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26화 (326/500)

326화. 조사가 늘어난다 (3)

‘시작한다고? 뭐를?’

1조 모든 직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설마 지금까지 헤매다가 이제야 작업을 시작한다는 건가?’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반나절 만에 오너 일가 보유주식 수를 다 정리했다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2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식 수 정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다만 단순 작업도 양이 많으면 일이 어려워진다.

더욱이 지금은 2023년 1월이다.

2022년도 법인세 신고는 두 달 더 있어야 하니 지금 볼 수 있는 결산서는 2021년도 것이다.

거기에 2022년과 2023년도의 주식 이동을 파악해서 변동분을 정리해야 현재의 보유주식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반나절 안에 해치웠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자동으로 남은 가능성에 생각이 기울게 된 이유다.

‘이제 정리 시작한다는 건가? 그럼 그동안 뭐 한 거지?’

‘아, 이런 작업은 처음이라 헤맸나 보다.’

‘이 조사관님 엄청 고생하시겠네. 저걸 어떻게 가르쳐서 사람 만드냐.’

‘차라리 우리 쪽에 합류하는 게 더 빠를 텐데.’

팀장이 1조, 2조로 나뉘어 일을 줬을 때부터 다들 이것이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두 조의 업무는 달라 보이지만 크게 보면 맥락이 같았다.

1조에서 지분 구조를 정리하면 곁다리로 오너들 지분이 나온다.

그 핵심을 알아채느냐 못 알아채느냐, 그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지분 구조 정리하느라 우선순위가 뒤로 훅 밀리고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도 경험자인 이들 입장에서는 그게 중복조사도 막고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언제쯤 말 걸어오려나, 기다렸더니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였구나.’

‘이정국 조사관님이 일부러 말씀 안 하셨나 보다.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

공무원들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할지 지켜보자며 중립적인 태도였던 공무원들도 한순간에 차가운 눈빛이 되었다.

본청, 특히 허송미 국장이 이끄는 자산과세국에서는 실력이 중요하다.

차라리 어려우면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낫다.

혼자 할 수 있다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이 봤으니까.

싸늘하게 굳은 공무원들의 눈빛이 꽂히자 지휘를 잡은 팀장이 헛기침과 함께 신재현을 불렀다.

“신재현 조사관님. 혹시 도움 필요합니까?”

혹시라도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 힘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그런 마음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러나 신재현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너 일가가 가진 지분 정리는 끝났습니다.”

“아, 그래요?”

응? 하고 누군가 되묻는 소리가 났다.

신재현은 뭔가를 깨달았는지 아차 했다.

“아, 혹시 자료 정리한 거 필요하십니까?”

1조에서도 보유 지분 목록을 갖고 있으면 작성이 수월하다.

‘고생해서 만든 자료인데 맨입으로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저렇게 난감한 표정들인가?’

신재현이 그렇게 오해할 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조에서도 어차피 이 자료는 필요하시죠? 다행히 제가 먼저 끝났네요. 한 부 복사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의 표정이 더욱 형용할 수 없는 난감한 것이 되어 갔다.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다.

팀장이 이들을 대신하듯 물었다.

“그, 이런 말 물어보기에는 미안합니다만 팀장으로서 확인 차 묻겠습니다. 자료 정리 확실합니까?”

신재현은 그제야 왜 이들이 떨떠름했는지 파악하고 입맛을 다셨다.

1조의 공무원들은 자신의 결과물을 못 믿는 것이다.

물론 팀장까지 그들처럼 신재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팀장이다.

먼 곳에 출장까지 나와서 일하는데 부하 직원들끼리 균열이 생기면 곤란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봉합해야 한다.

자신마저 못 믿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신재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분위기가 조금만 더 괜찮았으면 신재현을 내보내고 수습하거나, 신재현을 따로 불러서 진행 상황을 넌지시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상황을 수습할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정리했는지 설명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

신재현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간단 작업이라 뭐라 설명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가 한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021년도 말 당시의 주식 현황에서 오너 일가들 지분 쭉 적고, 오늘 현재까지 변동 상황 적어서 오늘 자로 보유주식 수 뽑았습니다.”

