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12화 (312/500)

312화. 도제식 교육 (1)

나는 말없이 민치호의 뒤를 따랐다.

1층 로비로 가서 방문증을 반납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이 외부 주차장이었지만 민치호는 굳이 건물 한 바퀴를 빙 돌았다.

“정부세종2청사에 국세청 혼자 쓰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조세심판원도 같이 있지만 거기는 한 식구나 다름없으니까. 여기 뒤에 툭 튀어나온 곳은 국립조세박물관이 있고. 저기 길 건너에 있는 건 소방청이지.”

국세청과 소방청 사이에서 멈춰 선 민치호는 주위를 가리켰다.

“여기가 보다시피 휑하지? 이 근처가 건물도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됐고, 뭔가 들어온 게 별로 없어. 그래서 엄청난 문제가 있지.”

그리고 심각한 얼굴을 해서 나도 덩달아 얼굴을 심각하게 하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이 근처에 마땅히 먹을 데가 없어.”

“네에…….”

절로 힘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아니 진짜로 중요한 문제야. 국세청 구내식당은 맛이 별로 없거든. 그나마 이쪽 아파트 단지 상가에 식당 몇 개가 있긴 한데.”

식당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안다.

사람이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일할 맛이 나지.

맛없는 밥 먹으면 그날 오후엔 일하기 싫어진다.

아, 일은 원래 하기 싫었던가?

그리고 굳이 우리가 먹는 게 아니더라도 외부 손님이 왔을 때 식당 선정은 중요하다.

공무원이 식당에서 외부 손님을 접대한다는 게 꼭 이상한 뜻은 아니다.

지청장이 올 수도 있고 어디 다른 정부기관의 과장급이 올 수도 있다.

업무상 출장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어디서 오든 간에 밥 한 끼를 구내식당에서 먹여 보낼 순 없지.

그래서 식당은 중요하다.

특히 가격대별로 음식 종류별로 두세 군데는 알아두어야 편하다.

가끔 나도 가서 먹고.

“저쪽 라인은 아파트 껴있어서 그렇게 비싸지도 싸지도 않아. 외부 직원 오면 밥 먹기 괜찮아. 갈비탕도 있고.”

갈비탕 좋지.

좋은 위치 선정이다.

“저 위에 정부청사 쪽에는 그래도 괜찮은 데가 많거든. 차라리 저쪽으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차를 타야 되지만.”

민치호가 말하는 저쪽 ‘위’란 진짜 세종정부청사를 말한다.

그렇다고 여기가 가짜 청사라는 건 아니고, 저 위쪽에는 기획재정부나 보건복지부 등 온갖 부처가 모여 있다.

사람들이 ‘세종정부청사’라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기라고 보면 된다.

“세종시 별명이 세베리아였어. 시베리아 벌판처럼 아무것도 없이 황량하다고.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사만 뚝딱 내려왔거든. 그래도 지금은 맛집 많아. 일단 차에 타 봐.”

도로 주차장으로 돌아온 민치호는 차 키를 내게 던졌다.

보통 차를 아끼는 사람은 아무리 상대가 부하직원이라도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는다.

당장 이선균도 자기 차를 내게 맡긴 적이 없다.

민치호와는 함께 차를 탄 적이 별로 없지만 이렇게 본인 차 키를 맡긴 적은 처음이다.

긴장하며 서 있자 민치호가 조수석에 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기스 나면 죽어.”

“넵.”

무조건 방어 운전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차 키를 꽂고 돌렸다.

시동이 걸렸는데도 엔진의 소리가 부드러웠다.

차에 전달되는 진동도 별로 없었다.

나도 차를 렌트하거나, 외근 나가면서 회사 차를 꽤 탔었는데 그런 것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조심스럽게 엑셀을 밟아 주차장을 나가자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차가 움직였다.

이것만 봐도 차에 얼마나 돈을 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차에 돈 쓰는 사람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알겠다.

이 정도면 쓸 만하다!

내가 운전대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민치호가 피식 웃으며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자, 이렇게 돌 거야. 일단 세종청사 쪽을 보자고.”

나는 민치호의 지시에 따라 정부기관들이 모인 청사 쪽으로 올라갔다.

