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교수회의 (1)
내가 교수과 교육연구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멍한 시선이 허공을 오갔다.
손경진이 미리 말해 뒀다고 했으니 내가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알고 있을 텐데.
반응이 하나같이 신통찮았다.
교육원 내에 파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윗선에서 명령까지 떨어진 마당에 왜 저렇게 뜨뜻미지근한 건지.
나도 솔직히 이런 어려운 명령은 듣고 싶지 않다.
나더러 책을 쓰라니!
그러나 까라고 했으니 까야지.
사람들은 반겨주지 않았지만 나는 껄끄러운 마음을 감추고 웃는 낯으로 교수과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말씀 듣고 왔습니다. 얘기가 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교육연구팀에서는 홈페이지 관리와 행정 관리가 주 업무다.
그리고 간혹 교수들을 도와 교육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원래는 교육자료, 즉 교육용 실무서 집필을 담당하는 과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사실 연구자료든 전공서든 책은 교수들이 집필한다.
결국 의미가 없어진 과는 해체하고 교수과에서 필요하면 돕는 식으로 바뀌었다.
즉, 내가 기댈 곳도 여기라는 뜻이다.
“네, 어서 오세요. 저희도 원장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교육연구팀의 팀장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머리를 동그랗게 올려 묶은 중년 여성이었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떤 게 문제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맞추겠습니다.”
“아뇨, 신 팀장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팀장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 나를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게 순전히 내가 껄끄러워서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무조건적으로 맞출 수 있는데.
다시 한번 정중하게 물어보려는데 저 멀리 사무실 한쪽에 연결된 자그마한 문이 열리더니 나이 지긋한 노교수가 나타났다.
“아, 심 교수님!”
“제가 설명할게요. 팀장은 일 봐요.”
“그래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팀장이 고개를 숙이고는 내게 자그맣게 덧붙였다.
“교수님들 중에서 대장 같은 분이세요. 저분 따라가시면 될 거예요. 생각이 있으신 것 같으니까.”
“감사합니다.”
이건 조언이라고 봐도 되겠지.
나는 인사를 남기고 흰머리가 무성한 노교수를 향해 걸었다.
그는 부드러운 얼굴로 말했다.
“원장님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놀랐겠네요. 저희도 놀랐습니다만 걱정 마세요. 책 관련해서는 저희가 많이 써봤으니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나도 알고 있다.
일전에 이제학 교수가 따로 써 줬던 교수진 목록에도 있었다.
-심세광. 교수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기보다 모든 교수들이 존중해주는 느낌. 일종의 원로라고 보면 될 듯. 심성이 차분하고 교육 외에는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학자풍. 신 팀장의 편이 되지도, 적이 되지도 않을 것임.
내가 이 분을 먼저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되지 않겠냐고 묻자, 이제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음, 신 팀장을 건드리면 서울청이 가만히 안 있을 거잖아요? 마찬가지예요. 함부로 대하면 교수들이 모두 등을 돌릴 겁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까 팀장이 말한 ‘대장’이라는 수식어보다는 ‘신망 깊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교수들에게서 믿음과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
그래서 일부러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오며 가며 인사한 것이 다다.
그런 사람이 지금 날 데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뒤에 따라오던 황민우와 시선을 교환했다.
‘얌전히 가 보죠.’
그런 눈빛을 보냈더니.
‘팀장님만 얌전히 계시면 됩니다.’
하는 듯한 눈빛이 돌아왔다.
내가 뭘 어쨌길래!
울컥해서 쳐다보자 황민우가 놀리듯 과장된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정말 아무나 들이받는 것도 아니고, 이런 데서 사고 치진 않을 테니 장난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도 억울한데.
“자, 이쪽입니다.”
우리가 사무실을 가로질러 한쪽에 달린 문으로 가자 노교수가 안으로 손짓했다.
들어가니 교수 휴게실이었다.
