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300화 (300/500)

300화. 교수회의 (2)

휴게실의 소란은 아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비웃음으로 점철되어 있던 목소리가 지금은 당혹으로 바뀌어 있었다.

“교수님이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저 말씀은 저 팀장을 인정하겠다, 그렇게 들리는데요.”

“정말 청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

“교육원에서만 10년을 넘게 계신 분입니다. 후학 기르는 걸 업으로 삼으신 분이고 사람 보는 눈도 좋은 분이에요.”

나는 심세광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온 신경은 휴게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쏠려 있었다.

심세광은 나를 보면서 가만히 미소 지었다.

무슨 뜻인지 해명하거나 날 거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뚝, 하고 소음이 끊겼다.

심세광이 입을 열면 모든 소란이 사라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마치 스위치라도 있는 것 같았다.

“저는 이 교육원에서 12년을 있었습니다. 매년 교육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항상 똑같아요. 처음에는 부푼 꿈을 안고 들어와서 무언가 해보겠다고 열심이죠. 눈에는 의욕이 깃들어 있고 총기가 넘칩니다. 그런 교육생들을 나중에 만나면 100명 중 99명이 눈에서 빛이 사라져요.”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우리 국세청뿐 아니라 일반 회사도 그럴 것이다.

신입사원 때는 의욕이 넘치고 뭐든 잘할 것 같지.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론과 실무는 다르니 거기서 무너지는 사람이 한 줌, 과다한 업무에 치여서 꿈이고 뭐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또 한 줌.

민원인에게 시달리다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한 줌, 위에서 치이고 아래에서 치여서 때려치우고 싶어지는 사람이 또 한 줌.

공무원도 사람이고 국세청도 회사나 다름없다.

조직 관계와 업무만 따지면 일반 회사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다.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 현실이 다르면 좌절하게 마련이다.

나도 사기업에 다닐 때 겪어보지 않았는가.

횡령하는 이사 놈과 묻으려는 부장, 의문을 표하자 바로 날아오는 사직 통지서.

세상은 불합리한 것이 많다.

“모든 게 잘못 가르친 우리의 잘못이고 지금의 국세청을 만든 선배들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요. 정말 그렇게 힘든가. 못 버티고 그만둘 정도인가. ‘공평하고 투명한 세정을 실현하겠다’라며 큰소리치던 그 교육생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심세광의 나직한 말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실무에서 일하는 우리야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가르친 교수에게는 안타까울 수도 있겠다.

면직률, 한마디로 그만두는 사람이 제일 많은 직렬이 바로 우리 세무직이니까.

실컷 가르쳐놨더니 그만두거나 지쳐 버리는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래서 그 1명을 보면 저는 뭐라도 해주고 싶어져요. 잘 배워줘서 고맙고 멋진 공무원이 되어서 고맙다고. 국세청의 미래가 되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교수들이 비웃음과 당혹 대신 탄식을 내뱉었다.

심세광은 내게서 시선을 떼고 휴게실 안에 가득 찬 교수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던 홍대안을 딱 지목했다.

“홍 교수님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네요.”

홍대안이 움찔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불편한 듯했다.

나는 의아함을 감추고 평온을 유지했다.

이미 심세광은 나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대로만 끝내도 교수들은 아마 내게 호의적인 눈빛을 보낼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홍대안을 지목해서 묻는 거지?

나도 심세광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이제학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까처럼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안심하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심세광의 이 행동도 나를 위한 것이라는 뜻일 텐데.

거기서 무언가가 뇌리에 번뜩했다.

홍대안은 나와 가장 격렬하게 싸운 사람이다.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날 면박 주며 깔아뭉개려 했던 사람이다.

손경진 원장이 같은 편이 되어줄 거라 생각해서 더 막 나간 경향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가 이 안에서 가장 적대적이다.

그만 해결이 되면 다른 교수들은 자동적으로 조용해진다는 뜻이다.

“교수님…….”

나도 모르게 심세광을 부르자 그가 눈짓으로 내 입을 막았다.

나는 심세광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았다.

현재 교육원에 있는 모든 교수를 내 편으로 만들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반대 진영의 대표자인 홍대안을 뭉개서라도.

