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교육원의 마지막 행사 (4)
다민의 무대는 열정적이었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무대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장비도 방송국이나 진짜 콘서트에 비하면 엄청나게 열악할 텐데, 전혀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관객이 진짜 자신의 콘서트에 와준 팬인 것처럼, 한 곡 한 곡 사력을 다해 불렀다.
그 진심과 열정이 무대 밖에 있는 내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다민의 무대를 보고 있는 교육생들이 떨떠름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기가 교육원인지 콘서트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다민을 이렇게나 좋아했나 싶었다.
교육생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었다.
“군대 위문공연 보는 느낌이네요…….”
황민우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금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출입구 쪽에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뒤쪽에 교수진이나 직원들이 앉아서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철제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앉아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교수고 직원이고 교육생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의자는 저 멀리 치워 버린 상태였다.
교육생들처럼 뛰어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일어서서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는 게, 제대로 즐기는 모습이다.
저번에 국세청 단합대회 때와는 또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다민이 공연하면 지켜보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다 함께 하나가 되어 미치는 느낌이다.
연예인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직업이라던가.
그게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이 강당 안에서 즐겁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남녀의 구분도, 노소의 구분도 없다.
“미친 것 같네요.”
노래를 듣느라 한참이 지난 후에, 나는 황민우에게 대답했다.
나쁜 뜻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미쳤다.
나는 콘서트 같은 곳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은 의미로 미쳤다.
황민우는 잠시 뭐에 대한 대답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곧 그마저도 다민의 노래에 까먹은 듯했다.
주위에 신경을 쏟을 틈이 없었다.
나는 다민이 여리고 허당이며 귀여운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을 뗄 수가 없는 몰입감이 느껴졌다.
다민은, 빛나고 있었다.
“흑흑. 나는 이제 여한이 없다.”
“이런 무대를 교육원에서 보다니 실화냐.”
“사랑해요! 사랑해요!”
무대는 길지 않았다.
약 1시간 정도.
무료로 봉사와 준 사람이 1시간이나 공연해준 거라면 할 만큼 한 것이다.
더 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붙잡고 앵콜 몇 곡만 더 해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앵콜! 앵콜!”
“언니! 오늘부터 팬 할게요!”
“사랑합니다! 다민 최고!”
결국 사회를 맡은 직원이 나가서 분위기를 정리했다.
“여러분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다민 씨도 먼 길 오셔서 피곤한데 잠이라도 일찍 주무시게 해 드려야지요. 그리고 여러분 저녁 안 먹을 거예요? 삼겹살이 기다리는데?”
“삼겹살! 으어어!”
교육생들이 삼겹살이라는 말에 강당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참 본능적이다.
물론 나도 저 심정은 이해한다.
합숙도 다 끝나가고 곧 정식 발령되어서 나간다.
잔뜩 부풀어 있는 상태에서 국세청이 인기 가수까지 불러다 줬다.
거기에 삼겹살로 회식까지?
“세무직 시험 보길 잘했다!”
저런 말이 나올 만하지.
“교육생분들은 질서 있게 구내식당으로 이동해 주세요!”
이 상황에서 질서 있게, 라는 수식어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다.
고등학교 점심시간 종 치자마자 우르르 몰려 나가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하긴 이들도 학생이라면 학생이지.
개중에는 학교 졸업하자마자 공부 시작해서 붙은 사람도 있을 테니, 사회초년생도 꽤 될 테고.
교육생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다음은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교수, 직원들이 다른 통로로 나갔다.
저들 중에는 교육생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밖에 나가서 먹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구내식당으로 갈 생각이었다.
“신 팀장! 어디가! 이리 와 봐!”
손경진이 부르지만 않았다면.
“넵, 원장님!”
부리나케 달려가자 무대에서 내려온 다민과 손경진이 서 있었다.
“다민 씨도 저녁에 같이 먹겠다네. 어떤 분위기인지 궁금하다고. 근데 아무리 그래도 연예인이시니까 노땅들 사이에 끼면 안 되잖아. 잘 모시고 가.”
“저랑은 먹어도 되구요?”
나랑 밥 먹으면 더 이상한 눈으로 볼 것 같은데.
