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25화 (325/500)

325화. 조사가 늘어난다 (2)

신재현과 팀장, 단둘이 잠시 나갔다 온 후 사무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일단 재무이사의 설명은 마저 들었다.

그리고 대충 파악이 끝난 순간 팀장은 귀신같이 재무이사를 쫓아냈다.

“더 필요하신 것 없으신가요? 제가 더 도와드릴 수 있는데.”

이제는 재무이사가 어느 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재무이사가 정말 회사를 배신하려고 한다기보다는, 공무원들이 뭘 하려는지 지켜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거기에 회장의 명령까지 있었으니 도와주겠다는 명분도 확실하다.

재무이사는 어떻게든 눌러 앉아보려 했으나 팀장은 칼 같았다.

“오늘은 이미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저희도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지요. 여기부터는 외부인 출입금지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재무이사가 아쉬워했지만 바로 옆에 있던 신재현까지 고개를 젓자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기를 가리켰다.

“제 사무실은 내선 1103번입니다. 회계팀은 1104번부터 시작하고요. 전화기 옆에 따로 프린트해서 붙여놨으니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재무이사가 나가자 팀장은 가장 먼저 사무실의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쳤다.

단순히 기업 지배구조 얘기를 하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늘어져 있던 팀원들이 금방 빠릿하게 돌아왔다.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우리는 한울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모든 회사를 조사합니다. 직계, 방계 관계없어요.”

공무원들의 탄식이 울렸다.

반발이 없는 것은 그들이 현장에서의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많이 겪어본 경험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팀장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이 커지지만 그만큼 팀장이 해결책을 제시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팀장은 그들의 기대를 멋지게 배신했다.

“증원은 없습니다. 당초 계획된 날짜 내에서 진행할 겁니다.”

“예에? 아니, 조사 대상인 기업이 대체 몇 갠데요?”

“그것도 지금부터 추려야 합니다.”

“팀장님! 이건 시간이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요!”

예상했던 반발이 터져 나왔다.

팀장은 침착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당초에 조사 일자를 14일 풀로 잡고 나온 건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혔을 경우를 상정한 겁니다. 하지만 한울의 기업 구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다들 동의하죠?”

한울의 구조는 정말 깔끔한 편이었다.

어떤 대기업은 한눈에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수십 개의 계열사가 서로의 지분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한울 역시 시총으로만 따지면 10위권이 들어오는지라 당연히 서로 순환출자가 심할 줄 알았다.

관련 법이 생기기 전에 설립한 회사들은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한울의 구조는 단순했다.

계열사가 많아서 복잡하긴 했지만 단순 정리하면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려오는 피라미드 식이었다.

이러면 누가 3대 회장이 되고 지분을 어떻게 쪼개든 조사는 수월해진다.

그걸 위해서 사전 조사를 온 것이니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관계회사까지 그려도 시간이 그닥 소요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에 남은 인원으로 조사하면 돼요. 다만, 우리는 본격적으로 조사하는 게 아닙니다. 세액공제와 감면, 계열사 간 특수관계거래 위주로 볼 겁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잠시 혼란이 일었다.

팀장은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치는 것으로 그 혼란을 잠재웠다.

“탈세액을 계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탈세의 흔적을 찾는 겁니다. 탈세했는지, 안 했는지만 알면 된다는 겁니다. 평소 하던 것과 다르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여러분이라면 금방 적응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상, 이것이 신재현 조사관의 의견이었습니다.”

“……예?”

“네? 누구요?”

진지함 반, 걱정 반으로 듣고 있던 공무원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신재현에게 쏠렸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신재현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팀장 곁에 서 있었다.

조사 방향을 설명하는 중에 신재현을 들먹인 것은, 이번 조사에서는 신재현이 부팀장 역할을 맡게 되리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무원들의 안색이 가라앉았다.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일이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다르다.

신재현이 방향키에 손을 대었으니 팀이 표류할지 제대로 갈지가 그의 손에 달렸다.

물론 팀장이 중심을 잡겠지만 불안함이 스멀스멀 퍼져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판단이 그르치면 결국 피해는 팀원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팀장님께서는 납득하신 겁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보세요?”

