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29화 (329/500)

329화. 팬카페의 새로운 회원 (1)

신재현 팬카페의 이름은 굉장히 심플했다.

[신재현 팬카페]

어떻게 오해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깔끔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팬카페의 회장인 ‘형세금잘낸다’는 열심히 카페 글을 체크하고 있었다.

바로 같은 공간에서 아버지와 회사 중역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아버지 회사다.

회사는 형들이 물려받을 것이고, 혹시 아버지에게 거슬리는 일 있으면 등짝 몇 번 맞으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지금 중요한 것은 팬카페였다.

‘그분은 재계조차 두려워하는 세력의 일원이시라고. 암약하는 흑막? 절대 못 참지. 언젠가 여의도를 발아래 꿇리고 세상에 나서실 때를 대비해서 미리 팬들의 이미지를 잘 관리해놔야 해.’

그의 오해와 상상은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분’이라는 사람의 실제 생각이야 어떻든 간에, 팬카페 회장인 그는 이미 그분에 대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 후였다.

그는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는 도배 글을 지우며 아버지와 회사 중역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복지재단이…….”

“탈세가…….”

‘형세금잘낸다’는 머쓱한 표정을 했다.

듣고 싶어서 남은 게 맞지만, 어째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한국어인데 왜 이해가 안 되냐. 나름 공부 좀 했는데.’

그는 입맛을 다셨다.

팬카페에 가입한 후로 ‘한 권으로 끝내는 연말정산’, ‘부자가 말하는 절세의 비법’ 등의 책을 사서 읽어보긴 했다.

정말 열심히.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그래. 괜히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지. 내가 책 몇 권 읽었다고 따라잡을 정도면 시험이 왜 있겠냐. 포기하자.’

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도 알았다.

들이는 노력 대비 효율이 나쁘다면 바로 포기한다.

그래도 귀는 열어둔 채 팬카페에 열중했다.

요즘 가입한 신규 회원이 꽤 맘에 든 참이었다.

처음 가입 때부터 눈에 꽤 띈 사람이다.

-씨발팬카페가입한다 : 진짜 가입했다!

-형세금잘낸다 : 닉네임에는 비속어 금지입니다.

-씨발팬카페가입한다 : 예? 이거 비속어 아니고 감탄사인데요. 제 지금 심경을 표현한 거예요.

-형세금잘낸다 : 여기는 팬카페라서요. 회원들의 활동이 곧 신재현 씨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게 됩니다.

-씨발팬카페가입한다 : 죄송합니다; 바로 바꿀게요;

-형세금잘낸다 : 넵. 공지 꼭 읽어주시고 좋은 활동 부탁드려요!

이랬던 사람이 거의 매일 닉네임이 바뀌었다.

어느 날은 ‘걔일잘하더라’였다가.

또 어떤 날은 ‘계산빠름’이었다가.

보통 인터넷상에서 닉네임은 자신을 구분 짓는 코드이기 때문에 잘 바꾸지 않는데 이 신규회원은 시도 때도 없이 바꿔댔다.

하도 바꿔서 팬카페 회장이 영어 아이디를 외워서 매일매일 닉네임을 체크할 정도였다.

그가 거쳐 간 닉네임만 해도 ‘얘 때문에야근’, ‘집에좀가라’, ‘오늘도한건함’, ‘이럴때얘좋더라’ 등이 있었다.

이쯤 되면 거의 상태 메시지 수준이다.

참고로 오늘의 닉네임은 ‘곧쳐들어감’이다.

‘대체 어디에 쳐들어간다는 거야. 뭐 용역회사 다니시나? 뭐,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 괴상한 신규 회원은 어느 날 카페의 사진 게시판을 보더니 ‘ㅎ’라는 댓글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사진 딱 세 개를 올렸다.

내용도 별것 없었다.

늬들은 이런 거 없지? 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약간의 과시가 들어갔을 뿐이다.

이거야 팬카페 회원이라면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자부심이니 그럴 만했다.

그런데 회장인 그는 사진을 보자마자 알았다.

회원들이야 ‘출근 사진인가 봐요’ 같은 평범한 댓글을 달았지만 이것은 결코 지금까지 인터넷에 풀린 적 없는 사진이었다.

혹시 몰라 부회장인 다민에게 보내 물어보니 그녀 역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진이라고 확언해줬다.

팬카페에서 가장 열광적인 팬인 다민이 그렇게 말했다면 맞는 것이다.

무엇보다 회장인 그가 배경에 찍힌 건물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한울 그룹 본사.

건물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찍은 것이었지만 팬카페 회장은 알았다.

당장 지금도 그 건물의 회의실에 앉아 있으니까.

그래서 한 가지 가설에 도달했다.

‘아! 우리 한울 본사에 회원이 계시구나!’

그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다.

그렇게 실실대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의 귀에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꽂혔다.

