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대기 중 (3)
신재현이 대화방을 나간 이후로 잠시 조용해졌다.
평소에 말이 엄청 많아서 대화방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세훈과 강혜원도 순간 말문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무슨 소리를 하든, 이들이 뭐라 놀리든 신재현이 대화방을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그가 읽자마자 나갔다는 건 이번에 쓴 책이 그만큼 타격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황한 안길진이 고개를 들어 장세훈의 눈치를 보았다.
장세훈도 어느새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안길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을 참으면서도 당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내리자 강혜원이 미친 듯이 웃는 것이 보였다.
-강혜원 :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갔어
한번 물꼬가 트이자 장세훈과 안길진도 자판을 두드렸다.
-장세훈 : 누구야! 누가 괴롭혔어!
-황민우 : 장세훈 조사관님이요.
-안길진 : 팀장님이 나갔는데 이제 누가 공지해줘요?
-강혜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팀장님ㅋㅋㅋㅋ 시작도 안 했는데ㅋㅋㅋㅋㅋ
-장세훈 : 지금 겨우 표지하고 서문 올렸는데 나간 거야?
이게 그렇게 쪽팔린 일인가 싶어 다시 사진을 찬찬히 살폈다.
아까는 신재현을 놀릴 생각에 바빠서 대충 ‘서문’이라는 글자만 훑어보고 말았는데 지금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와, 짜식 귀엽네. 이걸 맨정신에 썼을 리는 없고. 대체 뭐지? 술 처먹고 썼나?”
자신이 지금 정답을 말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장세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봐도 서문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황민우도 만만치 않았는데 신재현은 더 했다.
“이걸 신입 공무원들한테 한 권씩 선물로 줬다고? 전국에 흩어지는 애들인데? 걔네한테 주면 전국 세무공무원들이 다 한 번씩 읽어보는 건 순식간인데?”
신재현의 기행에 익숙해진 장세훈으로서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장세훈 : 나 방금 제대로 읽어봄.
-황민우 : 하지 마세요. 그걸 왜 읽어봐요?
-장세훈 : 교육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가 혹시 대필해줬냐?
-강혜원 : 그건 절대 아니에요. 문체 보면 말투가 드러나는데 이거 딱 팀장님하고 황민우 조사관님이에요.
-장세훈 : 어. 나도 알아. 아는데 너무 놀라워서 물어본 거야.
-황민우 : ㅠㅠ
황민우가 변명조차 못하는 걸 보고는 강혜원이 수습에 나섰다.
어찌 되었건 팀 공지방 역할도 겸하고 있는 곳인데 팀장을 도로 데려와야 할 것 아닌가.
-강혜원 : 팀장님한테 제가 전화해볼까요?
-황민우 : ㄴㄴ ㄱㅊ 저랑 같이 계세요.
-장세훈 : 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안길진 : 지금 뭐하고 계세요?
-황민우 : 소파에 엎드려서 머리 박고 계심…….
-장세훈 : 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불러와ㅋㅋㅋㅋㅋㅋ
-황민우 : 어차피 알려드릴 거 있어서 다시 들어오실 거예요.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안길진 : 엇! 우리 팀 다시 뭉치는 거예요?
안길진이 기뻐하는 것이 텍스트로도 보였다.
실제로 카페에 앉아 있는 안길진은 히죽 웃고 있었다.
-황민우 : 그건 팀장님이 직접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황민우 : 어, 일어났다.
-장세훈 : 궁금하니까 빨리 들어오라고 해. 길진이 지금 애타 죽는다.
-강혜원 : 혜원이도 애타 쥬금!
-장세훈 : 아 좀 그런 거 하지 마! 징그러워!
잠시 잡담과 함께 신재현이 회복하기를 기다리자 의외로 금방 그가 복귀했다.
-신재현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알림이 뜨자마자 메시지가 폭주했다.
-강혜원 : 서문! 인생은 실전이다 X만아!
-장세훈 : 탈세범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강혜원 : 누군가는 나를 또라이라고 부른다!
-장세훈 : 우리 함께 또라이가 되어 보자!
-안길진 : feat. 신재현.
미리 어디다 글자를 쳐놓고 복사라도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황민우가 말릴 수조차 없는 속도였다.
물론 작정하고 셋이 합심해서 놀리기 시작하는데 바로 옆에서 핸드폰을 빼앗지 않는 이상 막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신재현에게서 반응이 왔다.
-신재현 : 아아악!
