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빈손으로 안 가요 (2)
이제학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정도로 엄청난 제안은 아닌데.
나와 황민우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이제학이 떠듬떠듬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러니까 제가 세무서에 돌아갈 수 있단 말이죠…….”
이제학은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허, 하고 콧바람을 내뿜었다.
당혹에서 실망, 실망에서 분노로.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나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허리를 바로 세웠다.
이제학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빨리 분석해야 했다.
“신 팀장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사람이었습니까? 결국 그거죠? 파벌 싸움. 국세청, 그 조그마한 데서도 뭘 갈라 먹을 게 있다고 셋이 나뉘어 싸우더니. 주위에 피해 입는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하죠? 제가 신 팀장을 도왔다고 해서 그쪽 사람이 된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복귀? 말은 좋죠. 하지만 그걸 공짜로 해줄 리가 있겠습니까. 결국 그거네요. 돌아오게 해주마, 대신 내 사람이 되어라. 신재현이라는 사람도 결국 바닥은 그거였습니까?”
이제학은 숨을 쉴 틈도 없이 퍼부어댔다.
그의 분노가 따가웠다.
감정이 형상이 되어 나를 콕콕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과장으로 잘 나가던 경력을 한순간에 잃었다.
그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부는 작은 바람에 휩쓸렸을 뿐.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라지만 그가 당한 일은 너무나도 불공평했다.
교육원에서 교수 노릇을 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지만 그게 정말 본인이 원해서였겠는가.
나를 도운 것도 애초에 손경진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히고 싶어서였다.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은 그리 쉽사리 잊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제학과 핏발 선 눈을 마주 보았다.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이제학이 감정을 추스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쪽하고 얘기해봤자 뭘 하겠습니까. 어차피 그쪽도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일 텐데. 실례했습니다.”
이제는 이름이 아니라 아예 ‘그쪽’이라고 부르는구나.
그는 아까 그랬던 것처럼 나와는 시선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는 아까와 전혀 달랐다.
쌓아온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냉랭함이 가득했다.
“더 말을 나누고 싶지도 않네요. 그만 가 주세요. 작별 인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오늘 일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군요.”
매몰차게 일어나는 그를 향해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뭘 마음대로 평가하고 결론을 내리는 겁니까?”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은 맞다.
함께 손경진에게 맞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여기로 온 이유부터가 그의 강직한 성격을 보장하고 있다.
민치호는 내게 현장의 판단을 맡겼다.
나는 이제학이 민치호의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이렇게 적대감을 갖고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이제학을 끌어들이는 것은 안 되더라도 적어도 민치호에 대한 그의 착각은 바로잡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일선 세무서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내 진심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날카롭게 던지자 그가 울컥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민 청장님이 처음에 딱 한마디 하시긴 했습니다. 잡으라고요. 하지만 그건 명령이 아닙니다. 이제학이라는 사람은 인재라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죠. 실제로 그 후엔 교수님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민 청장님은 세세한 지시는 안 하십니다. 그저 어디로 가라, 이렇게만 하실 뿐이죠. 모든 것은 실무에서 판단합니다. 이제학 교수님은 여기보다 세무서에 계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에 교수님께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그게 곁에서 본 제 판단이었습니다.”
“날 품평했다는 겁니까? 그쪽이?”
일어선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은 일그러져 있었다.
이미 나한테 실망했다면서 고작 품평 갖고 기분 나빠하면 안 되지.
“예. 그러라고 하셨으니까요. 청장님이 천리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 먼 곳에서 교수님이 인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전적으로 판단은 제 몫입니다.”
“허, 그래서 날 한 패로 넣어야겠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대답하자 이제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에 그의 속마음이 훤히 드러났다.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파벌 만들겠다는 얘기를 대놓고 하냐는 경멸이 섞여 있었다.
