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11화 (311/500)

311화. 승진시험 (2)

-타닥.

민치호가 가볍게 테이블을 쳤다.

손가락 끝으로 초를 세고 있는 것이다.

321다시 민치호가 테이블을 치기 직전에 얼른 대답했다.

“3억 이하 20%, 3억 초과 25%의 누진세율 적용받습니다.”

“좋아요.”

간 떨리는 순간이 지나갔다.

천천히 표를 그려 보면 누구나 대답할 수 있지만 3초 안에 답하라니.

처음부터 빡센데.

그래도 그 덕인지 허송미 국장과 염정규 과장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 티가 났을까?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민치호는 부리부리한 눈매로 날 노려보았다.

진짜 무섭다.

“현재 세율은 그렇죠.”

민치호는 이걸로 끝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세법은 매년 바뀌는데 특히 유가증권의 양도소득세율은 빠지지 않고 바뀐다.

그럼 혹시 내년에 바뀌는 세율을 물어보려나?

세법 개정안이야 벌써 나왔으니까 일단은 외웠다.

그러나 민치호의 질문은 반대였다.

“1년 전과 2년 전 유가증권 세율 기억합니까?”

와, 여기서 과거를 물어보네.

하긴 물어보려면 과거 세율을 물어보는 게 맞다.

왜냐하면 현재 세무서에 들어온 신고서는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8월에 주식을 양도했다고 치자.

신고기한은 반기의 말일로부터 2개월 후니까 다음연도 2월 28일까지다.

우리 공무원이 세무서에서 그 신고서를 보는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후다.

보통 결재 마감일 직전에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때는 이미 세율이 바뀐 후지만 우리는 ‘양도과세기간’ 기준으로 따져야 하니까.

즉, 내가 신고서를 보는 시점의 세율이 아닌 작년 양도 당시의 세율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무조사라도 들어가면 2년, 3년 전의 세법도 봐야 한다.

그럼 대체 몇 년 전 세법을 물어보려나.

아무리 내가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도 옛날 세율까지 외우진 못했는데.

외울 게 얼마나 많은데 지난 걸 신경 쓰겠나.

여기서 위기가 오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민치호가 말을 꺼내기 전에 허송미 국장이 조심스럽게 선수를 쳤다.

“세율은 어차피 표를 보면 되는데요. 여기서 물어봤자 기억력 테스트밖에 더 되나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청장님.”

허송미가 내 편을 드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민 청장님, 엄격하게 자격을 따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지금 이 자리는 잘 외웠나 물어보는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민치호가 가만히 허송미 국장을 쳐다보더니 한발 물러났다.

“허 국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단순하게 외우면 끝인 사항은 몸풀기에 불과하니까요.”

다행히도 허송미 덕분에 큰 위기는 넘겼다.

“6급이면 부하 직원의 보고서를 보고 결재를 할 줄도 알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현장 판단뿐 아니라 책임 판단도 중요하다는 소리죠.”

그럼 그렇지.

이제 시작이었다.

“아까 시험에 나왔던 문제는 물어보지 않을 겁니다. 그건 이미 답지에 썼을 테니까 시간 낭비죠. 대신 다른 걸 물어보겠습니다. 법인에서 분식회계를 하는 경우가 있죠. 왜 합니까?”

그나마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분식회계는 횡령 때문에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식회계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횡령하면서 그걸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는 경우가 하나, 법인의 이익과 재산을 과대계상 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또 하나입니다. 그 외 자잘한 사례로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분식회계로 이익을 줄이는 경우가 있겠네요.”

“법인의 이익과 재산을 과대계상 하는 이유는 뭡니까?”

“회사를 안정적으로 보이기 위해섭니다. 주가를 높이고 은행 대출을 쉽게 받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럼 그게 왜 위험하죠? 회사가 안정적이면 좋을 텐데.”

“회계의 기본은 이용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회사의 현재 상태를 보고 주주, 노동자 등이 각자의 선택을 하죠. 불안정한 회사를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건 그들의 선택이 왜곡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 돈이 없어서 월급이 밀릴 위기인데 재무제표는 깔끔하게 만들어두면 근로자가 ‘아직 괜찮네. 몇 달만 더 다녀보자’하다가 월급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소리죠.”

순간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내가 잘못 설명했나?

경우의 수는 다 말한 것 같은데.

건너편 대각선 자리에 앉아 있던 허송미 국장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주주가 주식 투자하다 돈을 날리는 예를 들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월급 얘기를 하셨네요. 혹시 그 예를 든 이유라도 있나요?”