-신재현 님이 나가셨습니다-
이번엔 황민우도 폭발했다.
-황민우 : 아씨 팀장님 지금 사무실 뛰쳐나갔잖아요!
-장세훈 : 가서 잡아 와!
-황민우 : 팀장님 달리기 빠르단 말이에요. 미치겠네
-강혜원 : 타자 칠 시간에 가서 잡아 오면 돼요!
-황민우 : 잡아 올 테니까 공지부터 지우세요. 아 중요한 얘기 해야 된다고!
-안길진 : 황민우 조사관님도 놀려야 하는데…… 아깝다
-황민우 : (주먹이 불타오르는 이모티콘)
대체 어디서 저런 이모티콘을 찾아보고 사는지, 또 새로운 이모티콘만 남겨두고 황민우가 사라졌다.
-안길진 : 이제 진짜로 그만 놀려요. 공지사항 있다잖아요.
-강혜원 :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깝다.
-장세훈 : 맞아. 한 명만 놀리면 불공평하잖아. 팀장이 얼마나 섭섭하겠냐?
-강혜원 : 길진 씨도 놀렸으면서!!!
안길진은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조용히 이모티콘 하나를 눌렀다.
모르는 척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이모티콘이었다.
***
신재현이 돌아온 것은 약 10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를 뚝 떼고 할 말만 했다.
-신재현 : 대기하느라 많이 지루하셨죠? 곧 팀 꾸릴 예정입니다.
-강혜원 : 여기서 사진 하나만 더 뿌리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장세훈 : 쟤 또 뛰쳐나가서 안 돼. 참아. 공지만 전달받고 터뜨려.
-황민우 : 저, 죄송한데 지금 단체방이거든요? 1:1로 하셔야 하는 거 방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신재현 : 근데 앞으로 우리 다섯이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합류할 예정이라서 지금 조율 중입니다.
-강혜원 : 방 실수 아닌데요?
-장세훈 : 방 실수 아닌데?
-황민우 : (드러누워서 훨훨 불타는 이모티콘)
-신재현 : 좀 대규모가 될 것 같아서 조율에 시간이 좀 걸리네요. 원래는 정기발령 때 맞춰서 개편하고 싶었는데 조금 더 기다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길진은 혼돈의 대화방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장세훈과 강혜원은 어떻게 하면 더 놀려먹을 수 있을지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당사자에게도 다 보이게 대놓고였다.
신재현은 애써 모른 척하며 공지를 전달 중이었다.
그리고 황민우는 미쳐 날뛰는 장세훈과 강혜원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꽤 어려워 보였다.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는데 대화는 통하는 것이 신기했다.
거의 집단적 독백 수준이었다.
그래서 안길진이 대답해주기로 했다.
사실 안길진 본인이 이 중에서 제일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안길진 : 팀이 커지나 보네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합류해서 같이 움직이는 거죠?
-신재현 : 네.
이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물론 다섯 명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신재현 팀이 맡아온 조사를 생각해보면 일손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때문에 서울청에 있을 때는 다른 과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국세청 본청으로 가서 좀 더 큰 규모의 조사를 맡을 거라면 사람을 충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안길진은 조금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이 멤버는 결속이 단단하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충성도가 높다.
신재현이 누구를 조지든,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다 해도 무조건적으로 따라갈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신재현을 중심으로 한 원맨팀이 아무 잡음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 팀원은 어떨까.
배신하지 않을 사람, 내부의 정보를 흘리지 않을 사람, 신재현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사람.
장세훈과 강혜원 정도는 아니더라도 신재현 밑으로 들어오려면 그 정도 마음가짐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특수한 팀이라 그랬다.
-안길진 : 그럼 누구랑 해요? 팀장님이 팀원들 뽑으신 거예요?
신재현이 직접 걸러 뽑은 사람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일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신재현의 대답은 의외였다.
-신재현 : 아뇨. 그건 아니고 자원한 사람들 중에서 청장님이 고르셨다고 합니다. 과정은 정확히 모르겠고…….
-강혜원 : 제가 이따가 대화 끝날 때쯤 사진 한꺼번에 쫙 올릴게요. 그럼 ㅇㅋ?
-장세훈 : ㅇㅋ
-황민우 : 얘기 듣고는 계심?
-장세훈 : 보고 계심
-황민우 : 미친놈들아 이거 진지한 얘기라고
황민우까지 존댓말을 버리고 혼돈으로 끼어들었다.
안길진이 고개를 들어 보니 장세훈이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궁금해진 안길진이 물었다.
