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24화 (324/500)

324화. 조사가 늘어난다 (1)

팀장은 신재현에게 선택을 넘겼다.

아까의 팀장이었다면 순전히 신재현을 떠보기 위해 물어보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신재현의 선택에 맡길 생각이었다.

신재현이 원하지 않으면?

기존 계획대로 기업 구조도만 파악해 가면 된다.

원래 목표가 이거였으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이것만으로도 추후 상속이나 지분 재분배 시 법인세, 증여세, 상속세 탈세 대비를 위한 자료로 쓸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조사의 목적은 이룬 것이다.

만약 그가 원하면?

‘조금 힘들어지겠지만 해보지, 뭐.’

심사숙고하는 신재현을 보며 팀장은 각오를 다졌다.

이미 고뇌는 연기에 실어 날려 보낸 후였다.

팀장이 입에 문 두 번째 담배가 거의 타들어 갔을 때 신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말 한마디로, 팀장은 신재현이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숨은 의도가 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잖습니까. 괜찮겠어요?”

신재현은 이 정보가 마치 잘 포장된 선물 같다며 불안해했다.

팀장도 동의했다.

그러나 신재현은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열었을 때 어떤 함정이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열어야 해요. 지근거리에서 탈세가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성을 알았다면 그냥 넘어가선 안 돼요. 조사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신재현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팀장은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방금 그 말은 팀장의 마음에 쏙 들었다.

‘요즘엔 이런 마음가짐 보기 힘든데. 우리 국장님이 냅다 꽂을 만하구만. 그럼 어디 더 가르쳐 볼까.’

팀장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목이 막히는지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서 휴게실 한쪽에 있는 자판기로 다가갔다.

“커피?”

“네. 커피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팀장이 캔커피를 뽑아서 신재현에게 던지고 자신은 생수를 뽑아 벌컥벌컥 마셨다.

팀장의 말이 이어졌다.

“좋아요. 그럼 말 나온 김에 신재현 씨가 한번 말해보겠어요? 본인까지 합쳐 10명의 팀을 이끌고 출장을 나왔다고 합시다. 추가 조사가 발생했어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신재현은 커피로 입을 축이더니 막힘없이 읊었다.

“일단 지금 오너 일가를 조사하는 건 절차에 어긋납니다. 우리가 조사할 수 있는 건 한울 그룹의 법인세뿐이니까요.”

“그럼 방법은요?”

기업 구조 조사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세목은 법인세로 했다.

원래 세법도 일사부재리의 원칙 비슷한 것이 있어서 한번 세무조사를 하면 같은 세목으로는 다시 조사하지 못한다.

언뜻 생각하면 한 번뿐인 소중한 세무조사의 기회를 ‘간단한 기업 지배구조 조사’로 날려 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나 방법은 있는 법.

만약 한번 조사한 후라도, 명백한 탈세의 증거를 포착하거나 세목이 다르면 또다시 조사할 수 있다.

세무조사가 면죄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이다.

이번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그 절차를 메우면 되는 것 아닌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겠군요. 새로 세무조사 통지서를 발부하는 것. 우리가 갖고 나온 통지서가 한울 그룹이라 문제인 거잖습니까. 그러면 새로 오너 가족을 조사하는 ‘소득세’ 조사 통지서를 발부하면 되겠군요. 법인세 세무조사 과정에서 소득세 탈세 혐의를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그럼 그걸로 갈 겁니까?”

팀장의 질문에 신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성이 큽니다. 우리가 출장 나온 것만으로도 이미 주가가 하락했다고 들었습니다. 겨우 10명밖에 안 나왔으니 본격적인 전수조사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여기서 오너 일가에게 소득세 조사 통지서까지 나오면 회사가 휘청일 겁니다. 명백한 탈세 혐의가 나온 것도 아닌데 그럴 수는 없죠.”

신재현은 아직 모든 관계자의 신고서를 훑어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탈세가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가 한울의 가장 큰 회사 몇 개만 살펴봤을 때 큰 문제는 없었다.