당연하게도 질문이 들어왔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합니다. 먼저 이쪽 6명, 지배구조 정리 들어갑니다. 이쪽 3명은 총수 일가가 직접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회사를 추려내세요.”

신재현과 황민우는 뒤의 3명 조에 속했다.

팀장의 구체적인 명령이 떨어졌으니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어쩐지 공무원들의 마음속에 걱정이 앞섰다.

***

퇴근길에 팀원들은 가볍게 한잔하기로 했다.

조사 첫날이니 자제하는 것이 옳았지만 오늘처럼 심란한 날에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참석인원은 7명이었다.

팀장과 신재현, 황민우가 빠진 멤버다.

서로 같은 국, 같은 과에서 일하면서 함께 일해본 사이다 보니 의기투합하는 게 빨랐다.

오늘 이 자리는 서로 회포를 푸는 것이라기보다는 회의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회의인데도 카페가 아니라 치킨집에서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퇴근하니 배가 고팠고, 치킨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회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이거 정말 괜찮을까요?”

직원 하나가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걱정스레 물었다.

사방에서 치킨을 뜯는 소리가 아작아작 들렸다.

“먹지만 말고 얘기 좀 해 봐요. 아니, 잠시만요. 여러분, 닭다리 하나는 좀 남겨두시죠.”

직원이 말하다 말고 급하게 닭다리 하나를 앞접시에 챙겼다.

다른 공무원들은 각자 치킨을 뜯는데 여념이 없었다.

저마다 깔끔하게 뼈 하나씩을 발골해 낸 후에야 공무원들은 입을 열었다.

“괜찮지 않죠. 우리가 걱정했던 게 이거 아닙니까.”

30대 후반의 남자 직원 하나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가에 기름은 닦고 얘기하시죠.”

물론 분위기는 진지하지 않았다.

남자 직원은 냅킨으로 대충 입가를 닦더니 손에 든 닭가슴살을 머스터드 소스에 푸욱 찍었다.

다들 대화보다 치킨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했다.

바삭거리는 소리에 섞여서 누군가의 한탄이 섞여 나왔다.

“일단 일이 엄청 늘어났네요.”

“조사가 늘어난다! 일이 복사가 된다고!”

벌써 500cc 한 잔을 비운 직원 하나가 소리쳤다.

잠시 공무원들이 손을 멈칫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놀랍게도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일이 늘어나는 건 상관없어요. 그걸로 결과가 나와야죠.”

“팀장님 말은 이거잖아요. 회사가 깨끗한지 아닌지 찾으라고. 그럼 결국 다 뜯어봐야 안다는 소리예요.”

“그것만이 아니죠. 우리가 주요 부분만 뜯어봤는데 막상 다른 데서 탈세가 나오면요?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치면요? 이럴 거면 차라리 하나라도 붙잡고 제대로 파보는 게 더 낫지 않나요?”

세법은 겉핥기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애매하게 겉으로만 훑어봤다가 모두 놓칠 수도 있었다.

회사 개수만 많이 본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하나를 봐도 제대로 봐야 했다.

여기 있는 모든 공무원들의 의견이 그러했다.

“아, 고생만 죽어라 하고, 뭐 놓치고 지나가면 진짜 빡치는데.”

“팀장님이 그걸 모르실까요?”

막 맥주 한 잔을 더 리필해 온 여자가 시원하게 들이켜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우리가 뻔히 아는데 팀장님이 그걸 놓치실 리가 없잖아요.”

“그게 이상한 지점이에요. 이게 신재현 씨 의견이라고 했잖아요?”

혹시라도 치킨집 안의 누군가가 들을까 싶어 공무원들은 목소리를 낮췄다.

신재현이라는 이름은 꽤 유명한 것이라서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간 내부 갈등이니 한울 표적 조사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퍼질 것이다.

당장 내일 조간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헛소리가 박힐지도 모른다.

“아까 둘이 같이 나간 걸 보면 그때 뭔가 이야기가 오고 갔겠죠? 그럼 따로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진 조사관님은 그 사람 믿으세요?”

“여기저기 도는 소문을 보면 당장 팀을 맡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요. 곧 6급 올라간다는 말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팀에서 시범적으로 키를 잡아보려는 걸 수도 있죠.”

