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팬카페의 새로운 회원 (3)
한대희는 가장 말석에 앉아서 대회의실을 주욱 훑었다.
그가 앉은 곳은 비록 맨 끝이었지만 현재 한대희 입장에서는 최고의 자리였다.
회장을 중간에 두고 양쪽에 각각 나뉘어 앉은 두 편의 사람들이 한눈에 보였다.
양측은 대결 직전의 선수들처럼 긴장을 팽팽하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둘 중 어느 쪽의 분위기가 더 가라앉아 있냐고 한다면 당연히 한울의 회계팀이었다.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모습도 보였다.
서로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자료를 요청하기도 하고, 빠진 종이를 휙 날리기도 했다.
대회의실의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회계팀의 직원들은 다들 딱딱하게 굳어서 목소리조차 높낮이 없이 단조로웠다.
먼저 공무원들의 공격이 들어왔다.
표정으로 봤을 때 그들은 정말 가볍다고 생각하고 던진 질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회계팀 직원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건넸다.
“지난주에 지적하신 후로 즉시 저희 회계사를 현지로 급파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지적하신 부분을 급한 대로 정리해 올린 보고서입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료를 제출하자 팀장은 대충 훑어보고는 옆으로 그것을 넘겼다.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조사팀 공무원들의 역할인 것 같았다.
그들이 보고서의 철을 풀더니 파트마다 몇 장씩을 각자 나누어 가졌다.
한울도 그렇지만 공무원들도 각자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검토는 빨랐다.
한 여직원이 자신이 조사한 것과 비교해보더니 손을 들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손을 든 것은 습관인 듯했다.
“사용 경비에 상장 제작이라고 하고 금액이 좀 과도하게 찍혀 있던데요, 이거는 정당한 비용이 맞는 건가요? 확인 하셨죠?”
공무원 스스로는 어떤 의도였을지 모르겠으나 어조는 날카로웠다.
듣고 있던 한대희가 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다.
이것은 저도 모르게 나온 말투라기보다 하도 조사를 다니다 보니 몸에 밴 것 같았다.
‘아, 그냥 묻기만 해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착 묻어 나오네.’
한대희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한대희는 어디 공연이라도 보러 온 관객 같았다.
맨 앞줄에 앉아 팝콘을 까먹으며 한 장면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열성 관객 말이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이 그의 현재 기분을 안다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좀 미안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한대희로서는 처음 보는 세무조사였다.
자신의 회사에 나온 거라면야 이렇게 순수하게 즐거워할 수 없다.
한마디로, 과세 때려 맞을 걱정도 없이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출장 금액은 저희가 본 거랑 조금 차이가 나는데 뒷받침하는 영수증이 있나요?”
“네. 19페이지를 보시면 영수증 사본이 있습니다.”
“여기 부산에서 쓴 금액이 나오네요. 이거는 혹시 복지재단 관리자 분이 사적 여행경비로 쓰신 것 아닌가요?”
“그거는 확실하게 저희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날 부산에서 한부모 가정 행사가 있었습니다. 인식을 널리 알리는 취지의 행사였는데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재단 이사장과 이사 한 명이 직접 참가한 게 맞습니다. 25페이지 보시면 해당 행사 기사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모텔 영수증은 경비로 분류했고, 저녁밥 영수증은 유흥주점으로 되어 있어서 뺐습니다.”
“행사에 참석했다는 증거가 혹시 있나요? 사진이라든가…….”
회계팀 직원이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하시게요? 가볍게 할 것처럼 말씀하셔놓고…….”
“아, 그렇게 되나요.”
회계팀 직원의 태도는 언뜻 보면 공적인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떼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계산된 행동이었다.
과하게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서 상대의 과한 파고들기를 지적했다.
처음에 ‘가볍게’라고 말한 것이 공무원들이니만큼 회계팀으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차갑게 했다간 서로 기분만 상할 뿐이다.
그러니 일부러 직원이 귀엽게 울상을 지은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떡할까요.”
질문했던 공무원이 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팀장은 도로 신재현에게 시선을 보냈고, 신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본 공무원은 페이지를 넘겼다.