“홍대안 교수님. 여기서 하는 얘기는 외부에 나가지 않을 겁니다. 교수회의예요.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보세요.”

주름이 가득 잡힌 옆모습이 순간 노회한 정치인처럼 느껴졌다.

교육원에 있는 노교수라고 정치를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낙엽 밑에 조용히 도사리고 있는 구렁이를 발견한 기분이 되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홍대안은 처음에는 쉽게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것처럼 문을 흘끔거렸다.

“홍대안 교수님. 이런 기회 잘 안 옵니다. 다른 분들도 계시니 생각을 솔직히 말씀해보세요.”

심세광은 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다.

부추기는 것이다.

홍대안은 그것을 구분할 정도의 노련함을 갖고 있지 못했다.

홍대안은 머뭇거리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심세광 교수님께서 대체 뭘 보고 그러시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신재현이 뭘 그렇게 잘했습니까? 조사요? 그건 실무 나간 교육생들도 다 하는 겁니다. 세무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조사관이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합니다. 즉, 조사하는 게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전국에 뒤져보면 신재현보다 잘하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홍대안은 내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이런 자리만 아니었으면 이름 대신 ‘그놈’이라는 호칭이 나왔을 것이다.

“나대고 다니는 거요? 그건 그 혼자서 한 일이 아니죠. 뒤에 든든한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호가호위하는 여우에게 경외를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요, 일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낙하산 같군요. 일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사람의 명성 덕분에 과대평가 받은 낙하산이요.”

말을 끝내자 홍대안은 한결 편안한 표정을 했다.

그동안 꽤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홍대안의 꼬락서니가 이상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으면 됐지, 곁눈질로 주위 교수들을 둘러보며 안색을 살폈다.

눈치를 보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했는데 왜 저렇게 당당하지 못한 것인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세광은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주변 눈치를 살피던 홍대안이 이윽고 심세광과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심세광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마른 얼굴이 정색하자 꽤 무서워졌다.

“홍대안 교수님의 의견은 그게 답니까?”

“네? 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라 그런지 홍대안이 불안한 기색을 했다.

이미 교육생, 교수, 기자들이 모인 앞에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거기서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후 일어설 기회도 없이 국세청장이 쳐들어왔는데 그걸 모신 것이 나고, 바로 제주세무서로 파견 가 버렸다.

교수들 사이에서 그의 취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나에 대한 불만은 계속 쌓여 왔을 것이다.

그걸 풀 기회가 왔는데 주위의 반응이 싸늘하다면 주눅 들기 딱 좋다.

“홍대안 교수님의 생각은 아주 잘 알겠습니다. 이런 한심한 얘기에 제가 반박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시간이 아깝네요.”

“심 교수님…….”

심세광이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홍대안 교수님의 말은 아주 간단하게 증명이 가능합니다. 홍 교수님이 아는 조사관 아무나 데려오세요. 그리고 국회의원 1명에 장관 1명을 때려잡으라고 하세요.”

“잠시만요. 국회의원에 장관이라뇨.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왜요? 말이 안 됩니까? 제가 국세청장님께 특별히 간청하겠습니다. 이 힘없는 늙은이의 부탁으로도 안 된다면 여기 신재현 팀장에게 말해서 서울청장님께라도 간청하겠습니다. 홍 교수가 그렇게 말한 ‘뒷배’를 딱 한 번, 빌려달라고 하겠습니다.”

“교수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홍 교수가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조건을 맞춰줄 테니 그 위에서 놀아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 정 불안하면 지금 신 팀장에게 물어보죠.”

심세광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재현 팀장님. 딱 한 번만 힘을 빌려주십사 부탁할 수 있습니까? 국회의원 1명과 장관 1명, 쳐낼 테니 보호해주시라고요.”

나는 냉큼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청장님께서는 저라서 보호해주신 게 아니니까요.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는 정의감을 가졌다면 기꺼이 도와주실 겁니다. 인재가 나타났다고 좋아하실지도 모르죠.”

“그렇죠? 허허, 인재라. 맞는 말이죠.”

심세광은 작게 웃더니 홍대안에게 제안했다.