“그런데 신재현 씨는 어떻게 그걸 알아냈을까요?”

이름 석 자가 들리자마자 정신이 현실로 확 돌아왔다.

그는 진지하게 회사 중역에게 질문했다.

옆에서 아버지가 한심한 눈빛을 했지만 중요한 일이었다.

그분의 활약을 듣는 것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뭘 물어봤나요?”

“……수익을 일으키지 않는 재단이나, 비영리법인 위주로 물어봤습니다. 장애인 보조기구 제조회사처럼 회장님이 특별 지시하신 곳이요.”

“근데 왜 걱정스러운 표정이에요? 아버지가 특별히 관리하라고 한 거면 깨끗할 텐데. 뭐 걸린 거라도 있어요?”

“예에. 걸렸습니다. 저희도 모르고 있던 걸 신재현 조사관님이 찾아내서 갖고 오셨어요.”

회사 중역은 푸념하듯 말했지만 그에 반해 팬카페 회장 ‘형세금잘낸다’는 점점 표정이 밝아졌다.

회사 중역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웃지 마세요, 도련님. 공무원들이 곧 미팅하자고 연락이 왔단 말입니다. 오늘이 조사 시작하고 벌써 2주 차 월요일이에요. 시간이 지났으니 이번엔 그때보다 더 철저히 조사해서 왔을 텐데, 대체 뭘 갖고 올지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재무이사님께서도 두려울 정도예요? 이야…….”

“감탄할 일입니까? 아무리 한울 경영에 관심이 없으셔도 그렇지.”

회사 중역이 침울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자 팬카페 회장은 넉살 좋게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그분이 없는 일로 세금 때리진 않으니까. 우리가 모르고 넘어가는 걸 잡아주시고 얼마나 좋아요? 이야, 다음 회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이렇게 배려하신 거 알려나 모르겠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나 철저한 분이에요.”

“선물이랍시고 정보를 갖다 주신 도련님도 정상은 아닙니다만.”

회사 중역이 넌더리를 내며 뭐라 말을 이으려는 순간, 회의실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회계팀의 직원이었다.

“국세청 조사관분들께서 찾아오셨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회사 중역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가 일어서려고 하자 회사의 총수인 아버지가 막았다.

“저도 책임자니 함께 듣고 싶군요. 해명도 즉석에서 할 수 있고요. 지금 재무이사실에 있나요? 조사관님들을 이쪽으로 모셔오세요. 여기가 더 넓으니 여기서 합시다.”

회계팀 직원이 나가자마자 팬카페 회장의 숨죽인 환호성이 터졌다.

그나마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아버지와 고생하는 회사 중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 눈으로 보는구나! 대기업 탈탈 터는 칼춤을!’

기대감이 용솟음쳤다.

그나마 아버지가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했을 거라 믿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

조의 구분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미 2조인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끝났다.

2조라고 해봤자 나와 황민우, 본청 소속의 이정국 조사관뿐이다.

우리는 바로 팀장에게 보고 후, 1조에 자료를 넘겨주며 합류했다.

1조 직원들은 관찰하듯 우리를 훑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게 오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우리 자리에 있던 상자들부터 큰 테이블 쪽으로 옮겼다.

하나, 둘, 셋…….

상자가 추가될 때마다 1조 직원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 갔다.

처음엔 냉정 반, 호기심 반으로 살펴보던 표정들이었는데 여섯 상자를 넘어가니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으음? 양이 왜 이렇게 많아요?”

여직원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제가 좀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좀 나쁜 버릇이긴 한데, 눈으로 딱 봐서 걸리는 게 있으면 그걸 확인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자 무슨 개소리 하냐는 눈빛이 강해졌다.

왜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안 하나보다.

체계적으로 뭘 할지 정해 두고 움직이는구나.

내가 나름대로 결론을 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1조의 직원들이 상자를 들춰보았다.

내 대답은 딱히 기대하지 않는 듯했다.

“어, 지분 보유표 이거 우리 하는 거에 더하면 빠르겠는데요.”

“진짜네? 원래는 우리가 해서 줬어야 하는 건데.”

왼쪽에서는 우리가 뽑아낸 총수 일가의 지분 정리를 보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막 상자 뚜껑을 열고 있었다.

“밑에 복지재단 자료 있다!”

직원들이 하나둘 자료를 꺼내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름 내가 정리해 둔 건데, 순서대로 꺼내지.

내가 거들어주기 위해서 손을 뻗었을 때 누군가가 1번 상자에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냈다.

집게로 깔끔하게 각을 맞춰 집어둔 것이었다.

그래, 방금 내가 꺼내려고 했던 거다.

다른 상자들이야 백데이터에 불과하다.

방금 꺼낸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리해 둔 자료의 결과판이다.

-촤락.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직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미치겠네. 다들 여기 좀 보세요.”