“그럼 이건 넘길게요.”
“넵! 감사합니다!”
지켜보던 한대희가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봤을 땐 그냥 조사관들이 자료 제출하라고 말하고 끝이랬는데. 나중에 세무서로 오라고 하고.’
한대희도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다.
인터넷에는 현장조사를 겪어봤다는 글조차 드물었다.
보통은 세무서에서 전화가 오고, 원하는 자료를 말한 후 그걸 메일로 보내거나 직접 갖다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정말 궁금한 게 있으면 전화가 오거나 납세자를 세무서로 부르다는데, 지금 이런 상황은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는 대기업이라 그런가? 일반 회사까지 이런 식으로 하면 공무원들이 남아나지 않겠지.’
한대희는 매 순간순간이 새로웠다.
마치 잘 짜인 공격과 방어의 랠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근데 그분은 조용하시네. 궁금한 게 없으신가?’
한대희는 신재현을 뚫어져라. 관찰했다.
받은 것들을 빠른 속도로 넘겨보고 있었다.
한대희는 시무룩해졌다.
그야 공방을 보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사의 사장으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런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어도 먹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잘나가는 공무원과 악덕 대기업, 그리고 여주인공으로 아내인 혜진이 나간다면 아주 멋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한울은 정의의 공무원에게 얻어 터지는 악덕 대기업의 포지션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직업병이라고 할까, 신혼이라서일까.
한대희가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생각해보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더니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들어왔다.
둘 다 정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었으며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 40대 초반 정도.
한대희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눈치챈 것은 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은 공세를 멈추었고 새로 들어온 남녀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계사 박경아입니다.”
“세무사 김도하입니다.”
둘이 오자마자 회계팀 직원들은 두 자리씩 옆으로 밀려났다.
재무이사 바로 옆에 회계사가 앉았다.
둘이 오자마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구원투수라도 등장한 것 같네.’
회계팀 직원들의 축 처졌던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
전문가의 등장이란 이렇게 든든한가 싶었다.
회계사나 세무사가 왔다고 해서 뭐가 더 극적으로 바뀔까 했는데, 과연 바뀌긴 했다.
한대희가 알아듣지 못하는 복잡한 용어들이 오고 갔다.
아까는 그나마 영수증이니, 출장이니 하는 말이 나와서 알아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청년증대세액공제가 어쩌구, 이월공제액이 5년간 뭐가 어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주제도 순식간에 휙휙 바뀌었다.
방금만 해도 세액공제 얘기를 하더니 이제는 자본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공무원들도 처음엔 한두 명만 질문하더니 이제는 대여섯 명이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질문을 던졌다.
“신주인수권부 사채의 전환권 대가하고 전환권 조정의 세부 회계처리 내역 볼 수 있겠습니까?”
“네. 일단 세 가지입니다. 2020년에 발행한 20억과 2021년 8월에 발행한 50억, 그리고 2021년 12월에 발행한 50억입니다. 자세한 상각 내역 드리겠습니다.”
한대희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단어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회사의 경영자 회의에서 신주인수권부 사채가 무엇인지는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다.
회사에 관심이 없던 한대희는 처음엔 사채라고 하길래 제3금융권의 무서운 아저씨들이 이율 40%씩 붙여서 빌려주는 검은돈인 줄 알았다.
그나마 신재현의 팬이 되면서 관심을 갖고 들어둔 것이라 사채라는 단어나마 알아들은 것이다.
그리고 신주인수권부 사채라면 채권자들이 주식을 먼저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조건의 사채를 말했다.
‘그냥 돈 빌리고 빌려주고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네.’
그의 말대로였다.
흔히 말하는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때문이었다.
사채를 50억 발행했다고 해서 재무제표의 부채 항목에 덜렁 ‘50억’이라고 적으면 안 된다.
회계도 ‘회계기준’이라 불리는 룰이 있었다.
나중에 갚아야 하는 돈이 50억인 것이므로 지금의 가치는 50억이 아니다.
