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화. 특별사법경찰관리 (1)
나는 용건만 간단히 말한 후 핸드폰을 덮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그 짧은 시간에도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온갖 이모티콘과 초성이 판을 치고 있었다.
중요사항 말하는데도 이 지경인데 본격적으로 잡담 타임이 오면 어떻겠는가.
당장 사진 수십 장과 함께 내 기사까지 찾아서 링크가 올라올 것이다.
거기에 공지와 외치기까지 종합선물세트가 퍼부어질 것이 눈에 선했다.
그러니 재빨리 모르는 척 핸드폰을 내려두는 것이 속이 편했다.
물론 저들이 정말 마음먹고 놀리고 싶다면 1:1로 보내거나 전화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다행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긴 그 정도까지 깐족대면 그건 싸우자는 거지.
날 놀려먹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니까 속을 긁지는 않을 것이다.
지잉 거리며 요란하게 진동이 오자 아예 대화방의 알림을 꺼 버렸다.
급한 일이 있으면 전화로 올 것이고, 당장 황민우가 대화방을 모니터링 중이니까 뭔가 일이 있으면 알아서 내게 전달해줄 것이다.
그것보다 지금 대화방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 미친 사람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소파에 널브러지듯 추욱 늘어졌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자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천장이다.
“팀장님, 아예 톡 알림 끄신 거예요? 핸드폰이 조용하네.”
아까부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황민우가 물었다.
나는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아예 나가 버릴까 고민 중입니다.”
“나가면 일을 못하죠.”
“네. 그래서 고민만 하고 있어요.”
황민우는 납득한 얼굴을 하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화하기 딱 좋은 주제가 던져져서 그런지 언뜻 봐도 메시지 올라가는 속도가 대단했다.
나는 여전히 등받이에 머리를 올린 채 시선만 돌려 황민우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놀려요? 근데 진짜 어떻게 알았지? 신입 직원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리 팀은 모두 대기 상태다.
세무서에 출근하지도 않는다.
그 후에는 국세청에 출근할 예정이니 신입 직원과 만날 일도 없다.
오가며 한두 명 만난다고 해도 그쪽에서 먼저 내 책 얘기를 꺼낼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들키다니.
나는 으어어, 침음하며 얼굴 위에 손을 덮었다.
“강혜원 조사관님이 놓고 간 물건
가지러 세무서 갔다가 봤대요. 엇, 사진 보내더니 공지에 박아놨네요. 당분간 들어가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진짜 미치겠네.
그럼 그렇지, 곱게 끝나지 않았다.
저 인간들이 오늘 하루만으로 끝날 리는 없고, 분명히 두고두고 놀려먹을 텐데.
왜 나는 그날 술을 먹고 썼을까.
무리하게 개그 욕심 부리다가 분위기 망치는 신입생처럼 너무 잘 쓰려고 욕심부렸던 게 아닐까.
그냥 다른 교수님들 서문 참고해서 적당하게 쓸걸.
나는 머리를 등받이에 퍽퍽 들이받았다.
소파가 푹신해서 아프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아팠다.
진짜 나는 바보다…….
“근데 형은 용케 그걸 보고 계시네요. 안 쪽팔려요?”
“다행히 지금 화살이 팀장님한테 향하고 있어서요. 제 얘기는 별로 없네요.”
황민우가 히죽거렸다.
저저, 배신자!
내가 눈을 부라리자 황민우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팀 얘기로 바뀌었어요. 안길진 씨가 특사경이 뭐냐고 물어보네요.”
“아, 안길진 조사관님도 몰랐구나.”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몰랐다.
특사경이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고 그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야 나는 내 일이 바빠서 관심이 없었고 남들은 내가 당연히 알겠거니, 해서 설명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 전 민치호에게 특사경 얘기를 듣고 나서 좀 놀랐다.
의외로 정부 기관은 상호보완이 가능하도록 별 제도가 다 있구나 싶었다.
특사경, 정확히는 특별사법경찰관리 제도다.
원래 수사는 경찰과 검찰의 영역이지만 세상에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사건이 꽤 많다.
그때마다 수사를 위해 검경이 전문지식을 공부하겠는가?
그럴 시간도 없으며 필요도 없다.
