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교육원의 마지막 행사 (2)
신재현에겐 팬카페가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이름 좀 날린다 하면 민간인조차 팬카페가 생기는 세상이니까.
신재현의 경우에는 팬이 생기기 더 쉬운 환경이었다.
학력도 집안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서민이다.
그런 그가 실력만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몰입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행보는 또 어떠한가.
높으신 분들에게 굴하지 않는데 시원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온 나라의 높으신 분들 다 한 대씩 패고 다님ㅋㅋ
모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말이 심심찮게 나돌 정도였다.
아직 젊고 외모도 일반인치고는 봐줄 만하다.
형과의 대립 같은 극적인 가정사도 있으니 기자들이 아주 좋아 죽는 취재 대상이었다.
일단 뭔가 새로운 사실을 기사로 쓰기만 하면 조회수가 만 단위를 훌쩍 넘는다.
덕분에 사실을 접하기도 쉽고 눈에도 자주 보인다.
조회수가 나오니 또 별것도 아닌 걸로 기사를 쓰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신재현이 어제와 똑같은 차림으로 출근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일까? 혹시 밝혀지지 않은 민감한 사생활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지라시가 뜨기도 했다.
그럼 분노한 신재현의 추종자들이 출동한다.
└기사 어조가 이상하네요. 맨날 야근하니까 똑같은 옷 입고 올 수도 있죠. 지금 신재현이 일하다 말고 연애하다 왔다는 거예요?
└??? 뭐야 아이돌이야? 신재현은 연애도 못해?
└당연히 성인인데 연애해도 되지. 우리 극성빠 아니거든요?
└나는 극성빠 맞는데. 신재현 팬클럽인 내 눈으로 봤을 때 저건 걍 별생각 없이 입은 거임.
└왜 돌려 말하냐. 그냥 옷에 신경 잘 안 쓴다고 말해도 돼. 아 슬프다. 저 정장 용산 사진에서도 봤는데 아직도 입고 다니네.
└형…… 솔직히 옷 진짜 못 입는다. 정장이어도 핏 딱 맞게 잘 입는 사람 많은데 왜 그러고 다녀…… 옷 사주고 싶다.
└큰일 날 소리 하지 마라. 옷 게이트로 1면에 뜨고 싶냐?
그렇다.
팬클럽이 있긴 한데 문제가 바로 이거였다.
대상이 공무원이다 보니 아무것도 못 한다.
일단 흔히 조공이라 불리는 선물 공세는 어림도 없다.
찾아가는 것도 못한다.
그렇다고 출퇴근 시간에 기다리는 것도 어렵다.
퇴근을 안 하니까 출근도 없기 때문이다.
조사 한 번 들어가면 새벽 3시에 나오거나 밤을 새는 게 일쑤인데 업무 특성상 조사를 들어갔는지 아닌지조차 일반인은 모른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사를 수집하고 댓글을 달고 사진을 모아서 팬클럽 카페에다 고이 모셔두는 것뿐이었다.
팬클럽 회원수만 따지면 약 만 명에 이르는 중형 팬클럽이었지만 규모 치고는 굉장히 조용했다.
심지어 공식도 아니다.
공무원한테 무슨 공식이 있겠나.
글 내용도 대부분 이러했다.
-신재현 있는 세상, 살 맛 납니다.
-오늘은 또 누구 목을 땄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이 궁금해~
-요즘엔 뭐 하고 지낼까?
-SNS에 뜬 사진 긁어옴(feat.제주도)
-커피차 보내면 어케 됨?
└Re : 갤주님이랑 나란히 은팔찌
└Re : 어? 커플링임? 그건 좋은데
└Re : 조공 못하니까 정신 나간 거 보소.
└Re : 아재라 적응을 못하겠다. 은어는 설명 좀 써 주면 안 돼? 아재라고 차별하는 거 아니지?
└Re ; 저런. 신재현 앞에서 모든 납세자는 평등합니다. 여기 공지사항을 읽어주세요.
└Re : 갤주님=신재현임.
-갤주님한테 세무조사 받고 싶다.
카페 안에서는 이상한 놈들도 종종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자제했다.
팬클럽이 원래 단합이 잘 된다고는 하지만 신재현 팬클럽의 경우는 꽤 특수했다.