“뭐가 문제입니까? 교수님은 실력도 되시고 강직함도 있으십니다. 좋은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인재는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는 말도 있죠. 교수님께 손을 내민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민치호 청장님 밑에 들어가기가 싫으신 겁니까? 그럼 들어가지 마세요. 그냥 복귀만 하세요. 교수님은 우리 청장님을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잖습니까. 청장님도 교수님이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일엔 대가가 있는 겁니다. 서울청장이나 되는 사람이 그냥 날 복귀시켜줄 리가 없잖습니까.”
이제학에게 과거의 기억은 꽤 세게 눌어붙어 있는 것 같다.
그는 파벌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쉽사리 믿으려 하지 않았다.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제안하는 사람이 나인데도 저렇게 질색을 할 정도였다.
민치호가 어떤 사람인지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수작을 부리려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교수님은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국세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치고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세청 그 자체를 위해서 인재를 찾을 때도 있어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압니까. 나중에 그걸 빌미로 협박할 수도 있고.”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학이 도로 울컥하길래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겨우 복귀만 갖고요? 교수님이 먼저 복귀시켜달라고 말을 꺼냈다면 몰라도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한 게 과연 거래 대상이 될까요? 교수님이 거절하면 끝인데.”
“어찌 되었건 꼬투리는 잡힐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음, 죄송한 말씀이지만 복귀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거로 트집잡힐 것 같았으면 저는 진작 나가리 됐을 겁니다. 정기발령도 아니고 한여름에 용산 세무서에서 삼성 세무서로 이동했거든요.”
“제 말은, 그쪽 청장님이 절 올려준 대가로 제게 뭘 요구하지 않겠냐는 거였습니다.”
“요구는 당연히 하죠.”
이제학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나는 동요 없이 말을 이었다.
“청렴한 공무원으로서 본분을 다할 요구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을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 걸까.
이제학은 진위를 가리려는 것처럼 잠시 날 살펴보았다.
나는 그사이 쉬지 않고 말을 퍼부었다.
그가 아까 했던 것처럼.
“이변이 없다면 저희 청장님은 2년, 늦어도 3년 후에는 국세청장이 되실 겁니다. 국세청 내에 이미 적대 파벌이라는 것은 없어요. 거기에 대항해서 새로운 파벌이 생긴다는 것도 이제 와서는 힘듭니다. 그리고 교수님을 억지로 끌어들이지도 않을 겁니다. 곁에 두려면 완전히 믿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세상에 조직을 내 편만 채우는 멍청이가 어딨겠습니까. 중간도 있고 적대도 있는 거죠.”
“그럼 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겁니까?”
이제학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직도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여기서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교수님은 계시는 자리에서 청렴한 공무원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그게 어떻게 그쪽 민 청장님의 이득으로 연결된다는 겁니까?”
오는 게 있으면 반드시 주는 게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일까.
이제학은 끈질기게 대가를 캐물었다.
마치 우리가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딱딱하게 굳혔던 표정을 풀고 빙긋 웃었다.
“국세청의 이득이 되지요.”
“…….”
이제학은 말이 없었다.
나를 살피는 이제학을 향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다.
이제 와서 우리를 적대할 사람도 아니다.
다만 내 욕심으로는 그가 복귀했으면 싶었다.
지금은 민치호에 대해 파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 좋게 생각하지만 막상 일선에서 일해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교수님께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복귀하셔도 좋고 남아서 교편을 잡으셔도 괜찮습니다. 교수님이 어떤 길로 가시든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교육원에 왔다고 평생 있으란 법은 없잖습니까.”
이제학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옆에서 이제학을 관찰하던 황민우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정 불안하시면 옆에서 지켜보시면 되잖습니까. 마음에 안 들면 도로 교육원으로 오시면 되고요.”
황민우의 말이 쐐기였나 보다.
이제학은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아직은 갈등이 조금 남아 있는 모습으로 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연히 복귀하고 싶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국세청 내부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교수님께서 원치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학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적당한 일선 세무서로 보내주세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청장님이 아닌, 신재현 팀장이라는 사람을 믿고 가는 겁니다.”