복도에서 들어가는 문 외에도 교수과 사무실에 연결된 쪽문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모든 교수가 다 모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교수들로 꽉 차 있었다.
빈자리가 없어 벽에 기대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역시 그냥 부른 게 아니었다!
단순히 책 얘기만 할 거면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대체 왜 필요하겠는가.
나는 바짝 긴장을 끌어올렸다.
그 사이 초로의 교수, 심세광은 창가에 놓여 있는 푹신한 소파로 다가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마주 보게 놓인 그 소파는 비어 있었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서 교수들이 서 있는 와중에 소파를 비워두었다?
나는 소파로 걸어가는 동안 눈을 굴려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고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저 구석 자리, 안 보이는 그림자에 숨어 있듯 서 있는 사람은 홍대안이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더욱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그의 주위에는 망이라도 쳐진 것처럼 반경 1미터 이내에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반대로 창가에서 좀 떨어진 곳의 철제 의자에는 이제학 교수가 앉아 있었다.
그는 날 보더니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 이 자리가 나에게 불리한 자리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언뜻 보았을 때, 이제학이 말해 준 영향도 순으로 교수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이 많고 영향력 있는 교수는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에,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고 힘없는 교수는 이제학처럼 철제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 서 있다.
많은 교수들이 모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래 서열의 교수들이 자연히 자리를 비켜준 것이겠지만, 그건 즉 지금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교수들 중에서 서열이 좀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가 된다.
“읏차.”
기묘한 의성어를 내며 반대쪽 소파에 심세광 교수가 앉았다.
그는 내가 바라보자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허허. 제가 무릎이 안 좋아서. 두 분도 어서 앉으세요.”
“그 전에 잠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나는 소파 등받이에 한쪽 손을 얹은 채 휴게실 안을 쭉 둘러보았다.
내가 알기로 교수 중에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휴게실에서 남들과 마주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강의가 없다고 해도 각자 강의 준비하느라 바쁜 사람도 있을 텐데 여기에 얼굴을 비추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교수님께서 이분들을 불러 모으신 게 맞습니까?”
내가 묻자 심세광은 처음엔 놀란 표정을 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주름 잡힌 눈가가 크게 뜨이더니 곧 푸근한 미소를 담았다.
심세광은 혼자 무언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묻는 건 우문일 것 같고. 그건 왜 묻는 걸까요?”
모이지 않을 시간에 모였으니 누군가 부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교수들이 모일 정도라면 그만한 신망을 쌓았다는 심세광밖에 없겠지.
그건 누구든 추측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심세광은 묻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왜 ‘지금’ 물었냐는 것이다.
심세광은 금방 필요한 질문을 끄집어냈다.
“제가 심세광 교수님과 나누는 얘기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서요.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싱긋 웃자 심세광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이름을 알고 계셨군요.”
“저는 어딘가를 처음 가면 거기 계신 분들의 성함부터 외우거든요.”
“이름을 외운다는 건 그 사람의 위치와 직급을 외운다는 거기도 하죠. 제가 현직일 때도 조사 나가면 거기 직원들 파악부터 시켰거든요. 누굴 찔러야 솔직하게 말할지, 누가 거짓말을 시키는 사람인지 알아야 둘을 떼어 놓을 수도 있고요.”
“기분 나쁘지 않으셨나요?”
“그럴 리가요. 잘 배웠다 싶은데. 교육원에서도 하는 걸 보면 몸에 아예 배인 것 같고. 암, 그게 맞죠.”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심세광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한 후에, 나는 소파에 앉았다.
“거기에 사태 파악도 빨라서 좋네요. 맞아요. 제가 여기 계신 분들을 불렀고, 두 분께 몇 가지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 일단 뒤에 분도 편히 앉아요.”
심세광이 권했지만 황민우는 정중히 거절했다.
“제가 합석할 자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면 경청하겠습니다.”
황민우는 내 뒤를 지켜 섰다.
