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그저 간단한 조사입니다 (3)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은 더 먹은 남자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가히 두려울 정도였다.
그게 사촌 누나의 남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니, 대체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내가 눈으로 살기를 뿜는 사람은 몇 봤는데, 저런 눈빛은 처음 본다.
뭐라 설명하기도 어려운 부담스러운 눈빛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이젠 피할 생각도 없는지 아예 안을 대놓고 들여 다 보았다.
제발 매형…….
내가 그를 노려보자 남자가 더욱 신난 얼굴이 되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두렵다.
아는 사람이라고 반가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혹시 아버지 회사 조사하는데 내가 왔다고 해서 봐달라는 시위라도 하는 걸까.
사람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보니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매형에게 부탁한 게 하나 있었지.
다민이 소속사와 부당하게 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에게 부탁해서 소속을 옮기도록 했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다민이 억울하게 피해 입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달라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적인 부탁이 맞다.
그 후 굳이 연락해서 묻지는 않았지만 다민이 밝은 모습으로 TV에 나오는 걸 보면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한 것 같다.
그걸 빌미로 이번 한울 건을 청탁하러 온 걸까.
아니, 설마 그렇게 멍청하진 않겠지.
내가 그런 걸로 봐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 텐데.
당장 인척 관계인데도 국세청이 날 팀에 끼워서 보낸 건 내가 나름 공사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도 쪽을 노려보고 있자 재무이사가 눈치챈 모양이다.
화이트보드에 대고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던 그가 내 시선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맙소사.”
재무이사 역시 복도 창밖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는 탄식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재무이사는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사무실 문을 쾅 열었다.
“막내 도련님, 대체 뭐 하십니까?”
“구경 왔는데요?”
엄연히 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라는 직함이 있는데도 재무이사는 사장이라는 말 대신 도련님이라고 칭했다.
한울에서 한대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했다.
형들의 집안싸움 보기 싫다고 가출했으니 저런 취급도 당연한가.
“대체…… 철 좀 드십시오. 지금이야 제가 있으니까 상관없다 치지만, 이분들만 계실 때 그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비밀 유지가 안 되잖습니까.”
“이사님이 계시니까 왔죠.”
“도련님…….”
“저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아무리 제가 철딱서니가 없다고 해도 그런 구분도 못 하겠어요?”
한대희는 스스로를 낮춰 말하며 눈치 없이 웃었다.
그러나 어쩐지 내 눈에는 그가 일부러 철없는 척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대희라는 사람을 많이 본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결혼식 피로연에서 인사하는 걸 한 번 봤고, 그 후에는 다민을 맡기면서 부탁하려고 한 번 봤다.
그 후에는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어떤 사정이건 간에 대기업 아들과 조사관이 개인적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니까.
친목을 다진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게는 낯선 사람이었어도 그가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지금 한대희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그렇다.
사람은 눈으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지금 한대희는 부담스럽게 초롱초롱한 눈빛이긴 했지만 그 눈은 절대 흐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 보며 재밌어하고 있었다.
“끄음…….”
나도 눈치챈 건데 재무이사가 모를 리 없지.
재무이사는 끙끙 앓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한대희를 달랬다.
“도련님, 아무리 팬이어도 이건 안 됩니다.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만나세요.”
“나중에 따로요? 그게 더 이상하죠. 이사님 생각에는 그분이 순순히 관계자를 만나러 올 것 같아요? 아, 회장님이 부르면 가긴 하겠네요. 담판 지을 때!”
“아이고오.”
응?
방금 뭔가 이상한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팬? 자리를 따로 마련해?
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럼 어쩌시게요. 정말 이러고 구경하시게요? 저희 한울 쪽팔려 죽습니다.”
“뭐 어때요. 막내아들은 가출해서 배우랑 결혼한 철부지라고 이미 재계에 소문이 파다할 텐데. 찌라시도 돌지 않았어요? 한울 막내는 이미 경쟁권에서 밀려났네, 어쩌네.”
“도련님. 저 화냅니다. 일해야 돼요.”
“아, 죄송.”
사과하는 것마저도 장난스럽다.
대화를 듣고 있던 공무원들이 입을 떡 벌렸다.
생긴 건 준수한데 말은 진짜 철딱서니 없어 보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누나가 고생하겠네…….”