그가 말했듯 이 이상 뭐라 과정을 설명할 수도 없는 간단 작업이다.

다만 신재현의 경우에는 말할 수 없는 중간 과정이 하나 더 있었다.

남들과 같은 표를 봐도 신재현에게는 다른 것이 보인다.

그리 크지는 않은데 미세하게 보이는 탈세액이 있었다.

사람마다 달랐고, 반대로 말하면 똑같은 액수가 보이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신재현은 눈으로 훑어가며 누구보다 빠르게 원하는 자료를 쏙쏙 뽑아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아는 방법만 말하자 이들은 더욱 믿지 못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조의 공무원들이 예상한 방법 그대로 했는데 결과치는 예상을 벗어났다.

중간에 뭔가가 더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이거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야 하나?’

지금은 다른 조여도 서로의 작업이 끝나면 함께 일해야 하는데.

화합은 포기해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2조에 참가한 조사관 이정국이 손에 들고 있던 결산서를 쾅 내리쳤다.

두꺼운 결산서가 테이블 위로 떨어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1조 직원들이 이정국에게 시선을 모았다.

“옆에서 본 바로는 틀린 것도, 실수한 것도, 과정에서 엇나간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믿을 수 없게도 빠릅니다. 드럽게 빨라요. 이해할 수가 없죠? 나도 바로 옆에서 봤는데 이해가 안 됩니다. 무슨 눈에 모터 단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1조 직원들이 이정국에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이정국과 함께 일해 온 세월이 있다.

이들은 이정국이 헛소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팀장님, 따로 검증이나 확인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필요하시다면야 시간 할애해서 재확인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잖습니까.”

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계속 진행하라고 하려는 순간, 이정국이 고개를 휙 돌렸다.

“오늘 느낀 건데, 내가 모른다고 내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어제 이정국은 이렇게 말했다.

못하면 자신이 먼저 까겠다고.

그런 그가 저렇게 나온다는 것은 일단 지금은 믿어도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 있나 보다, 이따 물어보자, 일단은 지켜봅시다 등등.

1조 공무원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한숨 돌렸다 생각한 팀장이 이제는 신재현에게 신경을 돌렸다.

한참 기분 나빠해야 할 그는 어느새 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재무이사님. 잠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30분 후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 내용을 들은 사람들이 기겁했다.

팀장은 머릿속 평가서에 그에 대한 메모를 한 줄 추가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행동이 빨랐다.

눈과 손이 빠르고 행동력도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뭐라 단정 짓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수많은 부하 직원들을 이끌어 봤지만 이렇게 대하기 어려운 직원은 처음이다.

정체를 모르겠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신재현이 황민우와 이정국에게 지시했다.

“방금 들으신 대로, 30분 후에 재무이사실에 갈 겁니다. 여기 있는 계열사들 전부 최근 5개년 재무제표 뽑고 신고서, 결산서 챙겨주세요. 가능하실까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그럼요.”

황민우는 당연하게 대답했고 한 박자 늦게 이정국도 답했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은 팀장이 신재현을 불렀다.

“신 조사관님. 큰 거 끝냈으면 좀 쉬면서 하세요. 잠깐 담배 한 대 태우실래요?”

신재현이 금연이라는 건 이미 안다.

단둘이 얘기 좀 하자는 뜻이었다.

신재현은 시계를 보고 계산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

다시 찾아온 흡연실.

이번에는 아무도 없었다.

팀장은 이번에 담배를 꺼내는 대신 음료수를 뽑았다.

자판기에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걸 뽑더니 신재현에게 던졌다.

무슨 홍차 같은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기분 나빴을 텐데.”