손경진은 뭔 개소리냐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너는 누구랑 밥을 먹어도 사심이 없을 것 같이 생겼어. 대통령이랑 밥 먹어도 그 표정으로 밥만 먹고 나오지 않을까? 아냐?”
“그야,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나름 다민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손경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면 진짜 관심 있어? 부담스러워?”
나는 정색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연예인하고 사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장님.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지 마세요.”
잠시 다민의 표정이 흐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착각인가 싶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말할 건 또 뭐야. 어쨌든 너랑 황민우가 챙겨. 교수과 과장한테도 말 해놨으니까 데려가고.”
손경진의 손끝을 가리키자 입구에서 우릴 기다리던 교수과 과장이 묵례해 보였다.
교육원에 있는 딱 세 명의 과장 중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족하지만 제가 모시겠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일어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교수과 과장까지 합류한 후, 우리는 천천히 식당으로 이동했다.
구내식당에는 이미 테이블마다 삼겹살과 쌈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장 먹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할 텐데 아직 불만 올려두고 원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기다려’ 훈련 때문에 앞에 간식을 두고 침을 흘리는 강아지들 같다.
그들은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처럼 충혈된 눈동자로 손경진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살기라면 세무조사는 알아서 잘 하겠군.
나는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거렸고 손경진은 빠르게 말을 꺼냈다.
“다민 씨가 재능 기부 해주신 덕분에 예산이 남아서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먹고 싶은 만큼 배부르게 드세요. 밥 먹고 바로 기숙사에 돌아가는 조건으로 오늘은 술도 허용합니다. 한 사람당 딱 1병까지만!”
“우와아아아아!”
손경진의 말은 평소보다 두 배는 빨랐다.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오자 손경진을 손뼉을 짝 쳤다.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치이이익!
불판에 고기 올라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손경진이 왜 서둘렀는지 알 것 같다.
여기서 쓸데없이 덕담한답시고 훈화라도 했다면 지금쯤 저 불판에 올라가는 것은 손경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쪽 테이블로.”
우리는 교수들이 모여 있는 곳의 한쪽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인 다민 덕분인지 자리는 꽤 상석이었다.
“제가 굽겠습니다. 드시기만 하세요.”
집게는 내가 잡았다.
황민우가 중간에 뺏어가기도 하고 내가 도로 뺏어오기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어우, 맛있네요. 팀장님이 구워주셔서 그런가?”
아까 표정이 살짝 안 좋길래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민은 행복해 보였다.
역시 고기는 만인을 행복하게 한다.
***
저녁 11시. 늦은 시간이었다.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은 각자 테이블을 정리하고 나눠서 설거지를 했다.
내일 출근할 구내식당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공무원 새끼들 지들만 처먹고 치우지도 않고 갔네’라는 말을 들을 순 없으니까.
일어날 사람은 일어나고 계속 먹을 사람은 식당에 남았다.
회식이라 생각하면 1차라고 해도 빠른 파장이다.
오늘은 교수들도 어느 정도 교육생들을 풀어줄 생각인 듯했다.
과하게 마시면 당연히 벌점행이겠지만.
연수원 성적 관리야 이미 끝났다지만 마지막에 사고 치면 어떤 식으로든 손경진이 페널티를 줄 것이다.
그래도 손경진은 뒷정리만 제대로 하고 조용히 놀기만 한다면 몇 시까지 마시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은 교육생들이 구내식당에서 술판을 벌이는 동안 나와 황민우는 다민을 바래다주기로 했다.
근처 호텔에서 묵기로 했는데 이번에도 손경진은 나를 지목했다.
황민우는 조금 뒤에서 따라오고, 나는 다민과 나란히 걸었다.
“차는 내일 아침 일찍 제가 가져다 놓겠습니다.”
우리 셋 다 술을 입에 댄 상태라 차를 가져갈 수는 없었다.
때문에 다민이 렌트한 차는 교육원 주차장에 남겨지게 되었다.
“아니에요. 내일 제가 와서 가져가도 돼요.”
용건이 끝나자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별 사이 아닌데 잡담을 하는 것도 어색해서 우리는 그냥 길을 따라 쭉 걸었다.
