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41화 (341/500)

341화. 특별사법경찰관리 (2)

회의실은 분위기가 좋았다.

꽤 기다린 것 같았는데도 짜증 내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얼른 와서 앉으라고 안달나는 것을 꾹 눌러참고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한 10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인 이 회의실에는 대놓고 우리더러 앉으라는 듯 3개의 자리를 비워 놓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연히 민치호의 자리니까 가장 상석이다.

민치호의 바로 오른쪽 자리에는 이선균 과장이 앉았는데 이것도 굉장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왼쪽 자리, 그리고 그 바로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딱 봐도 나와 황민우를 위해 비워 놓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너무 상석이다.

우리는 직급상으로도 가장 아랫자리에 앉아야 하지 않나.

이걸 덥석 앉아도 될까?

나는 황민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도 어지간히 난감한 얼굴이었다.

쟁쟁한 면면의 참석자들을 봤을 때 우리가 앉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위치라서 눈치를 보고 있자니 민치호가 우리에게 손짓했다.

“뭐해? 얼른 앉아. 안 그래도 오래 기다리셨을 텐데 빨리 시작해야지.”

“넵.”

우리가 머뭇거리는 걸 보고 민치호가 도와준 거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자리를 이렇게 비워 놓은 걸 보면 이들도 다들 사전에 동의한 것 같은데…….

우리가 빠릿하게 빈자리에 앉자 바로 건너편의 이선균이 가볍게 목례했다.

나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돌리니 주르륵 앉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도 황민우 딱 한 명밖에 없다.

황민우는 잔뜩 긴장했는지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딱딱한 정자세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눈동자에서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나도 저렇게 보일까, 생각하니 괜히 맥이 탁 풀리고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팀장님 혈색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타지에서 고생 많이하면 어쩌나 했더니.”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와 함께 경쟁하는 구도였던 특수조사 1팀장 권현아 팀장이 눈을 흘기고 있었다.

“엇! 권 팀장님!”

“네. 권현아입니다.”

이제 보이냐는 듯 권현아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왜 한눈에 못 알아봤나 했더니 권현아는 그사이 머리 스타일을 바꾼 상태였다.

단발이던 머리를 어깨까지 길러서 반묶음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좀 더 어려 보였다.

권현아도 이번에 함께하는 건가?

위원회 참석인지 팀에 합류하는 건지는 몰라도 권현아라면 믿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반가웠다.

“권 팀장님! 여기서 뵙게 되다니! 아직 서울청에 계셨네요!”

내가 외치자 권현아가 피식 웃었다.

“네에. 반갑다는 뜻으로 들을게요. 지금은 서울청 조사1국에 있습니다.”

특별수사팀은 나 때문에 만들어진 변칙적 팀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일까.

내가 나가고 난 후 권현아도 평범한 조직도 안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렇다고 좌천은 아니다.

오히려 승진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제주도로 갈 때 일부러 찾아와 나 대신 화를 내주던 사람인지라 잘 지내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신 팀장님은 사람이 더 여유로워지셨네요. 저는 여기 회의실 들어오자마자 발이 안 떨어지던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러나 긴장했다고 하는 것 치고는 권현아도 꽤 여유 있어 보인다.

몇 달 사이 그녀도 많이 바뀐 것이다.

“다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니 저도 좋습니다.”

표정 없이 듣고 있던 민치호가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인상 자체가 무섭게 생긴 사람이라 민치호가 입을 열자마자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가문대 회계학과 교수는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저건 화난 게 아니다.

미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면 그도 지금 훈훈해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우리 대화가 길어지면 회의를 시작할 수 없으니까 막은 거라고 봐야겠지.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에서 다 함께 한마음으로 헤쳐나갔으면 좋겠네요. 그럼 일단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신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시나 민치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들으셨다시피 지금 여기 모인 분들은 조세범처벌절차법에 의한 심의위원회의 위원이십니다. 아, 물론 여기 둘은 빼고.”

민치호는 나와 황민우를 가리켰다.

내가 짐작했던 대로 이 자리는 심의위원회였다.

절차상 무조건 필요하지만 결국 이들이 있어야 내가 일할 수 있는 것이니 내게 소개할 겸 모은 듯했다.

다만 권현아도 팀으로 우릴 돕는 게 아니라 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은 좀 의외였다.

아니, 권현아 정도 되면 그럴 법한가?

“절차상 우리 서울청에 모이긴 했지만 본 조사팀은 본청 소속이 될 겁니다. 심의위원회에서 조사 대상을 선정하고 타당성을 검토해서 넘기면 조세범칙조사로 들어가는 거죠.”

나는 법조문을 떠올렸다.

지방청장이 지검장에게 특사경 임명을 요청하듯, 심의위원회도 지방청에 세우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우리 팀 활동지역은 서울만이 아니다.

지원도 본청에서 받을 예정이다.

그래서 소속은 본청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팀 결성은 조금 다르게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이 위원회는 형식상 절차가 될 겁니다.”

음?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민치호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날 위해 판을 깔아주는 게 목적이라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와도 되나?

이런 절차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권한 남용을 방지하고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견제 장치다.

나를 믿고 밀어주는 건 고맙지만 명색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장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을 무시하는 것 하나에서 썩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민치호를 믿는다.

그 역시 원칙을 알고 그 필요성을 아는 사람이다.

괜히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말을 끼어들기보다는 그의 설명을 기다렸다.

“왜냐하면 이번 조사팀은 팀이 아니거든요. 단(團)이에요.”

민치호의 말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국세청 말고 각국 부처에서도 팀을 꾸릴 겁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해도 금융감독원, 관세청, 기재부, 국토부가 있네요.”