갑자기 웬 2천 원짜리 음료수인가, 싶었던 신재현이 팀장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뚜껑을 땄다.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괜찮습니다.”

팀장은 생각했다.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인다.

그것은 다행이었지만 혹시라도 응어리가 남았다면 풀어야 했다.

다른 직원들은 자신의 팀원이니 그간 함께 손발을 맞춰 온 정이 있어서라도 수습할 수 있다.

문제는 신재현이다.

지금이야 지시를 내리는 입장이지만 부하 직원처럼 굴릴 수도 없다.

신재현은 부하라기보다는 잠시 거쳤다 갈 손님이라는 이미지에 가까웠다.

머지않아 본청 팀장 회의에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 정도 승진 속도라면 몇 년 후에는 자신보다 상사가 되어 재회할지도 모른다.

그런 속물적인 생각 약간에, 궁금증 약간이 섞였다.

거기에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팀장으로서의 입장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미안함을 담아 다시 말했다.

“팀원들끼리 불화는 결국 제 잘못이니까요.”

“아뇨, 정말로 괜찮습니다.”

신재현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자세히 살피니 괜찮은 ‘척’ 같지는 않았다.

신재현은 눈썹을 꿈틀거리는 팀장을 보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도 저에 대해서 신경은 안 쓰셔도 됩니다. 음, 팀장님이 왜 그렇게 하신 건지도 다 이해했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이해했다고요?”

“네. 제주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내버려 두자니 바빠 죽겠는데 팀 분위기 개판 나서 효율 떨어지면 문제고. 억지로 수습하면 상황이 악화되고. 그런 거잖습니까.”

팀장은 다시 평가를 정정했다.

겨우 5명짜리 조그만 팀이라고 들었는데 괜히 특수팀 명찰이 붙은 건 아니었나 보다.

‘보통 상사 하는 걸 보고 배우면서 팀장 다는 거란 말이지. 그런데 신재현은 느닷없이 직책만 턱 단 거라 중간관리자 역할은 잘 모를 줄 알았는데.’

중간관리자는 단순히 지시만 내리는 자리가 아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결과를 뽑아내야 하는 이상, 현장에서 지휘를 맡은 팀장의 능력이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 팀장이 보기에 눈앞의 청년은 제대로 배운 건 아니지만 감으로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이야, 현장 뛰어가면서 몸으로 터득했다 이거지?’

반면에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6급으로 올리기 전에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분명히 서울청장이 공들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자 새끼 키우는 마음으로 굴리는 건가? 그 민치호 청장이라면 그럴 법도 한데…….’

팀장은 생각을 마무리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이미 팀 굴리는 걸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제가 뭐 설명할 것도 없었네요. 앞으로 제가 많이 편해지겠습니다.”

진심이 섞인 말이었다.

신재현은 멋쩍게 웃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재무이사 곧 만나러 갈 시간인데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아, 무슨 일 때문이냐 하면…….”

“아니에요. 보고는 갔다 와서 하면 됩니다. 시간도 부족한데요. 먼저 다녀오세요.”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사후 보고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어도 되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빈 음료수 통을 쓰레기통에 넣은 신재현이 인사를 끝내자마자 흡연실을 튀어 나갔다.

“그렇게 뛰지 않아도 되는데, 열정적인 건 부럽네…… 아니지, 국세청의 복인가?”

팀장이 허허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여유롭게 담배 한 개비를 태우고 흡연실을 나서자 저 멀리 복도 끝에 세 명의 익숙한 뒷모습이 달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양손에 뭔가를 잔뜩 든 채였다.

“뭘 캐묻고 오려나.”

보고 들을 일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바쁘게 사무실을 튀어 나간 조사팀 2조, 그중에서도 신재현은 재무이사를 만나자마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재무이사님, 여기 있는 회사들 목적과 운영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게 다 몇 개야…… 아니 이거 다 벌써 파악 끝나셨어요?”

재무이사가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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