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팬카페의 새로운 회원 (4)
조사 시작하기 전에 팀장이 단언한 대로 이들의 질문은 2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채워서 끝냈다.
시간이야 짧았지만 내용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어서 한울 쪽의 사람들은 잔뜩 녹초가 된 후였다.
일반 기업의 세무조사처럼 영수증을 붙잡고 사적 경비다, 사업상 지출이다 같은 소리로 씨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세법에 대한 견해와 해석이 오갔다.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것은 신재현이었다.
그는 회의 시작 30분 만에 첫 질문을 날리더니 그것만으로도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회사에게 더 낸 세금 받아 가라고 권하는 세무조사라니!
회장조차 표정 관리를 못 할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신재현은 한울의 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적도 아니었다.
한울이 놓친 부분은 철저하게 짚어나갔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울 여러분께서 답해주신 것에 대해 저희가 정리를 한 후 조사는 마무리하겠습니다. 결정문은 다음 주 중으로 나갈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양측의 기나긴 신경전이 끝나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올 때는 서열대로 줄지어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공무원이고 회계팀이고 진이 훅 빠져서 이리저리 섞여 회의실을 나갔다.
개중에는 다리가 풀렸는지 의자에 축 처져 있던 직원도 있었다.
그는 동료 직원의 부축과 함께 마지막으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회장과 재무이사도 겨우 2시간 만에 흰머리가 꽤 늘어난 듯 초췌해진 얼굴이었다.
당사자가 아닌 한대희조차 진이 빠졌는데 그들은 어땠겠는가.
공무원들도 모두 회의실을 나가고 마지막으로 신재현이 테이블을 빙 돌아 나가려다 문득 한대희 옆에서 멈춰 섰다.
한대희가 동경의 눈동자로 멍하니 올려다보자 신재현이 흠칫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한대희가 묻자 신재현은 조금 고민했다.
탈세액 겨우 32만 원.
대기업 회장의 아들치고는 굉장히 적은 액수였다.
그러나 신재현이 유독 지나치지 못한 것은 한대희가 그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너무도 열망에 불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신재현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가 한대희 사장님을 타겟으로 조사한 것도 아니고 겨우 30만 원 돈의 세금을 걷자고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놀란 것은 한대희였다.
“예? 30만 원이요? 제가 세금 밀린 게 있었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중얼거리던 한대희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대희는 탈세한 적도, 체납한 적도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신재현의 팬카페 회장으로서 당연한 것이자 그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소액이라고는 하지만 세금을 덜 냈다니.
한대희에게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러자 신재현이 당황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밀린 건 아니고 다 깔끔하게 내셨어요. 근데 뭔가 한 가지 실수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실수요? 세금을요?”
신재현은 가만히 한대희의 머리 위를 훑었다.
약 32만 원의 탈세액.
작년에 봤을 때보다 3만 원이 늘었다.
작정하고 탈세했다면 한방에 몇십, 몇백만 원이 확 늘어났을 것이다.
1년에 3만 원이 늘었다면 분명 실수라 생각한 신재현은 한대희의 소득세 신고서를 쭉 살폈다.
그리고 원인을 발견했다.
“이번 저희 조사는 법인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걸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요, 괜찮으시면…….”
“괜찮습니다! 알려주세요! 실수든 뭐든 세금을 잘못 냈으면 제가 알아야죠! 그래야 고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재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대희가 펄쩍 뛰었다.
덕분에 신재현은 비교적 편안하게 설명했다.
“연금 드신 거 있으시죠? 국민연금 말고 연금계좌 납입한 거요.”
“어, 네. 들어두면 절세도 할 수 있고 나중에 연금 받을 수도 있다고 해서 은행에서 가입했죠.”
“소득세 신고서 보니까 그걸 연금소득공제 칸에 넣으셨더라구요. 거기는 국민연금이 들어가는 칸입니다. 연금계좌는 세액공제 항목의 연금계좌세액공제 칸에 넣어야 해요. 한도도 있구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던 한대희가 어? 하고 새된 소리를 냈다.
나름 공부한답시고 펼쳤던 책에서 보았던 종소세 구조가 떠올랐던 것이다.
종소세는 소득에서 빼주는 소득공제와 세율 적용 후 세액에서 빼주는 세액공제가 있었다.
그리고 ‘연금’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던 공제가 2가지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 그게 다른 거였구나!”
한대희가 깨달은 표정을 하자 신재현이 조곤조곤 설명했다.