내 뒤쪽에 서 있던 황민우가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그럼 아예 이 기회에 인사 한 번만 하게 해주세요. 인사만 하게 해주면 조용히 물러갈게요.”
“바쁘신 분들입니다. 일을 방해하시면…….”
“제가 멋대로 사는 건 다들 아시는 일이니 그냥 그런갑다 하지 않으실까요? 진짜 안 됩니까?”
회장 아들이 우기는데 버텨낼 수 있는 임원이 어딨겠는가.
결국 재무이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치며 물러났다.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우리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회장님의 막내 아드님이신 한대희 사장님이십니다. 연예 쪽 계열사인 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를 맡고 계시지요.”
소개도 받았겠다, 한대희는 히죽히죽 웃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발걸음이 경쾌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울 조사하러 오셨다면서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역시 그런 의도였는가.
공무원들이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꽤 곱지 않은 눈빛이 한대희에게 향하고 있었다.
공무원들 일하는 거 구경한답시고 찾아와서 저러는 게, 어떻게 보면 대기업 아드님의 갑질 아닌가?
그래도 우리가 한대희를 쫓아내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한울이 협력적으로 나오는데 굳이 아들에게 면박을 주면 비협조적으로 태도가 바뀔까 걱정이 돼서였고.
또 하나는 한대희가 원래 그런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하무인이라는 것은 아니고, 집안에서도 오냐오냐 하다 보니 조금 버릇없는 막내아들.
딱 그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 사무실의 분위기는 ‘그냥 할 말만 빨리하고 가라’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대희의 말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큰 형하고 작은 형이 회사 먹겠다고 개판을 치고 있어서요. 이왕이면 아주 탈탈 털어서 본때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네요.”
“……?”
재무이사가 골치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우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형들을 실각시키고 자기가 한울을 먹겠다는 속셈인가?
아니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어이없는 가정이라는 것은 안다.
지금 그만큼 한대희의 말이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다행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다른 공무원들도 웅성거렸다.
술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한대희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전 점검에 가깝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근데 10명밖에 안 된다고 해도 작정하면 털 수 있잖아요? 명색이 세종시 국세청 사람들인데. 그렇죠?”
한대희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번에 아버지, 아니 회장님이 폭탄선언을 하셨거든요. 후계는 우리 모지리 두 형 말고, 사촌들도 참가할 수 있대요. 그러니까 직계 방계 가리지 말고 탈탈 털어서 총수 가족도 싹 조사해주시면 더 좋아요. 세무조사에서 뭐라도 나오면 바로 후계 경쟁에서 탈락할 테니까요.”
팀장의 눈빛이 일변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울의 3대 회장에 깨끗한 사람을 앉힐 수 있는 기회다.
물론 그들만의 리그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영향을 줄 수 있다 해도 기업의 총수를 결정하는 위치에 우리의 의도를 반영해선 안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 총수자리에 앉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큰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하다못해 미리 주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총수가 되면 한울은 탈세를 할 것 같다, 아니면 기업 구조가 꼬일 위험성이 있다 등등.
아니면 정말 우리에게 신경 쓰느라 문제 있는 후보는 그들이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도 있지.
예를 들어 지금의 여의도처럼 말이다.
총선이 다가오다 보니 국민의 눈치를 보느라 내게 큰 압박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울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문제가 있다면, 지금 우리가 오너 일가족을 조사하는 게 불법이라는 거다.
우리가 들고 온 공문의 조사 대상 항목에는 ‘한울 그룹 법인세 전반’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오너 일가가 한울의 특수관계인이라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개인이다.
우리 마음대로 조사 대상을 바꿀 순 없다.
그건 절차에 어긋난다.
한마디로 지금이라도 절차를 밟아 온다면…….
팀장에게 알려야 한다.
나는 팀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내게 시선을 보내던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알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팀장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 판단을 끝낸 것 같았다.
그가 날 보며 손을 내밀었다.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어쩐지 부드럽게 웃는 듯한 미소가 스쳤다.
할 말을 마친 한대희가 박수를 짝 쳤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 열심히 우리 사촌 형제분들을 조져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물론 저도 조사하셔도 됩니다. 저는 꿀릴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아하핫!”
한대희의 당당한 모습에서 아까 본 한울 회장의 실루엣이 겹쳐 보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걸까.
가슴을 내밀고 웃는 모습이 똑 닮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까 한대희가 들어오자마자 그의 머리 위를 훑었다.
