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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328화 (328/500)

328화. 조사가 늘어난다 (5)

한국에서 씨발이란 단어는 욕이지만, 어떨 때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단 한마디로 표현할 때도 쓰인다.

지금 이정국의 경우가 딱 그랬다.

“저어…… 이정국 조사관님?”

공무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저히 그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치킨집에서 맥주를 먹으며 차가운 태도를 보였던 것이 바로 어제저녁의 일이다.

일단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기회를 줘보겠다는 것이었다.

제3자로서 객관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잠깐 나갔다 오더니 이렇게까지 돌변하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사관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러세요?”

1조의 조사관들이 흥미 반, 답답함 반으로 모여들었다.

이정국이 뭔가 여운을 즐기듯 문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무원들이 그를 재촉했다.

“무게 잡지 말고 빨리 말 좀 해 줘요! 사람 궁금하게!”

이정국은 아까보다는 짐짓 흥분을 가라앉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똑같이 열기가 그득했다.

“저 공시 준비할 때 독서실 옆자리 앉아 있던 놈이 재수생이었는데 진짜 독한 놈이었어요. 오기는 나보다 늦게 오는데 일단 앉으면 얘가 절대 눈을 안 돌려.”

공무원들이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한 표정을 했다.

나왔다, 나쁜 버릇.

이정국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쓸데없는 얘기를 끄집어내어 갖다 붙였다.

한마디로 설명이 너무 많았다.

지금도 그냥 신재현이 뭔가를 했고 어느 점에서 감명 깊었다고 감상을 말하면 될 것을 10년 전 얘기까지 끄집어내서 예전 일부터 설명하고 있었다.

“이 조사관님! 스킵! 그거 스킵하고 오늘 있던 일부터 시작하시면 안 될까요?”

“아니, 지금 제 심정을 설명하기 위한 빌드업이에요, 일단 들어보세요.”

“맙소사.”

공무원들이 한숨을 쉬며 각자 시선을 돌렸다.

저렇게까지 흥분했으면 이제 말릴 수 없다.

말이라도 빨리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제가 정수기에서 물 떠 오면 얘는 그냥 공부하고 있고, 졸려서 커피 마시려고 보면 공부하고 있고, 심지어 얘가 한 번도 자는 걸 못 봤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의대 갔더라고.”

누군가가 맞장구를 쳐 줬다.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기 위해서였다.

“와아, 그렇군요. 그래서 신재현 조사관님이랑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요?”

“그때 느꼈지. 머리만 갖고는 안 된다. 우리는 공부 잘하는 애들을 뭔가 멀게 생각하잖아요? 근데 걔네는 사실 물밑에서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우리가 보기엔 ‘머리가 똑똑하구나’ 하고 끝내지만 걔네는 그걸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을 하는 거지.”

“네에…….”

반응이 시원찮으니 이정국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이렇게 서론을 길게 얘기했는데 대단하다는 게 안 와닿으세요? 둘 다 갖춰 줘야 가능한 거라고요! 똑똑한데, 노력파라니까요? 이건 인간이 아냐! 나랑 다른 종류의 무언가야!”

“그러니까 뭘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는지를 말해 달라고요!”

1조의 공무원 하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이정국이 아, 하고 입을 벌렸다.

“그거 물으시는 거구나.”

“네! 아까부터 그 얘기 한 거잖아요. 거기서 뭘 봤냐고!”

이정국은 멋쩍게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상태였기에 다른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정국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한울 계열사가 40개 정도 되잖아요?”

“네.”

“그중 21개 회사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그래도 공무원들에게는 쉽사리 와 닿지 않았다.

“뭘 물어봐요? 물어볼 게 뭐가 있는데요? 지분?”

“아뇨! 오너 지분은 아까 다 정리했잖아요! 그걸 토대로 회사별로 의심스러운 부분 물어보러 간 거라고요.”

공무원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들은 이정국이 자신들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사관님, 이거 그거죠? 사진 찍을 때 미모 몰아주기 그런 느낌이죠? 일부러 띄워주시는 건가요?”