“네. 똑같이 연금이라는 말이 붙어서 헷갈리시는 분이 많은데요. 소득공제 쪽에는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처럼 공적연금이 들어갑니다. 은행에서 드는 사적연금은 연금계좌세액공제예요. 일부러 틀리신 건 아닌 것 같더군요.”
아까 몰아치던 매몰찬 분위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부드러운 설명이었지만 한대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굉장히 부끄러웠다.
실수를 지적한 것이 동경하는 ‘그분’이라 더했다.
“아아…… 그런 실수를.”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부러 한 것도 아니구요. 혹시 직접 하셨어요?”
“아뇨. 저는 세금 잘 몰라서 저희 회사 경리 직원에게 맡기는데 그 직원이 잘 몰랐나 봅니다.”
“아……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조금 초보적인 실수긴 한데…….”
“혼내기는요. 제가 세무사에게 맡겼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요. 간단한 거라고 생각해서 경리 직원에게 상여금 얹어주고 맡겼더니 이렇게 됐네요. 다음부턴 제대로 맡겨야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언해준 신재현은 미안한 얼굴을 했다.
“제가 너무 걱정하시도록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장소에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언제 또 뵙게 될지를 몰라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법으로 싸우던 자리다.
확실히 이런 가벼운 얘기조차 탈세가 아닐까 마음이 덜컥하게 하는 무거움이 있었다.
그러나 한대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모르고 있었으면 계속 세금 잘못 냈을 것 아닙니까. 속이 시원한데요. 일부러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대희와 신재현은 서로 악수를 나눴다.
엄연히 인척 관계였고, 한 명은 다른 하나의 팬이었지만 사적인 감정은 조금도 티 내지 않는 깔끔한 인사였다.
악수를 마친 신재현이 회의실을 나가기 직전에야 조심스럽게 말했다.
“혜진 누나, 잘 있죠? 그간 안부 인사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나온 사적인 인사라 그만 한대희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얼결에 예, 하고 간단히 답한 한대희가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신재현이 회의실을 나간 후였다.
아쉬운 마음에 한대희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켰다.
닉네임을 자주 바꿔대는 괴상한 신규회원의 영어 아이디를 검색한 것도 손끝에 붙은 버릇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규회원이 바꾼 닉네임을 보자마자 한대희는 미간을 모았다.
[세금은딱과세해야하는만큼만]
한대희와 전혀 연관 없는 말이었지만 굉장히 익숙했다.
바로 방금 전에 들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멋있다고 생각해서 잊지 않으려고 따로 핸드폰에 메모까지 해놨다.
한대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회원님 오늘 여기 있었구나.”
***
도로 우리에게 배정된 사무실로 돌아오니 공무원들의 표정이 많이 풀어져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우리는 큰 건을 해치우고 온 것이다.
내가 손에 든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 노트북 앞에 앉자 다른 사람들이 날 만류했다.
“고생했는데 조금 쉬었다가 해요.”
어느새 공무원 몇 명이 복도로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오고 있었다.
자판기라고 해도 300원짜리 싸구려 커피는 아니었고, 나름 양도 많은 700원짜리 고급이었다.
700원이 무슨 고급이겠냐만은 그래도 길거리에 놓인 자판기와 다른 것만은 확실했다.
한울의 사무실에 있으면서 요새 애용하는 커피였다.
“신 조사관님은 믹스죠?”
“아,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내 앞에도 커피가 놓였다.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직급은 아래인 조사관 하나가 넉살 좋게 웃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굉장히 살가운 태도다.
약 일주일 함께 있으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이미 파악해 놓은 것이다.
그는 내 감사 인사에 부드럽게 웃더니 블랙커피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이야, 억지를 부리긴 했지만 가보길 잘했네요.”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평소의 세무조사보다 훨씬 부담이 덜해서 그런가?”
“든든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공무원들은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의자에 늘어졌다.
이제 큰 산은 넘겼으니 그럴 법도 했다.
중요한 것은 다 물어봤고 자료도 확보했으니 그걸 정리해서 세금만 때리면 된다.
이들 모두 익히 아는 과정이고 수도 없이 했던 일이다.
“대기업 조사치곤 정말 빨리 끝났네요. 아니지, 그동안 한 조사 중에서 제일 빠른 것 같은데요? 일사천리야, 아주.”
“중소기업 조사여도 이렇게는 못 끝내죠. 물론 우리가 모든 계열사 빡세게 조사한 건 아니지만 겉핥기로도 이렇게 해낸 건 최고기록 아닐까요? 알아낸 자료만 갖고 과세해도 충분할 것 같고.”