“조사관님. 팀 방침 얘기 나오는 것 같은데 걱정도 안 되세요? 지금 얘기 나올 때 물어봐야죠.”
장세훈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강혜원과 대화하며 낄낄댔다.
“그럼 언제까지 공무원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하고만 팀을 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규모가 커지면 새로운 사람 들어오는 거야 당연하지. 그나마 청장님이 걸렀다는 거 보면 신경 쓰고는 있는 것 같은데. 처음 본 놈들이랑 옆자리 앉아서 조사 나가는 게 공무원이잖아. 안 그래?”
장세훈은 안길진에게 말하면서도 손은 바쁘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장세훈 : 아 어차피 시키는 대로 할 거니까 팀장이 알아서 결정하고 사후 통보만 해주면 된다고~
-강혜원 : 아직 팀원 다 안 뽑은 것 같은데 그럼 멀었다는 얘기잖아요. 더 놀아도 되겠네?
-신재현 : 팀원은 대충 결정됐는데 다른 팀하고도 조율할 게 좀 있어요.
-장세훈 : 다른 팀? 뭐야 이번에 엄청 대규모로 가나 보네. 뭐 조사하는데 그래? 대기업 싹 전수조사하게?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강혜원 : 팀이 여럿인가 보네요. 그럼 총 몇 명 규모예요?
안길진은 대화방을 열어둔 채로 장세훈에게 물었다.
지금은 대화에 참여하기보다는 장세훈이 한 말이 더 궁금했다.
“그렇긴 한데요. 저희 팀은 워낙에 공격을 많이 받으니까 보안이 필수 아닌가요? 막 아무나 받아도 되는 건지…….”
“그건 팀장의 역할이야. 신재현도 언제까지나 우리가 손발 맞춰줄 수는 없는 거잖아.”
“예에? 팀 떠나시게요?”
“뭔 개소리야. 우리가 왜 떠나.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가 계속 맞춰주기만 해서는 반쪽짜리 팀장밖에 안 된다고. 신재현은 위에 서는 법을 배워야 해. 떠받들어지는 법이 아니라.”
장세훈은 안길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안길진은 이해했다.
지금부터 신재현은 생판 모르는 남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누가 보면 조사관님이 팀장님 키우는 줄 알겠어요.”
“음? 뭐, 비슷하지. 걔가 능력은 출중한데 사람 다루는 건 잘 못 하잖아.”
안길진이 어리둥절했다.
“그 정도면 엄청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동안 뭐 사람끼리 부딪치거나 문제 되는 일은 없었잖아요. 다른 팀하고 일해 본 경험도 꽤 되시고, 당장 제주도에서도 제주세무서 사람들이랑 함께 일했잖아요. 이번 한울 조사도 그렇고.”
“사람을 다룰 때는 어르고 달래는 게 중요한 게 아냐.”
“구심점 잡고 잘 화합하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장세훈은 고개를 들고 안길진을 바라보았다.
아까만큼이나 꽤 진지해 보였다.
“아니야. 그냥 잘해주기만 하면 팀원은 따로 놀아. 본청 직원쯤 되면 다들 공부도 많이 하고 잘난 놈들이잖아. 상사가 만만하게 보이면 어쩔 것 같아?”
“……그럼 카리스마가 필요한 건가요?”
“크게 말하면 그 말도 맞는데. 그냥 세무서 과장급으로 끝날 거면 이런 거 신경 안 써도 되지만, 수십 수백 명을 거느리는 본청 과장, 국장급까지 갈 생각이면 사람 다루는 거는 배워야지. 그거야 민치호 청장님이나 이선균 과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만, 좀 정확히 말하자면…… 응? 이게 뭐야?”
장세훈은 말을 하다 말고 핸드폰에 빨려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꽤 당황한 표정이라서 안길진도 얼른 대화방을 들여다보았다.
강혜원의 무수한 물음표에 묻혀 신재현의 메시지가 막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급히 손가락을 올려 신재현의 메시지를 끌어내렸다.
-신재현 : 각 팀에서 인원 선별 중이라 아직 정확하게는 안 나왔는데, 최소 100명이고 본부는 서울에 따로 둘 거예요. 혹시 특사경이라고 알아요?
“어어? 특사경? 그게 뭐예요?”
안길진이 물었지만 장세훈은 드물게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오늘 안길진을 떠보며 한 진지한 얼굴은 상대도 안 될 정도였다.
장세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대체 얼마나 크게 일을 벌이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