겨우 몇 개만 봤다지만 큰 회사가 이렇게 깨끗한데 ‘탈세일지도 모른다’라는 가정만으로 큰 타격이 될지도 모르는 통지서를 떡하니 보낼 순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 정말 깨끗하면?

그때 가서 피해 입은 사람에게 ‘아니네요, 미안합니다’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세무조사 추가해서 통지서 발부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결재만 통과하면 땡이죠. 그러니 조금 더 훑어보고 정말 탈세 혐의가 보인다 싶으면 통지서를 내보내는 게 낫겠습니다.”

단순히 조사와 절차에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미치는 영향까지 꿰뚫고 있었다.

그만큼 객관적으로 자기 파악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까 직원하고 사진 찍을 땐 자기 파악이 안 된 것 같았는데. 일적인 면에서는 확실하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용기를 얻은 신재현은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 우리가 들고 온 통지서엔 ‘한울 그룹 법인세’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울의 이름이 붙은 한울의 계열사라면 다 조사할 수 있다는 뜻이죠. 오너 일가가 관리하는 회사도 엄연히 한울의 계열사 아닙니까. 거기부터 조사해보죠. 계열사의 대표가 뭔가 저지르고 있다면 그 계열사에서도 뭔가 보일 겁니다.”

“음, 좋은 생각인데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팀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신재현은 짐작했다는 듯 즉답했다.

“시간 말씀이시군요.”

“네. 최대 14일. 거기에 겨우 10명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아니면 증원을 해달라고 할까요?”

중대 사항이라고 판단될 때는 상부에 결재를 올려서 세무조사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엄연히 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팀장은 신재현이 당연히 증원해달라고 하거나 기간을 늘리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신재현은 둘 다 거부했다.

“충분히 될 것 같은데요.”

“응?”

당황한 나머지 반말이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저도 모르게 나온 의성어에 가까웠다.

팀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것 맞습니까? 기존 우리 팀 모두 새 조사에 동원할 수도 없습니다. 원래 목표로 하던 조사가 있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둘로 나눠야 한다는 뜻인데.”

“충분히 가능합니다.”

팀장은 답답해졌다.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가 싶었다.

자신의 경험상으로 비추어봤을 때 여기서는 증원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조사관 수가 늘어 업체에 부담이 가는 것이 걱정이라면, 새로 추가되는 조사관들에게는 본청에서 진행하라고 말하면 된다.

현장 조사야 지금 나와 있는 10명이 해서 자료만 보내주면 되니까.

현장팀과 사무실팀, 두 개로 나뉘면 팀장이 지휘하기엔 조금 귀찮아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나? 어디 보자, 신재현이 몇 년 차더라. 3년 꽉 채웠으니 4년 차 막 올라가나…… 위험할 때군.’

보통 어느 회사든 2년 차, 3년 차쯤 되면 사고를 많이 친다.

1년 차 때야 아는 게 없으니 바짝 낮춰서 배우려고 하고, 의욕도 넘친다.

2년 차 때는 이제 좀 아는 것 같다.

3년 차 때는 일도 손에 익었겠다, 자신감이 생긴다.

이때부터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

긴가민가하면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가르침을 구해야 하는데 자신감이 그것을 막는다.

그러다 사고를 치는 것이다.

팀장은 혹시 신재현이 지금 그런 상태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기서 그런 판단을 내릴 리가 없다.

신재현이 자신의 부하직원 중 하나일 뿐이었다면 여기서 그냥 명령을 내리면 끝난다.

그렇게 상사의 판단을 부하가 배워가는 거니까.

그런데 허송미 국장이 챙겨주라고 말을 했고,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바로 조금 전이다.

이럴 때는 신재현에게서 판단한 이유를 묻고,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를 말해줘야 했다.

더불어서 간혹 부하직원이 상사보다 뛰어난 경우가 있다.

그러니 확실하게 물어봐야 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근거가 무엇인지.

까려고 해도 알고 까야 하는 법이다.

