친, 미친놈들. 아주 다 같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 나라 최고 권력과 거래까지 해 가며 벼르고 별러 온 일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외줄 타기 정도는 해줘야죠.”
오낙현은 함부로 목숨이니 뭐니 하며 각오를 들먹이는 것을 싫어한다.
이 자리까지 오면서 입으로 내뱉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많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낙현은 민치호의 말을 공허하다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말뿐이었는데도 민치호에게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
“청장님, 저도 청장님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그 자리 앉으셨으면 조금의 도움은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적어도 국회의원 친다고 지레 겁먹고 발을 빼실 생각을 하시기보다는 열정적인 후배들과 부하직원들을 위해서 거들어줄 생각을 하실 수는 없으실까요?”
말이야 제안 투지만 한마디로 오는 소나기와 폭풍을 다 막아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사단은 청와대 직속이라면서요. 왜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합니까? 직속 기관인 청와대가 책임을 지고 단장이 감당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민 청장이 멋대로 한 일이니 민 청장이 감당할 자신이 있어서 한 거 아니에요?”
오낙현이 마지막으로 발버둥 쳐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원래 아랫사람이 한 일은 윗사람의 책임 아닙니까? 수사 한번 잘못하면 경찰청장 모가지가 날아가는 거 보세요. 아니면 아예 책임지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책임지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이죠.”
-국세청에 떨어지는 핏물은 닥치고 다 맞아라. 그러기 싫으면 내려오던가.
민치호의 목소리에 섞여 그의 진심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다고 오낙현이 왜곡해서 들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저 뜻이었으니까.
처음 보는 민치호의 하극상에 오낙현의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파 왔다.
두려웠던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부하직원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는 수장이라니.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이제는 단순한 걱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민치호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민 청장, 목적이 뭡니까? 나랑 싸우자는 거예요? 뒤에 거대한 힘도 있겠다, 이제 시키는 대로 해라 이겁니까? 1년도 안 남은 대통령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어떨 것 같습니까?”
오낙현의 경고에 민치호는 비웃음을 띄웠다.
“청장님께서 자꾸 착각하시는데 저는 대통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공무원으로서 새로운 대통령님을 모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겠죠. 우리는 사람을 가려 섬기는 직책이 아니잖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정부 기관을 이루는 부품이지요.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건데요.”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젊은 직원이, 아니 하다못해 신재현이 이런 말을 했다면 너무 이상을 바라보는 것 아니냐며 타박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권력에 이용되고 팽당할 거라고 말이다.
다음 정권에 밉보여 뒤지고 싶지 않으면 지금 이런 짓거리는 집어치우고 납작 엎드려 살라고.
그렇게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치호는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다.
청장급이나 되는 공무원 입에서 나올 말치고는 너무나도 이상적이었지만 그라면 어떻게든 해낼 것 같았다.
판을 새로 깔고 유리한 무대를 만드는 일 말이다.
“청장님께서는 방어만 잘 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렵다는 겁니다.”
오낙현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민치호는 흔들림이 없었다.
당연하다.
여기서 설득될 것 같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 개떼처럼 달려드는 놈들에게서 국세청을 지켜주세요. 그것이 국세청장의 본분 아닙니까.”
“아니, 진짜 미치겠네…….”
이건 숫제 벽을 보고 대화하는 꼴이다.
오낙현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저라고 놀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안전장치를 하고 지붕을 만들 겁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세청장님께서 나서주셔야 하는 거예요.”
“끄응.”
“청장님께서 원하시는 낙관적인 대답을 해 드리죠. 이번 일의 성공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반반이나 된다고요?”
오히려 오낙현이 놀랐다.
4선, 5선 의원쯤 되면 그들은 살아 있는 절대 권력이다.
그들을 치겠다면서 성공확률이 50%나 되다니.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그만큼 오랫동안 판을 짜고 준비해 왔습니다. 청장님도 아시죠? 저는 가능성 없는 무대에 제 사람들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무대에는 저도 올라갈 겁니다.”
“민 청장까지요?”
“네. 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이잖습니까. 저들은 조사단의 타겟을 우리 위원회가 제공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위원장인 제가 가장 위험하겠지요.”
목숨을 건 외줄 타기라고 했던 그 각오는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호지세입니다. 청장님은 내리실 수 없어요. 그러니 죄송한 말씀이지만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저들의 공격을 막아주세요. 후배들의 모범이 되어주세요. 국세공무원 식구들이 청장님을 믿고 따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 또한 가장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민치호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오낙현이 원하던 구도였지만 결코 시원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낙현은 섬뜩함을 느꼈다.
자신이라면 절대 못 할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실행에 옮기는 저 행동력과 각오가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오낙현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
고개를 든 민치호가 화답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