“그럼요.”
화는 풀린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실망하시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
2023년 1월.
눈이 개인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닷바람도 잔잔했다.
오늘 같은 날은 비행기도 흔들림 없이 날 수 있다.
떠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머문 곳은 깨끗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등짝 세례에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방 안 구석구석을 깔끔하게 청소했다.
큰 짐은 올 때 그랬듯 이미 서울로 부쳤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황민우는 가벼운 짐 하나씩만 든 채 관사를 나섰다.
겨우 두세 달 머문 곳이었지만 역시 막상 떠나려고 보니 서운했다.
“좀 더 여유 있었으면 엄마랑 같이 관광지 둘러보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네.”
내가 중얼거리자 어머니가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사실 나는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병세야 꾸준히 약을 먹으니 많이 괜찮아졌다.
그러나 타지를 자주 돌아도 되는지는 자신이 없다.
제주도는 꼭 와야 했으니 함께 온 거지만 이왕 온 김에 어머니 관광도 많이 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바빴다.
“정말 그래도 돼?”
“그럼. 이제 급할 게 뭐가 있어? 너 자리도 잡았겠다, 엄마도 약 먹으니까 괜찮은데. 나중에 또 오자.”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럼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거…….”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서 다이어리 비슷한 크기의 물건을 꺼냈다.
제주 세무서에서 교육원에 돌아온 후, 교재 집필이 끝나고 한가한 동안 맡겨뒀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건넨 것을 열어보더니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사진첩이네?”
그것은 미니 앨범이었다.
제주도에 와서 시간 나는 틈틈이 핸드폰으로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인쇄소에 맡겼다.
요즘엔 핸드폰 카메라도 성능이 꽤 좋아져서 실물로 인쇄해도 별 위화감이 없었다.
나와 함께 찍은 것,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을 배경으로 어머니를 몰래 찍은 것, 놀러 왔던 팀원들과 다니며 찍은 풍경 등.
제주도에서 보낸 2개월이 여기에 담겨 있다.
“언제 이런 걸 만들었어…….”
어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가늘고 주름진 손으로 사진을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말투는 먹먹해져 있었다.
나는 약속하듯 말했다.
“다음에는 큰 앨범에 사진을 꽉 채우자.”
“그래, 아들.”
교육원의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어머니는 사진 하나하나를 공들여 들여다보았다.
나와 황민우도 어머니에게 정신이 팔려 어느 샌가 주차장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였다.
갑자기 우렁찬 고함이 들려왔다.
“신재현! 가서 사고치고 또 와라!”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교육원 앞에 직원과 교수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었다.
숫자로 봐서는 약 20명 정도.
내게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만 나온 것 같다.
그래도 이미 작별 인사까지 다 한 마당에 여기까지 나온 것치곤 많아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무엇보다 맨 앞에 서서 소리친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할 말을 잃었다.
“원장님…….”
“서울이랑 세종에 있는 놈들 골치 아프게 팍팍 좀 일해!”
이게 저주인지 덕담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일부러 나와 준 사람들이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뉴스에 많이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인마!”
손경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 나와 있던 다른 교육원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소리치는 대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교육생들이 떠날 때 해줬던 것과 똑같다.
나와 황민우는 나란히 서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원장님은 또 오라고 했지만, 이왕이면 오지 말고 세종에 알박하세요.”
앞줄에 서 있던 이제학이 손경진을 흘깃 노려보며 투덜거리는 말에 나는 그저 웃어주었다.
그와는 곧 만나게 될 것이다.
“잘 가요! 고생 많았습니다!”
“응원할게요!”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차를 타고 교육원 부지를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어머니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어.”
백미러 너머로 어머니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항상 오늘처럼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민우 씨도요.”
“그러겠습니다.”
황민우는 대답과 함께 엑셀을 밟았다.
도로 옆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는 처음 왔던 날보다 더욱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