“사람 증원하면 쉬운 일을 굳이 이렇게 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우리 10명이서 가능하다고 봅니까?”

그러자 오히려 신재현이 왜 안 되냐는 눈빛으로 물었다.

“당연히 되죠.”

“……응?”

또다시 저도 모르게 반말로 되묻고 말았다.

팀장은 이번엔 말투를 수습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팀을 운용하겠다는 겁니까?”

“재무이사가 협조해주고 있잖습니까. 기업 지배구조 분석은 며칠 안 가서 끝날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 후가 문제죠. 직계, 방계가 대표로 있는 계열사만 약 10개쯤 될 겁니다. 남은 기간에 많아야 두세 개 가능할 텐데요.”

“탈세액이 얼만지를 구체적으로 뜯어보는 게 아니라, 탈세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가장 탈세가 많이 일어나는 부분이 세액공제하고 감면이죠? 이거 위주로 뜯어보죠. 그리고 가장 탈세가 많은 계정과목을 보면 됩니다.”

“그 외의 부분에서 탈세가 있으면요?”

“그런 데서는 자질구레한 금액밖에 안 나와요. 거기서 탈세할 것 같으면 세액공제나 감면, 접대비나 연구비 같은 주 계정에서 이미 많은 금액을 탈세했겠죠.”

팀장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탈세가 주로 어느 계정과목에 집중되는 이유는, 그 과목에서 큰 금액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탈세가 쉽기 때문이다.

금액을 특정할 필요가 없다면 주요 과목만 훑어봐도 탈세 유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한 탈세 혐의점을 잡으면 그때 공문 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남은 기간에 10명이서 충분히 될 것 같은데요.”

“가능성은 있군요. 그럼 그렇게 나갑시다.”

“네.”

팀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책 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줄 알았더니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것도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확실히 소규모 팀이라도 굴려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판을 보는 눈이 있네.’

다만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만약 작정하고 자질구레한 계정과목 같은 곳에 탈세를 숨겼다면 못 보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지는 않았다.

실무에서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 법, 처음 계획했던 일도 틀어지게 마련이다.

막상 그때가 오면 어떻게 처리할지 직접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슬슬 갑시다. 벌써 20분 넘게 있었네요.”

“네.”

팀장이 먼저 흡연실을 나갔다.

한 발짝 뒤따라 나오던 신재현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넘어갔네. 탈세액 본다고 말도 못하겠고…… 이거까지 까이면 갖다 댈 이유도 없는데.’

성공적으로 팀장을 설득했다고 생각한 신재현이었다.

***

우리가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이미 재무이사는 공무원들과 함께 한창 기업 구조를 파헤치는 중이었다.

우리 둘이 빠진다고 딱히 문제 될 건 없으니 먼저 설명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늦게 왔다고 해도 벌써 회장의 답을 듣고 왔을 리는 없는데.

나와 팀장이 눈을 마주친 후,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할 일은 다 마치셨습니까?”

재무이사가 사무실을 나갈 때는 ‘할 일’이라고만 했으니 나도 그렇게만 물었다.

회장한테서 무슨 말을 들었냐고 직접적으로 캐물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런데 재무이사는 의외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회장님께 다녀왔습니다. 막내 도련님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시는 건 가끔 있는 일이라서요.”

“……그렇습니까? 한대희 사장님께서 회장님께 꽤 혼나시겠군요.”

나는 조금 더 떠보았다.

아까 사무실을 나갈 때는 당혹감이 배여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시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회장님께서 아주 간단하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조사하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다 협조하라고요. 그러니 뭐든 말씀하세요. 계약서든 업무협약서든 제가 회계팀에서 다 갖다 드리겠습니다. 계열사 것은 제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합니다만, 말씀만 해주시면 해당 계열사 재무담당자를 본사로 불러오겠습니다.”

회장이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이건 협조 정도가 아니다.

기업의 구석구석을 스스로 내보이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정말 탈세한 놈들은 후계에서 아낌없이 쳐 버리겠다는 의지인가?

문득 엄청나게 이 회사의 재무제표가 뜯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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