“제가 뭐 하러 처음 만난 공무원을 띄워줘요? 같이 일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안 그럼 말이 안 되잖아요! 지금 조사 목적이 뭐예요? 회사별로 순환출자랑 지분 싹 정리하고, 그 후에 탈세 의심 증거 찾기로 했잖아요. 근데 이정국 조사관님 말씀대로라면 이미 우리 임무는 다 끝났는데요?”

1조의 공무원들도, 이정국도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1조 사람들은 이정국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정국이 신재현을 띄워 줄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정국은 이정국대로 답답했다.

왜냐하면 얼마나 불가능하든 옆에서 직접 봤기 때문이다.

본 걸 봤다고 말했을 뿐인데 서로 말이 통하질 않으니 답답한 대치가 이어졌다.

“아!”

그러다가 이정국이 무언가 깨달은 듯 손뼉을 쳤다.

그는 지금 이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줄여서 말했구나! 말씀하신 것처럼 탈세 의심 증거를 다 찾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우리가 이제부터 찾아가야죠. 신 조사관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의심스러운 점을 물은 겁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되냐고요. 여기서 총수 일가 지분 정리 끝나고 바로 나갔잖아요. 동시에 하기라도 했어요? 아니면 미리 준비해 왔대요? 대체 정리하자마자 질문 목록을 어떻게 뽑았는데요! 의심 가는 걸 물어봤다는 건 이미 눈여겨봤다는 뜻이잖아요!”

이정국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러니까 괴물이라고요! 내가 괜히 팬카페 가입한다고 하겠어요?”

“어…….”

논리에 일리는 있다.

그래도 쉽사리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이정국이 잔뜩 열기를 품은 채 황민우에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같이 있었잖습니까! 뭐라고 설명 좀 해 봐요!”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입력하던 황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무심해 보이는 눈동자였다.

“우리 팀장님, 아니 신재현 조사관님이 좀 그렇습니다. 일에 한 번 파고들면 주위를 못 돌아봐요. 그래도 잘난 척하거나 인성이 나쁜 분은 아니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우리 애 잘 부탁한다는 듯한 말투에 이정국이 멍해졌다.

“아니, 그거 말고요! 직접 봤잖아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이 잘 안 되는데 황민우 조사관은 오래 함께했으니 어떤 과정인지 잘 알 것 아닙니까!”

이정국이 다그치자 1조 공무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황민우의 입에 고정되었다.

황민우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보는 눈이 좀 좋으십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어질까 싶어 기다리던 이정국이 답답한 마음에 테이블을 내리쳤다.

“왜 대단한 걸 대단하다고 설명을 못해! 미치겠네!”

정작 황민우는 평온한 가운데 이정국 홀로 천장을 바라보며 괴성을 뿜었다.

그때 황민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뭔가를 덧붙이려나 싶어 다들 귀를 기울였다.

“팀장님하고 신 조사관님 돌아오시네요.”

그러나 실상 황민우가 말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당사자가 오고 있다는데 본인이 있는 곳에서 앞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뭘 한 거냐고 직접 가서 묻기에도 난감했다.

결국 아무런 의문도 해소되지 않은 채 비밀 회의하러 나갔던 두 공무원이 들어왔다.

신재현은 스윽 사무실을 훑어보더니 가장 먼저 황민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황민우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신재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수롭지 않게 자리에 앉았다.

“……응? 분위기 왜 이래? 싸웠어?”

무슨 일인지 모르는 팀장만이 사무실 분위기에 당혹스러워할 뿐이었다.

***

한 주가 지나갔다.

한울의 월요 정례회의가 끝난 후, 한울은 양옆에 앉아 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재무이사다.

회장 본인이 현재 상태 점검할 겸 남으라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회의실 중간 즈음에 앉은 막내아들 놈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경영 참가하라고 억지로 앉혀다 놨던 예전에는 기를 쓰고 탈출하려고 하더니 이제는 모르는 척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다.

임원들이 회의하는 내내 어딘가 정신이 다른 데 팔린 것처럼 헤실거리고 있었다.

회의 시작 때는 수업시간에 몰래 노는 학생처럼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 핸드폰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대놓고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대체 뭘 보는 건지 실실 웃는 꼴이 궁금해서 옆에 앉아 있던 임원들이 들여다봤더니 웬 팬카페였다.