탈세 금액은 기껏해야 32만 원 정도.
충분히 실수로 나올 수 있는 금액이다.
저번에 결혼식 때 본 금액이 29만 원 정도였으니 크게 늘어나지도 않았고.
역시 철부지 대기업 아들처럼 보이는 건 의도된 모습인가?
“그럼 이사님도 수고해요! 저 궁금하니까 나중에 썰 풀어주시고!”
“도련님…… 기업의 중대 사안에 썰이라뇨…….”
재무이사의 곤혹스러운 얼굴을 뒤로 하고 한대희가 우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또다시 내게 윙크를 해 보이는 게 아닌가.
사촌 누나가 해도 징그러운데 매형이 두 번째 윙크라니.
나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어쩐지 한울 건물에 있는 동안 자주 마주치게 될 것 같아서 나는 불안함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한대희는 복도를 걸으며 히죽 웃었다.
공무원들이 쓰는 사무실에서 조금 벗어나자 복도 끄트머리에 회장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으하! 봤어요! 드디어 봤어!”
“이놈아…….”
이 화상을 어찌하면 좋을꼬, 회장은 단숨에 폭삭 늙은 것처럼 회한이 깃든 표정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집이었다면 당장에 머리통을 후려갈겼을 것이다.
“좋냐? 이놈아, 일을 얼마나 크게 벌이는 거야!”
회장은 결코 한가한 몸이 아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공무원들 얼굴을 보긴 했지만 이후에도 일정이 있었다.
그런데도 남아서 기다린 것은 이 막내 아들놈 때문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후계 경쟁에 열 올리느라 제 살을 깎아 먹어서 속을 썩인다면, 막내아들은 제멋대로 굴어서 속을 썩인다.
생각이 아예 없는 놈은 아닌데 가끔 이렇게 막 나가곤 했다.
회장이 소리를 지르려다가 저 멀리 지나가는 사원들을 보고는 얼른 목소리를 죽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혼나면서도 한대희는 실실 웃기만 했다.
“어차피 아버지도 각오한 일이었잖아요. 더러운 부분이 있으면 지금 이 기회에 털어 버리고, 3대 회장에게는 깨끗한 한울을 물려준다. 그게 목적 아니었어요?”
“그걸 아는 놈이 정도를 몰라? 아예 우리 가족 다 잘리고 전문경영인 들이라고 하지 그래?”
회장은 눈썹을 찌푸렸다.
제일 똑똑한 놈이 후계에 관심이 없는 것도, 그러면서 철없는 척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철없는 척을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박 터지게 싸우는 형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서 저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고 치기 위해 ‘철없다’를 방패 삼는 것이기도 했다.
“전문경영인이요? 그것도 괜찮겠는데요. 그럼 저놈의 싸움질 안 봐도 되고. 크하핫!”
“됐다, 이놈아. 말을 말자.”
한대희가 어물쩍 넘어가려 하자 회장은 더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만족스럽냐?”
둘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한대희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럼요. 그분 얼굴도 뵈었고, 눈도장도 찍었고. 어후, 같이 사진 찍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참느라 혼났네요.”
“네가 좋다니 됐다…….”
“그리고 제 선물이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그게 기쁘네요. 선물이란 받는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야 하는 법이잖아요.”
그 선물이라는 것이 가족을 향한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회장은 아들을 혼내지 않기로 했다.
아들의 말이 맞다.
지금의 난리는 겪고 넘어가야 하는 홍역이었다.
더 나은, 더 깨끗한 한울을 위해서.
2대에서 3대로 넘어가면서 파란을 겪는 회사는 많다.
회장은 자신이 건재한 동안에 상속 준비를 깔끔하게 끝내놓고 싶었다.
자신에게 회사를 고스란히 물려준 장인어른을 위해서라도.
“대희야. 너는 한울 갖고 싶은 생각 없냐?”
자못 진지하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싫어요. 저는 혜진이랑 행복하게 살 거예요.”
어릴 적부터 한대희가 봐온 재벌 총수의 삶이란 메마른 것이었다.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조차 집에서 얼굴조차 보기 힘든 것.
‘내 잘못이니 어쩌겠냐. 그래, 너는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예쁘고 착한 아내랑 사랑도 하고, 그 뭐시기냐. 덕질? 그것도 하고.’
세상만사 즐겁다는 듯 앞서 걸어가는 아들을 보며 회장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