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의 대표로 심세광이 날 초대한 자리다.
황민우가 뒤로 빠지는 것은 이해했다.
심세광 역시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를 칭찬했다.
“이쪽도 파악이 빨라서 좋네요. 자리도 구분할 줄 아는 것 같고.”
“과찬이십니다.”
“그럼 거기서 함께 들으세요. 제 질문은 두 분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니까.”
무슨 질문이 나올까.
나는 긴장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심세광은 파벌이 없다.
만들지도 않으며 표면에 나설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이만한 숫자를 불렀다는 데서 그의 인망을 엿볼 수 있다.
그의 말 한 마디는 파급력을 지닌다는 뜻이고 교수들은 굳이 그의 말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현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들의 손을 거쳐 갔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일단 교육원에 와서 연수를 받고 가니까.
그들 중에서 이들을 ‘은사’로 여기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은사의 입에서 ‘신재현 별로더라’라는 말보단 ‘괜찮더라’라는 말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질문이 던져졌다.
“어디까지 할 생각입니까?”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대답했다.
“끝까지.”
“뒤쪽 분은?”
황민우 역시 즉답했다.
“신재현 팀장님의 뜻이 제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이 역시 망설일 필요가 없는 대답이다.
“어디라도.”
“뒷분도 대답은 같습니까?”
“네. 팀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를 겁니다.”
“다른 세 명의 팀원도 마찬가지입니까?”
이건 잠시 고민이 필요한데.
내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황민우에게서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끼리는 이미 각오가 끝났습니다.”
“오…….”
심세광이 감탄했다.
“음, 그러면 이후부터는 신재현 팀장에게만 묻겠습니다. 당신은 국세청을 부술 생각입니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내가 국세청을 부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애초에 부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되물으려다가 심세광의 꾹 다물린 입매를 보고는 질문을 접었다.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것부터 내 생각을 듣고 싶어서 던진 질문이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세광은 나를 다그치거나 힌트를 주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스무 명 넘는 사람이 들어찬 공간에 숨소리만 흘렀다.
그들 모두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네. 국세청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전부.”
심세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주위에서 허어, 미친, 하는 감탄사도 들렸다.
“저는 신 팀장이 제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놓은 답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듣고 싶군요.”
“제 적은 국세청이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세무 공무원이고 세법에 따라 과세할 뿐입니다. 하지만 탈세가 있다면 조사하고, 어긋난 게 있다면 바로잡아야죠. 저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단순히 과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도 바꾸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이라는 단서를 단 겁니다. 저라고 무작정 잘 돌아가는 시스템을 부수겠습니까?”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언제고 필요성은 생기겠죠. 국세청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세법이든 정부든, 국회든 손을 대겠다는 뜻이겠고. 신 팀장님, 정치라도 할 생각입니까?”
나는 정색했다.
“꼭 정치로만 가능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청장이라도 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심세광이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심세광의 표정이 험악해져서인지 조금씩 웅성거림이 커져 갔다.
“청장? 같잖은 소리를.”
“잘한다 잘한다 해 주니까 하늘 끝까지 기어오르는데.”
작은 목소리였지만 날 비웃고 있다는 것만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 소란 가운데서도 나와 심세광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황민우는 반박도 없이 그저 우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야 다른 사람의 말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지금 나와 심세광의 기 싸움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의 눈싸움은 심세광의 말 한마디로 끝났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 순간 씻은 듯이 소란이 사라졌다.
다시 원래의 조용한 휴게실로 돌아가자 나는 아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제가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청장에 목매는 건 아닙니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뜻이죠.”
“이해했습니다.”
심세광은 언제 눈싸움했냐는 듯 한껏 부드러워진 눈빛이 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땐 나이가 원망스럽군요. 어디까지 할지 지켜보고 싶은데.”
“허억!”
“교수님 말씀은……!”
다시 휴게실이 소란스러워졌다.