“어떻습니까. 홍대안 교수가 가르친 교육생, 아니면 현직 공무원. 아무나 데려와서 해보세요. 아, 홍대안 교수가 직접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뒤에 든든한 백이 있으면 가능하다면서요. 그 백, 딱 한 번이라면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야……!”

“가능하시겠어요?”

기세 좋게 대답하려던 홍대안이 우뚝 멈췄다.

“잘 생각하고 답하세요. 가능하다고 하면 정말로 조사팀 꾸릴 거니까. 홍대안 교수님이 믿는 조사관과 교수님이 직접 참여해서 가능하시겠냐고요.”

심세광이 차갑게 몰아치자 홍대안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여기서 거는 것은 두 명의 목이다.

홍대안 자신과 그가 가장 믿는 조사관 한 명.

괜히 호기롭게 대답해 버렸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당장 내일 국회의원 목을 치러 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홍대안은 심각해졌다.

갈등에 빠진 것이다.

국회의원과 장관, 정말 자신이 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휴게실의 교수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는 나를 향한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들은 홍대안을 경멸하고 있었다.

“말로는 누가 못해. 나도 입으로는 대선 후보도 50번 쳐냈다. 밥 먹을 때마다 욕하거든.”

“돗자리 깔아준다니까 겁나나 보네. 그러게 왜 입을 터나.”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를 질투한 거잖아.”

“본인 입으로 분명히 말했는데. 그닥 대단할 거 없다고, 뒷배만 있으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교수들의 말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홍대안을 후벼 파는 것이 보였다.

그는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욱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급속도로 그의 눈동자에서 열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해온 것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대입했겠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그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홍대안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대답은 심세광에게서 대신 나왔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본인도 잘 알고 계시죠? 누군가를 그 자리에 똑같이 데려다 놨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겁니다.”

홍대안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그림자가 가득한 벽 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 잠시 있다가 다른 교수들이 혀를 차거나 시선을 보내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에잉. 교수라는 양반이…….”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가 그의 뒤를 스쳤다.

철컥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교수들은 심세광에게 주목했다.

“이제 여러분들도 제가 왜 신재현 팀장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지 이해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교수들을 다 모아서 이런 자리를 만들고, 내게 뜬금없이 진지한 질문을 던졌는지도 이해했다.

여기 있는 교수들은 파벌과는 상관없는 조용한 학자였지만 그들의 제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주려는 심세광의 배려가 느껴졌다.

“청장 얘기를 꺼낸 것은 좀 앞서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저도 진짜 청장이 되라는 뜻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뒷방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을 보람으로 느끼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미래를 걸어볼 만한 후학이 나타났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심세광은 싱긋 웃었다.

교수들은 무언가를 느낀 듯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자, 교수님들이 각자 생각하시는 바가 있는 걸 보니 교수회의는 이쯤이면 되겠군요. 그럼 이제 가장 급한 건을 처리해봅시다.”

“급한 건이요?”

“교육자료 만들어야죠.”

“아. 그게 있었지.”

교수들은 막힌 입이 뚫린 것처럼 나를 에워싸고 한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맡은 과목이 범위가 정해져 있는 종류가 아니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넣을 건지부터 정합시다.”

“그다음에 목차를 쓰는 거예요. 주제를 나누는 작업이죠.”

“실무 경험담 위주로 갈 거죠? 세법 종류별로 나누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세무조사 준비, 현장, 사후정리, 과세. 이런 순서를 넣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신 팀장님의 경험을 넣어야겠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팀장님?”

교수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심세광과 이제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은 괜찮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교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가 책은 보기만 했지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교수님들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잘 가르쳐주세요.”

“어우, 그럼요. 책은 우리가 아주 지겹도록 쓰거든요. 세법이 매년 바뀌니까 매년 업데이트를 해야 돼.”

왁자지껄한 가운데 집필 작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교수의 손에 붙잡혀 테이블 앞으로 옮겨 앉았다.

테이블 위에 이면지가 놓이고 교수들에 의해 얼기설기 도식도 같은 것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몇 년 간 교육자료를 만들어 본 교수들의 노하우가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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