“노련한 경력자 팀장이 옆에 있으니까요? 실수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걸 해봐라, 팀장님이 그렇게 놔두고 계신다고요?”

“가능성은 있죠. 본청에서 기대하는 것 같은데.”

“아니, 그러면 우리가 실험용이라는 거잖아요. 실력이 안 되면 6급으로 올리질 말아야지. 다들 맨땅에 헤딩해가면서 배우는 거 아니에요? 왜 우리가 밑에서 깔아줘야 해요?”

술이 들어가서인지 흥분하는 사람이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진정시키지 않았다.

이들의 마음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서울청에 있는 동기 말을 들어 보니까 결과는 잘 낸다는 것 같아요. 근데 팀원을 무지하게 굴리나 봐요. 거의 매일 야근했다던데. 초과수당을 한계치까지 받는다던가?”

“으엑! 그 팀도 진짜 불쌍하네. 뭐, 그 사람들이야 삼성 세무서 때부터 함께 일한 사이니 오냐오냐해줬을지 모르죠. 근데 우리까지 그렇게 굴리려나? 그건 좀 싫은데.”

“습관이 잘못 들었으면 그럴 수 있어요. 팀장님이 옆에서 잘 좀 잡아주셨으면 좋겠다.”

“하아…….”

이곳저곳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정국 조사관님은 내일 저쪽 조로 넘어가서 일하시죠? 괜찮으시겠어요?”

내내 아무 말 없이 치킨을 뜯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일 잘했습니까? 특별 승진까지 다는 걸 보면 완전 멍청이는 아닐 테고. 그냥 좀 경험이 부족한 상태일걸요.”

남자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마늘 치킨을 노려보더니 신중하게 닭날개를 골랐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내일의 조사보다 지금의 마늘 치킨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닭날개 살을 쭉 찢는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경건함에 비하면 남자의 말투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

“팀장님이 의견을 채용했다고 했잖아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딱히 모자라는 능력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절 끼워 넣은 건 아마 둘이 경험 부족으로 헤매고 있을 때 적절하게 끼어들어서 가르쳐주란 소리겠죠.”

“그게 뒤치다꺼리고 애 보기죠. 우리가 뭐가 부족하다고 뒤를 봐줘야 하냐는 뜻이에요. 이정국 조사관님은 억울하지도 않나요?”

깔끔하게 뼈를 발라낸 남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혀요. 아랫사람이 윗사람 뒤치다꺼리하는 건 어디나 똑같지 않습니까? 사기업이든 공무원이든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요.”

남자가 포크로 무를 집었다.

아그작 씹히는 소리에 누군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와…… 조사관님 팩트 너무 아파요. 이러면 우리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그냥 지켜보시고, 일 못하면 까요. 그때는 제가 제일 먼저 소문낼 겁니다. 그 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으득.

남자가 보란 듯이 닭 뼈를 꺾었다.

***

다음 날, 사무실에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일하면서 바쁘다 보면 말수가 적어지는 거야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어색 그 자체였다.

“유통, 물류 쪽 지주회사는 (주)한울이네요. 한울부터 시작해서 내려갑시다. 일단 회장이 19.31%…….”

“지난 3년 간 회장 지분변동이 0.26%입니다. 자금 출처가 어떻게 되죠?”

“한울건설 지분을 처분했네요.”

“진 조사관님 한울건설 양도세 체크 추가요!”

팀장의 지휘 하에 6명으로 구성된 1조는 지배구조 정리를 시작했다.

익숙하게 일을 분배하고 한 명씩 잘 하는 분야를 맡았다.

손발이 착착 맞는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이다.

1조는 누가 봐도 잘 굴러간다는 느낌이 났다.

다만 이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흘끔흘끔 2조를 쳐다보기 바빴다.

한 사무실에 있으니 신경 쓰일 만도 했다.

1조의 직원 중에는 2조가 무언가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고개를 쭉 빼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지?’

‘이정국 조사관님 있으니까 헛다리 짚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궁금한데.’

‘저쪽은 왜 저렇게 조용조용하게 진행해?’

명령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재현은 간간이 무엇을 정리하라든가,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 오후 느지막이 되었을 때, 신재현이 긴 숨을 내뱉었다.

“대충 알겠네요. 시작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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