“제가 월급쟁이라 당장 떠오른 게 그것이었습니다. 물론 주주의 피해도 있겠죠. 이 부분은 제가 직장인 친화적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머.”

조금 부드럽게 넘어갈까 해서 가벼운 농담을 섞었는데 허송미 국장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걸 두고 보지 못한 민치호가 쉴 틈 없이 몰아쳤다.

“좋습니다. 그럼 그 경우를 세법에서는 어떻게 처리하죠?”

“사실과 다른 회계처리로 인한 경정청구세액공제가 있습니다.”

이름이 좀 길지만 저게 정식 명칭이다.

“공제는 어떤 방식입니까?”

“이익을 과대계상 한 연도에는 자동으로 법인세를 많이 냅니다. 그 연도의 법인세를 정상적으로 계산한 후 그 차액은 환급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 후 납부할 법인세에서 공제해줍니다.”

한마디로 뻥튀기해서 법인세를 많이 낸 건 제대로 계산하되, 분식회계는 괘씸하니까 돈은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 법인세를 국가가 꿀꺽해 버리면 위법이라 돈을 묶어뒀다가 나중에 그 회사가 낼 법인세에서 빼주는 것이다.

“변천을 얘기할 수 있습니까?”

“원래는 납부할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것이 5년 기한이었습니다. 과다하게 납부한 법인세를 5년간 공제해주고, 5년이 지난 시점에 남은 금액을 전부 환급받는 형식이었죠. 하지만 부실회계를 들킨 모 조선사의 경우에서 오히려 세금으로 이득을 보는 경우가 생겨서 2017년 개정되었습니다.”

당시엔 내가 중소기업 총무팀에 있을 때였다.

바로 옆 팀인 회계팀에서는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할 정도로 난리였기 때문에 나도 관심 있게 주워들었다.

물론 그 당시엔 법인세고 뭐고 이런 어려운 것은 몰라서 겉핥기로 넘어갔고, 나중에 공부하면서 자세히 알게 된 것이다.

국세청에서 해운업계를 전수조사한 이유도 저 조선사 때문이었다.

“모 조선사가 5년간 적자였던 것을 흑자로 꾸며냈습니다.”

이유는 뻔하다.

경영진의 문책을 피하고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당장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의 기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적자가 나면 불안해진 은행은 당장 상환받으려 하니까.

“분식회계를 들키고 나서 적자로 계산하니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는 겁니다. 문제는, 이 공제의 경우 앞으로 5년간 낼 세금에서 공제하는 형식인데 해당 조선사는 앞으로도 계속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데서 발생했습니다. 왜냐하면 5년간의 결손금이 조에 달했거든요.”

이미 지난 5년간 적자였던 것을 흑자로 꾸며냈다.

이걸 결손금이라고 하는데 법인세는 15년간 결손금을 이월해준다.

만약 2021년에 적자가 1억이 났는데 2022년에 이익이 3억 났다면 2022년의 법인세는 2억에 대해서만 낸다.

문제는 이 조선사가 5년간 엄청난 적자를 냈다는 것이다.

적자를 흑자로 돌리는 건 어렵다.

조 단위의 적자를 5년 안에 까는 것은 더 어렵다.

“원래는 법인세에서 공제를 해야 하는데, 그 조선사는 결손금 때문에 5년간 세금을 안 냈잖습니까. 그래서 분식회계로 과다납부한 법인세를 한 푼도 차감 당하지 않은 데다가, 환급금이자까지 붙어서 돌려받으니 마치 적금이나 다름 없던 거죠.”

환급금이자는 국가가 환급을 늦게 해줬을 경우에 붙는 이자다.

5년간 붙으면 그것도 금액이 꽤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 조선사에서는 그렇게 돌려받은 환급금으로 성과금 잔치까지 벌이려고 했습니다. 분식회계는 분명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그로 인해 오히려 회사가 이득을 보는 상황이 생기자 이래선 안 되겠다는 여론이 생겼습니다. 저 사건이 발생한 것이 2016년 초입니다. 그래서 2017년 바로 개정되었습니다.”

“어떻게 개정되었죠?”

“먼저 공제 5년 제한을 없앴습니다. 모 조선사처럼 5년 후 일시불로 2천억을 환급받는 상황을 없앤 겁니다. 앞으로 납부할 법인세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기한 없이 계속 환급금액을 이월합니다. 그리고 무작정 공제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납부해야 할 법인세의 20%를 한도로 공제해줍니다.”