[공지사항] 과하게 실드치지 않기. 정치적 발언하지 말기.
처음 팬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이 놀라는 항목이 이것이다.
기사나 다른 커뮤니티의 댓글에서 팬클럽 이름 달고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해할 법한 규칙이다.
그러나 실드치지 말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물론 ‘과하게’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팬이 옹호하다 보면 좀 과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규칙에 반발한 사람도 몇 있었다.
그때마다 팬클럽 회장과 부회장은 팬들을 설득했다.
-신재현은 연예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원래라면 우리 팬클럽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에요. 신재현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그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신재현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 순수함을 간직해주세요. 신재현이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전념하게 하는 것이 팬으로서 할 일입니다.
이 논리가 놀랍게도 통했다.
‘추종자’가 회원의 대부분이라서 그럴 것이다.
덕분에 신재현 팬카페는 있는 듯 없는 듯, 일반인의 관심을 받지 않고 조용히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다음으로 회원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회장과 부회장의 정체였다.
둘 다 꽤 초기의 멤버인 건 확실했다.
신재현이 두각을 드러낸 것이 삼성세무서에서 있었던 류석호 국회의원 사건이다.
카페의 역사를 보면 그때 팬카페가 개설되었다.
당시 회장은 약 1년 후, 새로 들어온 누군가에게 회장 자리를 넘기고 부회장으로 내려갔다.
그 후로 회장과 부회장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그 둘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언젠가는 회원들이 둘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게시판을 질문으로 도배한 적이 있었다.
회장의 자격이 있냐는 소리도 나왔다.
-모름지기 회장이라면 모르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하는 법. 이 사진은 언제 찍힌 것일까요?
└이야, 놀랍다. 배경 다 뭉개고 정확하게 옷 사진만 땄네. 옷으로 맞추기 난이도 상중상인데.
└회장 : 류석호 국회의원 조사 때 기자회견.
└그럼 이 사진은?
└부회장 : 기승평 의원이랑 아들 출석 때 사진.
└인정한다. 너네 회장 부회장 해라.
팬카페 회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신재현은 잘 꾸미고 다니지 않을뿐더러 공무원이라 항상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다닌다.
사진을 봐도 언제 찍은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배경을 뭉개 버리면 더더욱 어렵다.
회장과 부회장은 회원들의 시험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그리고 둘의 정체는 더욱 미궁에 빠졌다.
결정적으로 회원들을 혼란스럽게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 이거 몬가용 회장님?
신재현이 제주도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한민국 3대 신문에 큼지막하게 그를 응원하는 광고가 실렸다.
문구는 아주 간단했다.
[어딜 가든 열심히 일하는 신재현을 응원합니다!]
-이거 규칙 위반 아님? 혹시 갤주님한테 피해 가면 어떡함?
-정치 얘기도 아니고 그냥 응원 문구니까 괜찮지 않을까용?
-모금 얼마 이상이면 기부금법에 걸리지 않음? 신문사 세 개에 광고 넣은 거면 돈 많이 들었을 텐데.
-이건 공무원법 위반 안 돼요?
-돈은 누가 냈어요?
광고가 실린 바로 그날 카페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공지가 떴다.
[공지사항] 광고는 팬카페의 이름이 아닌 제 개인으로 진행했습니다.
혹시라도 모금 과정에서 공무원 신분인 갤주님께 피해가 갈까 봐 저 혼자 진행하였습니다.
다시 회장과 부회장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 졌다.
-회장 정체 뭐임?
-예전부터 신재현에 대해서 엄청 자세하게 아는 것 같았음. 혹시 기자 아닐까?
-기자??? 그럼 나학진?
-의외로 국세청 내부인일 수도 있지.
-낮에는 내 부하직원이었는데 밤에는 갤주님? 소설 설정이냐?
-어디 금수저길래 혼자서 광고비를 다 대지?
-다른 팬클럽이었으면 진짜 편했겠다. 혼자서 돈 다 대고.
-미술계는 돈 많은 수상한 퍼리에 의해 발전하고 팬클럽은 돈 많은 수상한 회장에 의해 운영된다.
팬카페가 뜨거운 동안 회장은 조용히 모니터링만 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표면에 나서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던 부회장은 그 시각 어디에 있었는가.
바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표까지는 안 끊어주셔도 되는데…….”