“뭐예요?”

다들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말을 꺼낸 직원 주위로 모여들었다.

“어, 이건…….”

“이렇게 해 놨네…….”

다들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따로 빼둔 책상에서 무언가를 검토하던 팀장이 슬쩍 일어나 테이블로 다가왔다.

“오, 체크리스트네요.”

팀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아는 척하고 싶어졌다.

나름 열심히 만든 것이라 더했다.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맨 앞 장은 한울 계열사 모든 법인 목록입니다. 첫 칸이 특수관계자가 보유한 지분율 및 주식 수입니다. 다음 칸은 순서대로 법인세 신고서, 세액공제, 감면, 부속서류, 주주현황, 가지급금, 기부금, 연구비, 인건비 등의 주 항목입니다.”

“형광펜으로 색칠되어 있는 부분은 확인이 끝났다 이거죠?”

“네. 그리고 형광펜과 함께 쓰여 있는 숫자는 자료 번호입니다.”

나는 예를 들기 위해 내가 만든 표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미혼부모 복지재단’ 줄의 열 번째 칸에 1-2라고 쓰여 있죠? 이 서류의 1-2 견출지 붙은 장으로 넘겨보시면 요약 보고가 있구요.”

체크리스트에서 세 장 정도를 넘기자 내가 그 회사의 탈세 근거로 짚었던 숫자들이 간단하게 정리된 한 장의 보고서가 나왔다.

다음으로 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상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안을 뒤적거렸다.

“이게 1번 박스잖아요. 이 안에 2번 견출지 붙은 게 상세 내용입니다. 백데이터도 복사해서 붙여 놨고요.”

순간 사무실에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얼음물 한 양동이를 그대로 끼얹은 것 같은 냉랭함이었다.

아무리 한겨울이라고 해도 이렇게 추워질 수 있나 싶었다.

하나같이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좌우를 둘러보았다.

황민우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말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반대로 이정국 조사관은 의기양양해서 콧김을 훅훅 내뿜고 있었다.

이 사람은 원래 저런 것 같으니 내버려 두자.

그런데 창문이라도 열어둔 것처럼 썰렁한 바람이 휘휘 감도는 이 분위기에 이정국이 깐족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팬카페 가입한다고. 이 정도면 가입할 만하지 않아?”

내가 기겁해서 그를 말렸다.

“조사관님,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옵니까?”

다른 공무원들에게 이정국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해명하려는데 누군가가 툭, 손에 든 종이를 내려놓았다.

아니, 소리를 들어서는 떨어뜨린 것 같았다.

“이건 뭐 인정할 수밖에 없네.”

“그러게요. 눈앞에서 이런 걸 들이밀면 뭐라고 반박해야 돼?”

“반박을 못하지.”

일단은 저들 기준에도 통과인 것 같다.

나는 한결 후련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이정국은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더 날뛰고 있었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요.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아니, 이정국 조사관님도 웃겨요. 이런 식이다 말을 해주면 되잖아요. 왜 설명을 이상하게 해서 우리가 오해하게 만들어요?”

이정국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이거 지금 제 잘못입니까? 와, 처음부터 얘기했는데.”

그래도 공무원들끼리 투덕거리는 사이에 차가웠던 분위기는 어느 샌가 풀려 있었다.

“자자, 신재현 조사관님도 그러고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요. 이미 조사관님이 체계적으로 조사해 와서 우리는 덧붙이기만 하면 되겠네. 지금 형광펜 칠해진 게 한 15개 정도 되니까 그 부분은 다 완료된 거네요?”

“어, 네. 근데 평소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몰라서…… 제 나름대로 정리한 거니까 확인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정국 조사관님이 옆에 붙어 있었잖아요. 이상한 거 있었으면 옆에서 말했을 겁니다. 그런 거 없었잖아요? 그럼 다 괜찮을 거예요.”

“음, 확인 작업은 여럿이서 시간 차를 두고 하는 게 확실하니까요. 확인은 하고 넘어가는 게 낫다고 봅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공무원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여직원이 박수를 딱 치더니 배시시 웃었다.

“숫자를 다루는 사람의 마인드로서는 최고네요. 그럼요, 사실 작업한 사람이 보면 틀린 게 눈에 안 보일 때가 많아요. 같이 한번 싹 훑고 작업 시작합시다.”

팀장도 의자를 끌고 오더니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몇 개라도 하고 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진짜 웬만한 거 다 볼 수 있겠는데요? 해봅시다!”

그렇게 우리는 첫 주를 매우 알차게 보냈다.

그리고 오늘, 2주 차 월요일.

정말로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10명이 들러붙어서 해낸 쾌거였다.

우리는 제각기 손에 자료와 질문지, 계산기를 들었다.

“다들 준비 끝났죠? 그럼 갑시다.”

본격적으로 조사팀 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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