납부해야 할 법인세가 100만 원이라면 공제받을 금액이 얼마나 많든 간에 20만 원까지만 공제받을 수 있다.

최소한 법인세는 납부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세법개정이었다.

“그럼 어떠한 상황에도 회사가 과다납부세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경우는 없어졌네요?”

민치호는 바로 질문을 찔러왔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었다.

“아니요. 회사가 해산하게 되면 과다납부한 법인세를 즉시 환급해야 합니다. 대신 환급금이자는 없습니다.”

대답이 끝나자 민치호는 가만히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의 역할은 내게 엄격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이것은 내가 민치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가를 그가 맡으면 제식구 감싸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지금 민치호가 까다롭게 공격하듯 질문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것이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승진 면접이라기보다 전문직 자격증 시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자격시험은 답지에 쓰니까 고민할 시간이라도 있지.

말로 묻고 답하니 바로 머릿속에서 정답을 생각하고 그걸 또 바로 문장으로 엮어내야 했다.

거기에 청장급과 국장급이 노려보고 있으니 자꾸만 입이 말라붙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겨우 한고비 넘었고 갈 길은 멀다.

오늘 면접은 계속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인가보다.

금방 끝나지는 않겠는데.

나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리고 각오를 다졌다.

***

“……저는 준비한 질문은 다 했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 질문 있으십니까?”

민치호의 질문 세례는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만만한 질문은 하나도 없어서 하나같이 생각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기존 판례를 뒤엎은 최신 판례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기도 했고, 아주 기초적인 용어의 정의를 물어보기도 했다.

예를 들면 부가가치세에서 말하는 재화의 정의를 말해보라는 식이다.

세법도 법이다 보니 용어의 쓰임이 어긋날 경우를 대비해서 명확하게 알아야 했다.

따로 법전에 정의가 쓰여 있을 정도다.

세법도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 양도세, 상증세뿐 아니라 종부세와 취득세까지 물어보았다.

취득세는 지방세라 우리 관할이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취득세에 대한 질문은 기초적인 것이었다.

“질문은 아니고 제가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요.”

내내 가만히 듣기만 하던 부산청장이 손을 들었다.

내가 부산청장을 향해 자세를 바로 하자 그가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신재현 팀장은 이미 팀장 직위에 있어 봤습니다. 중간관리자가 어떤 것인지 겪어봤을 거란 말이죠.”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지만 나름 팀장 명칭을 달고 활동하긴 했다.

그것도 팀원이 4명밖에 안 되는 데다 이미 나와 손발을 맞춰본 사람들이라 일반적인 팀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내게 맞춰주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십 명 되는 사람들을 다뤄볼 거고, 결재해야 하는 서류도 차원이 달라질 겁니다. 문제없이 아랫사람 다루는 것도 문제지만, 사고가 터지면 위에서 내리 까이는 것도 6급입니다. 말 그대로 중간관리자거든요. 이 말의 뜻을 알겠습니까?”

나는 순간 이선균을 떠올렸다.

내가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바로 앞에서 우산이 되어줬던 사람.

그리고 알게 모르게 뒷수습과 지원을 해준 사람.

나도 이제는 날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 다행히도 저는 좋은 상사분들을 많이 보며 일했습니다. 그런 분들처럼 해야 한다는 거죠.”

“허허. 가벼운 경고였는데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군요. 주위만 잘 봐도 배울 게 많을 테니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질문 더 없죠? 이걸로 끝낼까요?”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자 국세청장이 운영지원과장에게 고갯짓을 했다.

과장이 시선을 받자 약속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다음 발령 때 6급 인사전보가 뜰 겁니다. 발령지는 민치호 청장님께서 처리하신다고 했으니 그 후 일정은 청장님께 들으십시오. 저는 발령장만 드리겠습니다.”

“……예?”

내가 예상한 말은 이게 아니었다.

돌아가 있으면 승진 여부를 통보한다거나 인사 전보를 기다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바로 6급 확정인가?

내 의문은 아무도 풀어주지 않았다.

다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를 나눴다.

“어이구, 오래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가 아프네.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부산청장이 손을 흔들며 나갔고.

“저도 자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상속세가 또 하나 터져서.”

“저도 슬슬 인사 처리 때문에 바빠서요. 가보겠습니다.”

허송미 국장과 운영지원과장도 청장실을 나갔다.

민치호 청장 역시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내게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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