전화 너머에서 젊은 남자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회장이라 불린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섞였다.
-마음 같아서는 전용기를 빌려드리고 싶었는데요. 그러면 너무 눈길을 끌어서…….
“아니에요, 회장님! 비행기 표 끊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퍼스트 클래스라니.”
-좋은 활동하러 가시는데 이런 거라도 해 드려야죠. 마음 편히 다녀오세요.
회장이라 불린 남자는 막 전화를 끊으려다가 생각난 듯 다급히 덧붙였다.
-팬카페 회장이 저라는 거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요. 제가 부회장인 것도 비밀이에요.”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진도 많이 찍어 오시고요.
“네에!”
전화를 끊은 20대 중후반의 여성은 옆에 세워 둔 캐리어를 챙기고 일어섰다.
공항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졌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그녀의 외모는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또각또각.
탑승구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일행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군거림이 퍼져가며 앞서 걷던 사람들도 뒤를 돌았다.
너른 공항을 가로질러 걸었으나 그녀가 걷는 곳에는 인파의 길이 만들어졌다.
좌우에 사람들이 늘어서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 한가운데로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양옆에서 누군가 외쳤다.
“다민이다!”
“어! 진짜 다민이네!”
인파는 인파를 부른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고 곧 어디선가 기자가 나타났다.
다민이 비행기를 탄다는 정보를 미리 얻은 기자들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다.
“다민 씨, 공연 가시는 건가요? 어디로 나가시나요?”
“다민 양, 소속사와의 다툼은 원만히 마무리되었습니까? 꽤 오랜만의 행보인데요. 어떤 스케줄입니까?”
어김없이 기자들의 질문이 날아들자 다민은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의자가 늘어서 있는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소속사가 불공정 계약으로 논란이 되고, 소속사를 옮긴 다민은 법적 소송이 끝날 때까지 자숙 아닌 자숙을 해왔다.
그러다 활동 재개를 공항에서 하고 있으니 연예부 기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자세한 건 소속사에 물어보시면 되는데…… 지금은 간단하게만 말씀드릴게요. 저도 비행기는 타야 하니까요.”
오랜만에 서는 카메라 앞이다.
다민은 싱그럽게 웃으며 운을 뗐다.
“제가 올해 모범납세자로 뽑혔잖아요?”
내용은 분명히 자랑이었지만 다민이 말하니 자연스럽게 들렸다.
“제가 국세청 홍보대사기도 하거든요. 근데 지금 제주도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예비 7급 공무원들 연수가 끝난다고 해서요. 거기 무대 하러 가요!”
기자들의 당혹스런 질문이 되돌아왔다.
“복귀 후 첫 무대를 무료로 뛴다고요?”
“네! 다른 곳도 아니고 국세청 공무원이잖아요. 힘내서 열심히 일하시라는 뜻으로 가는 거예요! 아, 소속사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했는데.”
다민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까먹을까 봐 적어왔어요. 음, 그간 소속사와의 불화로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약속의 일환으로, 첫 활동은 국세청의 모범납세자이자 홍보대사로서 미래의 공무원들을 응원하고 오겠습니다! 누가 알아요? 신재현 팀장님 같은 사람이 나올지?”
마지막은 메모장이 아니라 정면을 보며 한 말이었다.
“다민 씨, 혹시 신재현 씨를 보러 가는 것 아닌가요? 다민 씨가 팬인 건 공공연한 비밀 같던데.”
“앗! 들켰나요? 헤헤, 신재현 팀장님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일은 열심히 할 거예요! 부끄럽지 않은 멋진 무대 만들어 보겠습니다!”
짧고도 굵은 인사를 마친 후 다민은 탑승구로 향했다.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다민은 지금 이 순간, 딱 한 명의 반응이 제일 궁금했다.
기자가 물어본 ‘신재현 씨를 보러 가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진심이었던 것이다.
“좋아하시려나?”
물질적인 선물도 안 되고 대놓고 쫓아다녀도 안 된다.
지금 다민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이것이었다.
국세청장의 요청에 만사 제쳐놓고 교육원으로 달려가는 것.
“으헤헹! 사진 찍어 와서 회장님한테 자랑해야지!”
다민은 괴상한 웃음소리와 함께 나는 듯이 탑승구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