돈은 미래로 갈수록 가치가 낮아지니까, 현재가치는 50억보다 높다는 뜻이다.
차액은?
당연히 따로 항목을 만들어서 조정해야 한다.
‘전환권 대가’와 ‘전환권 조정’이라는 항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한번 만들고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역시 매년 관리해야 한다.
이것을 상각이라 한다.
지금 공무원들은 그 계산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미치겠네. 분명히 한국말 같은데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사실 0개 국어였구나.’
한대희는 입맛을 쩝 다셨다.
공무원들이 자료를 받자마자 또다시 각각 할당량을 나눴다.
갖고 온 계산기를 불이 나도록 두드리더니 자기들끼리 또 무언가를 진지하게 회의했다.
한 쪽 손에 펜을 든 채 숫자를 하나씩 체크해 나가고 있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확실히 아까와는 달랐다.
공무원들의 공격에 한울 쪽이 잘 방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한울 회계팀 직원들의 얼굴이 밝았다.
공무원들이 검토가 끝났는지 다시 자료를 추렸다.
그리고 상황이 반전했다.
“어느 정도 정리되셨으면 제가 질문해도 될까요?”
신재현이 입을 열자마자 공기가 다시 차가워졌다.
에어컨을 튼 것처럼 한기가 돌았다.
회계팀 직원들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었고, 공방을 주고받던 회계사와 세무사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와, 의연하네. 전문가는 역시 좀 다른가?’
그러나 그들도 긴장한 것이 맞았다.
세무사는 입을 열자마자 말을 더듬었다.
“어뜬, 크흠. 어떤 것이 문제가 있으신가요?”
한대희는 사람에게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
영화처럼 눈에 뭔가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의 성품과 카리스마가 자아내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연예인의 옥석을 가려내는 소속사를 이끄는 사장의 입장에서 그것은 한대희의 유일한 재능이었다.
그런 한대희에게는 지금 회의실에 어떤 기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만약 이 기류라는 것이 색으로 보인다면 어떨까.
한대희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차갑게 가라앉은 깊은 바다와도 같은 색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심해처럼 무거운 그 공기는 천천히 한울을 향해 목을 죄어왔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이거다! 이거라고!’
한대희의 희열과는 반대로 한울 직원들의 표정은 점점 거멓게 죽어 갔다.
신재현이 입을 열자 더욱 그랬다.
“자산의 가속상각 들어갔던 거 기억나십니까?”
“어, 그때가 언제죠? 아, 2019년이군요. 그거라면 기억합니다. 원래 중견기업과 소기업만 가능했던 것인데 201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혜택이 풀렸습니다.”
“네. 그때 대기업도 75% 가속상각 적용받았죠. 저도 이건 탈세 아니라고 보거든요.”
대답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세무사는 어쩐지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분명 ‘탈세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물어본 것인가.
당연하게도 신재현의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국 자회사에서 가속상각의 세무조정으로 과세이연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배당 후 외국법인세가 부과되어서 그해에는 간접외국납부세액공제를 못 받았죠? 이거 경정청구하세요.”
한대희는 장담하건대 지금 여기서 이 이야기를 알아들은 사람은 세무사, 단 한 명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만약 내기를 건다면 자신 몫의 지분을 걸 수도 있었다.
당장 신재현의 옆에 앉아 있는 팀장만 하더라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그의 옆모습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세무사는 잠시 진지하게 숙고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외국법인세 과세 후, 그 잉여금을 재원으로 배당한 경우에 간접외국납부세액공제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저도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습니다. 기재부 예규에 배당과 법인세 과세의 순서는 따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요.”
스무 명도 넘게 앉아 있는 이 회의실에서 오직 두 명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회장 역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둘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세무사에게 직접 물었다.
“방금 말한 것이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해야 쉽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세무사는 설명을 포기한 채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한울에서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겁니다.”
“걷어가는 게 아니라 돌려받는 방법을요?”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목이 삐걱거리듯 움직여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양쪽 모두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재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세금은 딱 과세해야 하는 만큼만 거둬야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한대희는 이랬다.
‘진짜 개멋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