“그래도 대기업치고는 되게 깨끗하네요. 제가 그동안 본 회사 중에서 제일 마음이 편안했어요. 아, 그래서 더 부담이 덜했나?”
“어, 그거 진짜 신기해요.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지? 탈세를 했는지 아닌지만 훑어보라고 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말이 되는 것 같아요. 탈세했는지만 찾으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워낙에 깨끗해서.”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소리와 잡담이 군데군데서 들려오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럼 이걸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알았을까?”
“언질을 받았으려나?”
“아니면 한울이 깨끗하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요? 그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가까운 사람은 근거 없이 믿고 싶어지는…….”
“그럴 사람은 아니죠. 언질 받았든 개인적으로 믿었든, 그런 사적인 거에 휘둘릴 사람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직접 확인해볼 사람이죠.”
“그렇죠? 그럼 뭘까. 평소에 관심 두고 확인이라도 해본 걸까요?”
“그런 걸까요? 인척 관계니까 시간 될 때 조금씩 탈세 있나 파봤으려나?”
여러 추측이 나돌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조사 대상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남의 회사 열어볼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 회사 탈세액을 안다고 말할 생각은 더더욱 없어서 알아서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지금도 나는 충분히 바쁘다.
나는 왼손에 종이컵을 든 채 오른손으로는 자료를 훑었다.
확인할 것들이 타이핑되어 있고, 거기에 내 글씨가 어지럽게 쓰여 있었다.
내가 일을 붙잡고 있자 공무원들이 내게 관심을 돌렸다.
“신 조사관님,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슬슬 하세요. 원래 이렇게 빡세게 하시나?”
내가 빡세게 하는 건 맞다.
지금 딱히 쉬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할 일도 많은데 얼른 끝내야 집에 가지.
일할 때는 딱 집중해서 한다, 그것이 내 지론이다.
안 그러면 오히려 늦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죠. 오히려 모자랄걸요?”
“네?”
공무원들이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마주 보았다.
이걸 아직 팀장님이 말씀 안 하셨나?
그렇다면 내 마음대로 말하기는 좀 그렇다.
팀장도 나름의 조사 계획이 있을 텐데.
그래서 팀장 쪽을 바라보자 그가 때가 되었다는 듯 몸을 일으켜 박수를 쳤다.
한순간에 이목이 쏠렸다.
“다 쉬고 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세무조사 기간 아직 남았잖아요? 조기 철수를 생각했던 여러분에겐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왕 나왔으니 탈탈 털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공무원들이 불안한 얼굴을 했다.
“신재현 조사관이 발견한 게 있습니다. 한울 회장의 첫째와 둘째 아들이 경영하는 계열사 쪽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됐대요.”
이번엔 시선이 내게 쏠렸다.
조기 철수가 글러 먹었다는 실망감 약간에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경악이 섞여 있었다.
“신 조사관님이요? 아니 그동안 우리랑 내내 같이 일했는데 대체 언제 그걸 조사했대요?”
“사람 맞아? 무슨 기계예요? 분명히 같은 일을 했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다시 그들의 얼굴에 불신이 서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날 믿지 못하는 의미의 불신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말도 안 된다’라는 의미의 불신이었다.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아서 내가 한마디 덧붙였다.
“전체적으로 살펴봤잖습니까. 장남과 차남이 도드라지게 눈에 띈 것뿐입니다.”
“나는 봐도 모르겠던데…….”
누군가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가 아차 하고 숨을 삼켰다.
팀장이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런고로 다시 한번 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남은 며칠간, 딱 두 개의 회사만 보면 됩니다. 그동안 해온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새로운 공문 없이, 가능하시죠?”
팀장이 힘을 북돋아 줬지만 앞으로 야근 확정이라는 사실은 명확했다.
공무원들은 잠시 힘 빠진 얼굴이었지만 이내 회복했다.
“야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해보죠. 뭐.”
“어쩐지 일이 쉽게 끝난다 했다. 대신에 마지막 날 회식하는 겁니다. 그때는 두 분도 오셔야 해요. 아셨죠?”
젊은 조사관 하나가 나를 보며 싱겁게 웃었다.
늘어졌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확실히 본청의 팀이라 그런지 업무로 돌아오는 전환이 빨랐다.
팀장이 뿌듯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럼 기록 한번 세워봅시다.”
남은 기간은 일주일.
한울의 두 계열사를 털기 위한 새로운 달리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