근처에서 본 세종청사의 모습은 좀 창의적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용 모습이 되도록 지었대. 포부는 거창한데 내부통로로 이동하려면 끝에서 끝까지 1시간은 걸려. 움직이기 힘들어서 욕을 처먹고 있지.”

민치호는 동네를 돌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제야 그가 조수석에 앉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세종시의 구석구석을 알려주고 있었다.

길을 익히고,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알려주고.

모두 국세청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필수는 아니지만 알고 있으면 편한 것들로, 말하자면 꿀팁 대방출이었다.

“청사 한쪽 끝에는 호숫가가 있는데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있거든. 그래서 대통령이라도 오면 저격하기 딱 좋다고 경호처가 싫어해.”

이것은 관계자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야사다.

아낌없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들려주려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 골목에 곱창집이 낙곱새 맛집이야. 저 집이 막걸리도 맛있어.”

매콤한 낙곱새에 막걸리?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데.

“저쪽은 샤부샤부 집인데 국무총리가 그렇게 칭찬하고 갔댄다.”

국무총리가 인정한 맛집?

나중에 가봐야겠다.

“빵은 저기가 맛있어. 커피는 저기로 가고. 아, 저 집 해물탕도 맛있다. 차를 타고 나와야 되는 게 좀 흠이지. 그리고 이 길로 쭉 달리다 보면 좀 비싼 집이 있어. 아무 때나 가면 안 되고 정찬이 필요하다 싶으면 가.”

나는 민치호가 가리키는 대로 정신없이 주워섬겼다.

운전하랴, 위치 외우랴 머리가 복잡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조치원 쪽에도 먹을 게 있는데 지금 말하면 어차피 모르겠지? 다음에 알려줄게. 자, 다음은 서울로 가자. 쭈욱 달려. 서울청으로 가면 돼.”

여기서 서울청까지는 2시간에서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나는 신나게 엑셀을 밟았다.

세종로를 지나는 동안 민치호는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차가 논산천안고속도로에 접어들 무렵 민치호가 핸드폰을 집어넣고 입을 열었다.

“오늘 너 면접 보기 전부터 6급 승진은 정해져 있었어.”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이다.

굉장히 자연스럽게 면접이 끝나고 아무렇지 않게 헤어져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미리 무슨 말이라도 오고 간 것 같았다.

“다들 7급으로 놔두는 것보다 승진 시키는 게 맞다고 동의했다. 그래서 문제였지. 나중에 말 나오기 딱 좋거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미 승진을 결정하고 부른 거라면 이게 새어 나갈 경우 오낙현과 민치호 모두 인사 비리로 질타를 받게 될 것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온 청렴하고 깨끗한 이미지도 와르르 무너진다.

깨끗한 놈이 나쁜 놈을 치는 것과 인사 비리로 승진한 놈이 날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놈도 그놈이었어’하는 소리가 바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문제에 공을 들였다. 네가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사실 미지수였어. 도박이라고 할까.”

민치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긴 오늘 문제는 도가 넘긴 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이 쉽다는 건 아닌데, 오늘 면접은 진짜 사람 죽이려고 작정한 줄 알았다.

조세특례제한법을 물어볼 때는 식겁했다.

법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특별한 법’만 따로 묶어둔 세법이다.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이나 사회보험료세액공제처럼 흔히 쓰는 것들 말고도 공공차관 도입에 따른 과세특례처럼 정말 특수한 경우에만 쓰이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이 법에서 정하는 조세특례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이걸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민치호가 세율을 물어볼 때부터 작정했구나 싶긴 했지만, 조특법이 나온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민치호는 오늘 나를 떨어뜨리기로 작정한 게 아닐까…….

“하나같이 어려운 것만 질문하시긴 했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오셨구나, 하고 각오를 했죠.”

“첫 질문 들으면 딱 파악할 거라고 생각했어. 절대로 대충할 생각이 없었거든. 왠지는 알지?”

“그래야 명분이 생기니까요. 남들은 10년 걸려서 올라가는 길을 3년 만에 올라가니 그에 어울린다는 걸 증명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청장님이 세 분이나 오신 거죠?”

“부산청장님은 반쯤 우겨서 오신 거야. 너 승진 때 우리가 면접 볼 거라고 했더니 꼭 구경하고 싶다고 그 먼 부산에서 올라왔잖아.”

“일부러 오셨다구요? 볼일 있어서 오신 김에 들린 게 아니라?”