공무원들 잘 찾아보면 그쪽 분야에 빠삭하고 경험도 월등한 고인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협조를 구하면 되는걸.
예를 들어 문화재 관련 범죄가 있다고 치자.
우리가 아는 경찰, 그러니까 일반사법경찰관리는 일반 귀금속 장물아비는 잡아낼 수 있어도 문화재 음지 거래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도둑맞은 문화재를 찾아냈다 해도 그게 진품인지 가품인지 구분이 어려울 것이고, 되찾은 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모를 것이다.
또, 문화재청 공무원이 일하던 중에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해서 추적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때 일반 공무원에게는 수사권이 없다고 해서 경찰에게 신고하고 마냥 기다리거나, 두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럴 때 제일 간단한 방법은?
이 공무원이 직접 수사하면 된다.
한마디로 일반 공무원에게도 경찰처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가 그거 얘기 듣고 나서 좀 찾아봤거든요? 근데 의외로 많더라구요.”
마침 화제도 바뀌었겠다, 내가 번쩍 고개를 들고 말하자 황민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공공기관마다 다 있을걸요. 단순히 협조공문 보내는 걸로 해결 안 되는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전문성과 경험이 중요하니까요. 수사관들한테 공무원이 가서 설명하는 것보다 공무원한테 수사권 주는 게 빠르긴 하죠.”
“그러게요. 가르치라면 할 수야 있는데 검찰, 경찰이 안 그래도 평소에 바쁜 거 생각하면 가서 재무제표 가르치고 배우고 그럴 틈이 없긴 하죠.”
당장 지현석 검사만 해도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만나면 항상 나른하게 졸린 눈에 초췌한 얼굴이다.
일하느라 소매는 걷어 올리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푼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쪽도 만만치 않게 바쁘다.
업무량을 보면 우리보다 벅찰 것이다.
나는 내가 어제 기사에서 찾아본 내용을 말했다.
“산림청에도 특사경 있는데 거기는 불법으로 산림 훼손하는 사람들 잡나 봐요. 그리고 원자력안전위원회 특사경은 원자력 발전소 부실 운영 잡더라구요.”
“방사능 폐기물 투기도 맡을 걸요. 그건 진짜 전문지식 필요한 거라서.”
“맞아요. 그리고 우리랑 가까운 관세청. 거기는 주로 밀수 잡던데요. 식약처는 불법 의약품하고 의료기기 단속하고.”
생각해보면 불법을 잡아낼 때 수사권이 필요한 영역이 꽤 많다.
그렇다고 일개 공무원이 깊게 사건을 수사해 들어가는 것은 월권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은 반드시 절차나 권한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잘못하면 남용하기 딱 좋은 게 공무원의 권한이니까.
다만 국세청에는 특사경이라는 제도가 정식명칭이 아니다.
특사경이 규정된 법에 국세청이 나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세청이 빠지면 섭하다.
조세 관련 범죄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서 조세범처벌절차법에 의해 비슷한 제도가 있다.
민치호가 내게 쥐여주려는 권력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들떠 보였나 보다.
황민우가 살짝 초를 치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만능인 권한은 아니죠.”
그야 당연한 소리를.
“만능이면 안 되죠. 일반 공무원에게 수사권까지 주는데 그게 만능이면 되게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래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는 거잖아요. 보고도 청장님한테 재깍 해야 하고.”
“임명도 검사장님이 하시죠.”
정확히는 지방청장이 임명을 신청하고, 검사장이 그를 수락하는 형태였다.
때문에 우리는 국세청 소속임에도 지금 서울청장 민치호의 청장실에 앉아 있었다.
민치호가 신청서를 올렸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임명 떨어질 것 같다며 민치호가 부르길래 청장실로 왔더니, 정작 민치호는 나가고 없었다.
어디 갔나 했더니 검사장을 직접 만나러 갔다고 한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연락 주셨습니다. 먼저 들어가셔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시네요.’
우리를 맞이한 비서의 말이다.
허락도 떨어졌겠다, 청장실에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은 지 벌써 30분이 흘렀다.
할 일도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 있자니 굉장히 지루했다.