흡, 하고 바로 옆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황민우였다.

나도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재부에 금융감독원이라니.

이렇게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얘기는 안 했잖아.

“때문에 각 부서에서 특사경 임명받은 공무원들이 팀을 조성해서 각자 맡은 분야를 수사하고, 서울의 본부에서 모여 공조하는 식으로 할 겁니다. 아마 조사 대상의 선정과 검토도 본부인 조사단에서 하겠죠.”

하지만 반대로 그 내용에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스케일이 커져서가 아니다.

그럼 이 위원회는 유명무실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일부러 여기까지 모여준 사람들에게 실례다.

그러나 의외로 위원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민치호는 잠시 참석자를 둘러보더니 강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여러분께 한 가지는 약속드리겠습니다. 타당성 검토, 그것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위원회 여러분의 고유 영역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조사단이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조사단이 맡은 모든 조사는 여러분께서 검토하게 될 거고, 그에 조금이라도 권한 남용이 있다거나 부당한 점이 있다면 바로 윗선으로 보고가 들어갈 겁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제야 납득이 갔다.

조사한다고 다가 아니다.

그 조사가 정당한지 검사하는 기관이 막강한 힘을 지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자 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지는 표정이 되었다.

“청장님, 질문 있습니다.”

“네, 하세요.”

권현아가 마치 발표하는 학생처럼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부서에도 위원회가 있나요?”

아무래도 기관이 다르다 보니 업무 조율 때문에 물어봤을 것이다.

실무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는 권현아다웠다.

“아뇨. 없습니다. 국세청이 유일합니다.”

민치호의 예상외의 대답에 위원들이 웅성거렸다.

대규모 프로젝트에 사후 감사기관이 하나밖에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조사단의 중심은 우리 국세청이거든요.”

“국세청이 중심이라는 것은 주요 범죄는 조세범칙조사이고 그를 위해 다른 기관의 협조를 얻겠다는 뜻이군요.”

이번에 입을 연 것은 가문대학교 회계학과 교수였다.

그는 험악한 민치호의 인상에 주눅 들어있다가 권현아가 아무렇지 않게 끼어드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듯했다.

민치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절차상 검사의 지휘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동등한 수사 협조의 형태가 될 겁니다. 동원하는 사람 숫자로도 국세청이 가장 많을 거거든요.”

민치호는 내게 고개를 휙 돌렸다.

“일하면서 필요한 거나 조사할 부분 있으면 바로 다른 팀한테 전화 때리면 돼. 공문도 필요 없어. 그럴 시간에 서류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낫지.”

“……감사합니다.”

입이 바짝 말랐다.

억지로 대답하긴 했지만 지금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민치호가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스케일이 큰 이야기라서 머리가 어질했다.

대체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을 주려는 거지?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권현아의 질문, 그리고 민치호의 대답이었다.

“조사단은 어디에 설치되나요? 아까 서울이라고 하셨는데, 어디 소속으로 들어갑니까?”

여러 기관에서 차출되어 모이는 것이니 아마 따로 사무실을 내거나 가장 많은 인원이 포함되는 국세청 산하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관련 상급기관인 기재부 정도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민치호는 드물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꽤 장난기 어린 모습이었다.

“청와대입니다.”

“처, 청…… 네?”

“허억!”

권현아를 포함한 모든 위원들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거의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그 마음은 이해가 갔다.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었으니까.

“아까 제가 그랬지요? 심의위원회 보고는 바로 윗선으로 올라갈 거라고.”

“설마…….”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민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윗선은 국세청장님을 말하는 게 아니야. 청와대를 얘기하는 거지.”

“크헉!”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공무원 하나가 숨을 몰아쉬었다.

저러다 숨넘어가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나도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안간힘을 다해 표정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 사실 알고는 있었다.

아무리 청장이라고 해도 그동안 민치호가 국세청 내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지현석 검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검찰과 국세청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처음 보는 신입 7급 세무공무원을 검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란 쉽지 않다.

그것만이 아니다.

용산 세무서에 다닐 때는 도박장에 혼자 쳐들어갔다가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는데 적당히 넘어가려는 형사를 윗선에서 질책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명 경찰의 높으신 분이다.

기재부의 전직 차관이자 현직 경제수석인 임현승도 그렇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당시 일개 공무원에 불과한 나를 가르치고 키우려는 것처럼 대했다.

일부러 나 때문에 친척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느 고위공무원이 그렇게 말단 공무원에게 신경을 쓰겠는가.

사전에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그들을 하나로 모은 명령권자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청와대, VIP의 비호를 받고 있다!

순간 찌르르, 하고 등골이 울리며 소름이 쭈뼛 돋았다.

짐작만 하고 있는 것과 내 예상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나 역시 대각선 자리에 앉아 숨을 몰아쉬는 위원처럼 호흡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각 정부 기관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며 그것을 VIP가 밀어주는 거였다면?

그 결과가 지금 조사단 결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거라면?

내게 얼마나 많은 권한이 주어질지 그것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비록 임기는 1년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우리 공무원에게는 그것만 해도 엄청난 힘이다.

정치적 권력은 많이 쇠했더라도 각 정부 부처의 힘이 남아 있다.

명령에 따라 조사단의 일원이 되어줄 각 기관의 노련한 공무원들 말이다.

“신 팀장.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대충 알겠지?”

“네.”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테이블 아래로 내린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이것은 위명이 두렵거나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다.

“열심히 조져보겠습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비속어가 섞여 나왔지만 민치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든다는 듯 웃기만 했다.

그랬다.

나는 지금 손에 쥔 것의 정체를 깨닫고는 두근거려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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