우리는 천안과 아산 사이의 고속도로를 통과했다.

바로 옆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사도 없이 바로 가셨어요?”

“서울 가서 만나기로 했어.”

“그럼 먼저 출발하신 겁니까?”

“국세청에 아는 사람 좀 보고 따로 출발한다니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올 거야. 그 양반은 아는 사람이 많아서 여기저기 끼기를 좋아하거든.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술이라기보다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요. 억지로 먹이지도 않으시고.”

“시대가 어느 땐데 억지로 먹여. 그런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대신에 같이 술 먹어주면 엄청 좋아해. 그 양반 별명이 곰탱이인데 일단 생긴 것부터가 그렇잖아. 거기서 술 들어가면 볼만해.”

민치호가 으하핫, 하고 웃어 젖혔다.

저번에 제주도에서 함께 회식 자리를 가진 적이 있긴 한데.

생각해보니 그때는 가볍게 마셨다.

취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업무의 연장 같은 상황이라 청장도 적당히 마시고 들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필름이 끊겼었지…….

황민우가 단체대화방에 올렸던 사진을 떠올리니 우울해졌다.

나는 엑셀을 밟았다가 민치호가 헛기침을 하기에 도로 속도를 내렸다.

“운영지원과장은 오는 게 맞고. 허 국장은 원래 안 와도 되는데 구경하러 왔어. 근데 아마 도우러 온 걸 거야.”

“누구를요? 청장님을요?”

“너 말이야, 너. 허 국장이 신 팀장을 굉장히 좋게 보고 있거든.”

“저…… 요? 저를 왜…….”

“허 국장은 철저한 능력주의자야. 본인도 실력으로 쟁쟁한 인사들 다 젖히고 본청 자산과세국장에 눌러앉았잖아. 허 국장은 입만 산 놈들 싫어해. 나이가 어떻든 실력 있으면 아주 좋아 죽어. 나중에 만나면 꼬박꼬박 아는 척해봐. 좋아할 거야.”

“알겠습니다.”

여기서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나중에 언젠가 국세청 입성할 거라고 당당하게 김칫국을 마시긴 했지만, 이건 어째 내가 당장 국세청에서 일할 것처럼 알려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운영지원과장님이 발령지는 청장님께 여쭈라고 하던데요. 몇월 며칠부터 어디서 일해야 할지 알려주시면 준비하겠습니다.”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부하로서는 당연하지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묻고 말았다.

민치호는 기분 나쁜 기색은 없었다.

대신에 장난기 감도는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이따 알려줄게. 일단 가자고.”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서울 양재IC를 통과했다.

민치호는 서울청 근처에 도착해서도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한 바퀴 돌게 했다.

“저 뒤쪽에 주꾸미가 맛있어. 육개장 맛있는 집도 이 근처인데. 저 뒤쪽 골목은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게. 서울은 차가 잘 막혀서 지역마다 맛집 알고 있는 게 좋아. 특히 종로 쪽은 올 일이 많을 거야.”

슬슬 퇴근 시간이 되어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민치호는 어느 식당으로 네비를 찍었다.

복집이었다.

“복어는 먹어봤나?”

“아니요. 처음 먹습니다.”

“잘됐네. 먹어 봐.”

사람이 먹어본 것만 먹는다고, 생소하면 나중에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하게 된다.

민치호는 아예 나를 옆에 끼고 도제식으로 가르칠 생각인 것 같았다.

그의 배려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다시 차를 몰아 어느 술집 앞에 멈췄을 때 나는 의문이 들었다.

시커먼 외관에 금색 술잔 모양만 새겨져 있는 곳이다.

멋들어진 필기체로 간판이 새겨져 있어서 가게 이름이 뭔지 읽지도 못하겠다.

지나가다 봤으면 여기가 술집인 줄도 몰랐을 거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곳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오는 그런 곳 말이다.

여기서 파는 술은 과연 얼마나 할까.

내 월급으로 가당키나 할까.

잔뜩 쫄아 있는데 민치호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이런 데를 알려주고 싶진 않았는데, 한번은 와 볼 필요가 있어. 청와대 수석이나 국회의원, 장관 같은 높으신 분들은 이런 데 불러 드려야 이야기하는 척이라도 하거든. 그때 기 안 죽고 덤비려면 분위기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어?”

민치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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