뭔가 당장에라도 신고서를 들여다봐야 할 것만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그냥 임명장만 주려고 부른 건 아니실 테고. 뭘까요? 새로운 팀원 소개라도 해주려고 하시나?”
심심한 내가 하릴없이 중얼거리자 황민우가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끝난 모양이다.
“팀장님을 부르신 걸 보니 앞으로의 방침을 전달하려는 것 아닐까요?”
“지금까지와 특별히 다른 게 있나요? 사람이 많아지면 뭐가 있나?”
나는 아직도 특사경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규모가 좀 크고 빡센 세무조사를 하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해줄 민치호와 이선균도 없어서 더욱 그랬다.
“음, 까다롭긴 하죠. 대놓고 손에 칼을 쥐는 거니까.”
황민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얘기를 듣자마자 법을 찾아보긴 했다.
조세범처벌절차법에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조사대상 선정이 합당한지 심의하라고 쓰여 있었다.
위원장은 무려 지방국세청장이 맡는다.
그것만 봐도 얼마나 이 권한을 견제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해는 한다.
가뜩이나 권력기관 소리를 듣는 국세청이다.
여기에 수사권까지 갖게 되면 칼춤 추기 딱 좋지.
악용되기 쉽다는 뜻이다.
내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은 채 심각한 어투로 말하자 황민우는 가벼운 태도로 기지개를 켰다.
“뭐, 저는 그런 복잡한 생각은 안 하렵니다. 그건 앞으로 국세청 이끌어가실 민치호 청장님하고 우리 팀장님이 하셔야 할 고민이죠.”
꽤 실없는 태도라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황민우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사견을 넣지 않고 업무상 모든 결정을 내게 맡긴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날 믿고 따르겠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열심히 고민해보겠습니다.”
마주 쳐다보며 웃고 있을 때 드디어 청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꽤 급한 걸음으로 들어온 민치호는 인사도 생략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뭘 고민해?”
우리 대화가 밖으로 들렸나 보다.
우리는 얼른 소파에서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청장님.”
“어, 그래. 미안해, 내가 좀 늦었네. 지검장하고 점심 먹으면서 얘기 좀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
단순히 임명에 대한 건 때문에 나간 건 아니었나 보다.
민치호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손에 든 서류가방을 책상 위에 올렸다.
“일단 검찰 쪽에서 임명은 다 끝났어. 다른 기관도 얼추 정리가 끝난 것 같더라. 우리만 제일 느려서 지금 마음이 급하다.”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급한지는 내게도 전해졌다.
민치호는 평소보다 말이 두 배는 빨라져 있었다.
외투를 벗는 손길도 다급했다.
그는 서류가방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도로 책상을 떠났다.
응? 저것 때문에 급하게 검사장 만나고 온 게 아니었나?
“하지만 마감이 코앞이어도 일정을 맞추는 게 바로 우리 국세청이지. 얼른 가자, 다 와 있을 거야.”
“지금요?”
“그래.”
민치호가 드물게 다급한 태도로 우리를 재촉했다.
일단 군소리 없이 청장실을 나서긴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민치호가 잰걸음으로 향한 곳은 회의실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민치호가 회의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예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아이고,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청장님.”
나는 기껏해야 새 팀원 소개해 주는 것 아닐까 했는데 회의실에 앉아 있는 면면을 보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이선균 과장님, 이제학 교수님! 가문대 교수님도 오셨네요!”
내가 서울청을 떠나기 전 징계위원회에 외부위원으로 참석했던 가문대학교의 회계학과 교수가 양손을 흔들며 살갑게 말했다.
“아, 오랜만이네요!”
서울청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징계 때문인지 꽤 침울해 보였는데 지금은 더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옆을 둘러보았다.
이선균 과장은 항상 그렇듯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이제학은 무뚝뚝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입가에 어린 미소는 감출 수 없이 선명했다.
그 외에도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이 하나같이 옅은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부인까지 있는 걸 보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팀원 소개?
어림도 없는 소리다.
공무원 여럿과 외부위원이 필요한 자리라면 딱 하나다.
지검장이 수사권을 승인해줬으니 그것을 휘두르기 위한 절차이자 조세범처벌절차법에 따라 내게 힘을 실어주는 마지막 과정이다.
바로 위원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