-쏴아아.
깜깜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바닷물 쓸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밤이라 그런지 소리는 더욱 잘 울렸다.
12월이라 아직 춥다.
찬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다민이 몸을 움츠렸다.
“추우세요?”
“아뇨, 괜찮아요.”
다시 말이 끊겼다.
다민은 이런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기를 반복했다.
술기운 때문인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흘끔거리다가, 저 멀리 호텔 건물이 보이자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뭐 놓고 온 거라도 있으세요?”
다민은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새카만 밤하늘 아래에 희미하게 비치는 가로등이 마치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연예인은 길거리에서 봐도 빛이 난다고.
다민이 딱 그랬다.
그냥 길에 걷고만 있어도 눈이 부셨다.
거기에 살짝 우수에 찬 눈동자가 날 보고 있으니 더욱 오묘했다.
다민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니요.”
즉답하자 다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다민에게서 무슨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연애할 시간도, 생각도 없어서요. 아시다시피 한 달 중 20일을 야근하는데 어느 누가 저랑 사귀려고 하겠습니까.”
“……그런 것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신재현 팀장님이라면.”
“그런 부처 같은 여성분이 제 곁에 계신다면 저에겐 엄청난 행운이겠죠. 하지만 그건 제 이기심일 겁니다. 연애라는 건 쌍방통행이잖아요. 받기만 하고 줄 수 없는 건 연애라고 안 하죠.”
“그런가요? 그럼 나중에라도 생각은 있으세요? 아니면 그건가요? 일과 결혼했다?”
“글쎄요. 일과 결혼했다는 그런 거창한 건 아닙니다. 결혼 안 해도 평생 일하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결혼까지 하겠습니까. 그보다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는 게 맞겠군요. 머릿속이 이미 꽉 차 있어서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는 거예요.”
나라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니다.
조사하고 다니면서 눈치로 캐치해낸 것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다민의 경우에는 내가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에 가까웠다.
나라고 착하고 어여쁘신 여성분을 싫어할 리가 없지.
그래서 더더욱 여기서 확실히 말해줘야 한다.
“다민 씨는 빛나는 분이셔서 저는 옆에 서면 오징어가 될 걸요.”
다민이 살포시 웃었다.
밤하늘의 별 가루가 내려앉아 뭉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민은 한걸음 내 쪽으로 다가왔다.
우수가 깃든 처연함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약 2년 반 전에 용산세무서를 떠날 때, 그 직원은 울었는데.
혹시 여기서 다민이 우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녀는 내가 생각한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역시 이런 점이 좋아요.”
“네? 아까 말씀드렸지만…….”
“제가 아무리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씀이신지는 이해했어요. 돌려 말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두 번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그런 신재현이라는 사람에게 반한 거니까.”
나는 당황해서 주춤,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민이 다시 한걸음 다가왔다.
가로등은 이제 다민이 아니라 내 위를 비추고 있었다.
“이성으로도 물론 좋아해요. 신재현 팀장님 같은 사람을 누가 안 좋아하겠어요? 능력 있지 멋있지 앞길 탄탄대로지. 팀장님 서울로 돌아가시면 아마 선 자리가 줄을 설 걸요?”
“서, 설마요.”
다시 한 걸음, 다민이 다가왔다.
아슬아슬하게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저는 이성으로만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팀장님이 걸어오신 그 길을 좋아하는 거예요. 팀장님의 사람됨을 좋아하고 불의에 맞서는 그 모습을 동경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저는 차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민은 천천히 가로등 밑으로 들어섰다.
속삭이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다민이 말했다.
“아까 이기심 얘기를 하셨죠? 맞아요. 저 혼자만의 팀장님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하면 그거야말로 제 이기심일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도 오늘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앞으로도 힘내 주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다민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응원하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지나쳐 호텔 쪽으로 걸어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쳐다보고 서 있는 내게 저 멀리서 다가온 황민우가 말했다.
“뭐 해요? 얼른 데려다주지 않고.”
“아! 네, 네.”
황민우와 나는 서둘러 다민의 뒤를 쫓았다.
무척이나 달이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