지금도 핸드폰만 죽어라 두들기고 있었다.

회장은 막내아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놈아! 좀 나가!”

“아, 왜요. 오라고 한 건 아버지잖아요.”

“와서 회사 굴러가는 거나 보라고 한 거지, 그러고 전화기나 붙들고 있을 거면 뭐 하러 여기에 앉아 있어! 썩 나가!”

그러나 막내아들, 한대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왜 이러고 앉아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재무이사가 남았으니 회장과 무슨 대화를 할지는 뻔했다.

한대희는 그것을 듣고 싶은 것이다.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언제나 그랬듯, 저는 있는 듯 없는 듯하시면 돼요. 회의라는 게 항상 그랬잖아요.”

“회사의 후계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야. 너도 인마, 후계자 중 한 명이잖아! 다른 놈들하고 형평성이 안 맞으니까 나가라고, 이눔아!”

“응? 그거 아직도 고려하고 계신 거예요? 한울 저한테 주시면, 정말 남아날 거라고 생각하세요? 에이, 말아먹을 생각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한테 그룹을 줘요. 전 이미 포기했다니까.”

“그럼 중역 회의는 왜 나오는 거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한대희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회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아들놈과 얼굴만 마주하면 늘어나는 건 한숨이요, 주름뿐이었다.

“제가 입 하나는 무겁잖아요. 중역 회의도 저 끼우고 하시는데, 지금 하려는 얘기도 임원회의 때랑 주제는 별 차이 없지 않아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장남이나 차남이었다면 당장에 엉덩이를 걷어차서 내쫓았을 것이다.

그 둘 역시 회장의 눈치를 보느라 재깍 말을 들었을 테고.

그러나 아끼는 막내아들을 이겨 먹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그걸 알기에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더욱이 후계자도 제 발로 걷어찬 놈에게는 당근과 채찍도 불가능했다.

“이놈아! 내가 전 이사랑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버티고 있는 거야!”

“세무조사 나온 공무원들 뭐 하고 있는지 보고 들으시려는 거잖아요.”

재무이사가 흠칫 놀랐으나 곧 표정을 관리했다.

회장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저놈이 진짜 눈치랑 머리 굴리는 건 빠른데……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쯧.”

“후계 얘긴 끝! 재무이사님 바쁘시니까 얼른 말씀 나누세요. 저는 귀동냥만 하겠습니다.”

결국 회장이 체념했다.

“그래, 듣고만 있어라. 끼어들지는 말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다.

회장과 재무이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세청 공무원들이 뭘 더 요구한 건 없습니까?”

“중간 중간 저나 회계팀 쪽으로 연락해서 자료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자마자 미혼부모 복지재단 5년 치 자료를 요구하던데요.”

회장이 탄식했다.

“아…… 저번 주에 전 이사가 보고했던 그거였군요. 3년 전부터 이상 현상이 보였다던.”

“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저희 그룹의 잘못이니까요. 탈세 규모가 어떻게 될지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둘은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 찬물만 들이켰다.

탈세라는 게 확실하고, 고지서가 날아오게 되면 이 소식은 금방 기사를 탈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차라리 잘됐네요.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 걸 국세청에서 찾아준 것 아닙니까. 이대로 방치했다면 더 큰 횡령과 탈세가 일어날 뻔했어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 썼어야 했는데.”

재무이사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몇 번이나 회장에게 사과했지만 해도 해도 부족했다.

“아니에요.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수습하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걸 반면교사 삼으면 돼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너그러운 눈빛으로 재무이사를 다독이던 회장이 문득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런데 신재현 씨는 어떻게 그걸 알아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복지재단뿐만 아니라 다른 비영리 법인들도 들고 왔습니다.”

좀 관심 가는 주제가 나온 모양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던 한대희가 상체를 일으켰다.

내내 핸드폰에 고정했던 시선도 재무이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그분이 뭘 어떻게 하셨다고요?”

“도련님…….”

한대희의 반짝거리는 눈빛에 재무이사가 부담스러운 나머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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